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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은상] 모탕

김순경씨 제4회 경북일보문학대전 은상

경북일보 kb@kyongbuk.com 등록일 2017년11월22일 16시44분  
유병수작
땅바닥에 누워 있다. 상처를 움켜쥐고 혼자 뒹군 듯 미동도 없다. 셀 수 없는 도끼질에 정신을 잃었는지 일어날 기력조차 없어 보인다. 상처뿐인 육신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지만 누구 하나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모탕은 나무를 패거나 자를 때 밑에 받쳐 놓는 나무토막이다. 도끼날과 톱날을 보호하고 작업 능률을 높이는 튼튼한 받침대이다. 일단 모탕이 되면 수많은 도끼질을 감내해야 하고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굴레를 벗지 못한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험한 길인지도 모른 채 바닥에 누워 까닭도 없이 살점을 뜯어내는 도끼 세례부터 받는다. 한두 번 몸을 비틀어 피해 보지만 힘이 빠지면 순순히 온 몸을 내어놓는다. 그렇게 될 줄 알았으면 자신을 불태워 재가 되는 장작의 길을 택했을 것이다. 고통의 길인 줄 미리 알았다면 누가 그 길을 따라 갔겠는가.

한 배에서 태어나도 가는 길은 다르다. 좋은 환경 속에서 곧게 자란 나무는 전각의 기둥이 되어 귀한 대접을 받지만, 척박한 땅과 돌 틈에서 비틀거리며 자란 나무는 군불용 장작도 되기 어렵다.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도 환경이 받쳐주지 않으면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가 없다. 단단하고 당차게 하늘을 향해 뻗어가고 싶지만, 바위가 뿌리를 막고 비바람이 가지를 비틀면 목숨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살기위해 어디든 발을 뻗다보니 모양에 신경 쓸 새가 없었다. 겨우 살아남았지만 내세울 것이 없는 모탕이 되었다. 미꾸라지는 용이 될 수 없었고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도 없었다.

모탕은 소나무 밑동이나 구불구불한 밤나무가 제격이다. 비틀어져도 나무토막을 잡아주고 힘차게 내려치는 도끼날이 튀지 않게 감싸주면 된다. 목재도 장작도 될 수 없는 등걸이나 옹이가 많은 나무라도 아무 문제가 없다. 이런 나무가 흔들림도 적고 도끼날의 충격도 잘 받아주어 장작 패기에 편하다. 한번 받침대가 되면 장작을 패지 않는 날이나 눈비가 오는 날에도 땅바닥을 지킨다. 도끼날에 찍힌 몸통이 개미허리처럼 가늘어져도 나무토막을 받아준다.

운명을 피할 수는 없다. 살다 보면 원치 않는 일들이 숙명처럼 다가온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도 있지만, 자신의 몸을 송두리째 내어주는 일이 어디 말처럼 쉬운가. 차마고도의 험난한 길을 가는 당나귀와 콧물마저 받아 마시며 사막을 가야하는 낙타도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니다.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이기에 갈 수밖에 없다. 강제 소집돼 전쟁터에 끌려가는 총알받이 학도병처럼 설사 가다가 죽는다 해도 가야만 할 때가 있다.

장작도 매 맞을 순서를 기다리는 신병처럼 불안하다. 날 선 도끼가 높이 올라가면 그 충격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는 모탕은 두 눈을 감는다. 도끼날이 자신의 등에 꽂힐 때마다 살점이 뜯겨나갔다.

도끼는 나무토막의 혈을 찾아 내려친다. 도끼날이 정확히 맥을 찾아 들어가야 반으로 쪼개진다. 나무에 결이 없으면 잘 쪼개지지 않는다. 결이 선명한 참나무는 도끼날이 닿기만 해도 쫙 갈라지며 떡살 같은 목질을 드러낸다. 장작을 패다보면 결이 분명하지 않은 나무가 더 많다. 비틀어지거나 옹이가 많은 소나무 밑동은 장작을 만들기도 어렵다. 도끼도 모탕도 서로 힘이 든다.

자루를 잡는 것만 봐도 도끼질 수준을 짐작한다. 숙련된 작업자는 가볍게 자루를 잡고 중력을 이용해 내려친다. 복싱선수가 어깨 힘을 빼고 가볍게 툭툭 던지는 잽처럼 최대한 힘을 빼야 도끼날에 가속도가 붙는다. 힘만 믿고 덤비다가는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힐 수도 있다. 어쩌다 나무토막을 맞힌다 해도 장작이 아닌 나무 부스러기를 만들고 모탕을 찍는다.

모탕도 처음부터 고분고분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 몇 번은 몸을 요리조리 피했다. 빗맞은 나무토막이 튀어 오르면 도끼는 땅에 박혔다. 통쾌했다. 어쩌면 이 자리를 모면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아니었다. 바로 꺾쇠나 말뚝으로 땅에 묶였다. 억울함에 몸을 떨었지만, 세월이 적응하게 했다. 도끼날에 찍힌 등이 움푹 파이면 모탕도 나무토막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중학생이 되면서 도낏자루를 잡았다. 겨울방학만 되면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새벽부터 톱질하고 장작을 팼다. 동생들이 일정한 길이로 잘라 주면 나는 장작을 팼다. 도끼질도 힘들지만, 전신 근육을 다 사용하는 톱질도 만만치 않았다. 톱질과 도끼질을 하면서 손가락뼈가 보일 정도로 다친 적도 있다. 상비약이 별로 없던 시절이라 송진을 발라 피를 멈추게 하고 화롯불에 손가락을 쪼이면서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렸다. 추운 겨울 새벽마다 장작을 패는 일은 기를 모아 자신을 단련하는 수련이었다.

장작을 패는 일이 힘든 것만은 아니었다. 등걸과 통나무가 속살을 드러내며 쪼개질 때마다 쾌감을 느꼈다. 맥을 잘 짚어 한 번에 통나무가 쩍 갈라지면 마치 대어를 낚은 것 같이 손맛이 좋았다.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장골이 된 것 같았다.

부모는 언제나 자식을 먼저 생각한다. 때로는 자신의 존재감마저 상실한 채 자식에게 모든 것을 다 내준다. 거센 도끼질을 받아내는 모탕처럼 등이 굽고 뼈마디가 다 닳아도 자신만을 탓한다. 그것이 부모의 삶이다. 아버지가 힘든 것을 아는 아들은 드물다. 설사 안다고 말해도 그저 지나가는 빈말처럼 들린다. 어찌 겪어보지 않고 그 질곡의 세월을 이해한단 말인가. 자신이 부모가 되지 않는 한 그 희생을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장작더미가 높아 갈수록 모탕은 작아져 갔다. 장작가리가 가지런히 쌓여 가면 도끼질 당한 모탕은 숨소리마저 잦아든다. 온몸으로 장작을 만들 때는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문제만 생기면 모든 원망을 감수해야 한다. 도끼날에 가슴이 움푹 파여도 헌신적인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내세우지 않는 부모처럼 장작을 먼저 생각한다.

도끼를 받아낼 힘이 없는 모탕이 마당 한구석에서 조용히 썩어간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의 열기가 하늘 높이 오른다.



▲ 김순경
약력

. 1995년 동아대대학원 공학박사

. 현) 동의과학대학교 자동차과 교수

. 2016년 ‘수필과비평’ 신인상 수상

. 수필과비평작가회의 회원

. 부경수필문인협회 이사

. 부산문인협회 회원

. 수필집 ‘대대리 별곡’(2017)


수상소감

“지나간 시간 속 기억 글로써 하나씩 지워나가겠다”

요즈음 산을 자주 찾는다. 이런저런 이유로 잘 가지 못했던 산들이다. 오르지 못할 것 같았던 산을 천천히 오르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올라 있다. 산 아래 펼쳐지는 경치를 보면 일상에 짓눌려 답답하던 가슴이 탁 트인다. 오늘도 단풍이 절정인 기백산에 갔다 오다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글을 쓰고 싶어 지난해 등단이라는 산을 넘었다. 수십 년간 갇혀있던 공학의 문지방을 넘어 수필이라는 문학의 방에 발을 들여놓았다. 잠자던 기억들을 하나씩 토해 글로 만들었다. 글을 쓰면 마음이 편해지고 출렁이던 가슴이 진정된다. 조각하듯 글을 다듬다 보면 어느새 내가 그 속에 들어가 있다. 어떤 자리에서도 다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정리하고 싶어 시작한 일이다. 기억이 퇴색되기 전에 어설픈 글들을 모아 수필집도 냈다. 그 여진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수상 소감을 쓰게 되니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연극이 끝난 텅 빈 무대 같은 고향 집에 가면 유년시절의 일들이 되살아난다. 열 식구가 넘는 대식구가 살았던 작은 집에서 많은 일이 일어났다. 도저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은 갈등을 시간이 해결하는 것도 보았다. 날마다 전쟁터처럼 북적이며 자신의 위치를 지켜나가던 그곳이 지금의 글밭이 되었다. 지나간 시간 속의 기억을 글로써 하나씩 지워나가고자 한다.

상을 주는 것은 더욱 열심히 하라는 격려와 채찍의 의미라고 여긴다. 내 글의 영역을 넓혀준 분들과 함께 공부하는 부경수필 문우들의 인연이 자랑스럽다. 먼저 박양근 지도교수님께 고마움을 표하고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과 경북일보사에도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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