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림문화재연구원, 하양읍에서 목관묘 나와···부채 3점 발견은 최초
치아·두개골 등 인골 남아 있어···중국제 청동거울·동검 등 출토

▲ 목관묘 6호 유물노출 후 전경. 성림문화재연구원 제공
경산시 하양읍 무학지구 택지개발사업부지(하양읍 양지리 207번지 일원)에서 약 2천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수장급 목관묘(木棺墓·나무널무덤)가 발견됐다.

(재)성림문화재연구원(원장 박광열)이 지난 3월부터 시굴 및 표본조사에 착수해 5월부터 발굴조사를 진행한 이 택지개발사업부지(전체 면적 48만1천630㎡) 내 유적의 원삼국 시대 목관묘에서 청동검, 철검, 청동거울, 청동마(靑銅馬), 부채, 동과, 재갈 등의 중요 유물 외에도 인골과 통나무 목관이 확인됐다.

발굴조사 구역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주거지 50여기와 환호, 초기철기 시대의 옹관묘와 함정유구, 원삼국 시대의 목관묘, 고려~조선 시대의 기와가마·도로·우물·삼가마 등 다양한 시대의 유구에서 5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12개소의 발굴조사 구역 가운데 조사 Ⅱ-⑤구역의 구릉 말단부에서 목관묘 6기가 확인됐으며 이 가운데 5호와 6호 목관묘에서 점토대토기, 타날문단경호(두들겨 새긴 무늬가 있는 짧은 목항아리), 조합식우각형파수부호, 주머니호, 판상철부 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청동제 유물이 출토됐다.
▲ 목관묘 5호 유물노출후 전경. 성림문화재연구원 제공

목관묘 5호는 구덩이를 2단으로 파고 구덩이 안에 통나무 목관을 안치한 다음, 단이 지는 지점에 3개의 횡목(橫木)을 걸치고 나무뚜껑을 덮은 구조로 나무뚜껑 위에는 30㎝ 안팎의 강돌을 한 겹 깔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목관의 규모는 길이 252㎝, 너비 64㎝이다.

유물은 목관의 북단벽 쪽에서 판상철부, 목관과 묘광 사이에서 철모·재갈이 출토됐다. 또 목관의 내부에서는 판상철부와 검파두식 외에도 피장자의 다리뼈가 확인됐다.

목관묘 6호는 해발 64m 선상의 충적지에 입지한다. 묘광의 규모는 길이 311cm, 너비 147, 깊이 82cm이고, 목관의 규모는 길이 260cm, 너비 102cm 정도이다. 목관은 통나무(참나무)의 속을 파고 목관의 마구리는 판재를 끼워 마감한 형태이다. 피장자의 머리는 두개골과 치골, 고관절의 출토 위치로 볼 때 동쪽을 향해 있다.
▲ 목관묘 6호 소명경 출토세부. 성림문화재연구원 제공
시신의 오른쪽 팔 위치 가까이에서는 칠초동검과 칠초철검 4점, 상반신 부근에서는 중국제 청동거울(이체자명대경) 2점과 부채 2점이 출토됐다. 부채는 양 손에 각 1점씩을 잡고, 나머지 한 점은 배 위에 얹은 듯한 형상으로 출토됐다. 이외에도 목관 안에서는 호형청동대구, 청동제 팔찌, 청동마, 다리 부근에서는 부채 1점이 추가로 확인됐다.

이 지역 일대에서 본 유적과 비교할 만한 원삼국 시대 수장급 무덤으로는 대구 만촌동유적, 경산 임당동유적, 영천 어은동과 용전동 유적 등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 발굴된 경산 양지리유적에서는 목관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확보되었을 뿐만 아니라, 칠초동검과 칠초철검 4점, 부채 3점, 중국제 청동거울 2점을 한 무덤 안에 부장하였다는 점에서 피장자 신분이 상류층으로 판단된다.
▲ 목관묘 6호 족부 세부전경. 성림문화재연구원 제공
출토된 2점의 청동제 거울은 경주 조양동 38호와 밀양 교동 17호에서 출토 예가 있다. 부채는 창원 다호리 1호에서 출토된 바 있지만 이와 같이 3점이 한 무덤에서 출토된 사례는 매우 드문 경우이다.

5호와 6호 목관묘 발굴의 의의는 무덤의 축조 방식와 목관의 구조를 복원할 수 있는 실물자료를 확보한 점과 양질의 중국제 청동거울과 부채, 칠초동검을 부장한 금호강 유역의 원삼국 시대 최고 위계의 무덤을 확인한 것이다.

조사Ⅱ-⑤구역에서는 이외에도 청동기 시대 주거지와 초기철기 시대 함정유구, 고려∼조선 시대 삼가마 외에도 구상유구와 우물 등 다수의 유구가 확인했다.

김윤섭 기자
김윤섭 기자 yskim@kyongbuk.com

경산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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