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선씨 제4회 경북일보문학대전 은상

유병수작
같은 골목을 두 번이나 돌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순전히 향기 때문이었다. 어디서 나는 향기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달큰한 향기가 자꾸 코 끝을 건드렸다. 향기를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삐걱 하며 녹슨 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담쟁이넝쿨로 뒤덮여 있어 설마 이게 문인가 싶은 초록색 대문이었다. 슬쩍 밀자 의외로 쉽게 문이 열렸다. 대문 안으로 들어선 순간 아 하고 낮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사람 키만한 체리 나무가 붉은 열매를 가득 달고 서 있었다. 홀린 듯 다가가 체리 하나를 따서 입에 물었다. 달았다. 허겁지겁 나머지 체리들도 입에 가져가는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거대한 덩치의 남자가 서 있었다. 엉겁결에 굵은 씨를 삼키며 물었다.

여기 다다네 집 아닌가요?

아. 짧게 감탄사를 내뱉은 남자가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맞다는 건지 틀리다는 건지 알 수 없는 행동이었다.

다다 외에 다른 동거인이 있는 줄 몰랐던 나는 조금 당황했다. 하지만 갈 데가 없었으므로 태연한 척 굴었다. 뻔뻔하게 굴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집 안으로 들어가 빈 방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버스 정류장에서부터 걸어온 터라 몹시 발이 아팠다. 화장실에 들어가 손발을 닦고 오줌을 눴다. 거실로 나왔지만 남자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오래되고 낡은 단독주택이었다. 깨끗한 물건이라고는 텔레비전과 각종 게임기뿐 벽지와 장판엔 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었고 문 손잡이에는 붉은 녹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수도관에서는 맑은 물이 흘러 나왔고, 화장실의 변기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오물을 내보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나쁘지 않다는 건 좋다는 뜻이었다. 나쁘지 않은 것 이상의 최상급은 생각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먹고 다닐 수는 있었지만 자고 다니는 건 쉽지 않았다. 옥탑방과 지층 방들을 오가며 집 구석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곳에서만 살았다. 모두 너무한 방들이었다. 창문이 없는데도 추웠고 가장 높은 곳에 사는 데도 위험했다. 머리통을 박살 낼 듯한 옥탑방의 더위에 질려 지층으로 간다. 더위는 피할 수 있지만 곰팡이와 바퀴벌레에 시달린다. 운이 나쁘면 집 안으로 물이 들어와 그나마 있던 가구와 가전제품도 못 쓰게 된다. 다시 옥탑방으로 간다. 기록적인 한파가 몰려와 보일러가 동파된다. 한달 치 집세를 수리비로 낸다. 가스비를 아끼려고 전기매트 하나로 버텼지만 나의 최선은 늘 최악으로 끝나곤 했다.

뒤늦게 나타난 다다는 의아한 얼굴로 여긴 어떻게 왔냐고 물었다. 갈 데가 없으면 자기 집에 오라고 한 말은 기억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다다가 왜라고 묻지 않고 어떻게 라고 물어 준 걸 고맙게 생각했다. 눈치 없는 사람처럼 무거운 짐을 들고 몇 시간 동안 낯선 동네를 헤맸다며 큰 소리로 떠들었다. 그러나 집은 다다의 것이 아니었다. 무라고 불리는 거대한 덩치를 가진 남자의 집이었고 다다 역시 얹혀사는 동거인에 불과했지만 무는 나의 출현에 별 말이 없었다. 이런 일에 익숙하다는 듯한 태도였다. 어쨌든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저 사람이 집주인이야?

어.

네 친구야?

내 질문에 다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구매자.

다다와 무는 오픈 마켓에서 가정용 게임기를 사고팔기 위해 처음 만났다고 했다. 비가 오는 날 다다는 헬멧을 쓰고 나타났다. 무가 헬멧 속 다다의 눈동자를 찾으며 물었다. 비 오는데 오토바이 타고 왔어요? 아니요. 버스 타고 왔는데요. 근데 헬멧은 왜요? 다다가 별 이상한 걸 묻는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프잖아요. 얼굴이 비에 맞으면. 그때, 무는 다다가 또라이 라는 것을 직감했다. 다다 역시 무가 꼴통이라는 것을 금세 알게 되는데 처음 본 자신에게 집에 가자고 했기 때문이다. 게임기가 잘 되는지 확인해보고 돈을 주겠다고 한 것이다. 다다는 무의 집으로 가서 함께 게임을 했고 손쉽게 무를 이겼다. 무는 한 판만 더 하자고 했다. 다시 다다가 이겼다. 게임기는 아무 고장 없이 잘 됐지만 무는 미션을 컴플리트 하기 전에는 절대로 돈을 줄 수 없다고 했다. 다다는 승부욕에 불타는 이 거대한 덩치를 총으로 쏴 죽이기 전에는 집에 갈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다다는 무의 시한부 동거인인 셈이었다.

다음 날, 나는 배가 고파 일찍 잠에서 깼다. 거실에는 다다와 무가 TV를 켜놓은 채 잠들어 있었다. 밤새도록 게임을 했는지 화면에는 게임 오버 로고가 떠 있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먹을 것은 많지 않았다. 남아 있는 김치와 달걀을 꺼내 김치찌개와 달걀찜을 만들었다. 밥이 다 될 때쯤 다다와 무가 일어났고 함께 밥을 먹었다. 이상한 허기가 온몸을 감싸고돌았다. 허기는 비단 나만의 감정은 아니어서 다다와 무 역시 허겁지겁 밥을 먹어댔다. 냄비 바닥에 시커멓게 붙은 달걀도 서로 먹겠다고 숟가락을 부딪쳤다. 그때 생각했다. 생각보다 이 집에서 오래 살겠구나. 무의 집은 동네 전체가 재건축이 예정된 곳이었다. 낡고 노쇠해 비가 오면 물이 샜고 아무리 약을 뿌려도 노래기와 개미, 바퀴벌레가 기어 나왔다. 귀신을 본 적도 있다는 무의 말에 나와 다다는 과연 그렇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무의 집에는 아주 큰 정원이 있었다. 정원에는 체리나무 외에 감나무와 벚나무, 목련과 라일락, 들장미와 개나리, 아카시아와 찔레꽃 등 종류를 헤아릴 수 없는 나무와 꽃들이 두서없이 심어져 있었다. 따로 물을 주거나 비료를 챙겨 주지 않는데도 나무와 꽃들은 끊임없이 자라고 피어났다. 자고 일어나면 어디서 날아와 뿌리를 내렸는지 알 수 없는 식물들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민들레와 토끼풀 사이로 난데없이 상추와 쑥갓이 자랐고 마룻바닥에서 버섯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함부로 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곳이었다. 함부로, 함부로 그리고 아무렇게나. 정원에 있는 식물들은 심었다기보다는 쑤셔 박았다고 해야 할 정도로 공격적이고 야만스러운 데가 있었다. 잘 정돈된 아름다운 정원을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분명 상처를 받을 터였다. 우리는 무의 정원을 미친년 꽃다발이라고 불렀다. 곧 허물어질 집에 미친 듯이 피어나는 나무와 꽃이라니. 그것은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풍경이었다. 곧 허물어질 집에 나무와 꽃이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도대체 이렇게 큰 정원이 어떻게 만들어진 거지? 무는 모른다고 했다. 아버지도 모른다고 했으니 아마 할아버지도 몰랐을 거라고 답했다.

무의 정원에서 늘 우리 셋이었다.

가끔 다다나 무가 다른 여자를 데려오긴 했지만 며칠을 못 버티고 나가 버렸다. 그나마 가장 오래 있었던 여자애가 다다가 데려온 단발머리였다. 스무 살이라고 했지만 누가 봐도 십대 가출 소녀였던 단발머리는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면서도 그것을 숨길 줄 아는 아이였다. 시장을 보거나 산책하러 나갈 때면 언니 하며 팔짱을 꼈고 떡볶이를 해주면 맛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단발머리는 윤기 나는 검은 피부에 풍만한 몸매를 갖고 있었지만 그 나이 때의 아이들이 그렇듯 자신이 예쁜 줄 몰랐다. 늘 자신이 뚱뚱하고 못생겼다고 투덜댔다. 남쪽 지방의 사투리를 숨기려고 일부러 느리게 얘기했지만 화가 나면 특유의 드센 억양이 튀어 나왔다. 나와 다다는 일부러 단발머리를 자극하기도 했다.

단발머리는 두 달을 못 채우고 집을 나갔다.

여기 있으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어요. 꼭 뭐에 홀린 것처럼 그냥 어떻게 되겠지, 될 대로 되라 생각하게 돼요. 전 그게 무서워요.

문을 나서기 전, 단발머리는 다시 한 번 나를 쳐다봤다.

웬만하면 셋이 있지 마세요.

단발머리는 처음으로 내게 진심을 얘기했고 난 처음으로 단발머리를 이해했다. 단발머리는 무서웠을 것이다. 잉여의 삶에 한 번 빠지면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기 힘들어진다. 일하지 않는 것에 몸이 최적화되어 아홉 시부터 여섯 시까지 일하는 평범한 삶을 거부하게 된다. 유령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하릴없이 밤에 깨어 돌아다니고, 이른 아침엔 절대 일어날 수 없다. 그리고 어쩌다, 원하지 않을 때만, 남의 눈에 띈다.

무의 집은 숨은그림찾기처럼 골목 깊은 곳에 숨어 있었다. 집은 낡아도 대문 만큼은 멀쩡한 다른 집들과 달리 무의 집 대문은 화장실이나 창고처럼 보일 정도로 작고 볼품없었다. 처음부터 정원을 만들 생각이었고 남은 자리에 집을 욱여넣은 모양새였다. 게다가 각종 넝쿨 식물들이 문을 감싸고 있어 어쩌다 음식을 주문하면 도대체 문이 어디냐는 배달원들의 짜증 섞인 질문을 받아야 했다. 무는 매일 아침, 문을 감싸고 있는 식물들의 줄기와 뿌리를 칼로 쳐냈다. 일주일만 방치해도 문은 각종 넝쿨 식물들에 갇혀 사라졌다. 혹시 정원을 만든 사람은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은폐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무의 집은 안에서는 밖이 보이지 않고,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은 우리를 백수, 잉여, 쓰레기라고 불렀다. 맞는 말이었다. 셋 중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진 이가 없으므로 백수였고, 그러면서도 먹고 살았으므로 잉여였으며, 남자 둘에 여자 한 명이 붙어먹고 지냈으므로 쓰레기였다. 무는 재건축 회의나 총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담배나 술을 사러 가면 미성년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신분증을 요구했다. 무의 집은 일종의 혐오 시설이었다. 사람들은 우리를 만나면 불가촉천민이라도 보듯 얼굴을 찌푸렸다.

나도 알고 있었다. 방황이라고 하기에는 이십 대를 훌쩍 넘긴 나이가 염치 없었다. 내겐 흔한 암 보험이나 적금 통장 하나 없었고 국민연금 가입 안내서는 오는 족족 찢어 버렸다. 반려동물은 돈이 없어 키우지 못했고 식물은 귀찮아서 키우지 못했다. 그건 다다나 무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다다나 무도 하지 않았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다다나 무 역시 못했으므로 우린 서로에게 최악의 동거인이었다. 언제부턴가 드라마를 보지 않게 됐다. 가난한 여자인데도 매일 옷을 갈아입고 피부는 윤기가 흘렀다. 더 참을 수 없었던 건 그녀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생기였다.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해피엔딩을 의심하지 않는 자신만만한 태도가 어이없었다. 빌어먹을 가짜의 세계. 역겨운 판타지. 나는 가난과 역경 속에서도 행복과 사랑을 쟁취하는 그녀들이 싫었다. 대역 없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해도 통장에는 맹랑한 숫자들만 찍혔다. 뭔가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드라마를 보지 않는 것뿐이었다.

최저임금의 삶을 살고 있으므로 함부로 욕망을 갖지 않아야 했다. 직장, 집, 자동차, 해외여행, 결혼, 아이 같은 것들. 아예 처음부터 원하는 것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간신히라도 살아갈 수 있다. 산다기보다는 그저 삶 위에 둥둥 떠 있는, 그러다 떨어지면 어 떨어지네 뭐 이런. 그것은 당기세요 라는 글귀를 보고도 문을 밀어대는 멍청한 무의식 같은 것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직업과 결혼. 단 두 가지를 포기했을 뿐인데 정상적인 삶에서 너무 쉽게 밀려났다. 우습게도 루저 공동체인 우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여름이 시작되면서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한낮의 더위는 무의 집을 흠뻑 달구었다. 에어컨도 없는 집에서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은 정원밖에 없었다. 돗자리를 깔고 나무 그늘 밑에서 하루종일 누워 지냈다. 짙고 푸르게, 녹색으로. 모든 것들이 기세등등하게 자라나는 무의 정원에서 우리는 더위와 상관없는 무기력증에 시달렸다. 외출도 하지 않은 채 하릴없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고양이가 담장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봤다. 매미와 각종 여름 벌레들이 내는 소리 때문에 집 밖의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빛을 피해 시계 방향으로 돌다가 해가 담장 너머로 사라지면 식은 보리차 같은 집으로 들어갔다.

웬만하면 일을 하지 않았기에 우리는 먹는 것 외에는 돈을 쓰지 않았다. 낡고 오래된 옷들을 빈티지라며 입고 다녔고 벼룩시장이나 헌옷 가게를 돌며 유행과 상관없는 옷들을 사 입었다. 다다는 이발 비용을 줄이기 위해 머리를 길렀고 무는 아예 머리를 밀어 버렸다.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를 무명의 인디 밴드나 펑크록 밴드로 알았다. 그림을 그리거나 대단한 일을 하는 예술 집단으로 보는 사람도 있었다. 우린 그냥 웃었다. 가끔 무가 클럽 손님이 두고 갔다며 옷이나 가방, 구두를 갖다 주었다. 나는 그중 가장 멀쩡한 것들을 걸치고 백화점이나 고급 부티크 숍에 들어가 직원들이 면장갑을 끼고 조심스럽게 꺼내주는 옷과 신발을 실컷 입어본 뒤 그냥 나왔다.

어쩔 수 없이 돈이 필요하면 잠시 아르바이트를 했다. 주로 비정규직, 단기 혹은 주말 아르바이트만 하고 나머지 시간들은 잠을 자거나 TV를 보거나 게임을 했다. 어떨 때는 하루 종일 영화 하나만 갖고 시간을 보낼 때도 있었다. 밥을 먹다가 혹은 텔레비전을 보다가 입이 쉬고 있는 누군가가 갑자기 문제를 낸다.

전설의 락그룹. 존재감이 없던 그룹 내 삼인자. 애인을 절친에게 빼앗김.

여기까지 말하면 누군가의 입에서 정답이 나온다.

정답. 비틀즈. 조지 해리슨.

맞지만 이 문제의 정답은 아냐. 그가 나오는 네 시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 정답 맞힌 사람은 삼일 동안 설거지 면제.

하드 데잇 나이트.

땡.

옐로 서브마린.

땡. 네 시간짜리라니깐. 픽션이 아니고 다큐라고.

모르겠어. 다음 힌트.

마틴 스코세이지가 연출했고, 조지 해리슨의 음반 제목과 같아.

정답을 맞히면 영화에 대해 떠든다. 영화가 재미있나, 재미없나에 대해 얘기하고 재미없다고 의견이 모아지면 왜 재미가 없었나 이야기한다. 캐릭터의 진부함과 씬과 씬의 개연성, 뚝뚝 끊어지는 편집, 리얼함을 떨어트리는 연기자의 오버액션, 그것을 막지 못한 감독의 재능 부재. 여기에 코믹이든 공포든 상관없이 늘 뭔가 사연을 넣으려는 한국영화의 고질병과 급박한 상황에서도 뜬금없는 유머를 날리는 할리우드 영화의 나쁜 습관 등에 대해 떠들다 보면 어느새 새벽이 되곤 했다. 무와 다다는 웬만한 영화평론가들보다 영화를 보는 눈이 정확했다. 그건 장물아비가 가짜 금과 진짜 금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재능 같은 것이었다. 이런 재능으로 시나리오를 쓰거나 하다못해 블로그를 만들어 유명해질 수도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정해진 시간에 글을 써서 올리고 댓글에 일일이 답을 달아주는 일은 다다와 무로서는 절대 할 수 없는 귀찮은 일이었다. 다다는 귀찮은 걸 세상에서 가장 싫어했다. 어린 시절 ADHD를 앓았을 게 분명한 다다는 주변 사람을 괴롭히면서 혼자 태평한 성격을 갖고 있었다. 나는 다다의 그런 면을 몹시 싫어해 자주 싸웠다. 한 번은 서로에게 물건을 집어 던지며 싸운 적도 있다. 내가 던진 리모컨에 이마를 맞은 다다는 한동안 머리를 내리고 다녀야 했다. 다다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설거지 그릇들을 아무 데나 쌓아두는 버릇이 있었다. 말라붙은 밥풀들 때문에 설거지를 할 때마다 짜증이 났다. 세탁기에 물을 넣지 않고 빨래를 하는 것과 같다고, 제발 개수대 물에 담가두라고 해도 그때 뿐. 주방 곳곳에는 다다가 아무렇게나 던져 넣은 그릇과 냄비들로 가득했다. 결국 나는 폭발했고 다다는 어이없어했다. 나는 다다의 반응에 더욱 화가 났다. 그때 떠날 결심을 했고 실제로도 짐을 쌌지만 내가 집을 나온 건 한참 뒤였다.

다다의 귀에 불개미라도 넣어버릴까 고민하던 어느 날 무가 말했다. 너 다다가 예전에 연예인이었던 거 알아? 나는 코웃음을 치며 다다가 그런 뻥을 쳤냐고 물었다. 무가 다다 몰래 오래된 시디 한 장을 들고 왔다. 표지에는 빨간 머리를 한 다다가 이상한 포즈를 한 채 서 있었다. 다다는 십 년 전 앨범 하나만 내고 사라진 보이 그룹의 래퍼였다. 노래 중 다다가 맡은 부분은 고작 십 초에 불과했다.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다다한테는 얘기하지 마. 우리가 알고 있는 거 알면 죽일지도 몰라. 나는 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다다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몰락한 강남 귀족 출신인 다다는 출신 성분을 떠벌리며 허세를 떠는 쪽은 아니었다. 하지만 늘 불평불만이 많아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아 요즘 인간들은 왜 이렇게 쓸 데 없는 걸 많이 만드냐. 짜증나 죽겠네. 스마트 폰도 봐. 이 많은 어플 중에 실제로 쓰는 게 몇 개나 돼? 진짜도 아닌 것들이. 티브이 켜 봐라. 이건 저거 보고 베낀 거고 저건 이거 보고 베낀 거고. 아주 쌩 난리도 아니다.

다다는 또 어떤 미친놈이 필요하지도 않은 걸 만들어 혁신이니 디퍼런트니 떠들지 짜증 난다고 했다. 그저 돈을 벌려고 한 일을 대단한 일인 양 추켜세운다며 그렇게 따지면 소맥을 만든 사람에게도 상을 줘야 한다고 비난했다. 다다는 애초부터 터부가 없는 아이였다. 그래서 이렇게 되었다는 식의 서사나 인과가 다다에겐 없었다. 왜? 왜 그런 말을 하면 안 돼. 왜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돼. 왜 안 돼? 다다의 질문에 대답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처음부터 답을 요구하고 한 질문이 아니었다. 다다가 무와 오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무가 그럼 그러든지의 태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짜장면 시켜 먹을래? 그래. 아니다. 피자 먹자. 그러든가. 누구에게나 있는 취향이나 기호가 무에게는 없었다. 싫어하는 게 있다면 손가락을 꼬이게 만드는 글자 정도였다.

너 컴퓨터에서 워드 칠 때 이 글자 정말 치기 싫다. 그런 거 없어?

글쎄. 뭐. 어려운 영어 단어? 왜?

난 폐쇄라는 단어를 칠 때마다 미치겠어. 일단 ㅍ 다음에 ㅐ를 써야 하나 ㅖ를 써야 하나 헷갈리고. 겨우 생각났다 싶으면 시프트 키 누르느라 손이 엉켜. 거기에 바로 또 쇄가 나오잖아. ㅅ 다음에 ㅔ 인가, ㅐ 인가 또 헷갈리는 거야. 두 개의 글자가 나란히 붙어서 날 미치게 하는 거야. 근데 폐쇄라는 단어를 대체할 만한 게 생각 안 나. 단절, 닫힘, 배타적 뭐 그런 건데. 그렇게 쓰면 또 이상하거든.

나는 폐쇄와 비슷한 말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물었다.

폐쇄를 대체할 말이 생각나면 꼭 얘기해 줄게. 근데 넌 나한테 뭐 해줄래?

뭐 갖고 싶은데?

음. 정원?

좋아. 딜!

고등학교 때부터 학교를 가지 않았다는 무는 강남의 클럽에서 이른바 기도를 했다. 술에 취해 주사를 부리거나, 여자들에게 성추행을 하거나, 반대로 갑자기 스트립을 하려는 여자들을 들어 문 밖에 내다버리는 것이 무의 일이었다. 일은 어렵지도 않았고 무는 이 일을 꽤 잘 해냈다. 무가 거대한 덩치를 이끌고 다가오면 사람들은 알아서 걸어 나갔다. 사대 보험은 물론 명절에 보너스까지 주는 좋은 직장이었지만 무는 오래 일하지 못했다. 시끄러운 걸 견딜 수 없다고 했다. 음악 소리와 사람들의 환호 소리, 조명들을 견딜 수가 없다고. 아물도 모두 모두 가짜 같다고 했다.

가끔 무는 방안에 틀어박혀 본드를 불었다. 문을 닫아걸고 이틀이든 삼일이든 문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다다는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무의 생리 기간이라고 했다. 무는 아주 부끄러워했다.

왠지 견딜 수 없을 때가 있어. 그냥 사는 게 쪽 팔려. 그럴 때 본드를 찾게 돼. 쪽 팔리지만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무가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방문을 꼭 닫아 주는 것 밖에는.


난 늘 마른안주나 과일만 먹었어요. 여기 사장님 인정 많고 친절하지만 음식 솜씨는 형편없거든요. 그래도 이곳만큼 조용하고 편한 술집이 없어 자주 드나들었죠. 우연히 당신이 만든 알탕을 먹어 봤어요. 정말, 맛있었어요. 일부러 당신이 아르바이트하러 오는 날만 와서 이것저것 시켜 먹었어요. 농담 아니니까 잘 들어 주세요. 당신과 진지하게 만나고 싶고 결혼하고 싶어요. 결혼하면 생활비 외에 별도의 용돈도 줄 거고 연금이나 보험도 들어줄 거예요. 전 특별한 사람은 아니에요. 특별히 행복하게 만들어 줄 자신은 없지만 특별히 불행하게 만들지도 않을 거예요.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만은 약속할 수 있어요. 나와 함께 있는 한 당신은 안전해요. 그리고.

갑작스러운 침묵에 고개를 들어 남자를 쳐다봤다.

그 남자는 당신에게 위험해요.

남자가 말한 사람이 무인지 다다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남자가 정확하게 나의 불안과 두려움을 간파했다는 것 그리고 내 불안을 이용해 청혼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남자는 늘 혼자 와서 맥주 세 병과 안주 두 개를 시켰다. 추파를 던지거나 술에 취해 주사를 부리는 일도 없었고, 외제 차 로고가 박힌 차 열쇠를 내보이며 허세를 부리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앉아 있다가 잘 먹었다고 인사한 후 이삼일 뒤에 다시 나타났다. 소리 내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줄 아는 남자였다.

퇴직금이나 노년 연금, 평생을 함께할 반려자와 나를 빼다 박은 자식들. 이런 것들을 포기하고 나는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며 아무와 만나고 헤어질 자유를 얻었다. 하지만 가끔 불안했다. 이렇게. 정말 그냥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혼자 살다가 키우던 고양이나 개에게 뜯어 먹힌 시체로 발견되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다만 때때로 남들과 다르게 살고 있다는 게 두려웠다. 다다와 무 그리고 나는 바깥 세상과 분리된 곳에서 살고 있었다. 늘 우리 셋뿐이었다. 만약 남들처럼 살고 싶어졌을 때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내겐 다다와 무밖에 없는데. 남자가 주고 간 명함을 쳐다봤다. 금박 무늬가 수놓아진 남자의 명함은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빈 가게와 집들이 늘어났다. 관리 처분이 시작되면서 매출이 떨어진 상가 세입자들이 먼저 이사를 나갔고 뒤이어 주택 세입자들도 하나둘씩 동네를 떠나기 시작했다. 치킨집과 분식집, 미용실과 슈퍼 그리고 보습 학원들이 문을 닫았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집에서 홀로 남은 집주인들만이 피로한 시간들을 견디고 있었다. 삼삼오오 모이면 언제쯤 이주비가 나올 것인지, 어디로 이사 가야 하는지 한탄하다 조합장 새끼는 돈만 처먹고 뭐하는지 모르겠다는 성토로 끝났다.

우리는 이삿짐을 가득 안고 사라지는 사람들을 바라보다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내년 봄, 재건축이 시작되면 우리도 어딘가로 가야 했다. 하지만 그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다. 곧 세 번째 겨울이 올 것이다. 나는 여름이 가는 것을 몹시 두려워하고 있었다. 진심으로 겨울이 오는 것이 두려웠다. 무의 집은 혹독하리만치 추웠다. 마룻바닥에는 하얀 서리가 내렸고 낡은 창문에선 쉴 새 없이 바람이 들어왔다. 단순히 생래적인 추위가 아니었다. 조그만 난로 옆에 앉아 불을 쬐고 있는 무와 다다를 보고 있으면 세상 끝에 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빙하기가 찾아온 지구. 모든 것이 얼어붙은 세상에서 유일한 생존자는 우리 셋뿐이다. 하지만 우린 영웅이 아닌데 어떻게 지구를 구하지? 아아 그렇군. 지구는 멸망할 운명인 거야. 무의 정원은 생기로 가득한 여름과 달리 살기가 돋을 정도로 무서운 공간으로 변해 버렸다.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정원은 수시로 나를 공격했다. 쇠꼬챙이가 된 나뭇가지가 얼굴을 할퀴고 빙판이 된 바닥에 넘어져 무릎이 깨졌다. 밤마다 나뭇가지가 유리창에 부딪히며 기이한 소리를 냈다. 이상한 소리가 들려 밖으로 나가면 정원은 어둠 속에서 그저 고요할 뿐이었다.

모든 것이 얼어붙은 정원 옆에서 우리 셋은 겨우 살아갔다. 무의 집은 외풍이 심하고 난방이 잘 되지 않아 방 안에서도 입김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전기 매트와 난로만으로 겨울을 버텨야 했다. 물이 얼까 두려워 개수대와 화장실의 물을 하루종일 틀어 놓았다. 물 떨어지는 소리에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머릿속으로 밤새도록 차가운 물이 흘렀다. 차가운 물 속에 잠겨 천천히 몸이 얼어갔다. 내일은 반드시 이 집을 떠날 거야. 나는 매일 밤 중얼거리며 잠들었다.


쓰레기를 버리러 간 다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는 쓰레기 처리 비용을 줄이기 위해 근처 상가 화장실에 몰래 쓰레기를 버리곤 했다. 혹시 경비 아저씨한테 걸린 것일까. 휴대폰으로 전화 하니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가기 전에야 겨우 전화를 받았다.

왜 안 들어와?

사람이…… 떨어졌어.

누가?

있잖아. 꽃 할머니.

꽃 할머니는 이 동네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한 치매 노인이었다. 가족도 없이 혼자 사는 꽃 할머니는 늘 꽃을 따먹고 다녔다. 동네 사람들이 먹을 것을 갖다 줘도 먹지 않고 억지로 먹이려고 하면 발작을 했다. 오직 꽃을, 꽃만을 먹었다. 나는 꽃 할머니를 발견할 때마다 걸음을 멈추고 한참 동안 쳐다봤다. 꽃 할머니는 공손하게 두 손을 내밀어 꽃잎을 딴 후 천천히 입으로 가져가 오랫동안 씹었다. 마치 신께 제를 올리는 사제처럼 고요하고 엄숙한 모습이었다. 꽃 할머니에게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만이 가진 확고함이 있었다. 그것은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꽃 할머니만의 의식이었다. 밥을 먹지 않아 쇠꼬챙이처럼 마른 몸으로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꽃을 뜯어 먹던 꽃 할머니는 자주 무의 집을 찾아왔다. 정원에서 낮잠을 자다가 선득한 느낌이 들어 일어나 보면 꽃 할머니가 서 있었다. 필시 정원의 꽃들이 탐났으리라. 그러나 꽃 할머니는 절대 무의 정원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한 번도 무의 정원에 피어 있는 꽃들을 먹으려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이쪽을, 나인지 무인지 다다인지 모를 곳을 노려보다가 결연한 태도로 등을 돌려 사라졌다. 사람들은 여름이 끝나면 꽃 할머니가 뜯어 먹을 꽃이 없어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철거 작업이 시작되기 전에 시설이나 보호소에 보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꽃 할머니는 굶어 죽지 않았다. 그저 꽃잎처럼 떨어졌을 뿐이다. 아무도 보지 못한 찰나의 속도였다.

꽃 할머니가 떨어진 뒤, 다다는 상가 주변으로는 가지 않으려 했다. 어쩔 수 없이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내 차지가 되었다. 다행히 빈 집들이 많아져 몰래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동네를 떠나면서 많은 집들이 필요 없어진 것들을 버렸고, 버리는 것은 이 골목의 트렌드가 되어 병든 반려동물과 치매 노인을 버리고 가기도 했다. 유기견과 길고양이가 많아지면서 노란 조끼를 입은 동물보호단체 사람들과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업자들이 함께 나타났다. 그들은 어쩌다 서로를 발견해도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듯 못 본 척 외면했고 각자의 영역에서만 활동했다. 구조 되거나 잡혀가거나. 버려진 반려동물들의 운명은 같을 터였다. 동물보호센터에 들어가더라도 새로운 보호자를 찾지 못하면 안락사 될 테니까. 나는 거리를 헤매는 것 중 어떤 것과도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했다.

여름이 깊어지면서 하루는 귀뚜라미가, 하루는 매미가 또 하루는 둘 다 울었다. 나무들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꽃들을 떨어내고 열매들을 피워냈다. 열매를 맺어 휘어지는 나무가 있는가 하면 이제 막 꽃을 피워내는 나무가 있었다. 나무들은 각기 다른 계절과 시간을 살았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체리가 땅바닥에 떨어져 조용히 썩어 갔다.

집과 가까운 대학에서 축제가 열렸다. 새벽까지 음악 소리가 들려 쉽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우리는 슬리퍼를 꿰어 신고 축제가 열리는 대학 캠퍼스로 향했다. 운동장 가득 술과 음식을 파는 주점들로 가득했다. 무대 한가운데에 아이돌 그룹이 등장하자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사람들이 무대로 달려갔다. 스모그 연기와 함께 무대 위로 폭죽이 터졌다. 사람들이 와 하며 소리를 질렀다. 운동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 모두 행복해 보였다. 폭죽 때문에 눈이 매웠다. 눈물이 나왔다. 시시해. 우리 중 누군가가 말했고 누군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담배 한 대를 나눠 피운 뒤 집으로 돌아와 누웠다. 자꾸 눈물이 났다.

불면에 시달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밤마다 정원으로 나가 바닥에 떨어진 매미들을 발뒤꿈치로 짓이겼다. 몽유병 환자처럼 밤새도록 무의 정원을 맴돌았다. 나무들 사이에 벌거벗은 몸으로 잠들어 있는 나를 다다나 무가 들어 방으로 옮기는 일이 많아겼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다리에 벌겋게 풀독이 올라와 있었다. 나는 붉은 다리를 하고 밤마다 무의 정원을 쏘다녔다. 다다는 참지 못하고 화를 냈다. 아. 씨발. 여기서 살기 싫으면 나가. 너 때문에 우리까지 좆 같아지잖아.

결국 입추가 시작되던 밤, 나는 무의 정원을 불 태웠다.

담뱃불 때문이었다. 잠결에 담뱃불을 제대로 끄지 못했고, 담뱃불은 마른 낙엽들을 모두 태운 후 나무들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다다와 무가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몇 시간 뒤, 무의 정원은 검은 얼룩만 남긴 채 세상에서 사라졌다.

검은 얼룩은 외계인이 남긴 메시지 같았다. 아무도 해독할 수 없고 지울 수도 없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집 청소를 시작했다. 창틀에 시커멓게 낀 먼지와 얼룩을 제거하고 화장실의 물때와 곰팡이도 닦아냈다. 베란다 바닥을 청소하고 벽에 달라붙은 먼지와 거미줄도 거둬냈다. 청소를 끝낸 뒤 샤워를 하고 거실에 누워 낮잠을 잤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은 깊은 잠이었다. 깨어나 보니 낮잠이라고 하기에는 긴 시간이 지나 있었다. 다다와 무를 찾았다.

맥주나 마시러 가자. 내가 살게.

내 말에 다다와 무가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다가 일어섰다.

호프집에서 우리는 자리가 없어 합석한 사람들처럼 데면데면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다다는 프리미어 리그 축구 중계를 보고 있었고 무는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었다. 나는 호프집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불렀다. 서머 타임. 세상은 고요하구나. 물고기는 날아오르고 목화 솜은 익어간다. 아빠는 부자고 엄마는 아름다우니. 아가. 아무 걱정하지 말고 잠들어라.

노래가 끝난 뒤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밖으로 나갔다. 손을 번쩍 들어 택시를 탔다. 택시는 빠르게 도심을 벗어나 외곽으로 빠졌다. 고속도로로 들어서자 안전 벨트를 하고 남자의 명함을 꺼냈다. 남자의 명함은 어둠 속에서도 밝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창문을 내렸다. 어디선가 하얀 꽃잎들이 날아왔다. 첫눈이었다. 손을 내밀어 떨어지는 눈송이들을 손바닥에 담았다. 차가운 눈송이를 천천히 입으로 가져갔다. 달았다.


▲ 임기선
약력

·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 현재 사보 전문 에디터로 활동 중


수상소감

“제가 본 것들을 글로 전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만화책을 보며 공상을 즐겨 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림을 잘 그렸다면 만화가가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어린 시절 공상이 소설로 이어졌는지 어느 순간부터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글을 잘 쓴다는 소리도 듣지 못했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작가가 되라는 말도 듣지 못했는데도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생각해 본 적은 있습니다. 왜 나는 잘 쓰지도 못하는 글을 쓰려는 걸까.

글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잘 쓰지 못했고 잘할 자신도 없었습니다. 때때로 그냥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로 남는 게 인생을 조금 편하게(?) 사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실제로 전혀 글을 쓰지 않고 살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았고 편하지도 않았습니다.

오늘, 글쓰기를 멈추지 않은 제 자신을 조금 대견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하나 밖에 없는 딸 자식이 책상 앞에 하루종일 앉아 있어도 뭘 하냐고 물은 적이 없습니다.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그저 저를 사랑하셨습니다. 소설이란 아마도 그런 게 아닐까 감히 생각해봅니다. 이 상을 계기로 부모님께 제가 뭘 하는 사람인지, 뭘 하려는 사람인지 알려 드릴 수 있어 기쁩니다.

따뜻한 손을 내밀어주신 심사위원님들과 경북일보 문학대전에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 상을 계기로 더 높이, 더 멀리 날아가겠습니다. 제가 본 것들을 글로 전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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