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에 남은 울릉고 수험생들

16일 경북 포항에 여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울릉도에서 온 수험생들이 해병대 청룡회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윤관식기자 yks@kyongbuk.com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원래 날짜에 수능을 치렀다면 여진 때문에 내내 불안했을 것 같아요. 결정은 났고, 이제 다시 공부할 일만 남았죠.”

원래대로라면 수능시험이 갓 시작됐을 16일 오전, 울릉지역 수험생들은 포항시 남구 동해면 해병대 청룡회관에서 책을 펴고 거듭된 ‘막바지 일주일’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날 오전 9시께 규모 3.6의 여진이 일어나자 건물 밖으로 잠시 대피했던 학생들은 이내 지난 일주일간 머물렀던 자리로 돌아와 마무리 공부에 집중했다.

울릉고등학교 3학년 학생 34명과 김종태 교감 등 인솔교사 4명은 지난 10일 포항-울릉 간 여객선을 이용해 일찌감치 포항으로 나왔다.

경북 유일의 섬 지역 수험생과 교사인 이들은 곧장 해병대 복지시설인 청룡회관에 짐을 풀고 시험 준비에 힘을 쏟아왔다.

울릉도에 수능 시험장이 없는 탓에 이 같은 원정은 연례행사로 반복된다.

다만, 올해는 체류기간이 일주일이 아니라 보름 가량으로 길어졌다.

학생들은 전날 예비소집에 참석했다가 난생 처음 지진을 겪고 적잖이 놀란 상태였지만 교육청의 수능 연기 발표 직후 교사들과 함께 모인 자리에서 포항에 남아 시험을 치르기로 의견을 모았다.

무엇보다 기상악화로 여객선 운항이 통제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울릉고 3학년 김경민(18) 군은 “울릉도로 돌아가도 나오는 배편이 제때 뜰지 모르니 남는 편이 낫겠다 생각했다”며 “공부할 시간을 더 벌었으니 차라리 잘됐다고 여긴다”고 말했다.

울릉도에 있는 학부모들도 남겠다는 학생들의 뜻에 동의했다.

이들의 원정 경비는 지난 2010년부터 경북도교육청에서 모두 부담하고 있다.

해병대도 지원과 배려를 아끼지 않아 큰 불편은 없다고 학생들은 말한다.

그러나 고충이 없을 순 없다.

일주일 치만 챙겨온 옷가지와 책 때문에 학생들은 이날 빨래방에 들르고, 참고서와 문제집을 사러 포항 시내에 다녀와야 했다.

포항으로 ‘동반 원정’을 나왔던 수험생 가족 일부는 연기된 수능일에 맞춰 다시 나오기로 하고 이날 울릉행 배편에 오르기도 했다.

안지원(18·여) 양은 “같이 포항에 나왔던 엄마에게는 돌아가 계시라고 전화드렸다”며 “시험을 보는 중에 지진이 나면 위험하고 성적도 더 안 좋아질 수 있으니까 우리한테는 좋은 결정인 거 같다. 이제 공부에 매진할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김종태 울릉고 교감은 “원래 날짜에 시험을 쳤다면 더 좋았겠지만 다행히 학생들도 충분히 이해해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며 “힘든 경험을 담담히 받아들인 학생들이 대견하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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