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생이 선생님에게 “궤변이 무엇입니까?” 물었다. 교사는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난 후 말문을 열었다. “어떤 두 사람이 우리 집에 잠시 머물렀는데 한 사람은 아주 청결하고, 한 사람은 아주 더러웠다. 내가 그들에게 몸을 씻으라 했는데 누가 씻었겠나?” “그야 더러운 사람이 씻었겠죠” 학생들의 대답이었다. “틀렸어. 깨끗한 사람이 씻었어. 그는 늘 깨끗이 하는 습관대로 한 거야. 더러운 사람은 습관대로 안 씻었어”

교사는 다시 “누가 씻었겠느냐?”고 물었다. “깨끗한 사람이 씻었죠” “아니야. 더러운 사람이 씻었어. 그 사람은 몸이 더러우니까 씻어야 했어” 그리고 다시 “누가 씻었겠느냐?”고 물었다. “더러운 사람이 씻었죠” “아니야. 두 사람 모두 씻었어. 깨끗한 사람은 깨끗한 습관대로, 더러운 사람은 몸이 더러우니까”

선생님은 또 물었다. “그럼 누가 씻었어?” “두 사람 다 씻었죠” “모두 틀렸어. 두 사람은 다 씻지 않았어. 더러운 사람은 씻는 습관이 들지 않아서, 깨끗한 사람은 씻을 필요가 없어서” “그럼 선생님 답이 뭐예요” 선생님은 웃으며 말했다. “바로 그게 궤변이야”

이처럼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을 어거지로 꾸며대는 소리나 짓거리를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고도 한다. 전혀 상식과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나 행동거지를 보면 ‘언어도단’이라 비난한다. 원래 이 말은 불가에서 오묘한 진리의 세계를 일컫는 말이다. ‘부처님이 깨달은 법계(法界)는 너무나 심오해 말로서는 설명할 수 업는 경지’를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불가의 오묘한 진리를 말하는 ‘언어도단’이 세속에서 이치에 맞지 않는 말로 변질 됐다.

궤변과 언어도단이 판치는 곳이 정치판이다. ‘궤변 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 말도 안 되는 궤변과 언어도단의 일들이 날만 새면 일어나 국민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국회서 헌재소장 임명동의안이 부결되자 김이수 헌재소장권한대행 체제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청와대의 독선이 국민에게 궤변과 언어도단의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이치에 맞지 않고 삼권분립 헌법정신과도 배치되는 아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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