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리본 모양이었어
첨탑은 자수정 속에서 헤엄쳤고
소식은 다람쥐처럼
보닛모자를 풀어놓은 산을 달렸고
쌀먹이 새들은 하루를 시작했지
그래서 나는 혼자 속삭였어
“저건 일출임에 틀림없어!”
하지만 해가 어떻게 지는지 난 알 수가 없어
노란 옷을 입은 꼬마 소년 소녀들이
보랏빛으로 된 울타리의 밟고 넘어가는 계단을
내내 기어 올라왔고
이윽고 울타리 반대편 계단에 이르자
회색 옷을 입은 목자가
저녁 빗장을 살그머니 건 뒤
양 떼를 몰고 가는 것 같았으니까
감상)커튼을 걷지 않는다. 그 뒤에서 손 흔드는 아침이, 커튼을 두드리다 마침내 찢고 들어올 것 같은 아침이 후끈하게 느껴지지만, 커튼을 열지 않는다. 노랗게 물들어 가는 은행나무와 찬 공기로 가득한 검푸른 시간을 어떤 날은 들이기 싫다. 커튼 하나로 나는 빛과 우주와 당신을 등질 수 있다.(시인 최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