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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호순병원 원장

땅이 위아래로 흔들리고 건물이 곧 무너질듯한 굉음을 내며 물건들이 쏟아져 내리고 길이 솟구치고 하늘과 땅이 서로 뒤바뀔 것 같은 느낌, 지진을 직접 경험해 본 사람은 작은 진동에도 다시 놀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큰 외상(누구라도 위협적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의 트라우마)을 직접 겪거나 목격한 후에 나타나는 매우 심각한 불안 장애를 말한다. 이런 트라우마 중에 가장 심각하고 결정적인 것은 바로 전쟁이다.

전쟁은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엄청난 트라우마 일 수밖에 없다. 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큰 관심을 가지고 치료하기 위해서 애를 쓰게 된 결정적 사건도 바로 베트남 전쟁이다. 베트남 참전 군인들의 약 30% 정도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었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이니 이는 큰 사회적 관심일 수밖에 없었다.

지진, 홍수, 쓰나미, 화산 폭발, 허리케인, 산사태 같은 큰 자연적 재해들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큰 원인이 된다. 이런 재해로 인해 살아남은 자들의 마음속에는 엄청난 상처가 흉터처럼 남게 된다. 그동안 지진의 안전지대로 생각해 왔던 우리는 이번 포항 지진을 겪으면서 그 충격을 쉽게 잊지 못할 것이다. 전혀 준비되지 못한 상황에서 느끼는 천재지변은 그 충격의 정도가 더 클 수밖에 없다.

지하철 폭발 사고, 세월호 침몰, 백화점 붕괴. 다리 붕괴, 거대한 교통사고 등의 큰 희생을 불러오는 인재들도 살아남은 자들이 고통을 받아야 하는 큰 상처가 된다. 뿐만 아니라 테러에 의한 희생, 폭력에의 노출, 성폭행, 강간, 강도 상해 고문 같은 트라우마들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충분히 일으킬 수 있는 원인이 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증상은 일반 불안증과는 매우 다르다. 제일 힘든 증상은 그 사건에 대해 반복적이고 집요하게 떠오르는 고통스러운 회상이다.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은 총소리와 비행기 소리, 적들이 울부짖는 소리 전우가 총을 맞고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 모습과 살아남은 자의 무기력감과 죄책감들, 그 모습과 소리들이 원치 않는 순간 원치 않는 곳에서 반복적으로 회상이 된다는 것은 제일 견디기 힘든 고통이라 한다. 지진을 경험 한 사람들은 당시의 그 공포와 죽음에 대한 불안감과 무기력감 등이 원치 않아도 떠오를 것이며 다른 모든 트라우마 역시 그 당시의 상황과 모습이 고통스럽게 자꾸 회상이 되어 힘들 것이다. 그 이유는 트라우마 당시의 상황이 뇌에서 정서와 기억을 담당 하고 있는 해마와 편도체라는 곳에 깊이 도장 새겨지듯이 각인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는 쉽게 지워지지 않으며 시간이 흘러도 망각되지 않는 기억으로 남는다, 마치 상처의 흉터처럼. 그래서 그 사건을 반복되는 꿈으로 또 괴로워하고 작은 단서라도 있으면 그때의 기억으로 쉽게 돌아가기도 한다. 혹은 사건을 다시 경험하는 듯한 착각이나 환각으로, 더러는 해리 현상이나 잠에서 깨어날 때 불현듯 느끼는 공포감으로, 마치 그 트라우마 사건이 바로 재발 하고 있는 것 같은 행동이나 느낌들을 가질 수 있다. 이런 느낌들은 일반적인 불안감과는 그 종류가 다르다. 그에 따라 자율 신경계의 과잉 각성 상태가 동반되기도 하고 반대로 감정적 무감각 상태를 나타내기도 한다. 죄책감, 거부감, 수치심, 이인 상태, 공격성, 충동조절 장애, 우울감, 약물 남용, 결국 만성적으로 가면 인격의 황폐화를 초래할 수도 있는 참 걱정스러운 병이 바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다.

다행스러운 것은 트라우마를 겪은 모든 사람이 다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로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니, 잘 견디고 이겨내는 힘이 중요함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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