1차 대전 때 타렌베르크전투에서 러시아군은 독일군에 대패했다. 패인은 러시아군을 지휘하는 두 지휘관의 불화 때문이었다. 러시아 1군 사령관 레넨 캄프는 유능하고 용맹한 지휘관이었으나 성품이 거만해 다른 지휘관을 깔보기를 예사로 했다. 2군 사령관 삼소노프는 지휘관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데다가 큰 부대를 지휘해 본 경험도 없었다. 이질적인 두 사람은 앙숙관계로 서로 으르렁댔다.

두 사람이 앙숙관계가 된 것은 러시아와 일본이 싸운 러일전쟁 때부터였다. 펑텐(奉天)전투에서 삼소노프가 레넨 캄프에게 다급한 지원을 요청했으나 레넨 캄프가 묵살한 것이 화근이었다. 펑텐역에서 우연히 마주친 두 사람은 치고받고 싸우기까지 했다. 두 사람이 싸우는 장면을 당시 펑텐에 파견돼 있던 독일군 호프만중령이 보게 됐다. 타렌베르크 전투에서 러시아군은 레넨 캄프 1군과 삼소노프 2군을 두 갈래로 나눠 독일군을 남과 북에서 협공하기로 했다. 독일군의 정찰기가 러시아군의 움직임을 손바닥 보듯이 보고 있었다. 이 때 독일군 작전참모로 타렌베르크 전투에 참전한 호프만은 러시아군 두 지휘관의 앙숙관계를 활용하는 작전을 세웠다. 펑텐역에서 두 사람이 싸우던 장면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호프만은 두 사람은 어떤 상황에 직면해도 서로 협력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호프만은 레넨 캄프가 지휘하는 1군 앞에는 1개 사단만 남겨놓고 대치하도록 했다. 그리고 나머지 11개 사단의 총 병력을 삼소노프가 지휘하는 2군을 포위 공격하는 데 총 집결했다. 호프만의 예상은 적중했다. 2군이 궤멸 될 위급상황에서 삼소노프는 레넨 캄프에게 지원을 요청했으나 레넨 캄프는 외면했다. 전쟁 결과는 러시아군의 대 참패였다. 러시아군은 10만이 전사하고 12만5000명이 독일군 포로가 됐다. 독일군 전사자는 1만여 명에 그쳤다. 25만 러시아군이 3만 독일군에 처참하게 당한 것은 두 지휘관의 불화가 원흉이었다.

안보 위기 속에서 국방장관과 청와대 안보특보의 갈등은 타렌베르크 전투를 상기시킨다.
이동욱 편집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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