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예속 탈피·분권개헌 실현해 진정한 지방자치로 거듭나야

△지방자치의 어제와 오늘

오는 10월 29일은 ‘제5회 지방자치의 날’이다. 제헌헌법과 함께 시작된 우리의 지방자치는 시행초기 중앙정부의 필요에 따라 시행과 중단이 결정된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60년 4·19혁명을 통해 제1공화국이 붕괴되고, 등장한 제2공화국에서는 양원제와 함께 지방선거를 확대함으로써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직접 선출하는 지방자치를 실시했다. 그러나 1962년 5·16 군사정변으로 국회와 지방의회가 해산되면서 우리의 지방자치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경제성장과 함께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에 대한 국민적 열망은 점차 높아지게 됐다. 1987년 6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골자로 하는 국민적 요구의 결과로 6.29 선언이 발표되고, 이에 따라 진행된 제9차 헌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와 함께 지방자치의 부활이 예고됐다. 1991년 지방선거를 통해 지방의회가 구성되면서, 1961년 지방의회가 해산된 지 30년 만에 지방자치가 새롭게 부활했다.

지방자치의 날은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담아 지방자치를 부활시킨 제9차 헌법이 개정된 1987년 10월 29일을 기념하기 위해 정부가 2012년 10월 22일에 법정기념일로 지정했다.

올해 지방자치의 날은 이전 지방자치의 날과는 다른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국민들의 촛불집회를 통해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분권개헌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다. 또 국회도 헌법개정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지난 8월 29일에서 9월 28일까지 전국 11개 지역에서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대토론회를 개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국민들은 그동안 2할 자치, 무늬만 지방자치라는 비판을 받아온 우리의 지방자치가 새롭게 거듭날 것이라는 기대로 가득 차 있다.



△지방자치의 성과와 한계

실제로 우리의 지방자치제도는 그동안 성숙한 시민의식과 변화하는 정치·문화·사회 환경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1987년 지방자치제도를 오늘날에 그대로 시행하는 것은 마치 어른에게 아이 옷을 입혀놓은 듯 불편하기 짝이 없다.

지방자치 26년의 경험은 주민들의 의식을 크게 변화시켰다. 직접선거로 지방자치단체장을 선출하면서 행정서비스의 질은 높아지고, 관공서의 문턱은 낮아졌다. 뿐만 아니라 주민소환과 주민감사를 통한 정책참여의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실례로 2007년 하남시장과 시의원, 2009년 제주도지사에 대한 주민소환이 있었고, 2009년 안양시 시외버스터미널사업, 2010년 대구지하철 2호선 역세권 개발에 대한 주민감사가 청구된 바가 있다.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자 하는 주민의식이 성숙하면서, 지역정책에 대한 실질적 참여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제도는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채 1987년에 머물러 있다. 현행 헌법은 민주주의의 학교라는 지방자치에 대해 단 2개 조항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헌법 제117조 제1항은 지방자치단체의 자치입법권을 법령의 범위로 제한하고 있으며, 헌법 제118조 제2항에서는 지방자치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법률에 포괄적으로 위임하도록 하고 있다. 이로 인해 우리의 지방자치는 헌법에 명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제정하는 법률에 따라 좌우되고 있다.

결국 독립적인 재정권이 없는 지방자치단체는 열악한 재정으로 인해 중앙정부의 보조금에 기대어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 이로 인해 중앙정부는 약속을 하고 지방자치단체는 책임을 져야 한다. 또한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법규를 제정해야 하는 지방의회는 중앙 행정기관장의 명령조차 어겨서는 안 된다. 전문역량을 키우기 위해 의정활동을 지원할 전문 인력을 두는 것조차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이처럼 지방자치를 위해 지방은 중앙만 바라봐야 하는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이와 관련,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최근 메르스 사태, AI와 구제역의 전국적 확산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긴급한 재난 사태가 발생했을 때 지방정부에 초등대응 권한이 없어 사태를 키우는 원인이 되고 있다”면서 중앙정부에 과다하게 집중된 권한을 지방정부로 이양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지방자치의 나갈 방향

올해는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26년, 제9차 헌법이 개정된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이제 우리의 지방자치제는 성숙한 주민의식과 그동안의 자치경험을 바탕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현 정부의 ‘분권개헌’을 위한 노력이 성공리에 마무리돼야 할 것이다.

개정헌법에는 지방의회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위와 권한을 명시하고, 우리나라가 지방자치 국가임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지방이 중앙에 예속되어 있는 현재 관계를 타파하고, 서로 대등하고 평등한 관계로 새롭게 변해야 한다. 이를 위해 중앙과 지방이 대등하게 협력할 수 있는 제2국무회의를 신설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보장할 필요가 있다. 또한 현재의 중앙집권적 법률을 개정하고,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에 예속하는 선거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이와 함께 주민의 대표기관인 지방의회의 역량을 강화하는 일이 시급하다. 현재 우리의 지방자치제는 지방의회가 예산안, 조례안을 심의·의결하고, 행정사무감사를 통해 지방자치단체를 감시·견제하는 기관대립형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강한 지방자치단체장과 약한 의회라는 기형적 형태로 올바른 견제와 감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지방의회가 지방자치 실현을 위해 주어진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를 실시하는 많은 국가들이 보장하고 있듯이 보충성의 원칙에 따라 지방의회의 자치입법권을 확대하고, 예산과 조직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

김응규 경북도의회의장은 “지방분권 개헌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는 올해 지방자치의 날은 좀 더 의미가 깊다. 내년에 맞이하는 지방자치의 날에는 2할 자치, 무늬만 지방자치라는 오명을 씻고, 지역에 필요한 자치법규와 정책을 스스로 결정하며 집행하는 올바른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가 함께 하는 진정한 지방자치의 날을 기념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양승복 기자
양승복 기자 yang@kyongbuk.co.kr

경북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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