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저 작디작은 손들을 볼 때마다
걸음을 멈추곤 한다
은행과 보험사와 증권사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골목의 구멍가게를 지나칠 때
지친 나의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나는 집으로 품고 가기 위해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알은체까지 하며
봉지에 적당히 담는 것이다

저것들이 눈을 활짝 열어주는 별이 되리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지만
기쁜 그림엽서쯤은 될 것이라고 믿는다

또 내 그림자를 키우지는 못하겠지만
정치 뉴스처럼 짜증스러운 하루를 보듬어주는
우리 집 현관문쯤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저것들의 눈빛이 있는 한
나는 꽤 깊은 밤까지
한 그루의 나무를 심듯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것이다

꽝꽝 언 이 겨울 같은 세상살이에서
주택부금을 들 때와 같은 기대감을 품고
가장의 체면도 지킬 것이다




감상) 바나나가 참 비싸고 귀한 시절이었다. 나는 오빠 집에 가면서 새언니에게 잘 보일 요량으로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뭘 사 가고 싶었다. 과일 가게 앞을 몇 번이나 왔다갔다 하며 뭘 살지 고민하다 바나나를 샀다. 그보다 싼 과일도 있었는데 그게 귤이었던 것 같다 귤 한 봉지와 바나나 한 묶음을 두고 저울질하다 바나나를 선택했다. 그 작은 선물로도 오빠와 언니와 행복하게 살 거라 믿었다. 그때는.(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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