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 한 덩이 머리맡에 두고 바라다보면

방은 추워도 마음은 따뜻하네

최선을 다해 딴딴해진 호박

속 가득 차 있을 씨앗

가족사진 한장 찍어 본 적 없는 나(我)라

소박네 마을 벌소리 붕붕

후드득 빗소리 들려

품으로 호박을 꼬옥 안아 본 밤

호박은 방안 가득 넝쿨을 뻗고

코끼리 귀만한 잎사귀 꺼끌꺼끌

호박 한 덩이 속에 든 호박들

그새 한 마을 이루더니

봄이라고 호박이 썩네

흰곰팡이 피우며

최선을 다해 물컹쿨컹 썩어 들어가네

비도 내려 흙내 그리워 못 견디겠다고

썩는 내로 먼저 문을 열고 걸어나가네



감상) 그 시골길에서 잠시 차를 세웠다. 한 아주머니가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밭두렁 가득한 넝쿨을 들추고 애호박하나를 뚝 끊어 들고 돌아갔다. 그녀의 저녁 식탁엔 그 푸른 애호박이 고소한 웃음으로 오르리라. 아니면 칼국수 사이사이 파란 꽃으로 피어나리라 애호박이 둥둥 떠다니는 저녁 그리운 추억들이 둥둥 떠다니는 저녁.(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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