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이불비(哀而不悲), 속으로는 슬프면서 겉으로는 슬프지 않은 체 의관을 흩뜨리지 않았던 선비들도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데는 마음을 풀어놨다.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시를 만시(挽詩)라 한다. ‘만(挽)’은 상여를 끈다는 뜻이다. 한시에서는 남녀의 정분을 노래한 시를 찾아보기 어려운데 만시의 일종인 도망시(悼亡詩)에서 그 예들을 여럿 확인할 수 있다. 도망시는 남편이 아내의 죽음을 애도해 지은 시다.

“중신 할매 내세워 명부에 소송을 해서라도/ 다음 생에서는 부부가 바꿔 태어나/ 천 리 밖에서 나는 죽고 당신은 살아/ 지금 내 마음의 슬픔을 당신이 알게 하리라” 추사 김정희의 도망시는 직접적이면서도 역설적 표현으로 지극히 아내를 사랑한 마음을 표현했다. 추사 57세인 1842년 섣달 14일 유배지인 제주에서 부인 예안 이씨가 한 달 전인 동짓달 13일 별세했다는 부음을 듣고 지은 시다.

1604년, 조선 선조 때 영일 정씨 아내의 죽음을 애도한 오리 이원익의 도망시도 유명하다. 상여가 나갈 때 들고 따랐다가 태워지는 것이 일반적인 만장(輓章)으로 쓰여 졌던 만시인데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던지 지금까지 전해져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상투 틀고 쪽 찔러 부부가 된 지 지금에 와서 여러 해가 지났구려/ 벼슬하러 사방을 나다녔으니 독수공방하는 날 얼마나 많았던가/ …(중략) /널을 어루만지며 그대를 떠나보내니 그대 할 일 다 마친 것 부럽소/ 그대를 따라갈 것 몹시 원하지 세상에 오래 사는 것 원치 않으니/ 황천에서 혹시나 서로 다르게 되면 업보의 인연 응당 이전과 같으리”

“마당의 모과 벌써 익어/ 영전에 바치니 마음 더욱 슬퍼지네/지난날 그대와 함께 모과 열매 보았는데/오늘 함께 맛볼 수 없음 어찌 알았으랴” 아내와 함께 심었던 모과나무에 열매가 익었지만 함께 맛보지 못하는 애절한 심정을 노래했다. 약 300년 전 전남 보성에 살던 임재당이란 선비의 슬프고 애틋한 정이 담긴 도망시 104수 중의 한 구절이다. 이 시가 실려 있는 ‘갑진일록’이 장흥 임씨 후손에 전해졌다는 소식이다. 경산의 나라얼연구소 조경원 이사장이 경매로 입수한 문집이다. 옛 시정이 영호남 교류의 길을 열었다.
이동욱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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