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영양서 ‘난진이퇴’ 실천한 산택재 선생 사상 재조명 학술대회 개최

산택재 문집
400년 전 사색당쟁을 반추해 오늘을 비춰 보는 학술대회가 열린다.

성균관유도회 경북본부는 오는 27일 오전 영양군문화센터에서 ‘산택재 권태시 선생의 학문과 사상’이라는 학술대회를 갖는다. 이번 학술대회는 조선중기 사색당쟁 때 ‘난진이퇴(難進易退)’를 실천한 영남의 선비 산택재(山澤齋) 권태시(1635∼1719) 선생의 민본주의와 애민사상을 재조명한다.

‘난진이퇴’란 벼슬길에 어렵게 나가고 선선히 물러난다는 뜻으로, 맹자가 말한 행장진퇴(行藏進退)와도 같은 말이다. 지식인에게는 관직에 나아감과 물러섬을 아는 자연스런 처신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의 사상은 최근 안동권씨 부정공파 대곡 문해문중에서 산택재 문집을 번역, 국역본을 발간하면서, 그가 숙종 16년(1690) 충청 회덕군 신임 현감 때 조정에 올린 ‘상소문’ 내용이 세상에 처음 알려져 세인들의 눈길을 끌었다.

당시 조정은 남인북인 노론소론 등 사색당파로 얼룩져 백성들은 민생고로 도탄에 빠졌다. 이러한 백성들의 고된 삶을 낱낱이 적어 직언하고 있는 이 상소문은 최근 북핵으로 급박해진 안보위기 속에서도 연일 5당 5색의 당쟁만 반복하는 작금의 정치권을 향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55세의 나이로 늦깍기 고을원이 된 그는 부임하자마자 탐관오리들의 오랜 학정으로 피폐하기 이를 데 없는 백성들의 고된 삶부터 꼼꼼하게 살폈다.

“조정에서 백성들을 위하는 뜻이야 지극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본 회덕현의 가난한 백성 가운데 신구(新舊) 환곡을 한꺼번에 갚아야 하는 부담을 못이겨 다른 곳으로 도망가거나 그 사이 죽은 자도 부지기수여서 환곡상환 부담을 할 수 없는 지경이 태반인 상황입니다. 양반네들은 ‘돈 꿔 달랠까봐’ 대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출입을 하지 않으며, 평민들은 ‘무거운 세금이 무서워’ 가족을 이끌고 도피하느라 읍리(邑里)가 수선스럽습니다. 민심이 흉흉하여 닭과 개까지도 편안치 못한 지경입니다. 귀와 눈이 닿는 곳마다 놀라움과 참혹함을 이길 수 없는 데도 지금 혹독한 겨울이 닥쳐오고 있습니다.”

숙종 16년 이후엔 노론이 지금의 여당처럼 권력을 잡고 조정을 장악한 상황임에도 남인 출신이었던 그는 여야를 불문하고 임금과 조정대신들을 향한 직언을 주저하지 않았다. 조정을 어지럽힌 대신들을 향한 탄식도 엿보인다.

“오호라! 이미 백성들이 흩어진 지 오래이고, 사대부집에서 재물이 있는 데도 백성들을 위하여 쓰지 않는 것은 큰 도적놈이 아니겠소이까. 바로 그 백성들의 피해가 벼슬아치에 그치지 않고 결국 조정과 국가에 미칠 것이니 이를 어찌해야 할 일인지요.”

그는 상소문 뿐 아니라 당시 유력한 대신들에게도 개인적인 서신을 보내 이중삼중으로 겹쳐진 중과세와 굶주림에 지친 백성들을 구할 방도를 찾아 동분서주했다.

“가만히 생각건대 임금과 재상이 하셔야 할 백성에 대한 걱정을 일개 고을원이 분수에 넘치게 하여 주제넘고 경솔함이 여기에 이르렀지만 이를 감수하면서 이렇게 서신을 전달하옵니다. 엎드려 바라건데 자애로우신 대감께서 조정 군신간 경연의 자리나 조정의 국사를 논하는 즈음에서 이러한 우려를 참작하신다면 혹시라도 백성들을 선처할 방도가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구구절절이 민본주의, 애민정신이 스며있는 목민관의 글이다. 그는 1694년(숙종 20) 사색당쟁이 더욱 극심해 갑술환국으로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당쟁 중단을 요구하는 상소문을 또다시 여러 번 올렸다. 그러나 그는 뜻이 관철되지 않자 그 길로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 난진이퇴를 실천하면서 학문에만 전념했다.

그가 회덕현감 재직당시 경험을 살려 백성의 입장에서 고을 수령이 지켜야 할 도리를 적은 목민관 지침서 ‘거관요람’은 그의 증손자 권방이 친구인 다산 정약용에게 보여주면서 ‘목민심서’ 집필의 기초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택재 학술대회를 앞두고 안동청년유도회 회원들이 권태시 선생이 낙향후 학문에 정진한 영양군 입암면 만경대 앞에서 세미나 후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27일 학술대회에는 박영호 경북대 교수를 좌장으로, 김언종 고려대 교수와 신두환 안동대 교수가 각각 ‘산택재 선생의 임관(任官)기 상황에 대하여’, ‘산택재 선생의 생애와 문학세계’라는 제목으로 주제발표를 하며, 김세중 연세대 교수, 이성호 성균관 한림원 교수, 강일호 성균관유도회 부회장, 김명균 교남문화 대표 등 쟁쟁한 석학들이 토론에 나선다.

성균관유도회 김시덕 사무처장은 “민주주의와 일맥상통하는 산택재 선생의 드높은 애민사상과 민본주의는 요즘시대에서도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다”면서 “선생은 고을원으로서 오로지 백성들을 위하여 군주와 대신들에게도 직언을 서슴치 않는 공복으로서 망국의 당파싸움을 일깨워 반면교사의 시대적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종명 기자
오종명 기자 ojm2171@kyongbuk.com

안동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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