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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93. 청송 오체정(五棣亭)

눈길 가는 곳마다 울긋불긋 단풍병풍···가을의 품에 안기다

김동완 여행작가 등록일 2017년11월23일 17시22분  
▲ 왼쪽 현판은 오체정 오른쪽 현판은 만수정이다.
포항에서 청송가는 길. 죽장 지나 꼭두방재 넘어 청송 현동으로 달려가는 내내 길가에 사과 밭이 펼쳐진다. ‘볼빨간’ 사과의 바다 끝에 짙푸른 하늘이 얕게 깔리고 그 위에 흰 구름이 뭉게 뭉게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의 대비는 눈부시다. 11월의 늦가을 풍경은 보는 내내 구름이 피어오르듯 뭉클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시절의 최종병기는 역시 ‘단풍’이다. 울긋불긋 단풍은 가을이 제 방식으로 풀어내는 꽃대궐이다.

청송군 현동면 개일리 오체정 앞길은 가을의 대미를 장식하는 단풍으로 붉거나 노랗거나 주황색으로 타오르고 있다. 1차선 도로 양쪽에는 사과밭이 펼쳐져 있고 사과밭은 양단하며 뚫고 나온 도로의 양쪽에는 벚나무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벚나무 단풍은 제 몸을 불살라 한 두 가지 색으로 형용할 수 없는 불길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바람이 불때마다 추풍낙엽으로 낙엽비가 우수수 쏟아졌고 떨어진 낙엽은 도로 위에서 쇳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오체정은 소나무숲으로 둘러싸인 구릉위에 서 있다.
벚나무 행렬이 끝나는 곳에 소나무 숲이 있다. 한눈에 봐도 수백년 된 소나무들이 무리를 이뤄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소나무는 언제나 서슬 퍼런 선비의 지조를 상징한다. 거기가 오체정이 있는 송림이다.

오체정이 있는 개일리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촌이다. 오체정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자초산,남쪽에는 보현산이, 북쪽에는 대마산이 막아서 있다. 개일 굼말 능담 등 자연 마을 중에서 본 리가 시작되는 곳이다. 개일은 해가 열리는 곳, 산골 마을의 통로 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으로 생각된다. 오체정이 있는 곳은 개일리에서도 정자 마을이다.

오체정 정면 왼쪽으로 눌인천이 흐르고 오른쪽에는 소나무숲이 펼쳐진다.
오체정에서 본 눌인천
오체정은 숲속의 나즈막한 구릉 위에 있다. 구릉과 관련해 전해오는 이야기, 보현산 베틀봉 전설이다. 보현산(1,121m)은 백두대간 태백 산맥이 남쪽으로 뻗어 나온 줄기다. 그 산봉우리중 하나가 베틀봉이다.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베를 짜다가 북을 놓쳤다. 그 북이 눌인천 물줄기를 따라 내려오다 북 모양의 구릉을 만들었다. 높이 6m 넓이 약 600평 정도 되는 암석이다. 오체정이 자리 잡은 구릉이다. 돌계단을 따라 정자에 올라서니 벚나무 행렬은 소나무 숲의 종속물이고 소나무 숲의 주인은 정자라는 생각이 든다. 정자를 중심으로 소나무숲의 반대편에는 눌인천이 반변천이 있는 안동 쪽으로 북행한다. 들판은 낮게 엎드렸고 오체정은 들판의 맹주로 우뚝하다.

오체정에서 다섯 아들을 가르쳤던 성재 남세주의 유허비
오체정은 영양남씨 청송 입향조인 운강 남계조(南繼曺)의 증손 성재 남세주(南世株)가 자훈(自勳) 응훈(應勳) 유훈(有勳) 필훈(必勳) 시훈(時勳) 다섯 아들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정자다. 지을 당시에는 규모가 지금 보다는 작았다. 다섯 아들 공부시키기 위한 맞춤형 공부방이다 보니 규모를 키울 까닭이 없었다. 5형제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유가의 여러 경전과 주자학을 깊이 공부해 학문이 높은 경지에 도달했다. 형제간에 우애도 깊어 다섯 행제가 항상 같은 방에서 같은 이불을 덮고 잤고 식사도 한 상에서 했다고 한다. 형제 중 한 사람이 함께 하지 못하면 나머지 네 형제는 식사는 물론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5형제의 부인들도 남편의 우애를 본받아 한 번도 다투는 일이 없었다고 전한다. 5형제는 부모에게도 효성이 깊어 마을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현재의 정자는 남세주의 증손이자 자훈의 손자인 도성(道聖)이 할아버지 5형제의 우애와 효성을 오래도록 기리자며 증축했다. 이때 오체정 편액을 걸었다. 나중에 문중 사람들이 관리사와 취식공간을 마련했다. 오체정에는 동쪽에 만수헌(萬壽軒)이라는 현판이 하나 더 걸려 있는데 역시 후손 남기한이 오형제의 효성을 기린다는 뜻에서 썼다.

오체정은 다섯 형제의 우애를 기리는 정자다.
‘오체(五棣)’의 ‘체(棣)는 시경 ‘소아’의 ‘상체지화(常棣之花)’다. 상체지화는 아가위나무 꽃이다. 형제간의 우애가 깊어 집안이 번성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아가위꽃

꽃받침 드러나 보이지 않겠는가

지금 곁에 있는 사람 중에

형제만한 사람 없다네

(중략)

형제가 집안에서 다투어도

밖에서는 힘써 막아주며

좋은 친구가 있다한들

진정으로 도와주는 이 없다

(중략)

맛있는 음식으로 너를 불러

술을 취하도록 마시며 즐긴다해도

형제가 모두 모여야 하고

아이처럼 화락하고 또 사랑스러워 진다

처자식이 잘 어울려

금슬을 울리는 듯 하여도

형제가 화합해야

아이처럼 화락하고 또 즐거워 진다

그대 집안의 질서를 잡고

그대 처자식이 즐겁게 해야 한다

이것을 찾고 이것을 도모한다며

진전 그렇게 될 지어다.

- 시경 소아 ‘상체지화’중에서



오체정에서 본 소나무숲
오체정 건물구조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방이 모두 4칸이다. 두 칸 짜리 일자형 집을 앞뒤로 겹쳤다. 이를 일자형 겹집이라고 한다. 놀라운 것은 겹집의 배치가 21세기 건축 디자인과 닮았다는 것이다. 일자형 컨테이너 두 개를 한 칸 씩 어긋나게 배치했다고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즉 정면 다섯 칸 중 앞쪽은 서쪽에 대청마루를 두 칸, 가운데 방 두 칸, 동쪽에 마루 1칸을 배치한 반면 뒤쪽은 동쪽 마루 1칸, 가운데 방 두 칸, 서쪽 마루 두 칸을 배치함으로써 앞방과 뒷방이 엇갈리게 한 것이다. 역대칭 구조인 것이다. 이로써 정자 정면과 뒷면에 각각 한 개씩의 대청마루를 가지게 됐다.
▲ 글·사진 김동완 여행작가

오체정기는 후손 상현(相鉉)이 썼다. “아! 운강(雲岡)공께서 영양(英陽)으로부터 청송에 들어올 때에 십 년 난리에 어머니를 모시고 부평초처럼 백리 타향에 오셔서 가시밭을 헤치고 이 땅에 정착하여 삼세를 지나 성재(誠齋)공에 이르러 다섯 아들을 두었다. 모두 재질이 명민하여 완연히 사씨(謝氏) 집 뜰의 지초와 난초 같아서 한 책상에서 공부하여 날마다 진취하였다. 제산(霽山) 김성탁(金聖鐸)에게 편지하여 성리학을 논하였고 류승현(柳升鉉)에게 격서를 띄워 충의를 일깨웠으며 목상(睦相) 목래선(睦來善)에게 글을 보내 당쟁의 화의를 말하였다. 이 두어 가지를 볼 때 평소의 인격과 학문을 알만하다. 위대한 글과 아름다운 자취가 드러낼 만 한 것이 많지만 자손이 힘이 없어서 다만 한 정자만 이룩하였다. 하지만 규모가 작아서 향사를 하지 못하니 애석하도다. 그러나 터를 천년 묵은 깨 나무와 풀이 무성한 곳에 지었으나 문인들과 지나는 사람들이 다 좋은 곳이라 하니 하늘이 감추었다가 주심이 아니겠는가. 오체정이라 이름 하니 중세에 빛났음을 알 수 있다. 집의 이름을 만수(萬壽)라 하였으니 끼친 음덕이 길고 길어 형제간에 노래하고 시 읊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길이길이 송백이 무성하듯 하도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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