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류빈씨 제4회 경북일보문학대전 은상

양각은 이기적, 배경을 뒤로 보내면서야 탄신한다. 섬처럼 돋아 홀로 잊혀지지 않으려 모든 양각은 듬성듬성 돋아나 정수리를 밝게 빛낸다고 믿었다. 낮게 깔린 저 먼 것들을 뒤로한 채 우뚝 솟은 솟대가 되어 혈관 같은 몸체로 교신하는. 양각의 묘선描線은 때론 날카로운 고함 힘껏 도드라져 볼록한 마루를 타고 내려오는 곡면마다 사연을 주워 담는다. 양각은 그렇게 거칠게 성난 바다의 높은 파고처럼 가라앉을 일 없을 줄, 하나의 장단이자 음각의 대변인 되어 주저앉을 일 없을 줄 알았다



불쌍한 양각은 홀로 등대가 되어 스스로 정수리가 되길 자처한다. 빛을 발하는 양각은 하나의 광-원이지만 밝게 빛나는 전력은 소진될 날 기다리는 죄수의 애달픔, 양각은 마모되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그의 모질게 용맹한 실선과 함께 막 태어난 새처럼 말랑거리는 주둥이 오물거리는 저 먼 뒤편의 음각들, 케케묵은 둥지에 겹겹으로 쌓아놓고 양각은 몸을 치장하고 밤바다로 나선다. 이기적인 양각은 호흡기관의 말단 책이 들이키는 공기로 먼저 목축이고, 도장의 마찰력으로 선두에 서 용맹하게 지휘한다. 이기적인 양각은, 이기적인 양각은 한 보 앞장선 만큼 고꾸라질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슬하에 헤일 수 없는 것들을 쓸어담고 홀로 이기적인 ………


▲ 최류빈
약력

·1993년생. 전남대학교 생물공학, 시설경영학 4학년.

·시 전문지 <포엠포엠>등단 시인.

·개인 시집 <몇 시간씩 생각하곤 해>, <오렌지 신전> 출간 예정.


수상소감

“수상자 명단에 나의 철학을 오롯이 새김에 책임감 가져”

나는 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 이 세계의 차가운 단면과 민낯을 그대로 탁본했을 뿐이므로, 수상의 영광은 돌아가야 한다. - 「타란튤라」작중 거미처럼 죽는 사내와, 「양각」의 풍파 속 홀로 우뚝 돋은 모든 아버지,「하늘」아래 낮게 깔린 흙을 사는 몇 줌들에게. 시니컬한 세상을 뜨겁게 살아가는 凡人들에게 돌아가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소중한 이름들은 시적 여유가 없으므로 이번에는 내가 대리 수상하기로 한다. 여전히 혀를 타래로 칭칭 감는 거미줄이 느껴졌고 그건 쉽게 해소되지 않는 결박이었다. 허리를 묶인 낱말들은 혁대를 탈주하려 무시로 아우성쳤다. 아직 못다 한 말이 입 속에서 달그락거렸으니 수상은 곧 채찍질이 되겠다.

소중한 상을 젊은 시인에게 선사함을 무한한 영예로 생각한다. 한 평 지면을 나에게 할애함을, 수상자 명단에 나의 철학들을 오롯이 새김에 책임감을 갖는다. 본의 아니게 내가 대신 살게 될 철학들도 있겠다. 못다 한 이야기들이 무의미하게 사장되지 않길 바라는 선의에서라도 그들의 몫까지 깊은 사유를 이어갈 것이다.

여전히 침대는 밤마다 나를 가두고, 닭장 같은 아파트는 꼬끼오- 하고 울었다. 유물처럼 찾아오는 낮과 약속처럼 맞는 밤이 반복되지만 분명, 조금씩 달라지는 게 있었다. 상패를 반으로 갈라 하나를 왈칵 삼킬 것이다. 정인을 기다리는 반쪽은 징표처럼 책상 위에 서서 언제까지고 존재감을 발할 것이다. 갈라진 단면을 바라보며 생각하는 남자가 거미처럼 뒤집어 선다.

나는 진정 이 무거운 상을 다 삼킬 때까지 펜을 놓지 않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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