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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새경북포럼 포항지역위원·시인
일본은 공휴일이 많은 국가의 하나로 꼽힌다. 우리나라에 없는 휴무일도 있다. 바로 ‘산의 날’이다. 매년 8월 11일을 산의 날로 정해서 하루를 공일로 즐긴다. 바다의 날, 즉 물이 있으면 응당 산이 있는 법이니 형평을 유지한다는 취지다.

삼천리금수강산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은 국토의 70%가 산악 지대로 이루어진 나라. 이런저런 명칭으로 채색된 달력을 넘기노라면, ‘물의 날’과 ‘바다의 날’은 있는데 ‘산의 날’이 안 보인다. 일본처럼 산악회가 주도하여 기념일로 제정함은 어떨까. 봄가을 인산인해로 몰리는 등산객을 보면 그 당위성이 실감난다.

근자에 만추의 예천을 찾아가는 도중 안동휴게소에 들렀다. 관광버스에서 쏟아져 나온 나들이객의 몸단장이 울긋불긋 광장을 수놓았다. 추일 서정을 빼닮은 원색의 수채화 같은 풍경. 한데 여자 화장실 앞에는 이십 미터 가량 긴 줄을 섰다. 편의 시설에 대한 남녀의 황금 비율은 얼마일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요즘은 가히 축제의 전성시대이다. 지방자치 개화 이후로 엇비슷한 내용의 행사가 여기저기서 펼쳐진다. 지역의 인지도를 높이고 관광객을 유치하고자 하는 선의로 포장할지라도, 빈약한 발상으로 세금을 낭비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이맘때 동시다발로 벌어지는 축제들 중에는 독특한 주제로 이목을 끄는 경우도 생긴다. 사적인 의견이나 예천서 개최된 세계활축제도 그러하다. 활이라는 흔치 않은 사물을 무대에 올려서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냥 단순한 물건의 전시가 아니라 문화라는 외투를 입혀 참신한 형태로 주목을 받는다.

활은 인류사에서 보편적으로 활용한 생존의 기제였다. 기원은 아득한 중석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애초엔 수렵의 도구와 전쟁의 무기로 사용되다가, 소총이 발명된 뒤로는 놀이와 스포츠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삶의 다채로운 여가 활동이 되었다.

한반도 역시 선사 시대부터 활을 구사했다. 단양의 신석기 유적에서 돌로 만든 화살촉이 발견됐고, 고조선 건국 무렵 각궁을 이용한 사실도 확인됐다. 진수의 삼국지 위지 동이전은 우리 동족을 활쏘기에 뛰어나다고 묘사했다. 동쪽의 활을 잘 다루는 민족이란 뜻으로 ‘동이족’이라 불렀다.

예천은 자타가 인정하는 궁시의 고장이다. 문화재청장의 축사에도 나왔듯이 활과 화살을 제작하는 인간문화재가 모두 예천 사람이고, 대부분의 궁시장이 예천과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은 장인이다. 게다가 출중한 양궁 선수를 다수 배출하였고 국제 규격을 갖춘 양궁장을 보유하고 있다.

예천진호국제양궁장서 행하는 양궁 체험 프로그램에 임했다. 예천여고 재학 중이던 김진호 선수가 세계양궁선수권대회 사상 첫 5관왕을 차지한 기념으로 설립된 경기장. 푸르른 하늘 아래 최고의 활터에 서 보는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추억의 편린이 아니랴.

전직 국가대표 미녀 선수의 지도로 과녁을 노렸다. 골프와 마찬가지로 기본자세가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발디딤·손가짐·살먹이기·들어올리기·밀며당기기·만작·발사·잔신으로 이어지는 활쏘기 연속 동작도 배웠다.

세 돌을 맞은 금번 세계활축제에서 24개국이 참여하는 세계전통활연맹이 창립됐다. 예천에 본부를 두는 국제 NGO 조직. 유네스코 잠재 목록에 등재된 활쏘기 놀이가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오르는 산실이 되기를. 또한 예천의 브랜드 경쟁력 제고로 농특산물 판매와 농업인 소득 증대에 일조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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