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후 처음 선 5일장 ‘썰렁’····상인들 “장사할 맛 안 나” 푸념

규모 5.4 지진발생 사흘째인 17일 경북 포항시 흥해읍에서 흥해장이 열린 가운데 한 상가건물앞에 붕괴위험 팻말이 걸려 있다. 윤관식기자 yks@kyongbuk.com
“집은 괘안응교?”

“마이 놀래긴 했는데, 다치진 않았니더. 아지매는 괘안심니꺼?”

흥해장이 선 17일 낮 포항시 북구 흥해읍 성내리.

지난 15일 포항 지진 후 처음 선 5일장에서 오가는 인사는 엇비슷했다.

지진의 직격타를 맞은 흥해면을 비롯해 송라·신광·기계·죽장면 등 인근 지역에서 온 상인과 손님들은 자연스레 지진을 화두로 안부를 물었고, 위로를 건넸다.

흥해장은 진앙인 망천리에서 직선거리로 1㎞ 남짓, 이재민들이 사흘째 대피해 있는 흥해실내체육관에서 불과 700m가량 떨어져 있다.

이날 장터에는 본격적인 김장철을 맞아 배추, 무, 고추, 생강, 대파, 굴, 새우젓 따위 김장 재료를 펼쳐놓은 상인들이 특히 많았고, 가을철 대표 과일인 감, 귤, 배, 사과 등속을 파는 좌판도 상당수였다.

매달 2일과 7일인 장날이면 상설장으로 정비된 흥해시장 장옥을 중심으로 사방 1~200m 가량 도로와 시장 안쪽 길, 이면도로 구석구석까지 붐비는 흥해장은 남구 오천장과 더불어 포항지역을 대표하는 5일장이다.

그러나 이날 만난 상인들은 평소에 비해 손님이 확 줄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청하면 과수원에서 직접 재배한 사과를 가져왔다는 신선이(63·여) 씨는 “원래 흥해장은 장사할 맛이 나는데, 오늘은 영 사람이 없다. 상인들도 많이 안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과자류를 파는 이용식(60) 씨는 “지진 때문에 장사 안될 줄 알면서도 나오긴 했는데, 예상보다 더 시원찮다”며 “점심 때면 30~40만 원 가량은 벌었는데, 오늘은 겨우 10만 원 남짓이다. 벌이도 안 좋으니 점심은 간단히 도시락으로 때워야겠다”고 말하며 쓰게 웃었다.

시장 초입 일부 건물에는 출입금지 테이프가 둘러져 있었고, ‘지진으로 당분간 영업하지 않는다’는 A4 출력물을 붙여놓은 상가도 눈에 띄었다.
규모 5.4 지진발생 사흘째인 17일 경북 포항시 흥해읍에서 흥해장이 열린 가운데 한 상가건물 지붕에서 주민이 지진으로 떨어져나온 잔해들을 정리하고 있다. 윤관식기자 yks@kyongbuk.com
말끔한 양복 차림의 공무원과 경찰들이 수시로 무리를 지어 다녔고, 시장 인근을 휘돌고 흥해민속박물관 앞에 정차한 시내버스 안은 대개 한산했다.

점심시간이 갓 지난 오후 1시께 일부 상인들은 부려놓은 짐을 싸 철수 준비를 하기도 했다.

영천에서 1t트럭에 배추 400포기를 싣고 왔다는 강심원(54) 씨는 바닥에 풀어놓았던 배추들을 다시 적재함에 싣고 있었다.

강씨는 “김장철이면 이 정도 물량은 오전에 다 팔아치우는데, 오늘은 아침 7시에 나와서 이때까지 100포기쯤 팔았다”며 “여기는 파하고, 다른 곳으로 가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상인들은 장사가 안된다고 하소연하면서도 장이 파할 때까지는 자리를 지키겠다고 말했다.

짙은 그늘을 배경으로 앉은 상인들은 되도록 평상시를 유지하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지만 흥해장이 평소의 활기를 되찾기까지는 한동안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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