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주씨 제4회 경북일보문학대전 금상

김제정작
에어컨 바람 빠질세라 꼭꼭 닫은 출입문이 노크도 없이 벌컥 열렸다. 퉁퉁한 몸피가 때 이른 더위를 데리고 사무실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얼라리? 높으신 송주사님이 워쩐 일이여.”

“폭폭혀 죽겄다 니미럴.”

호섭이 두툼한 주먹으로 제 가슴을 쳤다. 퇴근길에 한 잔 걸친 얼굴이었다. 그가 내 책상 위로 푸짐한 엉덩이를 삐딱하게 올렸다. 다 나눠주지 못하고 쌓아둔 전시회 팸플릿이 바닥으로 좌르르 떨어졌다. 나는 흐트러진 그것들을 주워 올리며 어색한 웃음으로 호섭의 눈치를 살폈다. 환영촌 개발사업이 지지부진한 게 내 탓이라도 되는 양…. 그렇잖아도 나는 간댕간댕한 임시직을 붙잡고 일거리가 바닥날까 애를 태우는 중이었다.

지자체에서 집창촌 철거에 장기간 공을 들여왔고 호섭의 문화관광팀이 최전방에서 뚝심을 발휘했으므로 굳이 따지자면 성과도 없진 않았다. 내가 미대 후배들을 데리고 들어온 ‘녹색예술문화연대’ 건물이 첫 결실이었다. 두 해 전에 J시가 사들여 리모델링한 것인데 옛집의 골격은 보존한 채였다. 부끄러운 과거도 역사의 일부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 결과였다. 구멍 숭숭 뚫린 단층건물의 이끼 낀 블록 벽을 무너뜨리고 철골기둥을 심어 이층으로 올렸으니 새로 지은 거나 진배없었다. 오동나무집이 있는 집창촌은 일제 때 놓은 기찻길을 따라 형성되었다. 원래 이름은 환영촌이었는데 어느새 사람들의 입에서 화냥촌으로 변했다. 일렬횡대로 얼기설기 지은 집들은 간격이 좁았고 샛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서로 어깨를 재꼈다.

“태구야, 니가 요번에 큰 일 한번 히줘야 쓰겄다.”

호섭이 미간을 풀며 느물대는 웃음을 입꼬리에 매달았다. 나더러 오동나무집 메리할매를 집중공략 해달라는 것이었다.

“빠진 이빨처럼 매입해본들 효율성만 떨어지는 거 알지?”

좁은 통로를 끼고 우리 전시관과 이웃한 그 집이 당장의 목표물이었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좁아터진 지금의 전시공간을 대폭 넓힐 수 있을 듯했다. 호섭이 자신의 벌어진 아랫니를 가리키며 입꼬리를 내렸다.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그의 새로운 주문은 지금까지 해오던 주민친화사업과 결이 달랐다. 설문조사를 내세운 실없는 면담으로는 사업 진척이 어렵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맥이 빠지던 참이었다. 내가 일부러 늦장부린 옛 철도부지 담장벽화가 완성되고도 한참이 지나 있었다. 친화사업의 일환으로 시작한 일본군‘위안부’사진전도 시들해진 터였다. 윗분들에게 이슈선점의 중요성을 설득한 호섭도 그렇겠지만 그가 끌어들인 행사를 반색하며 능력을 보여주려던 나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반응이 좋으면 연이어 좀 더 화끈한 이슈를 띄울 생각이었지만 센세이션커녕 나의 원대한 포부가 초장부터 쭈그러지는 모양새였다. 소녀상을 세우던 시청 앞 광장의 열기를 몰아오기에도 역부족이었다. 이미지의 동질성을 내세워 여성의 인권을 강조했지만 정작 환영촌 여성들은 시큰둥했다. 그녀들이 내가 꾸민 전시장을 방문하여 감동의 눈물까지 흘려주길 기대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저 윗분들의 관심쯤은 끌어줄 수 있지 않겠냐 말이다. 그리하여 내가 그 알량한 시정 자문위원들의 압력을 꿋꿋이 버텨낼 정규직으로 특채만 되면 뭘 더 바라겠나.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홍보에 온갖 꾀를 냈지만 관객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소녀상을 지키자고 외치던 소녀들의 방문은 더욱 난망했다. 우리 전시관의 상징성이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실인즉, 관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도 전시관의 위치였다. 환영촌에 어둠이 내리면 여전히 사내들이 꼬인다. 한창 때에 비하면 어림없는 경기지만 아직도 열 댓 군데가 남아서 그 장사를 한다. 캔디, 앨리스, 로즈, 쉬리 등, 외래어 간판들이 생뚱하고 민망하다. ‘오동나무’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지지난 겨울, 리모델링을 마친 전시관에 입주하자마자 내가 오동나무집에 시선을 꽂은 건 간판 때문만은 아니었다. 점심때가 지나면 어둡고 칙칙한 그 집에서 반주 없는 노래가 나이든 여자의 목소리를 타고 들려왔다. 전시관 일층 남자화장실의 창문으로 스며드는 귀에 익은 노래, 조지 거슈인의 서머타임이었다. 쉰 목소리가 댓잎 스치는 바람처럼 내 귓바퀴에 서걱거렸다. 나는 기억이 가물거리는 미국영화 속으로 홀린 듯 빠져들었다. 자려고 눈을 감으면 아이를 안고 자장가를 부르는 여자의 얼굴이 확대되어 다가왔다. 아이의 검은 얼굴도 함께였다. 나는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 두 건물 사이에 몸을 끼워 귀를 세웠다. 조붓한 통로는 대낮에도 어둑했다. 오동나무집 시멘트 외벽엔 밑이 너덜대는 새시출입문이 붙어 있고 그 위로 얹힌 조그만 유리창은 늘 열려있었다. 노랫소리가 나오는 구멍으로 초라한 부엌이 들여다보였다. 키를 낮출 것도 없었다. 정확히 눈높이였다. 플라스틱 선반에 놓인 양은냄비와 사기그릇들, 그리고 밑이 그을린 은색 주전자가 침침한 공간에서 어룽거렸다. 낡은 단층집의 까대기 처마가 들어 올린 시선 끝에 머물렀다. 환영촌을 문화의 거리로 바꾸기로 한 J시의 정책이 십 년이 다 되도록 거기서 미적대고 있었다.

“허긴, 이런 찝찝한 동네를 몇이나 찾아오것냐 니기미.”

호섭은 환영촌을 몽땅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싶은 표정이었다. 짙은 눈썹 밑에서 실핏줄로 금을 낸 흰자위가 뙤록 굴렀다.

“썩을 놈의 오동나무를 분질러부러야 쓰것어, 확 태워불든지.”

응축된 의욕이 임계점을 향하고 있었다. 고교시절의 겁 많던 호섭은 간데없었다.

“시방 그게 뭔 소리여?”

“너는 귀도 없냐? 지난달 불난 디 있자녀. 아 저 반대쪽 말이여.”

호섭의 검지가 창문 너머 오동나무를 지나 저만치 날아갔다.

“로즈?”

“그려 거그. 집 쥔놈 입이 귀에 걸렸어야. 화재가 발생하면 곧바로 철거해야지 위험한 상태로 놔둘 순 없자녀? 우선매수대상이 되는 거지. 안 그래도 시세 기준이라 보상금이 두둑할 턴디. 지급절차도 간단해져요. 감정가로 시비 붙을 건물이 사라졌응게.”

호섭이 목조, 철골조, 기와 등 가옥의 형태와 잔여수명, 대지면적, 기준시가, 영업권 따위를 들먹였다. 보상금 산정기준과 절차에 대한 따분한 강의로 이어질 참이었다.

“아 긍게 불을 누가 질렀간디?”

내가 말허리를 잘랐다.

“알게 뭐여, 사람이 다친 것도 아닝게 조사는 시늉만 냈것지 뭐. 시방 벼락이라도 떨어져주길 바라는 건물주들이 태반이여. 뜬금없는 도둑이라도 들어와서 한 귀퉁이 꼬실라주면 땡큐 아니것어? 제 손으로 저지르다 방화범으로 몰리면 신세만 조징게로.”

건물주가 포주들의 저항을 이겨내기도 벅찰 것이었다. 집을 빌린 포주들은 여전히 짭짤한 현금을 거둬들였고 시에서 제시한 영업보상금은 무력했다. 나는 시의회에서 문화관광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상태를 떠올렸다. 화재소식에 그의 입이 더 크게 벌어져 귀에 걸릴 게 빤했다. 호섭이 벌게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할매가 그놈의 오동나무를 붙들고 백억을 줘도 집을 못 팔것단다. 무슨 신주단지라도 되는지.”

열 댓 평짜리 오동나무집을 소유한 메리할매도 동네 사정에 무신경할 리 없었다. 자신에게 저항할 포주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직 때가 아니리야 니기미.”

호섭의 눈빛이 갑자기 진지해졌다. 나는 하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밥줄 쥔 자가 던진 주문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새 프로젝트를 찾는 조급함을 호섭에게 감추기도 쉽지 않았다.

이 년 전, 녹색예술문화연대라는 그럴듯한 이름까지 지어주며 내게 단체를 만들어보라고 한 것도 호섭이었다. 그의 전화를 받고 시청을 찾았다. 곁에 다른 사람이 없었음에도 그는 두터운 입술을 내 귀에 바투 대고 열을 냈다.

- 드디어 한 건 올려부렀당게 흐흐.

홍등가 초입에 버티고 있던 두 집을 시에서 동시에 매입했단다.

- 곧바로 공사 들어갈 거여.

호섭의 목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김상태 의원의 적극성이 낳은 결실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환영촌에 인접한 공터의 소유자였다. 농구장만한 그의 땅은 늘 비어있었다. 입구에 세워둔 녹슨 주차장 간판이 무색했다. 그곳에 자가용을 대고 뒷골목에 들어갈 배짱 두둑한 사내들이 많지 않은 탓이었다. 수시로 단속이 뜨기도 하거니와 골목 입구 전봇대에 매달린 퉁방울 같은 카메라 눈이 들어오는 차마다 번호판을 찍어대기 때문이었다. 환영촌이 문화예술지구로 변신하는 순간 김상태가 떼돈을 만질 건 분명했다.

- 주상복합으로 올리것디야.

호섭이 혀끝을 돌려 입술에 침을 발랐다. 그가 김상태에게 줄을 대고 있는지 내가 굳이 확인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 내가 요번에 얼매나 쌔가 빠졌는지 아냐?

호섭이 제 생색으로 거품을 물었다. 하지만 나는 두 채를 가진 건물주가 제 풀에 손을 들었다는 소문에 신빙성을 얹었다. 초입의 단속카메라 밑에서 파리를 날린 탓이었다. 그 건물에 업종을 바꿔봐야 구역 내에서는 헛일이었다. 경찰과 연합한 단속강화는 시의 합법적 철거수단이었다. 폐업이 속출했고 포주들도 각자도생으로 흩어졌다. 환영받지 못하는 환영촌은 쪼그라드는 풍선이었다. 하지만 진도는 거기서 멈췄다. 여러 곳을 운영하던 업주는 단속에 협조하는 척 하나로 크게 합쳤다. 보상금부터 챙긴 건 두 말할 필요가 없었다. 열 댓 개로 줄어든 가게들은 요지부동이었다. 갈 곳 없는 여자들에게 시에서 당근을 제시했다. 직업교육과 일 년간 생활보조금 지급, 효과는 별로였다. 호섭은 그녀들의 생활습관 탓이라고 했다. 아침잠에 물든 그녀들을 새벽같이 교육현장으로 몰아대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시위가 이어졌다. 포주들에게 등 떠밀려 나온 여자들이 X자 붙인 마스크를 쓴 채 앞줄에 섰다. ‘현실성 있는 대책’을 요구하는 언어들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시의회는 ‘문화의 거리 만들기’에 더 큰 예산을 배팅했다. 매입한 두 건물을 합쳐 이층으로 올리는 공사가 끝나자 시에서는 아이디어를 짜내기 시작했다. 지방대교수와 예술인 몇이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위아래 합쳐 스무 평 남짓 되는 공간을 여성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작품전시장으로 만들자는 방안이 채택되었다. 나는 호섭의 추천으로 시의회 문광위원들 앞에 섰다. 면접이었다. 위원장이 문득 내게 팀을 꾸려보겠냐고 물었다. 호섭이 내 경력에 기름을 발라 펌프질을 해놓은 모양이었다. 임시직이었지만 이튿날 합격통보를 받았다. 미대를 졸업하고 십이 년, 선배들의 작업실을 전전하며 겨우 숙식을 해결하던 내게 숨통이 트였다. 사람들 앞에서 더는 주눅 들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나와 연을 맺은 여자들의 얼굴이 차례로 떠올랐다. 대부분 작업실에서 알게 된 여대생들이었다. 그 중 나이가 좀 들었던 두엇은 나하고 미래를 맞춰보기도 했다. 고정수입이 없는 내겐 그냥 거기까지였다. 그런 내게 팀을 만들어보라니…. 팀장 명함을 내보이며 후배들을 끌어들였다. 나는 턱을 쳐들어 생색을 냈고 후줄근한 녀석들이 든든한 뒷배를 가진 나를 우러러보았다. 실리콘 초산냄새가 덜 빠진 건물에 네 명의 후배들과 둥지를 틀었다. 녹색예술문화연대가 베이스캠프로 사용할 현장사무실 겸 전시관이었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벽화였다. 나는 밤샘작업을 핑계로 전시관 뒷방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이백 미터도 넘는 함석담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철도청 부지를 보호할 목적이라는데 홍등가의 쇼윈도들이 졸지에 하늘색 담벼락을 마주하게 되었다. 벽은 다른 세상과 맞닿은 캔버스 같았다. 불쑥, 도발적인 그림을 그려 넣고 싶은 욕망이 솟았다. 하지만 시답잖은 예술혼은 곧 시정 자문위원들의 지시 아래로 묻혔다. 환영촌에 진입하는 것 자체가 내겐 도발이었으므로 별도의 도발은 불필요한 것이었다. 그들은 초원 위에 피어난 꽃그림을 원했고 나는 허탈감으로 자위를 했다.

- 씨발 그럼 난 뭐냐.

하릴없는 하소연을 호섭에게 뱉었다.

- 야 조태구, 네가 배가 덜 고팠구나.

호섭이 막걸리 잔을 채워주며 어른스럽게 나를 나무랐다.

벽화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두 번째의 임무가 내게 주어졌다. 시에서 우리 사무실 인력을 짬짬이 이용하려는 속셈이었다.

- 긍게 머시냐 요것은 오래전부터 해오던 주민친화사업이여.

심심풀이 삼아 해보라는 듯 호섭이 최대한 자연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건 일종의 의식전환 작업이었다. 그 골목에서 생계를 해결하는 사람들의 저항을 무력화시켜 홍등가 밖으로 끌어내자는 거였다. 대상은 매춘업을 유지하는 삼발이었다. 성매매 여성, 포주, 그리고 그들에게 사업장을 제공하는 건물주. 세 개의 지지대 중 어느 하나만 무너뜨려도 환영촌은 사라지게 되어있단다. 시에서는 건물주와 포주들을 상대로 고소 고발을 산탄 총알처럼 쏘아댔다. 법을 내세워 어르고 누르는 일이 호섭의 임무였다.

- 가진 자들일수록 매에 약한 법이자녀?

호섭의 장담이 그럴듯했지만 당장의 밥줄에 매달린 여자들은 법 따위에 둔감했다. 유화작전을 수행할 별도의 팀이 필요할 터였다. ‘시정에 협조하여 직업을 바꾸겠다는 합의를 여자들로부터 받아내라.’ 그동안 우리가 그곳 사람들과 친분이 생겼으므로 말머리를 트기에 유리하다는 계산속이었다. 삼촌과 이모로 불리는 포주들과 새삼스레 눈을 맞추기도 조심스러웠다. 감정노동은 불굴의 인내심을 요구했다. 해를 넘겨 벽화를 그리고 긴 담장 밑에 꽃을 심는 동안 그들과 눈인사라도 주고받았다는 게 그나마 믿는 구석이었다. 뭇매를 당하기 십상이었지만 내친걸음이었다. 전의를 다졌다. 우리는 낮 시간에 설문조사를 사칭해 가게들을 방문했다. 잠이 덜 깬 여자들이 푸석한 눈을 희번덕거리며 유리문을 열었다. 우리는 어색한 웃음을 흘렸고 그녀들은 의심과 경계를 숨기지 않았다. 이따금씩 시청에서 붙여준 나이든 여직원이 동행했다. 간호사출신이라는 뚱뚱이 여직원은 복지와 건강진단을 자주 입에 올렸다. 나는 당근부터 내밀었다. 직업교육을 받으러 나오면 일 년 동안 매달 백만 원씩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물론 그 일을 그만두는 조건이었다. 그녀들은 시큰둥했다.

- 글믄 오빠가 그것도 갚아줄 텨?

대부분 빚에 얽매어 있었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간 면박만 당하기 좋았다. 무기력한 모습도 거기서 거기였다. 달리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다른 걸 할 자신도 없다는 것이었다. 진전이 없었다. 나는 호섭을 불러내 정직하게 상황을 전달했다.

- 내 적성엔 안 맞는 것 같어.

반복되는 헛걸음에 지쳐갈 때쯤이었다. 호섭이 한쪽 눈을 찌그러뜨리며 말했다.

- 어디 오라는 데라도 있어?

나는 꼬리를 내렸다. 이력서 내밀 곳이 달리 없었다.



메리할매를 집중 공략하라는 호섭의 주문을 받은 뒤로 나는 성과도 없이 날짜만 세고 있었다. 한밤중에 캔맥주 한 꾸러미를 들고 다시 찾아온 호섭은 쫓기는 얼굴이었다. 김상태가 어지간히 쪼아대나 보았다.

“야 좆태구 어떻게 좀 해봐라 좀 좀. 할매만 도장 찍어주면 그 다음부터는 쭉쭉 나가는 거잖아. 네 덕에 승진 좀 해보자 승진.”

그가 말꼬리에 심지를 박았다. 상근예비역으로 나보다 먼저 군역을 마치고 지방공무원시험까지 붙은 호섭이 또다시 변신을 꾀하고 있었다. 열대야가 짜증스러웠다.

“새꺄 그게 나한테 할 말이냐? 목이 언제 떨어질지도 모르는 신센데.”

내 볼멘소리는 호섭이 날린 호언장담에 이내 기대로 바뀌었다.

“내가 올라가믄 넌 탄탄대로여 이 빙신아.”

“까고 있네.”

대꾸야 그렇게 했지만 자리를 굳혀 밥벌이를 연장할 유일한 길이었다. 길게 뻗은 문화의 거리에 우뚝 솟은 전시관, 관장실의 묵직한 의자에 앉아 회의를 주재하는 내 모습을 그려보았다.

나는 메리할매의 가게를 부지런히 드나들었다. 나이든 여자만 모여 사는 그 집이 내게도 편했다. 제일 어린 여자가 삼십대 후반이었다. 어느 가게에서나 나이든 포주를 엄마라고 불렀지만 오동나무집에서는 메리할매를 부르는 목소리들이 더욱 살가웠다. 할매가 예순 넷이었으므로 오십이 다 된 여자에겐 큰언니뻘이었지만 그녀도 메리할매를 엄마로 불렀다. 그도 그럴 것이 메리할매는 나이보다 열 살은 더 먹어보였다. 젊어서 고생한 탓인 듯했다. 무릎사이가 벌어진 짤막한 오다리는 관절염 후유증이라고 했다. 나는 먼발치에서도 오종종하게 뒤뚱거리는 그녀를 재깍 알아보았다. 골 깊은 눈가주름과 좀처럼 펴지 못하는 미간이 화장대 위의 약봉지들을 설명해주었다. 그녀가 달고 산다는 진통제와 몸을 일으킬 때마다 빠져나오는 탁음이 무관치 않아 보였다. 내 시선이 침대머리맡의 조그만 약병으로 옮겨가자 그녀가 쑥스러운 듯 해명을 했다.

“으응 저것도 평생 동무여, 없으믄 잠을 못장게.”

호섭의 각별한 요구를 받기 전에도 오동나무집을 들르긴 했었다. 벽화를 그리다 친화작업에 내몰린 작년 이맘때였다. 나는 동네를 한 줄로 훑어오다 마지막으로 메리할매의 가게에 발을 담갔다. 시에서 나왔다는 말에 마지못해 문이야 열어줬지만 ‘쓸데없는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구먼.’ 하는 표정들이었다. 거실 겸 대기실에서 화장을 서두르는 여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 조태굽니다.

- 저는 순복이에여.

- 여긴 예명을 쓰지 않나요?

말을 꺼내놓는데 닭살이 돋았다.

- 오빠 디게 귀엽다잉.

자신을 소개한 큰언니가 내 볼을 꼬집었다. 그녀의 경계심을 푸는 데는 성공한 듯했다. 내가 순복씨에게 시의 문화정책을 설명하자 소파에 어깨를 파묻은 할매가 픽 웃었다.

- 재주껏 혀어봐아.

메리할매가 고집불통이라는 것쯤은 익히 들은 바였다. 할매의 목소리에 섞여 바람이 쉬익 빠져나왔다. 불쑥 서머타임의 가사가 떠올랐다. ‘애야 울지 마라. 우리는 부자란다. 네가 온 하늘을 차지하는 날까지 엄마가 너를 지켜주마.’ 할매가 엄지를 꺾어 세월을 한 칸씩 뒤로 넘기고 있었다. 내 시선이 손때로 반질해진 염주에 머물렀다. 그녀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관세음보살을 중얼거렸다. 여자들에게 직업교육을 받게 하자는 말이 내 목구멍에서 제 풀에 오그라들었다. 나는 꺼내던 설문지를 가방에 도로 집어넣었다.

- 모진 게 목숨이라서…. 자다가 죽게 해돌라고 날마둥 비는디.

그리고는 긴 숨을 뽑아냈다.

- 그것이 맘대로 되간디?

무심한 표정으로 곁을 지키던 순복씨가 눈을 흘기며 핀잔을 주었다. 할매가 다시 내게 시선을 맞췄다.

- 총각도 믿어봐. 간절히 원하면 들어주신당게.

오동나무집은 포주인 메리할매의 소유였다. 시에서 찍어 누르기 힘든 이유였다. 건물주를 통해 쓰리쿠션으로 압력을 넣을 수 없는 데다 그녀가 데리고 있는 여자들도 급할 게 없는 눈치였다. 오동나무집에서 일하는 네 명 모두 빚이 없다고 했다. 호객행위 단속도 효과가 없었다.

- 헛심 빼고 낚아올 거 있간디. 여그는 단골 장사요.

오십이 되도록 오동나무집에서 늙어간다는 순복씨의 장담이 맞나보았다. 메리할매가 그곳을 인수한지 스무 해가 넘었지만 인신매매나 미성년자고용혐의로 걸린 적은 없었다고 순복씨가 자랑했다.

- 보면 몰러?

할매가 말을 툭 던지는 순간 출입문이 열렸다. 가무잡잡한 얼굴을 활짝 펴고 주저 없이 들어서는 사내는 한 눈에도 외국인노동자였다. 인도나 네팔 그 어디쯤이 고향인 듯한 그가 한국어로 인사하며 할매의 손을 잡았다. 할매가 턱으로 신호를 보내자 막내로 보이는 여자가 그를 데리고 뒷방으로 들어갔다.

- 초저녁부터 바쁜 집도 여그 뿐이랑게.

순복씨가 자랑처럼 바람을 넣었다. 그녀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잠시 후 머리 허연 사내가 들어섰다. 그가 출입문 안쪽에 목발을 기대놓으며 대기실을 두리번거렸다. 한 쪽 다리의 무릎 아래가 없었다.

- 어이!

그가 제 마누라 부르듯 하자 순복씨가 벌떡 일어섰다.

- 하이고 오라버니!

그녀가 와락 반기며 사내를 뒷방으로 끌었다. 그녀의 교태가 한동안 거실을 맴돌았다.

그 뒤로 나는 점심도 소화시킬 겸 오동나무집의 문을 슬그머니 열곤 했다. 순복씨는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종종 늘어놓았다. 메리할매의 과거도 자연스레 드러났다. 오동나무에 얽힌 소문은 사실이었다. 내가 직접 나무를 만져본 건 겨우내 쌓아둔 호기심을 참아낸 뒤였다. 밖으로 나와 기지개를 켜다가 새시문 끌리는 소리를 들었다. 할매가 외출하는 중이었다. 불공을 드리러 가는지 봄볕에 반사되는 소복이 눈부셨다. 할매가 시야에서 멀어진 뒤, 옆집으로 스며들어 순복씨를 졸랐다. 그녀가 나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사내들을 맞이하는 대기실 뒤쪽엔 여자들의 쪽방이 있고 방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보라색 커튼이었다. 나는 비밀의 문을 여는 설렘으로 두툼한 천을 조심스레 젖혔다. 우람한 나무둥치가 버티고 있었다. 거기서부터 부엌 겸 창고였는데, 기존의 처마를 담장까지 잇대어 옆 마당을 안으로 끌어들인 길쭉한 공간이었다. 열 발짝쯤 떨어진 창문에서 희미한 빛이 들어와 실내로 퍼졌다. 우리 전시관 후미의 남자화장실 쪽창너머로 훔쳐보던 바로 그 맞은편 유리창이었다. 눈이 어둠에 적응하자 나는 이내 수종을 알아보았다. 지붕 밑 처진 가지에 거인의 손바닥 같은 이파리가 붙어있었다. 둥치는 내가 껴안고 양 손으로 깍지 끼기 힘들만큼 굵었다. 고개를 들어 줄기를 좇았다. 까마득한 어느 날 지붕위로 솟았을 우듬지는 보이지 않았다. 둥치를 감싼 천정의 틈새로 뿌연 빛줄기가 내려와 부엌바닥에 노란 점을 찍었다.

- 열여섯까지 이 집에 살았었다는디.

순복씨 말대로라면 메리할매는 어린 시절로 되돌아온 것이었다.

- 그랑게 머시냐, 친엄마 얼굴은 모르고, 아부지가 후처를 들이는 바람에 힘들었다등만. 목수질 하다가 폐병으로 죽었디야.

그가 오동나무집 마당에서 나무를 깎고 다듬었던가 보았다. 동네가 집창촌의 모습을 갖추기 전 이야기였다.

- 배 다른 자매가 있었다는디 어린것들이사 즈그메를 따라갔겄지 뭐. 그랑게 아부지 초상을 치고 무작정 기차를 탄 것이제잉. 서울역에 내리자마자 직업소개소를 찾아갔는디 써글눔덜이 몹쓸짓을 해놓고 그런 디로 팔아분 것이여.

두서없는 말을 정리해보자면 메리할매는 열여섯에 동두천 미군부대 주변 사창가로 인신매매를 당한 것이었다.

- 아부지가 딸 시집보낼 때 이걸 베어 서랍장을 만들어주기로 했다는디….

순복씨가 나무둥치를 쓰다듬으며 코를 훌쩍거렸다. 메리는 일곱 살 때 흑인아빠를 따라 미국으로 간 딸의 이름이었다. 그제야 나는 짐작만으로 되작이던 소문의 조각들을 온전히 꿰어 맞출 수 있었다.



오락가락하는 비로 여름이 끝나가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녹슨 양철지붕 위로 솟은 오동잎이 그림자를 풀어 담벼락을 핥았다. 집중공략의 효과가 나타나긴 일렀으나 오동나무집 여자들과 제법 정이 들 즈음, 할매가 나를 찾았다. 내가 안방으로 들어서자 그녀가 장롱을 열어 전자레인지만한 상자를 힘겹게 꺼냈다. 국제우편물이었다. 상자 속이 울긋불긋했다.

“우리 딸이 보냈어.”

그녀가 옷가지를 뒤적거려 편지를 꺼냈다.

“이거 좀.”

읽어달라며 내민 영문편지는 메리가 선물에 끼워 보낸 것이었다.

“오년 만이구먼.”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소식이 온다고 했다.

“형편이 안됭게로, 워낙에 바쁘기도 허고.”

한국을 떠난 뒤로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은 딸자식을 두둔하고 있었다.

“내가 미국말은 좀 허는디.”

할매가 영어를 쓰거나 읽을 줄은 모르나 보았다.

“중학교 들어가자마자 알파베또 몇 자 배우다 관뒀어. 아부지 병구완하믄서 살림을 맡았응게로.”

장사를 핑계로 밖으로만 도는 새엄마와 어린 이복자매를 돌보는 일까지 그녀가 떠안았던가 보았다. 공들여 쓴 손글씨는 내 영어실력으로도 해석이 가능했다. 첫줄의 ‘엄마’와 끝 부분에 싸인처럼 적어놓은 ‘사랑해요’만 한글이었다.

“갸가 서른 일곱인디 법대 나와서 변호사여 시방, 엘에이에서. 공부허니라고 아직 시집도 못갔당게.”

요즘의 근황이 적힌 편지 속에서 그건 읽어낼 수 있었다. 메리는 결혼할 남자가 생겼다고 했다. 동봉된 사진이 있었다. 검은 얼굴에 은테안경을 쓰고 빠글빠글한 머리카락을 뒤로 묶은 여자가 메리였고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앞니를 드러낸 동양계 남자가 약혼자였다. 같은 법률사무소에서 일한다는 그 역시 변호사인 듯했다. 남자의 부모에게 엄마를 어떻게 소개할지 고민 중이라는 문장이 내 눈을 찌르고 들어왔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어 다음 줄을 크게 읽었다. ‘마음이 정리되면 크리스마스 휴가 때 엄마를 보러 갈게요.’ 할매가 상자 안에서 빨간 털모자를 꺼냈다. 꼭지에서 하얀 털실방울이 달랑거렸다. 크리스마스 날 머리에 쓰고 메리와 함께 사진을 찍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녀가 장롱서랍에서 앨범을 꺼내 딸의 사진을 끼웠다.

“잠깐만요.”

나는 손을 뻗어 누렇게 헤진 앨범 모서리를 붙잡았다.

“아따 뭘 이런걸.”

못이기는 척 보여준 사진들, 메리의 성장과정이 꼼꼼히 보관되어있었다. 그만 덮으려다 얼핏, 뒤표지 안쪽에 붙은 흑백사진 하나가 내 눈을 붙들었다. 변색된 사진 속에 성인남자와 여자아이가 서있었다. 남자는 후줄근한 양복에 넥타이를 맸고 일곱 살이나 됐을까싶은 아이는 종아리가 드러난 주름치마에 흰 저고리 차림이었다. 미소가 닮은 둘은 한 눈에도 부녀간이었다. 두 사람 사이의 나무 한 그루가 인상적이었다. 부녀가 위 아래로 붙잡은 줄기는 아이의 발목만큼 굵었다. 좀 전에 심은 듯 흙을 돋운 바닥에 물을 준 흔적이 보였다. 순복씨한테 들은 할매의 어린 시절이 사진 속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어른 키보다 웃자란 나무 위는 허공이었다. 마당이었다는 증거였다. 그 뒤에 살던 사람이 처마를 늘려 까대기부엌을 만들다보니 나무가 실내로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이거 오동나무죠?”

“뚫어지것네, 그만 봐.”

그녀가 내게서 앨범을 빼앗아 서둘러 장롱에 넣었다. 그녀의 손에서 염주가 돌아갔다. ‘믿어봐, 들어주신당게’ 라는 말이 흐뭇한 표정에 물려있었다. 나는 곧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사전을 뒤져가며 답장을 써주었다. 할매의 구술에 기름을 덧바르는 친절도 잊지 않았다.

“꼭 오겄지 잉? 찬찬히 좀 읽어봐아. 긍게 날을 잡았단 야그는 없어?”

할매가 방바닥에 놓인 메리의 편지를 내 쪽으로 다시 밀었다. 조금 전의 달뜬 모습이 불안으로 바뀌고 있었다. 할매의 결심을 이끌어낼 절호의 기회였다.

“식을 곧 올리겠다네요.”

약혼까지 했다는데 내가 행간을 읽어내지 못할 것도 없었다. 할매가 내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해석이 잘 안 되는 부분을 손끝으로 짚으며 의역 끝에 나는 기어이 한 줄을 더 보탰다. 빠르게 잔머리를 굴린 뒤였다.

“엄마의 달라진 생활을 보고 싶어요.”

할매의 귀 밑에서 힘줄이 도드라졌다. 그녀가 입술을 만두꼭지같이 오므렸다. 내 재주가 먹혀들어 매매계약서에 도장 받을 날이 성큼 다가올 것 같았다.



우리가 기획한 일본군‘위안부’사진전이 종료를 하루 앞두고 있었다. 내 휴대폰에 할매의 번호가 떴다. 점심을 먹고 봉지커피를 탄 종이컵을 비울 때였다. 할매가 전시관으로 건너오겠단다. 소외된 여성들을 향한 지자체의 친화전략이 이윽고 그녀의 호기심을 건드린 것이었다. 나는 할매 곁에 바짝 붙어 친절하고도 자상한 설명을 해주었다. 사진을 한 장씩 훑어가던 할매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목구멍 아래로 삼키는 울음이 곧 대성통곡으로 이어질 조짐이었다. 당황스러웠다. 나는 할매를 일으켜 오동나무집으로 모셔다 드렸다. 안방에 쓰러진 그녀가 이마를 짚으며 한 손으로 약봉지를 가리켰다. 진통제를 삼키고 누운 베개로 눈물이 배어들었다.

“우린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어. 매독 걸려 끌려가면 몽키하우스에 갇혔지. 페니실린주사가 어찌나 독하던지, 쇼크로 사지를 떨다 숨이 떨어지기도 하고 더러는 옥상에서 뛰어내렸어. 운 좋게 탈출한 언니를 경찰이 잡아다놓고 가더랑게. 다들 보는데서 패기 시작허는디 피범벅이 된 얼굴을 봉게로 도망칠 엄두를 못 내것더라고. 날을 잡아 모아놓고 교육을 시키대. 문교부장관이라등가, 그이가 마이크를 잡고 우리를 띄워주등마. 딸라 버는 애국자라고. 아, 몰려드는 놈덜을 끝도 없이 받아내얀디 그런 소리가 귀에 들어오것능가. 소파수술 받은 날도 쉬덜 못혔응게. 어찌 그리 잘도 들어서는지. 양놈 씨를 수도 없이 긁어냈어. 서른 번도 넘는다믄 누가 믿것어. ‘장화‘를 내밀면 주먹질부터 하는 놈들이 많았거덩. 거절도 못혀. 그놈들이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만 해도 우린 몽키하우스로 들어가야 했응게.”

할매가 이야기를 멈추고 상체를 세웠다. 물 컵을 들어 입술을 축인 그녀가 젖은 눈으로 말을 이었다.

“메리아빠가 은인이었지. 나라에서 관리하는 명단이 있었는디 거그서 빠져나올라믄 양키와 결혼하는 수밖에 없었어. 메리를 키움서도 속은 두엄자리였는디, 어린것이 나갔다 들어오믄 골방에 처박혀 울어쌓더라고. 깜둥이새끼라고 놀려댕게로. 그 동네엔 그런 아그덜이 더러 있었지만 즈그덜끼리도 슬슬 피하더라고. 한번은 고샅에서 아그덜한테 맞고 코피를 흘림서 들어왔는디 내가 죄없는 것을 빗자루 몽뎅이로 두드렸어. 내 속에서 불이 낭게로. 학교 갈 나이가 되어가닝게 다들 입양보내라드만.”

메리아빠가 제대 후 한국으로 다시 나왔을 땐 그녀가 이미 다른 미군과 살림을 차린 뒤였다.

“편지는 한 번 받았지만 진짜로 돌아올 줄 알았것능가. 본토발령 받고 가불믄 다들 그걸로 끝이었는디.”

이혼서류에 싸인해주고 딸만 딸려 보낸 이유였다. 그녀는 미군과의 계약동거를 반복하며 모아둔 돈으로 동두천에 눌러앉아 그 장사를 했다.

“배운 도둑질이라….”

귀향하여 오동나무집을 되찾고 언젠가 다시 만날 딸의 혼수를 장만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다.



한동안 두문불출하던 할매가 다시 나를 보자고 했다. 지난 수요일 아침이었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었다. 전시장에서 쓰러진 뒤로는 민망하기도 하여 내가 방문을 자제하던 터였다. 노크를 하자 순복씨가 남아있는 미음그릇을 들고 할매의 방을 나왔다. 할매가 장롱을 열었다. 이번엔 엊그제 받았다는 작은 페덱스 상자였다. 그 안에서 나온 휴대폰 크기의 빨간 액자, 어린 메리가 엄마의 손을 잡고 있었다. 한국을 떠나기 직전에 찍은 사진인 듯했다. 동봉한 편지는 이미 뜯겨있었다. 꼬부라진 글씨를 모른다지만 단어 몇 개 정도야 할매의 눈에 밟히지 않았을까.

“밤새 한 숨도 못 잤는디….”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가 보았다. 선뜻 나를 부르지 못하고 이틀을 삭힌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할매가 미간을 좁혀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쳐진 눈 밑이 발갛게 부어있었다. 온갖 상상이 꼬리를 물며 그녀를 덮쳤을 것이었다. 편지의 내용이 짧았다. 결혼을 준비하며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다. 나는 침을 한번 삼키고 목을 가다듬어 직역을 했다. ‘한국방문을 앞두고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동두천의 기억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아요.’ 내 음성이 갈라졌고 목구멍이 좁아졌다. ‘차라리 엄마를 잊기로 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이어진 몇 마디의 변명과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문장은 눈으로만 읽었다. 메리가 돌려보낸 사진을 나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편지에 다 쓰지 못한 단어들이 빨간 액자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만 일어서려했는데 할매가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자리가 불편했다. 가라앉은 침묵이 방안의 밀도를 높였다. 시간이 더디 흘렀다. 그녀가 멍해진 표정을 가다듬으며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진작부터 각오는 하고 있었어. 내가 죽일 년이제. 인자사 만나먼 또 머더것능가.”

그리고는 부엌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지난 세월 저것을 붙들고 살았는디.”

오동나무를 말하는 것이었다.

“인자 이 집도 명이 다 되얐어.”

할매의 눈자위에 물기가 괴었다.

“이건… 참말로 어려운 부탁인디… 이녁이 꼭 좀… 들어줘야 쓰것어.”

한참동안 뜸을 들인 뒤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위에서 내 머리통을 세게 누르는 느낌이었다. 아니 꼭 들어줘야만 할 것 같았다.

“아무래도 그게 빠르것지? 여그 준비는 내가 다 해놓을 것이여.”

뼈다귀만 추려 던진 말을 나는 곧바로 알아들었다. 화재로 소실된 집은 보상이 빠르다는 걸 할매도 모르지 않을 것이었다. 이미 결심이 선 얼굴이었다. 딸자식의 결혼식에 맞춘 속전속결의 선택인 듯했다. 한 건 제대로 올릴 찬스였지만 분위기가 무거워 은근히 겁이 났다.

“차마 저걸 내 손으로는….”

할매의 시선이 다시 오동나무를 향했다. 시에서 동원한 중장비로 뽑혀나가는 꼴은 눈뜨고 볼 수 없을 터, 그녀는 남의 손을 빌려서라도 나무를 화장(火葬)시키기로 한 것이었다. 금요일 오후 두 시가 좋다고 했다.

“이 골목이 텅 비어.”

모두들 동네 목욕탕에 가서 주말대목을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그녀가 내 눈을 깊게 들여다보았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알게 뭐여, 사람이 다친 것도 아닝게 조사는 시늉만 내것지 뭐. 도둑이라도 들어와서 꼬실라주면 땡큐 아니것어?’ 이명처럼 들려오는 호섭의 목소리가 나를 무장시켰다. 할매가 내 손을 쥐고 아퀴를 지었다.

“여그는 걱정말어, 내가 다 몰고 나갈팅게.”



남자 화장실엔 아무도 없었다. 지루한 전시회가 끝나 건물 전체가 조용했다. 팀원들도 좀 전에 늦은 점심을 먹으러 몰려갔다. 나는 배탈을 핑계로 같이 가자는 손들을 뿌리쳤다. 건물 밖으로 나갔더라면 폐쇄회로 카메라에 찍혔을 터, 두 집 사이로 꺾어 드는 동선을 피하길 잘했다. 이쪽 화장실에서 던져 넣기로 한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아 성냥 한 개피의 부피를 확인했다. 이틀 전 동료의 생일케이크 위에 불을 붙여주고 남은 거였다. 한쪽 창문을 방충망 쪽으로 조심스럽게 밀어 사각의 트인 공간을 확인했다. 오동나무집 유리창은 여전히 열려있었다. 한낮의 나무그늘에서 올라온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왈칵 토악질이 올라왔다. 숨을 참고 밖으로 눈만 빠끔히 내밀었다. 고양이들이 뜯어놓은 쓰레기봉투가 아침나절 내린 가을비로 젖어있었다.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제 손가락 모양의 봉투 끝에 대가리를 긁어 건너편 구멍 안으로 던져 넣기만 하면 되는 건데…. 팔을 길게 뻗으면 중지 끝이 닿던 벽이 스르르 멀어졌다.

손목시계가 약속된 두 시를 알렸다. 휘발유냄새가 화장실 창틀을 타고 건너왔다. 할매가 정말 결심을 한 것이었다. ‘태구야, 니가 요번에 큰 일 한번 히줘야 쓰겄다. 내가 올라가믄 넌 탄탄대로여 이 빙신아.’ 호섭이 외치는 소리가 고막을 쑤셔댔다. 심호흡으로 심장박동을 조절하며 눈꺼풀을 치켜 올렸다. 성냥대가리를 눌러 거칠게 긁었다. 불꽃이 일었다. 소변기 위 사각의 창틀이 건너편 창을 포위하여 과녁을 만들었다. 성냥골이 구멍으로 빨리듯 들어갔다. 이쑤시개로 몇 차례 연습해둔 효과였다. 몇 초 뒤에 퍽 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했다. 어차피 전소될 필요는 없었다. 적당히 그을리기만 하면 철거할 이유로 충분했다. 옆집까지 꼬실라준다면 좋겠지만 적당한 선에서 멈추는 게 낫지 싶었다. 일이 너무 커져도 의심받을 테니까. 대낮이라 연기만 새어나와도 눈에 띨 터, 금세 화재신고가 들어가지 않겠나. 이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채워질 때쯤 나는 이미 큰길에 나와 있었다. 악을 쓰며 소방차가 달려왔다. 거대한 물통을 실은 빨간 트럭 두 대가 내 옆을 스쳤다. 예상대로 목적지는 그 골목 안이었다. 그럼 된 거였다.

‘야 송주사 낮술 한 잔 찌끌자.’ 나는 호섭에게 문자를 보냈고 삼십여 분만에 답이 왔다. ‘너냐?’ ‘잔말 말고 나와 새꺄.’ ‘퇴근 후에 보자.’ 불안해서 환영촌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나는 우회로를 택했고 반대쪽으로 한없이 멀어졌다. 걷는 동안 다음 전시회로 생각을 모았다. 저질러 볼까. 이번에 더 잘하면 되잖아. 사진들은 어디서 구하지. 누구의 증언을 더 받아내나. 그녀들을 어떻게 찾아내지. 명단을 만들어 조직적으로 관리했던 담당부처에 자료는 남아있을까. 이미 인멸되었을지도 몰라. 쓸데없는 짓 한다고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지. 자신감이 자꾸만 빠져나갔다. 그나마 숙식이라도 해결하던 건물에서 쫓겨날 가능성을 되작거리다가, 공원에서 시간을 죽이다가, 시청 뒷담을 에둘러 호섭과 약속한 장소에 당도했다. 불안한 마음에 흘끗 뒤를 돌아보았다. 하루를 뚝딱 잡아먹은 해가 홍등처럼 청사 옥상을 물들이고 있었다.

대폿집은 한산했다.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 호섭이 탁자 위의 막걸리를 병째 들어 올렸다. 좁은 구멍을 통과하는 소리가 증폭되어 들렸다.

“너 아니지?”

“바라던 거 아녀?”

“얌마, 할매가 죽었대.”

느닷없이 송곳으로 뒷목을 찔린 느낌이었다. 주먹을 꽉 쥐고 심호흡으로 정신을 모았다. 경찰이 벌써 문화광관팀에 다녀갔단다. 호섭이 물어온 두서없는 정보를 꿰어보자면 이랬다. 달려온 소방차가 물을 뿌려댔고 곧 불길이 잡혔다. 부엌을 대충 태우고 거실로 옮겨 붙기 전이었다. 소방대원이 안으로 들어갔다. 할매가 연기에 싸인 오동나무를 껴안고 비스듬히 쓰러져있었다. 곁에서 수면제 병이 발견되었다. 업고 나왔을 때 그녀는 이미 숨져있었다. 경찰이 사인을 조사 중이다.

“근디 너 뭐 좀 아는 거 없냐?”

호섭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양재기 잔을 채워주었다. 메리할매는 소원대로 자다가 죽었다. 꿈속에서 나무가 서랍장이 되었을까. 나는 나무가 없어져야 집도 없어질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나무가 사라질 때 그녀도 사라진다는 건 몰랐다. 아버지의 서랍장은 어머니의 보상금으로 제 모습을 바꿔 돌아오지 않는 법정상속인을 찾아갈 것이다.

“할매가 약을 입에 털어 넣고 스스로 불을 붙인 거여, 안그냐잉?”

호섭이 내게 대답을 졸랐다. 그렇게 믿고 싶겠지만 호섭도 한 가지는 모른다. 메리할매가 굳이 내게 도움을 청했던 이유를. 호섭이 큼큼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다 말고 후우, 길게 숨을 내뱉었다. 나는 무심한 듯 눈을 감고 현장상황을 재정리했다. 식구들을 내보내고,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 부엌의 쪽창 밑에서 준비를 마친 그녀가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긴다. 나무와 하나 되어 자장가를 부른다. 서머타임…. 자신을 달래 재운다. 그녀가 잠에 흠뻑 젖어들 때를 기다려 불꽃이 다가온다. 먼 길을 떠나기 전, 그녀도 꿈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일생에 단 한번 뿐인…. 세월을 기다린 나무는 그녀와 함께 마지막 단꿈을 꾸었으리라.

이번엔 호섭이 내 술잔을 채웠다.

“아참 그란디 거시기 머시냐. 할매가 무신 흑백사진을 쥐고 있더라는디….”

나는 들어 올리던 술잔을 내려놓았다. 할매를 설득하여 기어이 다음 전시회에 띄우려던 표지사진이었다. 눈앞에 떠오른 두 사진이 스르르 겹쳐졌다. 현기증이 일었다. 빨간 액자가 어른거리나싶더니 메리 모녀가 나무의 양편에 서 있었다. 이윽고 오동(梧桐)의 꿈이 내게도 선명히 보였다. 코끝이 맹맹해지고 눈자위와 목구멍이 덩달아 뻐근했다. 어금니를 물었다. 다음 프로젝트는 미군‘위안부’전시회다. 씨발 다를 게 뭐야. 나는 마침내 옹골진 계획에 불을 붙였다. (끝)



▲ 권용주
약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

한의학박사 (부인과학)

2015 단편소설 ‘샤이레이디’로 등단 (한국소설 신인상)

2016 신춘문예 소설분야 당선 (불교신문, 광남일보)

‘2017신예작가’로 선정 (한국소설가협회)

2017 재외동포문학상 우수상


수상소감

“인생 후반전, 소설처럼 살고 싶어 소설을 붙잡았다”

한동안, 미뤄둔 방학숙제로 전전긍긍하는 기분이었다. ‘수요집회’가 반복되고, 지난 정부가 배상과 보상의 경계를 허물어 받아온 ‘민망한 돈’에 비판이 꽂힐수록 나는 안으로 시선을 돌려 시린 가슴을 달랬다. 외국군도 아닌 해방된 조국의 정부가 이 땅의 딸들을 조직적으로 관리하며 착취한 사실을 어찌 외면할 것인가. 글쟁이는 이제라도 미군‘위안부’ 문제를 양지로 끌어내야 했다. 다행히 ‘오동의 꿈’으로 묵은 빚 한 조각을 덜어냈다. 소설이 고발정신을 담는 그릇임에 감사한다. 작년에도 경북일보문학대전을 노크했지만 낭보가 없었으므로 이번에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원고를 보낸 뒤에도 퇴고에 몰두하던 중이었다. 휴대폰에 뜬금없는 번호가 떴다. 하여 나는 모르는 전화라도 반갑게 받아야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아직 덜 여문 작품이 빛을 보게 되었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나 역시 일필휘지를 믿지 않는다. 소설의 힘은 역시 개작에서 나옴을 진리로 삼고 있다. 고맙게도 내겐 퇴고를 독려하는 눈 밝은 문우들과 매서운 스승님이 계신다. 조동선 선생님의 지적에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감사로 절차탁마의 밤을 새우곤 한다. 철이 덜 든 나는 인생후반전을 소설처럼 살고 싶어 소설을 붙잡았다. 소설을 꾸준히 쓰다보면 정말 소설 같은 삶이 펼쳐질까. 글쎄, 좀 더 벼리고 난 뒤에 답을 얻을 일이다. 오늘도 차기작을 구상한다. 책상 위로 비스듬히 스며든 가을볕이 바삭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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