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럽게 느릿느릿
내 주의의 침대로
너의 발걸음, 내 침묵의 아이들
말없이 싸늘하게 다가온다

순수한 위격, 신의 그림자,
조심스런 너의 발걸음은 얼마나 사뿐한가!
신들이여!……내가 예감하는 모든 재능은
이 맨발에 실려 나에게 다가온다.

네가 내민 입술로
내 생각들의 거주자를
달래려고 그에게 입맞춤의
양식을 마련해 준다 해도,

존재함과 존재하지 않음의 단맛,
이 다정한 몸짓을 서둘지 말아라,
나는 당신을 기다림에 살아왔고
내 가슴은 당신의 발걸음일 뿐이었으니.





감상) 가끔은 발자국소리 때문에 잠에서 깬다. 마음 놓고 내딛는 걸음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발소리, 귀가 아니라 가슴으로 들리는 소리, 가슴이 콩닥거리고 조마조마하여 잠을 깨고도 눈은 뜨지 못한다. 소리의 주인을 보려고 눈을 뜨는 순간 뒤꽁무니도 보이지 않고 사라지는, 수도 없이 내 곁으로 왔다 사라지는…… 소리.(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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