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이 미국에 이민한 지 얼마 안 돼 뉴욕거리에서 한 친구를 만났다. “자네 외투를 사 입어야겠네. 뉴욕에서 그러고 다니면 좀 부끄럽지 않나?” 친구의 핀잔에 아인슈타인이 대답했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 뉴욕에서 날 알아볼 사람이 없는데…” 수년 뒤 뉴욕거리에서 그 친구와 또 마주쳤다. 아인슈타인은 이미 크게 유명해져 있었으나 여전히 낡은 외투를 입고 있었다. 친구는 그때처럼 아인슈타인에게 새 옷을 사 입으라고 권했다. “그럴 필요가 뭐 있겠나. 어차피 사람들은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데…” 자신을 알리기 위해 요란을 떨 필요가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소박한 마음이 담긴 에피소드다.

춘추시대 노나라에 왕태라는 현인이 있었다. 형벌을 받아 발뒤꿈치가 잘린 불구자였다. 그러나 그를 스승으로 모시겠다고 찾아드는 제자의 수는 공자와 맞먹을 지경이었다. 공자의 제자 상계가 형벌을 받아 발뒤꿈치가 잘린 사람이 자신의 스승 공자와 막상막하의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 눈꼴사나웠다. 참다못해 상계가 공자에게 물었다. “불구자인 왕태에게 뭘 배울 것이 있다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입니까? 수업도 안 하고 토론도 없다는데 사람들은 비워서 갔다가 채워서 돌아온다고 합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마음에 느껴지는 일이 가능한 것입니까? 도대체 왕태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분은 성인이다. 나도 진작 가보려고 했으나 차일피일 하다 못 갔다. 발을 잃고도 마치 신발에서 흙을 털어내는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이다” “스승님 말씀처럼 불구를 불구로 여기지 않는 상심(常心)을 얻는 마음수련은 인정하겠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모여드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공자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감어지수(鑑於止水)를 아느냐?” “사람들은 요란하게 흐르는 물에 얼굴을 비추어 보지 않고 잔잔한 물에 비추어보는 법이다. 고요한 물만이 제모습을 비추어 보려는 사람들은 멈추게 할 수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한중 사드 협상 타결에 “대통령과 영부인 역할이 컸다”고 강조해 공자의 ‘감어지수’를 떠올리게 했다. 국민은 강조 안 해도 짐작할 것은 다 짐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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