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 1심 무죄·항소심서 징역형···대법원, 무죄 선고 전례없어

올해 6월부터 9월까지 대구지법 김천지원이 종교적 양심에 따라 입영을 거부한 피고인 4명에 대해 잇따라 무죄를 선고했는데, 대구지법 항소심 재판부가 이를 뒤집는 판결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전국적으로 잇따른 하급심 무죄 판결이 나오면서 변화의 움직임도 감지됐지만, 대구에서는 여전히 항소심에서 무죄 선고가 나오지 않고 있다.

대구지법 제5형사부(김경대 부장판사)는 지난 9월 22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권모(22)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원심(무죄)을 깨고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다만, 증거인멸과 도망의 염려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법정 구속하지는 않았다.

권씨는 지난해 10월 27일 ‘11월 21일 논산시 연무읍에 있는 육군훈련소에 입영하라’는 대구경북지방병무청장 명의의 현역병 입영통지서를 주거지로 전달받고서도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일로부터 3일이 지나도록 입영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권씨는 재판에서 “무기를 들고 전쟁연습을 할 수 없다는 종교적 양심에 따라 입영을 거부했고, 이는 헌법상 양심의 자유에 근거한 병역거부권의 행사로 입영을 거부할 ‘정당한 사유’가 있으므로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인 대구지법 김천지원 제2형사단독 이형걸 부장판사는 6월 8일 “피고인이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서 입영을 거부하는 것은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서 정하는 입영을 하지 않을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국민의 국방의 의무 중 하나인 병역의무는 국가 공동체의 존립을 위해 가장 기초적으로 요구되는 것으로 국민 전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어서 종교적 양심실현의 자유가 병역의무와 충돌할 때에는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법률에 의해 제한될 수 있고 이는 헌법상 허용된 정당한 제한이라고 판시했다.

또 병역법은 양심에 반한다는 이유로 현역입영을 거부하는 자에 대해 병역의무를 면제하거나 순수한 민간 성격의 복무로 병역의무 이행에 갈음할 수 있도록 하는 예외조항을 전혀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병역법 제88조 제1항은 국제연합의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서 말하는 양심표명의 자유에 대한 제한 법률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설명도 보탰다.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현실적으로 병역의무를 이행할 것을 기대하기 어려워 징역 1년 6개월 미만의 실형이나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할 경우 또다시 입영 또는 소집을 거부해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권씨는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9월 27일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권씨 사건 외에도 대구지법 김천지원은 6월 8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2명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8월 31일에도 같은 판결을 내렸다. 대구지법 항소심 재판부는 무죄를 받은 3명에 대한 항소심 사건을 배당받은 상태다.

2004년 서울 남부지법 이정렬 판사의 첫 무죄판결 이후 올해까지 하급심에서 내린 무죄 선고가 50건을 넘어섰고, 최근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판결도 3건 정도로 확인됐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 6월 15일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 대해 기존의 유죄 취지를 확인한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배준수 기자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법조, 건설 및 부동산, 의료, 유통 담당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