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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대상 소설] 빨간불에 대한 예의

신준연씨 제4회 경북일보문학대전 공동대상

경북일보 kb@kyongbuk.com 등록일 2017년11월16일 20시09분  
소설대상작-김제정화가
어느 교수님이 그랬다. 세상이 이보다 덜 미쳤더라면, 재미가 없었을 거라고. 동조할 수는 없었지만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런 해이기도 했다.

혐오의 해였다. 남녀를 불문하고 혐오가 만면에 깔려 있어서, 모든 단어에 벌레를 뜻하는 충이라는 낱말이 붙었다. 그건 고급스런 수식어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유흥거리는 되는 것 같았다. 벌레가 가리는 건 없었기 때문에 머지않아 교수 뒤에도 충이 붙었다.

벌레가 번져갔다. 아주 부지런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확산해갔다. 급식충, 학식충, 맘충, 한남충, 불편충, 흡연충, 음주충, 틀딱충, 진지충, 설명충, 문법충, 인정충, 노력충, 재능충, 모든 것 뒤에는 으레 충이 뒤따랐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그것도 별 일 아닌 문화가 되어버렸다. 벌레는 예의가 없었으므로 멈춰 서지 않고 계속해서 퍼져갔다.

이해할 수는 있지만 동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날도 그랬다. 집에 들어서기 전부터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불길한 직감만큼 예리한 것이 또 있던가. 거실에서는 엄마가 흐느끼고 있었다. 엄마를 지나 큰방으로 들어가니 아빠가 과도에 찔린 채 쓰러져 있었다. 평소에 아빠가 엄마에게 폭력을 휘둘렀기 때문에, 마침내 엄마는 참지 못하고 칼을 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거실로 돌아오니 엄마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들고 있는 손수건은 젖어있지 않았다. 왔어, 딸? 엄마가 물었다. 나는 그간 아빠가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어느 쪽이 미쳤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엄마의 입에서 벌레가 나오기 시작했다.



엄마는 몰랐다. 아빠가 이렇게 쉽게 죽을지는 몰랐다. 위협만 하려고 했다고, 죽일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경찰에게 고백을 하는 동안 엄마의 입에서는 벌레가 부지런히 흘러 나왔다. 그 벌레는 아마 나한테만 보이는 것으로, 나는 이 상황이 퍽이나 재밌다고 생각했다. 어느 교수의 말 따라 덜 미쳤더라면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나는 변명을 늘어놓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에게서 흘러나오는 벌레를 슬쩍 밟아보았다. 무언가가 바스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 우리 딸?

엄마가 동의를 구한다는 듯이 물었다. 경찰관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경찰관이 말했다. 내 의견이 중요하게 작용할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죽은 자는 말을 할 수 없는 법이고, 산 사람의 의견에 따라 죽은 자의 처우가 결정되는 건 비겁한 일이라고. 의견은 아빠에게 물어야 했다. 아빠가 미쳤는지, 엄마가 미쳤는지는 내가 판단할 게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비겁하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아빠가 엄마를 죽이려고 했어요.

내가 말했다. 양심의 가책만큼 가벼운 것이 또 있던가. 죽은 사람의 증오는 멀었지만 산 사람의 원망은 가까웠다. 그리고 내가 말을 끝내는 순간, 내 입에서 무언가가 비집고 흘러나왔다. 벌레였다.



나는 모종삽을 찾아 벌레를 묻기로 했다.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였다. 마당의 모래를 조금 파서 벌레를 묻었다. 발을 움직여 땅을 고르게 했다. 벌레가 있었다는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벌레가 죽었다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빠를 죽인 엄마는 표면적으로는 제정신이었다. 벌레를 쏟아내긴 했지만 착실히 엄마를 연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만 간간히 이상한 모습을 보였다. 아침으로 내온 국이 차갑다거나, 토스트가 반만 구워졌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이상했지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거기에 대해 지적하면 엄마는 괜찮아, 괜찮아 하고 반복했다. 엄마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부지런히 벌레를 쏟아냈다.

아빠를 잃은 나 역시도 표면적으로는 제정신이었다. 특별히 아빠의 부재를 느낄 수 없었다. 아빠의 부재를 느끼는 건 엄마뿐이었다. 엄마는 아빠의 온기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새까맣던 증오마저도 잊지 않고 토해냈다. 엄마는 아빠를 떠올릴 때마다 내게 남자 친구를 권유했다. 기왕이면 외국 남자가 좋겠다고 했다. 한국 남자는 쓸모가 없다고 했다. 폭력만 휘두를 줄 알지, 벌레만도 못해. 엄마는 나를 바라보았다. 이해하지, 우리 딸? 나는 이해할 수도, 동조할 수도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입 안에서 벌레가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케겔 운동은 하고 있니?

아빠를 죽인 엄마는 표면적으로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대학 과정을 밟았고, 조기 졸업을 했다. 학교를 다니던 중에 직장을 구하기도 했다. 남들이 말하는 청년 실업을 빗겨간 사람이었다. 똑똑한 엄마는 몸이 유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외국인의 거시기가 너무 커서 잘 안 들어갈 거란 이야기도 했다. 사랑받으면서 살아야지. 엄마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부지런히 벌레를 쏟아냈다.

그 맘쯤 엄마는 꽃꽂이 교실을 다니기 시작했다. 마음이 평안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종교를 가지는 것보다는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간 꽃꽂이 교실에서 엄마는 그렇게나 싫어했던 한국 남자를 구해왔다. 엄마의 주변에서는 언제나 암컷 냄새가 났다. 아빠를 잃어서 엄마는 다시 여자가 되었고, 여자가 된 엄마의 곁에는 다시 아빠가 있었다. 아이러니했다. 그리고 그 아이러니마저도 계속 반복되다 보니 수긍할 정도는 되었다. 엄마가 벌레 이야기를 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집에 드나들기 시작한 남자가 내게 손을 대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엄마는 내게 와서 말했다. 딸, 벌레가 있어.



집에 벌레가 있다는 걸 안 후부터 엄마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이따금씩 집에 들어와서 용돈을 놓아주고 사라졌다. 나는 돈의 출처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엄마의 행방에 대해서도 묻지 않았다. 모든 물음이 내 안에서만 메아리쳤다. 어쨌거나 엄마는 엄마를 필사적으로 연기한다는 느낌이었고, 그 느낌 뒤에는 엄마의 인생을 보내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거기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아빠가 없어도 가정은 금방 무너지지는 않았고, 엄마가 없어도 집은 여전히 평화로웠다. 엄마가 돈을 놓아두곤 하는 식탁 위에 벌레가 몇 마리 정도 기어 다닌 걸 빼면 다분히 일상적이었다. 내가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집안의 침묵은 견디기 힘들었다. 엄마가 남겨둔 돈은 말을 하지 않았다. 돈과 함께 있던 벌레도 말을 하지 않았다. 차라리 혐오가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레 집에 있는 시간이 적어졌다. 나는 벌레를 찾아다녔다. 벌레들이 내는 소리는 침묵만큼 견디기 힘들지는 않았다.

대신 친척들이 이따금씩 우리 집을 찾아왔다. 친척들은 잊을만하면 집에 들러서 반찬을 해놓고 갔다. 반찬과 함께 엄마 소식을 놓아두고 가기도 했다. 남자를 만나고 있다는 소식이 주였고, 그럴 만한 나이니 이해해달라는 당부가 덤이었다. 가장 집으로 많이 찾아왔던 큰고모는 말했다. 늙은 사람에게는 늙은 사람만의 세계가 있다. 큰고모조차도 벌레를 쏟아내고 있었고, 주방에서는 당근을 써는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그러다 엄마를 만난 건 우연은 아니었다. 큰고모에게서 엄마의 행방에 대해 들었다. 우리 동네에 아는 사람이 많아서 엄마 소식을 간간히 듣고 있다고 했다. 의외로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고, 이른 새벽이면 봉고차를 타고 어디론가 향한다고 했다. 새벽마다 동네를 돌아다닌 후에야 엄마를 볼 수 있었다.

엄마는 버스 정류장에 서있었다. 버스가 돌아다닐 시간이긴 했지만 딱히 버스를 기다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디에도 있을 법한 평범한 주부였다. 누군가를 잃은 사람 같지는 않았고, 특별히 불행보이지도 않았다. 일상적이라는 느낌이 들어 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봉고차 한 대가 정류장 근처에 멈춰 섰다. 문이 열리고 엄마는 차에 올라탔다. 꽃꽂이 교실로 가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곧장 택시를 잡았다. 이대로 집으로 도망갈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망갈 용기는 모종삽으로 묻어둔 채였다. 예의를 모르는 인생이 저만치 뛰어가고 있었다.



봉고차는 한 오피스텔 앞에 내려섰다. 엄마가 차에서 내렸다. 이윽고 오피스텔 안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 엄마가 옷을 차려 입은 것과는 달리 남자는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엄마는 남자를 따라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운 다음 다시 오피스텔이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일상의 저편이면서, 동시에 엄마에게는 일상인 곳이었다. 한참이 지나서 오피스텔에서 나온 건 한 마리의 거대한 벌레였다. 벌레로서의 엄마가 거기에 있었다. 아빠를 죽이고 집을 나간 벌레가, 살기 위해 꿈틀거리고 있었다. 벌레는 똑똑했고, 대학 과정을 밟았으며, 조기 졸업도 했다. 벌레는 필사적이었다. 필사적으로 움직이지만 사랑받지 못하는 인생이 거기에 있었다.

나는 벌레를 쫓았다. 빨간불에도 멈춰 서지 않는 인생을 쫓았다. 그 동안에도 벌레가 많이 보였다. 주변이 온통 벌레였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길에는 급식충이, 이른 점심의 카페에는 맘충이, 공원 벤치에는 틀딱충이. 벌레를 지나 벌레를 쫓았다. 벌레는 한식 전문점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나 역시도 벌레를 따라 멈췄다. 나를 확인한 벌레가 어설프게 엄마 흉내를 냈다.

여기는 어쩐 일이야, 딸.

나는 이만큼 큰 벌레는 모종삽으로도 묻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대답을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 어디선가 보았던 벌레 하나가 다가왔다. 꽃꽂이 교실에서 우리 집까지 기어온 벌레였다. 벌레는 서로 팔짱을 꼈다. 결국에는 바퀴벌레 한 쌍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벌레의 시대였다. 내가 말했다.

축하해. 케겔 운동은 필요 없겠네.



그러다 한동안은 또 조용했다. 아빠는 아빠의 결말을 맞이했고, 엄마는 엄마의 인생을 살러 갔다. 둘 다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벌레의 인생을 걱정할 때는 아니었다. 부지런히 학교를 다녔다. 엄마는 졸업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학자금 대출을 내서 대학교에 입학했다. 나를 부르는 말은 급식충에서 학식충으로 바뀌었다. 어느 쪽이든 벌레였지만 조금 나아진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즈음, 나는 벌레를 쏟아내지 않게 되었다. 집에 남아있던 벌레도 줄어가고 있었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벌레가 줄어들 것이라 믿었다. 혐오의 시대마저도 세대를 거듭하며 소멸하게 될 것이라 여겼다.

선배를 만나게 된 건 대학교 엠티에서였다. 선배는 벌레의 여지가 적은 사람이었다. 돈이 많아서 학식을 먹지 않았고, 태생이 혼혈이라 한국 남자의 범주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말이 많아 설명을 하지도 않았고, 쓸 데 없이 진지하지도 않았다. 노력이 필요하다는 훈계를 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재능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었다. 술자리에서 선배가 물었다.

지낼 만해?

나는 운명을 믿지는 않았다. 엄마가 아빠를 죽인 건 운명이 아니었고, 당신의 인생을 찾아간 것도 운명은 아니었다. 엄마는 엄마를 희생한 대신 새 삶을 살고 있었다. 나는 그날부터 운명을 믿기로 했다. 조금도 지낼 만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나를 포함한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지만, 결국에는 선배를 사랑했다. 선배는 상냥한 사람이었다. 누구도 혐오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선배를 혐오하는 사람도 없었다. 사랑받으며 살아온 사람이라는 느낌이 선배에게서는 물씬 풍겼다. 선배와 있으면 나도 선배에게 사랑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를 향한 마음은 처음에는 동경이었다. 그 다음에는 애정, 결국에는 사랑. 감정의 변화만큼 빠른 것이 또 있던가. 정신을 차렸을 무렵에는 선배만 찾고 있는 내가 있었다. 그리고 그 동안에는 다른 벌레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침내 일상을 되찾았다는 느낌이었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사랑도 마찬가지로 순조로웠다.

모두가 남자인 시대에도 커플은 있었을 것이고, 모두가 여자인 시대에도 사랑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선배를 쫓아 이타심에 젖어있었다. 사람들이 서로를 미워하는 와중에도 나는 선배를 좋아했다. 관심 밖의 모든 일들과 별개로 나는 선배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선배와 잠자리를 가졌다. 사랑받을 준비는 모두 마친 후였다. 그리 밉지 않은 세상이었다. 나는 온건하게 내 세상 속에서 아빠를 잊었다. 엄마도 잊었다. 첫 연애는 막연하게 따뜻했고 확연히 뜨거웠다. 기꺼이 타오를 수 있는 마음이었다. 관계가 끝난 후 선배는 욕실로 들어갔다. 문득 선배를 들여다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선배의 핸드폰을 찾아 비밀번호를 풀었다. 비밀번호는 선배와 내가 사귀기 시작한 날이었다.

아마도

모든 호기심에는 말로가 있을 것이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나는 액정을 더듬는 손길을 멈추지 못했다. 모든 게 순조로웠기 때문이고, 선배는 상냥했기 때문이었다. 핸드폰의 잠금을 푸는 순간에 톡이 왔다. 축하한다는 말이었다. 발신인은 학교의 다른 선배였다. 내 예상대로 선배는 상냥했다. 기본적으로 상냥한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나 상냥했던 선배는 다른 선배에게 나를 따먹는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사랑한 직후에 보낸 톡이었다. 내 앞에는 호기심의 말로가 있었다. 나는 액정을 다시 더듬어 갤러리를 열었다. 거기에는 벌레가 가득했다.

벌레와 나, 나와 벌레, 벌레와 내가 사랑하는 모습, 나와 벌레가 사랑하는 모습, 벌레가 나를 사랑하는 모습, 내가 벌레를 사랑하는 모습. 온통 사랑이었고 온통 벌레였다. 선배는 일상 속의 벌레였다.

소설대상추가-유병수작
엄마 말이 맞았다. 나는 곧장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갔다. 침묵만이 유일한 소리인 집에서, 한참을 엎어져있었다. 잠은 오지 않았다. 벌레에게서 연락이 왔다. 선배의 모습을 한 벌레는 몹시 당황한 것 같았다. 나는 벌레에게 따지고 싶지 않았다. 어째서 벌레가 되었느냐고, 정말 벌레일 수밖에 없었느냐고 묻고 싶지 않았다. 벌레는 벌레일 뿐이었다. 나는 그보다 빠른 방법을 선택했다. 차단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것으로 불행이 끝났으면 했다.

그러나 불행은 생각보다 끈질겼고, 용기도 있었다. 벌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벌레 같은 년. 그렇게 벌레와의 사랑이 끝났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불안한 마음에 인터넷을 뒤졌다. 임신 초기증상이며 임신 가능성에 대해 찾으면서 불안에 떨어졌다. 혼자 남겨졌다는 불안이 나를 짓눌렀다. 새삼스레 죽은 아빠와 떠난 엄마를 떠올렸다. 벌레뿐인 세상에 나만 남아있었다. 혼자 남으려면 당당하게 있는 수밖에 없었다. 원래 소문이란 건 약자를 괴롭히는 법이다. 고아는 약자에 속했다.

축하해요.

산부인과에서는 임신이 확실하다고 했다. 간호사들은 웃으면서 재판에 임했다. 나는 변호사를 부를 돈이 없었기 때문에 잠자코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서 학교를 나갔다. 학교에는 이미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후였다. 어느 쪽이 벌레였는가를 가늠하는 소문의 진위는 항상 벌레 쪽으로 기울었다. 벌레를 축하했던 다른 선배는 나를 따로 불러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

네가 이해해라. 쟤, 처녀충이라서.

나는 울지도, 웃지도 않았다. 모두 벌레였기 때문에 한 마리 정도의 벌레가 꿈틀거리는 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문제가 되는 건 배 속의 아이였다. 불우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낳은 아이는 불우할 것이라는 건, 굳이 통계를 살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낳아 기를 자신도 없었거니와 지울 자신은 더더욱 없었다. 이런 곳에 쓰라고 만들어진 사자성어는 아니겠지만, 명백히 진퇴양난이었다. 아이를 기르거나 지우거나 불행의 꼬리표를 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는 그나마 엄마를 찾아가보기로 했다.



엄마는 행복해?

나는 묻고 싶었다. 그 물음만을 이로 꽉 깨물고 엄마를 찾았다. 그러나 떠난 사람은 자유로웠다. 엄마는 미련을 가진 사람이었다. 아빠에 대한 미련을 늘 품고 있었다. 그 미련은 내게는 적용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엄마는 집으로 오지 않았다. 꽃꽂이 교실에도 오지 않았다. 봉고차가 서있던 새벽에도 오지 않았다. 엄마는 어디에도 없었다. 마침내 아빠를 따라갔거나, 흔적을 모두 지우고 사라져버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있었던 증거가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어딘가에 묻어놓은 벌레가 엄마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내가 본 엄마는 상상이었을지도 몰랐다. 아빠가 죽었을 때 같이 죽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도에 찔렸다고 해도 사람은 쉽게 죽지 않았다. 벌레라면 더했다. 벌레는 끈질겼다. 끈질긴 게 인생의 모토인 것처럼, 버티는 건 누구보다도 잘했다. 숨기도 잘 숨었다. 벌레가 보이지 않아도 벌레가 있다는 것쯤은 모두가 알았다.

여러 곳을 떠돈 나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흔적이 필요했다. 엄마가 옛날에 죽었다는 증거가 필요했다.

엄마, 여기 없지?

나는 창고에서 모종삽을 꺼내 벌레를 묻은 곳을 파기 시작했다. 벌써 풍화되었는지 벌레는 보이지 않았다. 식탁 위에도 없었다. 나는 내가 점점 미쳐간다고 생각했다. 좋은 징조였다. 미치면 인생이 쉽다. 미친 사람이 득세하는 세상이었다. 미치기 위해서 벌레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다. 벌레가 되든 벌레를 짓밟든, 그건 나중의 문제였다. 나는 애타게 엄마를 찾았다.

엄마, 어디 있어?

엄마는 좀처럼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배는 점점 불러왔다.



며칠 지나지 않아 집에서 벌레를 찾았다. 나는 벌레를 재빨리 방안으로 모셨다. 과자를 작게 빻아서 식사로 내드렸다. 그 다음에는 씻는 걸 도왔다. 샴푸를 쓰기 싫어해서 비누칠만 했다. 나는 이참에 벌레를 포장하기 시작했다. 작은 상자 하나를 구해서 벌레를 넣었다. 그리고는 현관 테이블에 올렸다. 벌레가 잘 보이게끔 뒀다.

그러고 또 며칠이 지났다. 학교에는 얼굴만 비췄다. 내가 사라진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서였다. 완전히 도망친 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였다. 가능한 웃는 얼굴로 다녔지만 나를 향한 소문은 빗겨갈 수 없었다.

가식충이네.

나는 무엇이 가식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었다. 누군가를 욕해도 조금도 개운하지 않았다. 방향을 잃은 분노가 내 안에 있는 게 느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분노는 혐오로 변이되기 시작했다. 먼저 아빠에 대한 혐오였고, 그 다음에는 엄마에 대한 혐오였고, 또 그 다음에는 세상 모두에 대한 혐오였다. 누구든 관계는 없었다. 혐오가 살아있다는 것만이 중요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나에 대한 혐오로 혐오는 끝을 맺었다. 나는 교수충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미쳐있었지만, 재미는 없었다.



재밌는 거라면 내 배가 그칠 줄 모르고 불러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벌레의 아이를 뱄다. 아이는 몇 번인가 태동했다. 자기가 살아있다는 걸 끊임없이 내게 어필했다. 지긋지긋하고 끈질겼다. 인간으로서는 암담하고 벌레로서는 준수했다.

나는 엄마를 찾는 것을 포기했다. 이미 시들어가고 있었다. 엄마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내 기억을 더듬었지만 엄마가 엄마로서 빛나고 있던 때는 없었다. 인간의 기억만큼 불완전한 게 또 있는가. 어쩌면 아빠는 벌레였고 벌레도 벌레였지만 엄마만큼은 벌레를 빗겨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체 누가 벌레일까. 나는 실없이 그런 물음을 던져놓고 바깥으로 향했다.

조상이 도왔어.

큰고모는 말했다. 나는 끊임없이 회자되는 조상에 대해서 생각했다. 조상 덕을 보고 있는 사람은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서울을 내려다보고 있을 텐데. 나는 큰고모에게 엄마의 위치를 물었다. 큰고모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보다는 뱃속의 아이를 걱정하자고 말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와도 비슷하게 들려 섬뜩했다. 나는 아이의 아버지를 모른다고 했다. 굳이 벌레를 큰고모 앞까지 데려오고 싶지 않아서였다. 큰고모는 다시 대답했다.

애비가 뭔 대수니.

덧붙여서 큰고모는 인간답게 살자고 말했다. 아빠처럼은 되지 말자고, 엄마처럼 되지도 말자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이야기했던 큰고모는 채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도로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범인은 음주충이었다. 주변의 만류에도 꼿꼿하게 차를 몰아 큰고모를 치었다. 당시 알코올 농도는 면허 정지 수준이라고, 뒤늦게 경찰관이 밝혔다. 나는 벌레가 필요했다. 혐오하기 위해서 벌레가 있어야만 했다. 나는 운전자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자 운전자는 기꺼이 큰 벌레가 되어주었다. 벌레가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나는 그게 벌레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사과는 아빠가 해야 했다. 엄마가 해야 했다. 나는 하염없이 사과하는 벌레를 보면서 입을 다물었다. 신호등은 이미 완연한 빨간불이었다.



아빠에 이어 두 번째 장례식이었다. 장례식은 소소하게 치러졌다. 그간 인간답게 살아온 큰고모의 장례식장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있는 사람이라곤 명절에 큰고모랑 대판 싸우고는 인연을 끊은 외숙모, 큰고모가 올 때마다 이유 없이 욕하던 옆집 할머니 정도였다. 엄마는 오지 않았다. 어디선가 인생을 누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타인의 일에는 관대했다. 큰고모의 죽음도 결국 타인의 죽음이었다.

그러던 중에 사건이 터졌다. 이모부 한 분과 둘째 고모의 딸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느닷없는 고함소리에 장례식장이 소란스러워졌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 사이에 고모의 딸이 말했다.

절 시간했어요.

둘째 고모의 딸은 내 또래였다. 친척들끼리 왕래가 거의 없어서 안면만 있는 정도였다. 그런 딸은, 몹시 다양한 표정을 지으면서 주장했다. 이모부가 시선으로 자기를 강간했다고.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성희롱이라고. 이모부는 처음에는 손사래를 쳤다. 그 다음에는 화를 냈다. 어디 어른 앞에서 헛소리를 하느냐고. 대부분의 여론은 딸에게로 쏠렸다. 여자가 약자였고, 무엇보다 이모부가 소리치는 모습이 반감을 불러올 만했기 때문이었다.

큰고모의 장례식장은 친척 간에 벌어진 성추행의 재판장으로 바뀌었다. 결국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나 했지만, 마지막에는 딸이 이겼다. 울었기 때문이었다. 둘째 고모의 딸은 서럽게 울었다. 큰고모가 돌아가신 것보다도 더 슬프게 울었다. 이모부는 억울해 보였지만 다른 친척 분들에 의해 강제로 바깥으로 내쫓겼다. 그렇게 마무리되었기 때문에 이모부의 혐의는 입증된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절 끈적끈적하게 쳐다봤어요.

둘째 고모의 딸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다. 피해망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사람들은 딸을 다독였다. 그런데도 좀처럼 울음이 그치지 않자, 마지못해 돈을 내주었다. 어디 친구들이랑 여행이라도 다녀오렴. 돈이 젖는 건 싫었는지 고모의 딸은 울음을 그쳤다. 멀리서 이모부가 욕지거리를 하는 소리만 잔잔하게 깔렸다.



큰고모의 장례식을 마치고, 나는 집에서 조금 떨어진 병원에서 출산했다. 부를 만한 사람이 없어서 혼자 견뎌야 했다. 그래도 썩 최악은 아니었다.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기 때문이었다. 이제 서로 간섭하지 말고 각자의 인생을 살자는 이야기였다. 사랑받으면서 살라는 당부도 있었다. 누구를 사랑할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 정도면 충분했다. 인생이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위안삼아 아이를 낳았다.

뒤늦게 다른 사람에게도 연락이 왔다. 등록되어 있지 않은 번호로 문자가 왔다.

자니?

누구인지 생각해볼 필요는 없었다.

왜?

잘 있나 싶어서.

병원은 깨끗했다. 엄마가 내 계좌로 돈을 붙여줬기 때문에 돈 걱정은 없었다. 엄마가 보내준 돈은 여러모로 유용했다. 더러운 돈이라고 받지 않을 생각은 없었다. 세상의 많은 가치보다 돈이 우선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병원에 오래 머무를 생각은 없었지만 괜찮아질 때까지는 있기로 했다.

내가 대답했다.

지낼 만해.



병원에 있는 동안 비가 몹시 많이 왔다. 지역 단위로 호우 특보가 내려졌고, 바깥은 이미 물난리였다. 창문 바깥에는 벌레들이 물에 떠다녔다.

앙 기모띠와

급식들 토나오네와

애가 좀 그럴 수도 있죠와

이거 저만 불편한가요와

한남들 수준과

요즘 애들이 문제야와

이게 웃기나요와

호우 특보는 지방 기상청에서 내렸고 저기압의 영향으로 인해 고온다습한 수증기 유입과 대기불안정으로 시간당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는 것과

맞춤법 제대로 안 배우셨나와

어 인정과

그게 다 노오력이 부족한 거임과

재능빨이네가

사이좋게 떠내려가는 중이었다. 나는 병원에 있는 편의점에서 따듯한 우롱차를 사서 마셨다. 몹시 조용했고 적적했다. 적당히 미쳐있어서 차를 마시기에는 괜찮은 분위기였다.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모든 게 더뎌졌지만, 시간의 성장만큼은 빨랐다. 내가 지는 동안 딸은 떠올랐다.

혐오의 해가 지나갔다. 남녀를 불문하고 만면에 깔려 있던 혐오도 한 문화로서 지나갔다. 짧은 시대를 풍미했던 양상으로 자리 잡았다. 뒤늦게 논문의 자료로서 쓰이기도 했다. 무엇이 혐오를 낳았는가, 혐오의 시대와 우리, 풍요의 빈곤, 같은 제목들의 논문이 쏟아졌다.

엄마.

학교에서 돌아온 딸은 갓 중학생이 되었다. 급식충은 아니었다. 이제 그런 단어는 쓰이지 않았다. 딸이 주방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엄마, 패딩 좀 사줘.

나는 곧장 경찰서에 전화했다. 경찰이 전화를 채 받기도 전에 내가 말했다.

우리 딸이 벌레가 됐어요.

아직도 벌레의 해였다.





신준연 씨
약력 1992년 출생

2017년 계명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당선소감

당선소감을 어떻게 써도 나중에 볼 때는 다르게 쓸 걸, 하고 후회할 것 같아서 솔직하게 쓰기로 했습니다. 당선이 되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믿을 수가 없어서 공모전에 낸 글을 몇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세 번쯤 읽고 나서야 겨우 마음이 진정되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즐거움을 퍼내는 작업이 남아 있었습니다.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대개는 반복되면 질리는 법인데,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나 반복해도 즐거웠습니다. 즐거워지지 않을 때까지 즐거움을 퍼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아서 결국 체념하고 계속 즐거워했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감정의 변화를 착실하게 겪었습니다. 몇 가지 문장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졌습니다. 그 다음에는 고양감이며 성취감이 이어졌습니다. 됐어, 같은 감정들이 저를 흔들었습니다. 그건 오롯이 자신감의 형태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내가 될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같은 말들이 아직까지 어딘가에 남아 있습니다. 언제인가 힘든 날이면 이 순간을 떠올리지 않을까 합니다. 마침 돌이키기에는 적당한 계절이기도 하고요.

사실 오래 퍼낸 다음에도 기쁨이 남아서, 당선소감에도 기쁨을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 지금 느낀 다른 감정들의 빛이 바래도 기쁨만큼은 확실히 새겨져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자국이 오래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문학대전 관계자 분들 및 심사위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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