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왕의 신령하고 성스러움 알 수 있어

먼저 천사옥대(天賜玉帶) 이야기다. 고려 태조 연간(937년)에, 정승(正承) 김부(金傅)가 금으로 새기고 옥玉으로 장식한 허리띠 하나를 바쳤으니, 유명한 진평왕(眞平王)의 천사옥대다. 태조는 이를 내고(內庫)에 간직했다. 경순왕 김부가 고려 태조 왕건에게 진평왕 옥대를 바쳤다는 기록이다. 그럼 진평왕 옥대의 유래는 어떠한가?

신라 제26대 백정왕(白淨王)의 시호는 진평대왕(眞平大王), 성은 김씨다. 대건(大建) 11년 기해(己亥; 579년) 8월에 즉위했다. 신장이 11척이나 되었다. 내제석궁에 거동하여 섬돌을 밟자 두 개가 한꺼번에 부러졌다. 왕이 좌우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이 돌을 옮기지 말고 그대로 두었다가 뒷 세상 사람들이 보도록 하라.” 이것이 바로 성 안에 있는 다섯 개의 움직이지 않는 돌의 하나다. 진평왕 즉위원년(元年)에 천사(天使)가 대궐 뜰에 내려와 왕에게 말한다. “상제(上帝)께서 제게 명하여 이 옥대(玉帶)를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왕이 꿇어앉아 친히 이것을 받으니 하늘로 올라갔다. 교사(郊社)나 종묘(宗廟)의 큰 제사 때에는 언제나 이것을 띠었다.

그 후에 고려왕(高麗王: 곧 고구려왕을 말한다)이 신라를 치려하면서 물었다. “신라에는 세 가지 보물이 있어서 침범하지 못한다고 하니 그게 무엇이냐.” 좌우가 대답한다. “황룡사(皇龍寺)의 장육존상(丈六尊像)이 그 첫째요, 그 절에 있는 구층탑이 그 둘째요, 진평왕의 천사옥대(天賜玉帶)가 그 셋째입니다.” 이 말을 듣고 신라를 공격할 계획을 중지하였다.

찬(讚)하여 노래한다.

구름밖에 하늘이 주신 긴 옥대(玉帶)가 둘르니, 임금님 곤룡포(袞龍袍)에 우아하게 어울리네.
(雲外天頒玉帶圍 , 雍龍袞雅相宜.)

우리 임금 이제부터 몸 더욱 무거워지리니, 다음날 아침엔 쇠로 섬돌을 만들어야 하겠지.
(吾君自此身彌重, 准擬明朝鐵作.)

다음은 진평대왕의 따님인 선덕여왕이의 총명과 신통을 기린 세 가지 신기한 이야기를 실었다. 이를 지기삼사(知幾三事)라 한다.

제27대 덕만(德曼)의 시호는 선덕여대왕(善德女大王)이다. 정관(貞觀) 6년 임진(632년)에 즉위하여 나라를 다스린 지 16년 동안에 미리 기틀을 안 일이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당나라 태종이 붉은빛·자줏빛·흰빛의 세 가지 빛으로 그린 모란[牧丹]과 그 씨 서 되[升]를 보내 온 일이 있었다. 왕은 그림의 꽃을 보더니 말하기를, “이 꽃은 필경 향기가 없을 것이다”하고 씨를 뜰에 심도록 했더니, 과연 그와 같았다.

둘째는, 영묘사(靈廟寺) 옥문지(玉門池)에 겨울인데도 개구리들이 많이 모여들어 3,4일 동안 울어 댔다. 나라 사람들이 괴상히 여겨 왕에게 물었더니, 왕은 급히 각간 알천(閼川)·필탄(弼呑) 등에게 명하여 정병(精兵) 2천명을 뽑아 가지고 속히 서교(西郊)로 가서 여근곡(女根谷)이 어딘지 찾아 가면 반드시 적병이 있을 것이니 엄습해서 모두 죽이라고 했다. 두 각간이 명을 받고 각각 군사 1천명을 거느리고 서교에 가 보니 부산(富山) 아래 과연 여근곡이 있고 백제군사 5백명이 와서 숨어 있었으므로 이들을 모두 처단하고 뒤따라오는 군사 1천2백 명도 모두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않았다.

셋째는, 왕이 아무 병도 없을 때 여러 신하들에게 일렀다. “나는 아무 해 아무 날에 죽을 것이니 나를 도리천 속에 장사지내도록 하라.” 여러 신하들이 그게 어느 곳인지 알지 못해서 물으니 왕이 말하였다. “낭산(狼山) 남쪽이니라.” 그 날이 이르니 왕은 과연 죽었고, 여러 신하들은 낭산 양지에 장사지냈다. 10여 년이 지난 뒤 문무대왕이 왕의 무덤 아래에 사천왕사를 세웠는데 불경(佛經)에 말하기를, “사천왕천 위에 도리천이 있다”고 했으니 그제야 대왕의 신령하고 성스러움을 알 수가 있었다.

왕이 죽기 전에 여러 신하들이 왕에게 아뢰었다. “어떻게 해서 모란꽃에 향기가 없고, 개구리 우는 것으로 변이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까.” 왕이 대답했다. “꽃을 그렸는데 나비가 없으므로 그 향기가 없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또 개구리가 성난 모양을 하는 것은 병정의 형상이요. 옥문(玉門)이란 곧 여자의 음부(陰部)이다. 여자는 음이고 그 빛은 흰데 흰빛은 서쪽을 뜻하므로 군사가 서쪽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 남근(男根)은 여근(女根)이 들어가면 죽는 법이라 그래서 잡기가 쉽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에 여러 신하들은 모두 왕의 성스러운 지혜에 탄복했다.

선덕왕이 영묘사를 세운 일은 『양지사전(良志師傳)』에 자세히 실려 있다. 『별기(別記)』에 말하기를, “이 임금 때에 돌을 다듬어서 첨성대(瞻星臺)를 쌓았다”고 했다.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이 세상은 욕계·색계·무색계의 삼계로 구성되어있는데, 욕심을 끊지 못한 인간계와 축생계는 당연히 욕계에 속한다. 욕계에는 여섯 개의 하늘나라도 있다. 맨 아래에 있는 하늘이 사천왕천이요 바로 그위의 하늘이 도리천이다. 그 위의 제3천이 야마천이요, 제4천이 도솔천, 제5가 화락천, 제6이 타화자재천이다. 그러므로 사천왕천을 상징하는 사천왕사가 자신의 무덤 아래 건립됨으로써 도리천에 묻어달라는 선덕여왕의 말이 실현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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