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기다렸다는 듯

유리에 맺힌 안개가 증발하였다.

수도관의 저편에서 빙하의 이동이 시작되었다.

오래전의 여자가 잠시 나를 떠올렸다.

나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골목처럼 이상한 시간을 지나가고 있는데

떠놓은 쌀뜨물은 민감하게 흔들렸다.

벽에 걸린 사진이 정교하게 기울었다.

다른 생각 속으로는 한없이 쇠락하는 배후와 함께

기차가 맹목적으로 사라졌다.

진앙을 알 수 없는 흔들림이 당신의 어제와

그녀의 잠에 닿았을 때

나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무는 침묵을 완성하자 두 팔을 벌렸으며

편의점의 두터운 유리에는 기다렸다는 듯

뜨거운 안개가 내렸다. 누군가 하루 종일

生活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감상) 일기예보에 없던 비가 왔다.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일은 다행이었다. 나뭇잎에 맺혔다 떨어지는 빗방울, 그 옆으로 지나가는 바람, 제법 가을스런 풍경이었다. 나는 새로 지은 상가의 처마 아래에서 그런 풍경들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지진이 온 것도 아닌데 내 마음은 흔들렸으며 아팠던 추억이 그리워지기도 했다.(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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