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 제나라 재상 안자가 중모라는 지방을 지나다가 남루한 차림의 남자가 길에서 쉬고 있는 것을 봤다. 차림은 남루했지만 군자의 풍모가 느껴졌다. 안자가 물었다. “선생은 누구십니까?” “나는 월석부라 하는데 남에게 진 빚을 갚지 못해 3년째 남의 밑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습니다” 월석부의 딱한 사정을 들은 안자는 자신의 수레를 끄는 말들 중 좋은 말 한 필을 골라 빚을 갚아주고 월석부를 자기 집으로 모셔갔다. 그리고 월석부에게 벼슬길을 열어주어 훌륭한 인재가 되게 했다.

안자가 조정에 나갈 때 안자를 태우고 가는 마부의 아내가 문틈으로 자기 남편을 엿보았다. 재상의 수레에 높이 앉은 남편은 의기양양하여 자못 거들먹거렸다. 저녁에 남편이 돌아오자 마부의 아내가 떠나겠다고 했다. 마부가 그 까닭을 물었다. “안자는 키가 여섯 자도 되지 않는데도 재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지만 오늘 조정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니 뜻과 생각이 깊고, 자신을 낮추는 태도였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키가 여덟 자나 되면서 고작 남의 마부 노릇을 하는데도 마치 뜻을 이룬듯이 거들먹거리니 제가 떠나려 합니다” 그 뒤로 마부의 거들먹거리는 태도가 180도로 바뀌었다. 스스로 자신을 누르고 낮추었다.

안자가 이상히 여겨 마부에게 어째서 태도가 돌변했는지 물었다. 마부로부터 자초지종 이야기를 들은 안자는 마부를 대부로 추천해 나라 일을 보게 했다. 아내의 말을 깊이 새겨듣고 행동거지를 바꾼 마부의 마음 씀씀이를 높이 평가했던 것이다.

안자가 월석부의 빚을 갚아주면서 벼슬길에 오르게 하고 마부를 대부로 천거한 것은 사람을 볼 줄 아는 형안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현자는 현자를 알아보고 군자는 군자를 가까이 한다. 마부는 남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남의 말을 들을 줄 안다는 것은 자신을 돌아볼 줄 안다”는 이치를 안자는 높게 평가한 것이다.

청와대의 인사검증 부실로 인사실패가 이어지자 조국 민정수석에 대한 책임론이 자주 거론된다. 조 수석의 사람 보는 눈엔 안자의 형안이 없는 것이 화근인 것 같다. 환부지인(患不知人), 남을 알아보지 못함을 걱정하라. 공자의 당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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