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시인11.jpg
▲ 이상식 새경북포럼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톰 행크스와 멕 라이언 주연의 영화 ‘유브 갓 메일’은 뉴욕의 가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로맨스다. 도입부의 감미로운 주제음악 가사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나에게 강아지 한 마리가 생긴다면 행운아라고 하겠어요. 친구가 생긴 거니까요’

공짜 음료와 저가 공세로 골목 서점을 폐업시키는 몰인정한 서적상 역을 맡은 행크스. 커다란 애견과 살면서 거리 산책과 컴퓨터를 함께한다. 특히 익명의 채팅으로 사귀는 여성 라이언에게 메일을 전할 때, 녀석의 다리를 잡고서 보내기 자판을 누르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그러곤 잘 됐노라 칭찬하는 파안은 가족을 대함과 진배없다.

개는 우리의 오랜 동반자다. 후기 구석기 시대인 사만 년쯤 전부터 친분을 가졌으니 역사가 유구하다. 인류가 수렵 생활을 하면서 늑대 무리가 따라와 고기 찌꺼기를 차지했다. 그렇게 시작된 친밀감으로 길들여진 늑대는 개가 되었고, 이는 인간이 동물을 사육하게 된 시초이다.

중석기 유적에 의하면 개를 애완용이나 사냥하는 용도로 길렀다. 또한 개가 죽으면 매장을 하여 정성껏 주검을 처리했다. 먹을거리가 생존 그 자체였던 시절, 개의 사체를 식용으로 하지 않고 땅에 파묻은 선조들의 본심이 궁금하다. 혹여나 요즘의 견주들처럼 그들의 재롱과 헌신에 표하는 최소한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애견에 대한 지극한 정성은 그런 DNA가 면면히 이어진 탓도 있으리라 여긴다.

불교는 윤회 사상과 인연설을 기본으로 한다. 부처님 말씀에 의하면 같이 지낸다는 것은 굉장한 공덕이다. 이웃에 사는 인연이 5천겁이고 부부의 인연이 8천겁이라고 하니, 침식을 더불어 해온 미물과의 연분은 그 중간 어디쯤 있지 않을까 싶다. 반려동물은 만남의 막중함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슬픔이라는 감정을 다룸에 있어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축복의 하나이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다시금 행복을 직시하게 만드는 원천은 망기의 도움으로 나온다. 기실 애견의 절명 못지않게 그 이후의 일들이 가슴 아팠다.

미남이를 입양했던 딸에게는 죽음을 비밀로 했다. 행여 충격을 받을까 두려웠다. 사실을 모르는 딸애가 치료비에 보태 쓰라고 50만원을 송금했노라 카톡이 왔었다. 또 냉장고를 정리하다가 나온 녀석의 간식거리를 봤을 때, 통째로 남은 유기농 사료 포대를 내줄 때, 추석날 뵌 엄마가 장성한 아들을 위로하실 때 마음이 아렸다.

시인 조은은 자신의 수필에서 개를 키우면 안 되는 사람을 말한다. 혼자 사는 젊은이와 나이 든 독신자. 둘 다 외로움이 물씬한 공통점을 가졌다. 애견과 너무 밀착돼 지내는 위험을 간파한 듯한 우려를 전한다. 경험으로 보건대 공감을 느낀다. 개만큼 변함없이 위안을 선사하는 재롱둥이는 없다. 알코올에 빠지듯이 녀석도 중독성이 있다. 적당한 관계의 거리가 요구된다.

포항문화원 현관 앞엔 노란색 표찰이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 형상의 걸개가 놓였다. 아마도 노란 리본을 흉내 낸 듯 학생과 부모의 소망이 쓰였다. ‘살 빼서 47kg 여신 되게 하소서’ ‘강아지 키우게 해 주세요’라는 글도 보인다.

애완동물 일천만 시대다. 국민 5명 중 1명인 셈이다. 지자체 차원의 다양한 조치가 필요하다. 견주들 책임감 고취를 위한 반려동물의 날도 적극 검토했으면 한다. 애완동물 캐릭터 즐비한 추모 공원은 어린이가 좋아하지 않을까. 올바른 반려동물 문화는 생명 존중의 정신과 다문화 감수성을 높이는 첩경이라 생각된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