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마라톤 법칙’은 기업이나 국가 등 조직의 흥망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20세기 최고의 전자회사 ‘소니’는 트랜지스터라디오, 브라운관 TV, 워크맨 등 첨단기술로 세계전자업계서 선두를 달렸다. 정상에 서게 되면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난다. 하나는 앞선 주자가 없어 어디로 달려야 할지 방향을 잃기 쉽다. 다른 하나는 이제까지 힘들게 달려왔으니 좀 쉬어가자는 무사안일이 고개를 든다. 소니가 선택한 방향은 좀 쉬어가자는 ‘탈전자화’였다.
탈전자화는 말로는 전자와 예술의 결합이었으나 실질 내막은 전자를 무시하는 분위기였다. 소니의 탈전자화는 1982년 오가 노리오 회장이 취임하면서 가속화됐다. 전자의 전자도 모르는 오페라가수 출신인 노리오 회장 취임 후 전자기술자들의 설 자리가 줄어들었다. 48억 달러를 들여 미국 컬럼비아영화사를 인수하는 등 소니제국을 이룬 듯 했지만 무섭게 변화하고 있는 전자시장의 디지털 트렌드를 감지하지 못했다. 뒤늦게 깨달았을 땐 전자기술자들을 천시하는 풍토를 버리고 일류 기술자들이 모두 떠난 뒤였다. 21세기 접어들자 ‘마쓰시타전기’, ‘샤프’ 등에 밀리기 시작, 마침내 한국의 삼성, LG에도 밀리는 신세로 전락했다.
느닷없는 ‘탈원전’으로 글로벌 원전 시장이 활짝 열렸는데도 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 원전산업이 고사 될 위기에 놓여 있다. ‘핵은 핵으로 맞서야’하는 ‘공포의 균형’이 절실한 판에 원자력기술의 원천인 원전폐기는 소니의 ‘탈전자’를 닮은 무모한 발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