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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은상] 사과

김영숙씨 제4회 경북일보문학대전 은상

경북일보 kb@kyongbuk.com 등록일 2017년11월26일 16시20분  
유병수작
어떤 음악은 죽음보다 슬프다. 사과에겐 사춘기 때 처음 들었던 페르귄트 조곡 중 솔베이지의 노래가 그러했다. 그 가없이 고즈넉하고 애잔한 선율은 죽음보다 처연한 슬픔이었고 아름다움이었다. 슬픔도 수명이 있어 오래되고 깊어지면 죽는다는 걸, 슬픔에도 수위가 있어, 깊은 슬픔에는 진심어린 위로나 사과의 수의를 입혀주어야 한다는 걸 몰랐을 그 즈음, 슬픈 느낌의 음악이 그렇게도 좋았다. 어른이 되어서는 영화든 음악이든 슬픈 것은 싫었다. 슬픔이나 아픔은 현실에서 겪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어젯밤, 총무 엄마가 안부문자와 함께 보내준 동영상의 제목을 보는 순간, 사과는 오래 전 그 감동과 맞닥뜨리게 될 걸 직감했다. 그걸 클릭하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늦어버렸다. 싫어하면서도 닮는다고, 아닌 줄 알면서도 기어이 발을 들여놓게 되는 나쁜 습관처럼 손가락은 머리를 앞섰다. 이전만큼은 아니어도 가슴을 치고 들어오는 감동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아니 추억까지 더해, 사과는 모처럼 온몸을 휘돌아나가는 전율을 느꼈다. 사과는 그 음원을 저장해 두었다. 아껴먹는 초콜릿처럼 울고 싶을 때 야금야금 들어볼 참이었다.

사과는 조심스레 양치질을 하고 냉수를 들이켰다. 밤새 메말랐던 혀가 촉촉해지면서 부드러워졌다. 위장약 덕분인지 화끈거리고 쓰렸던 속도 좀 편안해졌다. 언제부턴가 사과는 가슴이 타는 듯한 작열감과 명치 언저리에서 무언가 팽팽하게 치받아 오르는 역류성 식도염 증세를 느끼곤 했다. 그럴 때면 그렇잖아도 부족한 삶의 의욕이 일시에 사라졌다. 누군가 자신의 손을 탁 내려친 듯 모든 것을 놓게 되고, 사는 것이 아무런 재미도 의미도 없어졌다. 그 증상은 수시로 나타나 사과의 감정을 조종했다. 속수무책, 사과로서는 그 감정을 제어할 방법이 없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좋아진 위장상태에 사과의 기분도 한결 괜찮아졌다. 어쩌면 약이 아니라 아침마다 먹는 사과 한 알의 효과를 보고 있는 지도 몰랐다. 사과가 위에 좋다고 일러준 이는 남편이었다.

사과는 냉장고 야채박스를 열어보고서야 집안에 사과가 단 한 개도 남아있지 않다는 걸 알아차렸다. 보름 전쯤 단골 과수원에서 한 박스나 사두었는데, 어느새 다 먹은 모양이었다. 아침 사과를 금사과라며 꼬박꼬박 챙겨먹는 남편을 위해 오늘이라도 사과를 사두어야 했다. 하지만 오전에는 동화수업이, 오후에는 사과가 좋아하는 소설가가 지역 도서관에 강연하러 올 예정이었다. 사과는 그의 소설들을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었고 사인 받을 책도 한 권 사두었다. 한 달에 한 번, 십 년 째 이어져오는 딸아이 초등학교 엄마들 모임의 총무에게도 같이 가자고 해둔 터였다. 교회 일로 바쁜 그녀는 지난밤 늦게 자신을 태워서 같이 가자고 승낙문자를 보내왔고, 대답이 늦어서 미안했던지 페르귄트 조곡이 든 음원까지 선물처럼 붙여 보내주었다. 오래 기억하고 어렵사리 시간을 냈을 그녀이기에 사과를 사기 위해 약속을 취소한다는 건 말도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사과는 그 소설가를 직접 만나보고 싶었다.

그래도 혹 강연이 빨리 끝나면 인근 과수원에 들르기로 했다. 마음 같아서는 이번만큼은 멀리 청송이나 밀양의 얼음골로 나들이 겸 사과를 사러가고 싶었다. 사과를 굳이 그 멀리까지 가서 사려는 것은 보다 맛있는 사과를 사려는 것도 있지만, 깜깜한 시골 밤하늘의 유성우를 보고 싶기 때문이었다. 매스컴에서는 오늘밤 페르세우스 유성우가 떨어지면서 20년 만에 최고의 장면이 펼쳐진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남편에게 같이 가자고 하면 보나마나 반대할 것이 틀림없었다. 사과를 사러 그곳까지 가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 아니라, 이 시점에 난데없이 유성우를 보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일 터였다.

남편은 얼마 전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다. 글로벌 경제위기를 직원들과 나누려는지, 적자가 누적된 철강회사는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2년 치 월급을 위로금으로 지급한다니 정년퇴직을 4년 앞 둔 남편은 일을 하지 않고도 2년 동안 월급을 받는 셈이어서 괜찮은 조건 아니냐며 사과를 설득했다. 하고 싶은 것은 기어이 해버리는 남편의 고집을 알기에 사과는 그러시라고 단번에 승낙했다. 그런데 남편은 그렇게 쉽게 대답하느냐고, 오히려 화를 냈다. 그러면 다니든지, 사과의 시큰둥한 반응에 남편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남편은 며칠을 예민하게 구는가 싶더니 사표를 냈다고 통보하듯 말했다.

이제 남편은 업무 인수인계를 마치고 다가올 월요일 마지막 출근을 앞두고 있었다. 평생 다닌 회사를 마무리하는 시점인데다가 피 같은 퇴직금으로 무언가 사업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남편은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사업 아이템을 찾아보느라 핏발 선 두 눈에 실핏줄이 터질 지경이었다. 엄살과 과장이 심한 남편이긴 하지만 머리가 돌기 일보 직전이라는 말이 전혀 엉터리는 아닐 것이었다. 이럴 때는 서로 부딪치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남편은 어젯밤에도 늦게까지 컴퓨터를 붙들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침대에 몸을 웅크린 채 잠들어 있는 남편을 깨우지 않으려, 사과는 조용히 외출 채비를 했다. 며칠 째 보온중인 밥솥의 밥을 두어 숟갈 덜어내 물에 말아먹고는 급히 현관문을 나섰다.

남편은 모를, 소위 갱년기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과는 밤새 그럴 수 없이 까마득하고 절망적이었다가도, 날이 밝으면 또 빡빡한 스케줄에 이끌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생활하고 있었다. 사과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 고맙게 여겨지다가도 하루하루 삶을 연명하는 건 아닌가, 문득 힘이 빠지곤 했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필요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우울해지고 슬퍼질 때가 많았다. 그럴 땐 생각이라는 걸 하지 말아야 했다. 생각은 염려로 이어지게 마련이었다. 마음속의 생각들은 캐내는 것이 아니라 내버려 두는 거였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슬픔이라는 피로 범벅이 될 거였다. 슬픔은 생각 속에서만 흐르는 것이 안전했다. 벌집 같은 생각을 건드리지 않는 좋은 방법은 무신경하게 사는 것이었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생각 없이 바쁘게 움직이며 살아가는 것이 그리 나쁜 것도 아니었다.

주말 오전, 백화점 문화센터는 유아들을 데리고 온 엄마들로 붐볐다. 엄마와 함께하는 동화읽기 교실은 조심스럽고 늘 신경이 쓰였다. 회원 둘이 장기결석 중이라, 열 세 명의 회원들로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엄마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시간은 산만할 때가 더 많았다. 아이들이 유난히 보채는 날이면 마음이 더욱 어수선해지면서 강사로서의 정체감이 흔들리고 회의가 들었다. 이 일이 과연 자신과 그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고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에 빠져들기 시작하면 삽시에 우울해졌다. 그 느낌을 떨쳐내느라 더욱 신나게 크게 오버 액션을 취하곤 했다. 한마디로 쇼를 하는 것이었다. 열과 성을 다해 수업이 끝나고 나도 수강자들 역시 비슷한 느낌을 가질 거라는 불안감은 그대로 깔려있었다. 같은 기분을 느낀 그들이 다음 학기 강좌를 끊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조바심친 지 4학기 차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매 학기 수업은 폐강되지 않았다. 이번 학기도 최저 수강인원 15명을 겨우 채우고 아슬아슬하게 개강할 수 있었다. 마감을 앞두고 신경이 쓰였던지 사과는 한차례 위경련이 나 응급실을 찾기도 했다.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고만고만한 수업이 끝나고 교실은 본래 정적을 되찾았다.

사과는 강의실을 정리하고 가방을 챙겨들었다. 문화센터에서 집까지는 20분 남짓 걸렸다. 사과는 아파트 입구 제과점 앞에 주차를 했다. 총무 엄마의 작은 아들이 수능을 앞두고 있었다. 그녀는 작년에 반수하던 사과의 딸, 수민이의 수능 일에 맞춰 손수 초콜릿을 만들어 주었다. 딸 수민이는 인 서울로 나름 성공적인 입시를 끝냈었다. 그녀 덕분에 사과는 아침시간에 우유배달도 할 수 있었다. 석 달 전쯤, 아들을 위해 작정 새벽기도에 나가야해서 배달 일을 넘겨야한다는 총무 엄마의 부탁어린 제안에 사과는 못이기는 척 그 일을 받아들였다. 명랑하고 붙임성 좋은 그녀는 하루건너 한 건씩 교인들을 비롯해 이곳저곳 배달건수를 늘려주었다. 사과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수금은 그녀가 맡았기에 사과는 새벽에 일어나 배달만 하면 되었다. 총무 엄마는 돈보다는 건강을 위해 우유배달을 했었다고 말해주었다. 우유를 배달받는 사람보다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하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언제보아도 혈색이 좋았고 에너지가 넘쳤다. 사과도 총무 엄마처럼 건강해지고 싶었다.

우유배달을 하면서 새벽에 일어나 움직이다 보니, 사과는 남편의 아침 식사 챙기는 일에 소홀해졌다. 남편은 퇴근할 때 떡을 사와 스스로 아침을 해결했다. 출근하는 남편이 어떤 표정으로 어떤 복장으로 나가는지 보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피곤은 습관으로 이어졌다. 아침을 대충 챙겨먹고는 오전 내내 헤매다가 오후에 초등학교 두 군데에서 방과 후 수업을 하고 돌아오면 또 녹초가 되었다. 가까스로 저녁을 준비하고 남편이 퇴근할 무렵이 되면 컨디션이 가장 나빠졌다. 남편과 자꾸 엇박자가 났고 소소하게 부딪혔다. 서로 참고 묵히는 것들이 쌓여갔다. 말 그대로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었다. 수민이가 집에 있었다면 그런 삶의 패턴은 애초에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수민이는 추가 합격하는 바람에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했다. 원룸을 구해주고 간단한 취사도구와 침구 등을 챙겨주느라 학기 초에는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어갔고 무척 바빴다. 그러나 지금은 통화하는 것 외에 딸을 위해 시간을 쓸 일은 없어졌다. 남편은 회사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올 때가 많았고 사과는 시간이 남아돌았다. 대신 생활비는 더 많이 필요했다. 사과가 새벽에 배달 일을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학기 초에는 딸아이도 살펴볼 겸 주말에 밑반찬을 사들고 상경하기도 했지만 우유배달을 시작한 지금은 택배를 보내거나, 너를 믿는다, 하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무엇보다 사과는 용돈을 조금 더 올려 보내주는 것이 서로 피곤하지 않은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화려해서 더 맛깔스럽게 보이는 수능대박 초콜릿 상품들을 보면서, 사과는 자신이 먹고 싶은 것도 하나 고르고 싶었다. 그러나 가격이 턱없이 높았다. 사과는 중간 가격대 포장 하나를 집어 들고 급히 계산을 했다. 그길로 남편과 점심을 먹기 위해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왔다. 사과는 소파에 누워 리모컨을 손에 쥔 채 텔레비전 바라기를 하는 남편을 보자 울컥, 짜증이 치밀었다. 그냥 밖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바로 문학 강연 장소로 가면 그다지 서두르지 않아도 될 터인데, 굳이 남편의 점심을 해결해주겠다고 집으로 발걸음을 향한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사과를 본 남편은 오히려 버럭 소리를 질렀다.

“사과도 안 사놓고 뭐하는 거야?”

“바쁘면 깜빡할 수도 있잖아.”

“그러니까 미리미리 좀 사 놓으랬잖아?”

남편은 단단히 벼룬 듯 잔소리를 쏟아냈다. 남편과 같이 식사를 하고 싶다기보다는 밖에서 혼자 먹는 게 싫어 집으로 방향을 튼 것이긴 했지만, 그래도 남편이 조금은 고마워할 줄 알았다. 그런데 고마워하기는커녕 예상치 못한 타박만 들은 것이다. 사과는 괜히 집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아니 남편이라는 사람은 잘해주면 더 잘해주길 바랐다. 사과가 떨어진 게 문제가 아니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남편의 경쟁력, 경제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남편이 능력이 있어 왕성하게 바깥 활동을 하고 있다면 이런 언쟁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내가 돈을 벌지 않아도 된다면 어련히 꼬박꼬박 잘 챙겨주지 않겠는가 말이다.

“나갔으면 먹을 거라도 좀 사오든가. 새로운 반찬을 만들지도 못할 거면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거라도 좀 사와야 하는 거 아냐? 어떻게 백화점까지 가서 그냥 빈손으로 오냐?”

사과의 속을 모르는 남편이 계속 잔소리를 해댔다. 사과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귀까지 닫은 걸로 여기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내가 사과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면서…….”

거푸 잔소리를 퍼붓던 남편은 사과가 약이 오르지 않자 재미가 없는지 기운이 없는지, 슬그머니 말꼬리를 흐리면서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사과는 중의적인 의미였을 것이다. 사과라는 이름으로 살아오면서 많은 유머와 에피소드들이 피어났고 열매를 맺었고, 지금의 남편도 만났다. 딸 수민이가 집을 떠나기 전만 해도 그런 유머가 통했고 웃음꽃이 피고는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말을 들어도 사과의 마음에 아무런 울림이 없었다. 오히려 냉담해졌다. 한바탕 잔소리 세례를 받은 사과의 입은 다시는 열리지 않을 것처럼 굳어졌다. 더 이상 말할 마음도 힘도 없었다. 서운하기도 하고 서럽기도 한 것이 그냥 밖으로 뛰쳐나가 백화점 지하뷔페에 가서 혼자 회전초밥이나 실컷 먹어버릴까, 오기가 생겼다.

그러나 남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사이, 자신의 잘못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분명 백화점에 들어갔을 때 사과를 몇 개 사야겠다고 생각했으면서 그냥 나온 것이었다. 하긴 7층 문화센터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바로 내려오는 게 습관이 된 터였다. 북적이는 1층 생활관이나 지하 1층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도 내키지 않았지만 그보다 엄마들을 만나는 게 신경이 쓰였다. 수업에서 본 그들과 매장에서 곧바로 마주친다는 것이 불편했다. 단지 그 이유였다. 사과는 오늘도 그 사실을 먼저 생각하느라 남편의 사과를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사과는 냉장고를 뒤져 찬 없는 점심을 차렸다. 말없이 계란프라이 두 개를 남편의 밥 위에 얹어주면서 그래도 이 궁상맞은 식사는 다 당신의 무능력 때문이야, 라는 변명도 함께 얹었다. 남편도 그 사실을 알고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더 화를 내는지도 몰랐다. 남편이 좀 더 잘 벌면 자신의 삶이 좀 더 럭셔리하고 매끄럽게 흘러갈 터였다. 남편은, 없는 찬에 그래도 반찬타령은 하지 않고 한 그릇을 후딱 비워냈다. 사과는 등을 돌려 몇 안 되는 빈 그릇과 수저를 씻었다. 평소 같으면 미뤄두었을 점심 설거지였다. 실은 남편에게 이런저런 심사가 드러난 얼굴 표정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설거지가 끝나자마자 사과는 또 외출할 채비를 차렸다.

3시에 시작하는 문학 강연에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총무 엄마의 집은 도서관과 반대방향에 있었다. 한 달 전 모임 때 사과가 말을 흘렸는데 총무 엄마가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아 사과가 한 번 더 권했고, 토요일도 봉사활동으로 바쁘다던 그녀가 애써 시간을 내주었다. 남편은 다시 외출하려는 사과를 보며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오후엔 차를 쓰면 안 되냐고 했다. 사과는 고작 커피 한 잔 마시겠다고 하나 뿐인 차를 쓰냐, 싶었다. 남편의 태도로 보아 거절하기가 수월찮았다. 사과는 난감했다. 그래서 같이 나서자고, 같이 도서관에 가서 커피도 마시고 강연을 듣자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 그런데 남편은 정말 밖에서 커피를 마실 요량인지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는 것이었다. 딱히 강의를 듣고 싶다기보다는 이렇게 집에 눌러앉아 있다가는 주말 오후를 집돌이나 하겠다 싶었는 모양이었다.

후줄근한 아웃도어 복장의 남편과 실랑이를 벌이고 새삼 옷을 골라 입히느라 총무 엄마와 한 약속시간이 빠듯해졌다. 사과는 조바심이 나면서 초조해졌다. 그러나 남편을 재촉하지는 않았다. 그래봤자, 상황이 달라지지도 않을뿐더러 싸우기만 할 것이었다. 사과는 서두르는 기색을 감추며 먼저 현관을 나섰다. 시동을 걸고 남편이 탈 자리와 총무 엄마가 탈 자리를 정돈하는데 폰이 울렸다. 화면에 집 전화번호가 떴다. 남편이었다. 남편은 대뜸 자신의 핸드폰을 못 보았느냐고 물었다. 사과는 어이가 없었다.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 그래도 화를 내면 안 된다는 압박이 사과를 저지해 주었다. 남편과 신경전을 치른다면 곧 만날 총무 엄마 앞에서 미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총무 엄마는 10분이나 늦게 약속장소로 나왔다. 이번에는 남편이 표정을 관리할 차례였다. 총무 엄마의 사과인사에 남편은 연기하듯 너무나도 상냥스럽게 그녀의 남편 안부를 물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사과부부는 그들 부부와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총무 엄마와 안부를 주고받는 남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높았고 친절했다.

사과는 주차를 남편에게 맡기고 먼저 강연장으로 향했다. 강변을 바라보는 도서관 남쪽 복도엔 시화전도 함께 열리고 있었다. 걸개마다 글쓴이의 캐리커처가 익살스런 표정을 지어보였다. 지역도서관이 주관하고 사과도 소속된 주부 독서회가 진행하는 강연회는 이미 시작되었다. 중년여성 도서관장이 왕성하게 창작활동을 하는 중견 남성 소설가를 소개하고 있었다. 그사이 남편은 건물 지하에 주차를 하고 부근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갈 거라며 문자를 보내왔다. 총무 엄마는 나중에 올 남편을 위해 옆자리를 하나 잡아두었다. 더러 벽에 기대선 청중도 있어, 사과는 빈자리에 신경이 쓰였다.

총무 엄마는 사회자가 즉석에서 제안한 유인물 낭독 요청에 사과를 떠밀었다. 사과가 몸을 사리자, 처음부터 자신이 하고 싶었던 듯 손을 번쩍 들었다. 총무 엄마는 무대 앞으로 나가 유인물을 감칠맛 나게 읽었다. 민망한 대목이었는데도 아랑곳 않고 낭랑하게 읽어내려 갔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교회에서 성가대원으로, 교사로 봉사하고 있어선지 무대공포증 따위는 없었다. 아니 그녀는 당당하고 여유 있는 표정으로 오히려 무대를 즐기는 쪽이었다. 사과는 총무 엄마가 달리 보였다. 우연일지라도 사과의 속을 꿰뚫어본 듯 페르귄트 조곡을 보내준 것 하며. 언젠가 책에서 읽었어, 누군가를 미워하면 아프게 되는 이야기, 수민 엄마가 맨날 아픈 이유를 달리 생각해 봐, 지난 달 총무 엄마가 사과에게 넌지시 일러준 충고는 사과에게 충격적이었지만 그럴 듯했다. 그녀에게 무언가 더 조언을 얻고도 싶었지만, 그녀가 교인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아직 속을 내놓고 상의한 적은 없었다. 아무려나 사과는 예상치 못한 총무 엄마의 돌발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씩씩하고 활달한 총무 엄마의 숫기를 정작으로 부러워하는 이는 소설가였다. 그는 눌변에다 수줍어하기까지 했다. 총무 엄마에게 몇 가지 묻고는 인상이 참 밝고 좋아 보인다고 더듬더듬 말하는데 빈말이 아님이 느껴졌다. 그도 자신의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눌변으로 인해 소설가가 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응원하게 만드는 기류가 형성되었다. 그의 말과 말 사이에 들리지 않는 말이 그의 말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가 말을 유창하게 하지는 않아도 그가 표현하고자하는 의미는 충분히 전달되었다. 눌변이라고 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었다. 공손한 말투에서 그만의 인격이 엿보이고 어눌한 말씨도 그를 도와, 심지어 그는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일거라는 맹신마저 생겼다. 일단 그런 믿음이 들고나니 그의 초라한 외모조차 겸손으로 보였다. 그를 둘러싼 겉모습은 보잘 것이 없지만 그의 진정성은 누구나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사과에게 좋은 소설가로 각인되었다.

그가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의 내면을 고백하거나 삶을 회상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일인칭 소설에 대해 설명할 때, 움베르토 에코의『장미의 이름』과 김경욱의『황금사과』를 예로 들었다. 황금 사과라니, 사과의 눈과 귀가 번쩍 띄었다. 소설가의 입을 통해 나온 사과라는 단어는, 남편의 입에서 나온 단어와는 품격이 달라 보였다. 이후 사과는 그가 하는 말을 한참이나 놓쳤다. 황금사과라는 말에 꽂혔다고나 할까. 사과는 엉뚱하게도 자신은 황금 사과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사과라는 이름으로 살아오면서 열매는커녕 작은 꽃 한 송이도 피우지 못한, 여태 그렇고 그런 김 사과로 살아왔지만 이제부터는 황금 사과로 살아갈 요량이었다, 총무 엄마처럼 용감하게, 라고 메모장에도 기록해두었다. 사과가 생각해도 멋진 수확이었다. 강연이 끝나고 작가사인과 함께 받은 ‘행복하세요, 오늘 바로 지금!’ 이라는 멘트는 사과를 위한 사과에게만 들려주는 격려의 메시지로 충분했다.

청중들이 쏟아져 나온 복도에서 총무 엄마는 지인들을 만나 두루 인사를 하느라 바빴다. 그녀는 사과에게도 지인을 소개시켜주었다. 사과의 눈에 저 멀리 아는 학부형들이 더러 보였지만 사과는 부러 가까이 다가가 인사를 나누지는 않았다. 일정이 모두 끝났는데도 남편이 나타나지 않자 눈치 빠른 총무 엄마는 버스를 타고 가겠다며, 두 사람 데이트 잘 하고 주말 잘 보내라며, 살뜰한 인사말을 건넸다. 사과는 뒤늦게 차에 둔 초콜릿이 생각났다. 하지만 남편도 차도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당장 줄 수 없는 초콜릿을 사두었다고 말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덕분에 수능일 전에 그녀를 한 번 더 만날 수 있으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2층 중앙로비에서 헤어져 계단을 내려가던 그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사과는 그녀가 몇 걸음 안 가 또 지인을 만나 반갑게 손을 붙들고 인사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둘은 셋이 되고 셋은 다섯이 되더니 깔깔거리며 출입구로 몰려나갔다. 셋이 와서 혼자가 된 사과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저절로 피어났다. 강연장에 모였던 사람들이 다 돌아가도록 남편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제 청송이나 밀양은 물론 인근 과수원으로 사과를 사러 가는 것도 늦은 시간이었다. 남편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사과는 다시 폰을 열어보았다. 강연 시작 무렵 남편이 보낸 문자가 하나 더 있었다.

-끝나면 전화하숑.

사과보다 네 살이나 많은 남편이 존대를 한다는 것은 기분이 좋다는 의미였다. 남편은 왜 기분이 좋아졌을까? 그런데 이제야 문자를 보다니. 미리 알았으면 마음 편히 강연을 들었을 텐데. 문체는 문체일 뿐, 남편과는 여전히 어긋나고 있었다. 굳이 따진다면 사과의 백전백패였다. 바둑의 포도송이 포석처럼 일을 하면 할수록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남편과의 관계가 돌돌 말려버리는 느낌이었다. 남편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생도 그렇게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또 생각을 낳기 시작했다. 사과는 고개를 흔들었다. 한숨을 크게 한 번 내쉬고는 남편에게 또 전화를 걸어보았다. 남편은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다. 사과는 신경질적으로 몇 번이고 통화버튼을 눌러댔다. 그때서야 남편에게서 통화거절 메시지 하나가 날아들었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잠시 후에 다시 걸어주세요.

남편은 무엇을 하길래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걸까? 사과는 도서관 앞마당 벤치에 앉았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길을 걷는 사람들이 간간이 지나갈 뿐 거리는 한산했다. 무료해진 사과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맑고 쾌청했다. 이런 날씨라면 오늘 밤 별도 많이 보일 것이었다. 사과는 남편과 별을 보러갈 수 있을까, 절망 섞인 희망을 가져보았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말도 있잖은가. 그런데 남편이 왜 그렇게 별을 보기를 원하는지 묻는다면 할 말이 없었다. 자신도 모를 일이었다. 그냥, 그냥 별을 보고 싶었다. 아니, 마음속엔 별을 보고 싶어 하는 이유가 보풀처럼 하나 둘 돋아나 있었다. 그러나 손에 집히지도 않을 그 미묘하고 여릿한 감정을 남편에게 잘 설명하고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구차하게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다. 남편과는 적지 않은 세월을 겪어왔으므로 이해받지 못할 게 뻔했다. 그냥 묻어두고 그저 별만 보면 되는 것이었다. 사과는 오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주 어렸을 적에 아버지를 따라 시골에 간 기억이 났다. 아마 할아버지나 할머니 제삿날이었을 것이다. 그 깜깜한 밤하늘에 별이 쏟아져 내리는 풍경 한 컷이 가슴 한 편에 간직되어 있었다. 딸의 이름을 사과로 지어 줄만큼 여리고 순진한 감성을 가졌던 아버지, 지금은 세상에 없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아득히 넓은 들판을 걸어가던 단발머리 여자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날 밤,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하늘에 가득하다 못해 땅바닥에 닿도록 흩뿌려져 있었다. 하늘 한 귀퉁이를 그으며 단숨에 사라지던 별똥별도 몇 개 본 것 같았다. 그날의 그 별들을 지금 보고 싶은 것일까. 그 많았던 별들은 지금도 하늘에서 빛나고 있을 터였다. 어딘가 그 별들을 잘 볼 수 있는 곳이 있을 것만 같았다. 이국의 사막 한 가운데서 별을 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의 형편에 그렇게 멀리까지 가서 별을 볼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맑은 하늘을 보고 있자니, 오늘 밤에 내린다는 유성우를 꼭 보고 싶었다. 사과는 다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남편은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남편은 도대체 무슨 일로 전화를 받지 않는 걸까? 짜증이 걱정으로 변하는 순간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기로 올래?”

“거기가 어딘데?”

“도서관 우측 골목으로 나와 첫 번째 도로 안쪽으로 오다보면 스타부동산이라고 있어.”

“부동산? 거긴 왜?”

“가게 몇 개 둘러보고 있었어.”

“가게?”

“그래, 기가 막히게 좋은 자리가 하나 나와 있어. 조건도 아주 좋아. 놓치면 후회할거 같아.”

사과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난데없이 부동산이라니. 가게라니. 자신이 별을 생각하고 있는 동안 남편은 부동산에서 가게를 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화를 끊은 사과는 남편이 일러준 길을 따라 허기적어기적 걸어갔다. 스타부동산 출입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을 때, 사과는 아버지가 누워있던 요양원에서 나던 노인 특유의 냄새가 확 끼쳐오는 것을 느꼈다. 남편은 남편과 엇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남자 둘과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사과는 손으로 코를 막지는 못하고 숨을 참았다.

“버거킹 같은 햄버거 가게야. 방금 계약했어!”

남편이 사과를 보자 반색하며 일어났다. 남편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크고 밝았다.

“왜, 느닷없이?”

사과는 말을 아꼈다.

“오늘 지켜보니까 도서관 주변으로 유동인구가 많았어. 잘 할 자신 있어. 아이들과 엄마들이 좋아하는 아이템이잖아. 나름 심사숙고한 거야. 마음 변할까봐 바로 계약했어.”

들떠있는 남편과 잘했다고 등 떠미는 중개인들의 권유로, 사과는 남편과 함께 가게를 둘러보기 위해 스타부동산을 나섰다. 남편은 강연은 어땠어? 라고 묻는 여유까지 부렸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부부를 배웅하는 중개업자의 얼굴은 낮술이라도 했는지 불콰하게 상기되어 있었다. 남편이 고개를 내밀면 도서관이 보이는 3층 건물의 1층을 가리켰다. 손님 하나 없이 텅 비어있는 가게는 생각보다 넓었다. 주변에 임대광고지가 붙은 빈 점포가 두개나 보였다. 사과는 남편의 옷자락을 끌었다. 남편의 이번 고집만은 어떻게든 꺾어야 했다.

“사과나 사러 가요.”

“아까 당신 강연 들을 때 요 앞 마트에서 몇 개 사 두었어. 주차하고 커피마시고 사과도 사고 가게도 둘러보느라 혼자 무지 바빴어.”

남편은 더 이상 가게 얘기는 하지 않았다. 대신 그동안 자기가 한 일을 좀 알아달라는 듯 변명처럼 행적을 둘러댔다. 사과는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그 일들을 하나씩 해치우려면 바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럼 저녁 먹으러 가요. 백화점 상품권 있으니까.”

사과는 유성우 보러 가자, 라는 말은 꺼내지도 못하고 계약을 취소해요, 라는 말은 아껴두었다. 두 가지 일을 다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남편에게 배불리 밥을 먹이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리고 기회를 포착해야 했다. 둘 다 아직 말할 때가 아니었다. 남편이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끌고 왔다. 사과가 차에 올랐을 때 남편이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아참, 고마워. 초콜릿 맛있던데. 당신도 맛 좀 봐. 당신도 초콜릿 좋아하잖아.”

사과는 다시 한 번 어이가 없었다. 이미 포장을 뜯었을 텐데 총무 엄마 줄 거라고 말할 필요는 없었다. 남편은 사과의 선물로 사과가 초콜릿을 사둔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참 단순한 사람이었다. 모든 것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여전했다. 달리 생각하면 남편이 순진하기 때문이었다. 생각하기에 따라 진정성 어린 소설가 같은 면모라고 볼 수도 있었다. 좋게 생각하면 좋은 점일 터였다. 사과는 마음이 한껏 풀어진 남편을 잘 다독여 별을 보러 갈수도 있겠다 싶었다. 계약 건도 어떻게든 파기하도록 해야 했다. 손해를 보는 것은 감수해야 할 것이다. 이런 불경기에 경험도 자본도 없이 가게라니. 역시 나를 슬프게 하는 목록 제 일 순위는 남편이야, 사과는 속으로 읊조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주말인데 어디 바람이나 쐬러갈까? 당신 가고 싶은 데 없어?”

말없이 이른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남편은 상의도 없이 덜컥 계약을 해버린 사실이 이제야 실감이 나는 건지 겁이 나는 건지 사과의 눈치를 살폈다. 일이 되려면 애쓰지 않아도 어떻게든 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가 보았다. 남편이 난데없이 가게를 계약한 것도 그렇고, 남편이 먼저 어디 가고 싶은 곳 없냐고 물어오는 것 하며. 사과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유성우 이야기에 남편은 바로 그거라는 듯, 외곽 쪽으로 운전대를 돌렸다. 목표를 정한 차는 목적지도 없이 속도를 냈다. 승용차가 도심을 벗어나 터널을 지났다. 어딘가 있을 그 어딘가를 향해 내달리며, 남편은 남은 초콜릿을 후식삼아 집어먹었다. 사과에게도 빨간 하트 모양의 초콜릿을 하나 건넸다. 앙증맞은 초콜릿은 먹기 아까울 정도로 예뻤다. 부드럽고 적당하게 달콤한 맛이 목구멍을 타고 천천히 내려갔다. 맛있는 것은 행복한 거야, 남편이 사과의 속도 모르고 흥얼거렸다. 사과는 남편 덕분에 먹고 싶었던 초콜릿을 맛보고, 그토록 원하던 별도 보러 간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어둠이 짙을수록 별은 더 빛나는 법이니까 최대한 어두운 곳으로 가야 해, 사과가 남편에게 주문했다. 밤은 깊어가고 주변은 한층 어두워졌다. 승용차가 세상의 가장 어두운 곳을 향하여 달려가는 동안, 남편은 가게를 어떻게 꾸려갈 것인지 계획들을 하나씩 풀어놓았다. 사과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남편은 가게에 대해 사업에 대해 혼자 묻고 답하고 있었다. 사과는 문득 총무 엄마가 보내준 솔베이지의 노래가 생각났다.

“죽음보다 슬픈 음악 한 번 들어 볼래요? 당신도 많이 들었을 거야.”

사과의 말에 남편이 발끈했다.

“당신 말이 더 슬퍼. 죽음보다 슬픈 게 어디 있어? 말 돌리지 마. 나랑 사는 게 슬프다고 말하고 싶은 거지?”

사과의 손이 정지버튼을 클릭했다. 전주가 흘러나오다 뚝, 끊어졌다.

“이런 말 안하려고 했는데.”

남편이 정색을 했다. 사과는 안 하려고 했으면 끝까지 안해야지. 어디 할 테면 해보셔, 라는 심정으로 남편을 쳐다보았다.

“내가 표현은 이래도 당신을 사랑하는 거 잘 알잖아. 사는 게 어설퍼도 실수해도 사람은 진심이 중요한 거 아냐? 당신은 반듯해서 실수하지 않는지는 모르지만 진심을 모르겠어. 게다가 표현도 잘 안하니. 나는 알고 있었어. 당신이 나에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다는 걸. 난 그게 세상에서 제일 슬퍼!”

사과는 말문이 막혔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사과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남편의 말은 맞는 것도 그렇다고 아주 틀린 것도 아니었다. 남편은 사과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지 계속 속말을 쏟아냈다.

“나는 실수하는 인간이야. 허술하고. 이제 와서 다르게 살기는 힘들겠지만 이렇게 사는 나를 좀 너그럽게 봐주면 좋겠어.”

남편의 말은 너무 슬퍼서 사과는 오히려 담담해졌다. 여태까지의 슬픔만으로도 평생 자신에게 할당된 슬픔은 다 채웠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기쁜 날보다 슬픈 날이 아주 많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한 날들이 더러 있었다. 오늘도 거기에 포함될 모양이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남편은 가장 먼저 보이는 톨게이트로 빠져나왔다. 추수가 끝난 들판이 보였다. 남편이 그 곳을 향해 차를 몰아갔다. 사과는 눈물을 참으려고 계속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남편에게 눈물을 보이기는 싫었다. 사과는 이를 악물었다. 소설가와 황금사과와 다짐을 떠올렸다.

‘강해져야 해. 약해지고 슬퍼지고 좁아지면 안 돼!’

“하늘이 넓게 보이긴 한데 주차할 곳이 없어, 좀 더 산 쪽으로 가봐야겠지? 여긴 가로등이 비쳐서 안 되겠어, 여긴 거름냄새가 너무 지독해, 좀 더 산 쪽으로, 좀 더 어두운 곳으로 가야 잘 보이겠지? 달도 보이지 않는 게 좋겠지?, 좀 더, 좀 더 가볼게.”

상대는 어떠하든지 자신은 마음을 비우고 난 것처럼 홀가분해 보이는 남편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별을 더 잘 볼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마침내 남편이 차를 세운 곳은 깊고 깊은 산 검은 골짜기였다. 계곡을 따라 으슥한 곳에 폐가가 보였다. 야외 테이블이 놓여있는 것으로 보아 가든이나 펜션자리였던 것 같았다. 남편이 조금 더 차를 움직여 보았다. 폐가 뒤로 족구장과 주차장으로 사용한 듯한 넓은 공간이 나왔다. 바람이 센 곳인지 가장자리의 나무들이 쓰러져 있었다. 덕분에 하늘이 뻥 뚫려보였다. 남편이 막다른 그곳에다 차를 세우며 물었다.

“어때?”

“여태 본 곳 중에는 제일 낫네요, 뭐.”

사과가 서운한 기색을 삼키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덤덤하게 내뱉었다.

“거봐, 그런 식이지. 힘들게 운전해서 왔는데, 수고했다는 말 한 마디 안하고. 난 피곤해서 좀 잘 테니 별인지 똥인지 다 보고 나면 얘기해. 정말 별을 보고 싶다면 천문대를 갔어야지. 요즘 하늘에 별이 어디 보인다구.”

남편의 볼 멘 소리를 뒤로 하고 사과는 그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남편은 그 많은 할 말을 지니고 있었으면서 그동안 어떻게 참고 지냈을까. 가차 없는 바람이 사과에게 몰아쳤다. 바람은 사과의 머리칼과 얼굴을 사정없이 할퀴고 지나갔다. 어떤 바람은 사과의 뺨을 소리 나게 때렸다. 사과는 좀처럼 눈을 뜰 수 없었다.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마치 먹이를 본 굶주린 짐승처럼 사과를 향해 끝도 없이 달려들었다. 남편은 끝내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사과는 가까스로 눈을 뜨고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하늘은 생각보다 어둡지 않았다. 생각만큼 별이 많이 보이지도 않았다. 유성우는 더더욱 볼 수 없었다. 바람은 뭐라고 수군거리며 멀어져갔다. 사과는 귀밑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하는 말 중 하나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 말은 사과의 가슴을 예리하고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바람이 일러준 말을 남편에게 전하기 위해 사과가 승용차 문을 열었을 때, 남편은 운전석에 길게 드러누운 채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사과는 곤히 잠든 남편의 낯선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남편은 쉽사리 깨어날 것 같지 않았다. 솔베이지의 노래로 가득 찬 사과의 목구멍에서 가만가만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허밍으로 이어진 음률은 끝도 없이 그 자리를 맴돌았다. 차창에 하나 둘 새벽이슬이 맺히기 시작했다.



▲ 김영숙
약력


· 계명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 2009년 평사리 문학대상 (시 부문)

· 2016 천강문학상 우수상 수상(시 부문)


수상소감


“누군가 먹을 수 있는 상큼한 사과 같은 소설 쓰고 파”


아직도 솔베이지의 노래가 좋습니다. 너무 많이 들으면 슬퍼질까 봐 조금씩 아껴 듣고 있습니다. 여전히 소설을 사랑합니다. 너무 많이 사랑하면 아플까봐 조금씩 조심스레 다가갑니다.

소설에 나온 것처럼 언젠가 남편과 함께 별을 보러 간 적이 있습니다. 깊고 으슥한 산골짜기를 찾고 찾았지만, 달빛과 불빛 때문인지 별들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릴 적에 보았던 그 별들을 보고 싶었던 걸까요. 그 때 그 느낌이 아니더라도 밤하늘에 총총히 박힌 무수한 별들을 한번쯤 다시 보고 싶었습니다. 왜 별을 보고 싶어 하는지 묻는다면 저는 아직도 할 말이 없습니다. 아니 할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언젠가 사막의 별을 보러가고 싶습니다.

사과는 자신이 먹으려고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고, 모든 과실은 자신이 먹기 위해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고 어떤 목사님이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말이 가슴을 찔렀습니다. 누군가 먹을 수 있는 상큼한 사과 같은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열매도 맺고 싶습니다.

부족한 글에 눈길을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손잡아주시는 선생님, 다정한 문우들과 지인 친지 그리고 사랑하는 우리가족 모두 고맙고 사랑합니다. 이 문학 대전을 열어주시고 준비해주신 분들께도 감사 인사드립니다. 모든 것이 사랑입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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