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살기 좋은 배산임수 지형···뛰어난 인재·문화재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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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송군 진보면은 청송군의 북부에 있다. 15개 법정리로 구분돼 있고 면사무소는 진안리에 있다. 영양군·영덕군 및 안동시 경계와 맞닿아 있다. 동부와 남부는 비교적 높은 산이 분포해 있으나, 청송군 내에서는 상대적으로 구릉지가 많은 편이다. 반변천과 서시천이 흐르고 유역 주변에 충적지가 비교적 넓게 분포한다.

본래 조선시대 진보현(眞寶縣)이었다. 진보현은 하리면(下里面)·상리면(上里面)·동면·서면·북면 5개 면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2개 면만 지금의 진보면 관할이다. 옛 북면과 동면은 영양 입암면과 석보면, 남면은 청송 파천면 관할로 바뀌었다. 

진보현은 삼국시대 때 칠파화현(漆巴火縣)과 조람현(助覽縣)으로 나뉘어져 있다가, 통일신라 때는 각각 진보현과 진안현(眞安縣)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이후 고려 때 두 현을 합쳐 보성부(甫城府)가 되었다가, 조선 세종 때 진보현이 되었다. 재암(載巖), 진해(眞海)라는 별칭도 있었다 한다.

진보면은 109.47㎢ 면적 법정리 15, 행정리 25, 반 124, 자연부락 71개 행정구역,3천373가구(농가 1,372 / 비농가 2,001) 가구 와 인구수는 6천784명(남 3,416명 / 여 3,368명)명이다.

진보향교
△진보면 대표유적

진보면의 대표유적인 진보향교(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신한2길, 도지정문화재, 유형문화재 제201호)는 나라에서 세운 지방의 교육기관으로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춘추제사를 드리는 대성전을 중심으로 한 제향공간과 유생들을 가르치는 강당인 명륜당을 중심으로 한 강학 공간이 중심이 되고 있다.

이 향교는 조선 태종(太宗) 4년(1404)에 처음 건립하였으며, 영조(英祖) 38년(1762) 광덕산 기슭으로 이건 했다가 고종(高宗) 19년(1882)에 구읍으로 다시이건 했다가 동왕 23년(1886)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또 진보면의 대표장인 청송옹기장(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옹기도막길 15,도지정문화재, 무형문화재 제25-가호)이무남(李茂男) 일가는 5대째 옹기구이를 가업으로 전승하고 있으며, 진보면 진안리 일대의 점토가 질이 좋고 매장량이 풍부해 오래 전부터 파천, 송강, 부곡, 안덕, 노래 등에는 옹기굴이 여럿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없어지고 이곳만 남아있다. 옹기대정(만드는 사람)과 거내꾼(보조자)이 역할을 분담해 일을 했다.

옹기 제작은 5색빛이 나는 점토를 고르는 일부터 시작하여 여러 개의 칸으로 연결된 둥근 모양의 굴을 연결한 가마 2기에 10일 정도 불을 때서1,200℃∼1,400℃까지 온도를 높여 옹기를 굽는 공정을 거친다. 나무 불은 온도가 부분적으로 다르게 전달되기 때문에 옹기표면의 유약이 흘러내리면서 특유의 아름다움이 나타난다. 지금 옹기굴은 20평 정도와 10평 정도의 2기가 있다. 그가 주로 만드는 소재는 독, 뚜껑, 옹가지, 시루, 설장군, 누불장군 등의 전통성을 가진 품목으로 작품은 아주 훌륭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송만정
송만정(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광덕리,도지정문화재, 문화재자료 제577호)는 임진란 당시 1592 곽재우 장군과 함께 의진에 참가해 화왕산성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안동권씨 태사공 권행(權幸)의 22세손인 권준(權晙) 선생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1863년에 최초로 건립했다.
풍호정
풍호정 주사 (風乎亭 廚舍)(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경동로 3758-327)도지정문화재, 문화재자료 제292호

이 건물은 조선 세종(世宗) 14년(1414)에 건립됐다. 고려개국공신 장절공(莊節公) 신숭겸(申崇謙)의 167세손 신영석(申永錫)의 장자인 신지(申祉)의 호를 따라 이름을 붙인 정자이다. 건물은 당시의 것은 아니다.
백호서당
백호서당(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양지길,도지정문화재, 문화재자료 제577호)은 조선 숙종 때 영남학파의 거두인 존재 이휘일(存齋 李徽逸)선생의 유업을 기리기 위해 영조 33년1757에 건립한 서당이다.

추현박씨 효자각(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추현리,도지정문화재, 문화재자료 제180호) 박득춘(朴得春)의 아들인 4효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 고종(高宗) 28년1891에 정려가 내려져 추현동에 건립한 것이다.
추현박씨효자각
객주문학관
객주문학관은 19세기 말 조선 팔도를 누빈 보부상들을 중심으로 민중 생활사를 생생하게 그려낸 작가 김주영의 대하소설‘객주’, 한국 역사 소설의 지평을 넓힌 객주를 테마로 문을 연 객주문학관은 폐교된 진보 제일고 건물을 증·개축한 4천640㎡ 규모의 3층 건물이다.

‘객주’를 중심으로 작가의 문학 세계를 담은 전시관과 소설도서관, 스페이스 객주, 영상 교육실, 창작 스튜디오, 세미나실, 연수 시설 그리고 작가 김주영의 집필실인 여송헌(與松軒)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제1, 2전시실에는 작가 김주영의 집필 배경과 과정에 대해 상세하게 전시돼 있고 조선 후기에 활동하던 보부상들의 활동상이나 조선 후기 상업사를 단편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게 꾸며 역사 및 상업사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흥미있는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객주문학관은 특정인물이나 작품에 관한 자료를 수집·보관·전시하는 기본적인 기능에 국한되지 않고, 지역민과 소통하고 지역 사회의 문화·예술 환경 조성에 이바지하며 여러 장르 예술인들의 창작 공간으로 폭넓게 운영되고 있다.
야송미술관
군립 청송야송미술관은 지역출신 화가인 야송 이원좌 화백이 소장하고 있던 한국화 및 도예작품 등 365점과 미술관련서적 1만 5천여권을 기증받아 전시하고 있는 공간이다.

옛 신촌초등학교(연면적 10,477㎡)를 리모델링해 연건평 1,008㎡(305평), 대중소 전시실(496㎡), 사무실 및 미술도서관(129㎡) 그리고 교육장, 수장고, 작업장, 조각공원 등으로 이뤄져 있으며, 21세기 지식기반사회를 맞아 이원좌 화백의 작품을 기증받아 미술관에 전시하고 지역주민 및 미술학도들을 위한 체험 교육의 장소로 활용함으로써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의 문화향유공간 조성과 더불어 지역문화발전에 기여하고자 조성된 공간이다.

안동과 영덕을 잇는 34번 국도변의 중간에 있는 신촌약수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고 있다.
신촌약수탕
달기약수처럼 철분이 함유된 탄산수이며, 설탕을 뺀 사이다의 맛으로 위장병과 신경통, 만성부인병 등에 효험이 있다 하여 연간 50여만 명이 찾고 있다.

또한, 이곳의 별미인 닭백숙은 닭과 찹쌀, 마늘, 인삼, 대추 등을 솥에 넣고 약수를 부은 다음 참나무 장작불로 푹 고아낸 맛이 일품이어서 이 요리를 일부러 맛보기 위해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현재 신촌약수탕은 2016년말 상주~영덕 고속도로 개통으로 인해 동청송영양IC가 진보면 신촌리에 생겨 더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 들어 고속도로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진보면 출신 인물

청송군 진보면을 빛낸 고향 인물로는 초대 민선 군수를 지낸 안의종 전 청송군수(40,41대), 배대윤 전 청송군수(43대 ), 객주 집필로 유명한 김주영 소설가가 있다.

또 아침마당으로 더 알려진 송신경정신과 송수식 박사, 경북하이브리드부품원장인 권오승 박사, 아동문학가 심후섭 작가, ‘무조건’, ‘네박자’, ‘봉선화 연정’의 박현진 작곡가 , 대구대학교 정보통신대학장 권영직 박사, 정형진 전 국립안동대학교 총장 , 손광희 대구경북지방중소기업청장, 권유석 금강 E&D 대표이사, 오종환 주식회사 삼보텍스 대표이사, 권영흡세무회계사 사무소 대표, 정성진 전국양계농협 영남본부장, 신하용 법무법인 율리 대표 변호사, 이갑수 경북경찰청 보안과장, 동대문구의회 의장을 지낸 신재학(주)평산기업 대표 등이 있다.
원용길 기자
원용길 기자 wyg@kyongbuk.com

청송·의성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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