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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원 경북생명의숲 상임대표·화인의원 원장
요즘 방송가에서는 인문학을 주제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누리면서 잦아들던 인문학 열풍이 다시 불고 있다. 마침 지난주는 ‘인문학, 관용과 성찰의 지평을 열다’를 주제로 열두 번째 인문주간이었다. 인문주간은 국민에게 인문학과 만날 수 있는 기회들을 제공해 인문학적 효용과 가치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포항시는 올해 경북대 인문학술원과 함께 공모한 “영일만 친구, 인문학에 ‘철’ 들다”가 교육부의 ‘2017인문도시지원사업’에 선정되어, 3년간 지원받은 국비 4억3천800만 원으로 포항의 인문학적 자산을 시민들과 공유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된다.

올해 인문도시로 선정된 포항시도 지난주 다채로운 인문 행사를 열었다. 무엇보다 인문도시선언을 통해 포항시를 관용과 성찰의 인문도시로 만들어 나갈 것을 공표했다. 포항시는 “이번 인문주간이 포항이 산업도시로 성장하면서 나타난 여러 문제를 관용과 성찰적 관점으로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정신을 살찌우는 인문도시로 나아가는 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우리는 지금 ‘왜 인문학인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인문학은 인간의 사상과 문화를 다루는 영역이다. 먹고 사는 문제에만 골몰했던 시절에 인문학은 대중에게 그저 사치스러운 영역으로 비춰졌다. 하지만 지금의 대중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등 인간다운 삶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인문학에 주목하게 되었다.

작금의 우리 정치가 보여주는 속절없는 철새 정치도, 오리무중 정치도 모두 정치인들의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한데 기인하고 있다. 정치 철학과 가치는 간데없고 오직 눈앞의 이익만을 좇아 이 당 저 당을 기웃거려 국민으로부터 시정잡배보다 더하다는 비난을 받는 것이다. 비단 정치만이 아니다. 우리 경제와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내린 갑질 역시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한데 근거하고 있다.

이에 반해 세계 최고의 IT 기업가인 스티브 잡스는 자신들의 기술 속에 인문학의 DNA를 주입하여 애플의 신화를 창조했다. 그의 신화는 우리나라에 인문학 열풍을 일으키는 불씨가 되었다. 바야흐로 인문도시는 오늘날 도시들이 지향해나가는 또 하나의 목표로 자리 잡았다. 포항시의 이번 인문도시선언이 일회성 선언에 그쳐서는 결코 안 되는 이유이다.

인문도시 포항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부족한 인문학 인프라 구축이 필요할 것이다. 이를 위해 포항시와 지역대학이 문학, 철학, 역사 등 인문학의 기반인 이른바 문사철(文史哲)의 지평을 넓혀나가는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에 더해 경북대 등과도 인문도시 조성을 위한 정기적, 정례적 협력방안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지역의 관계·학계·교육계·시민단체·기업 등이 참여하는 ‘인문도시 포항협의체’를 구성하여 인문학을 통해 도시의 격을 높이고 시민의 더 나은 삶을 고민하는, 산업도시 포항을 넘어 인문도시 포항으로 더욱 성숙해 나가야 한다.

특히 포항과 같은 산업도시일수록 인문학이 갖는 잠재력은 무궁하다. 인문학은 오늘날 인재들에게 요구되는 창의력을 배양하고 문제해결능력을 기른다.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시대의 승패도 결국은 인문학적 창의력과 문제해결능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지식과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힘에 달렸을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포항이 지향하는 창조도시 건설과 융복합산업을 통한 제2의 도약도 결국은 인문학적 창의력 등에 달린 문제이다. 포항이 인문학과 끈끈한 인연을 선언한 이상 초심을 유지하면서 지속적인 관심과 뒷심을 발휘한다면 영일만 친구들이 인문학에 ‘철’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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