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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병일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만 존재한다고 할 경우에는 규범으로서의 법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명의 사람이 모여서 사회생활을 할 경우에는 그 사람 집단에 일정한 규범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어떠한 동물도 집단을 이루고 있을 경우에는 그들 나름대로 규범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꿀벌과 같은 곤충이나 사슴 등 짐승에게도 그들 나름의 규범이 있다는 것은 연구를 통해서 이미 밝혀졌다. 그런데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성문화된 규범으로서의 법을 가지고 있다. 법의 효력 중 실효성(Wirksamkeit des Recht)이라는 것은 법이 실제로 효력을 가지고 있는가 여부의 성질을 말한다. 법이 형식적으로 시행되고 있으면서 실제적 효력을 가지고 있고, 많은 사람이 그 법을 준수하고 있을 때는, 법은 실효성을 가진다고 한다.

국가권력은 이러한 법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하여 강제력을 동원해서 단속하거나 처벌함으로써 그 법이 준수되도록 한다. 그러나 형식적으로 법이 시행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지켜지지 않고, 많은 사람이 법을 무시하거나 준수하지 않을 때는, 법의 실효성은 없다고 한다. 법의 실효성이 없으면, 그 법은 형식적으로 조문화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죽은 법(dead law)’이 되어 사문화되고 만다. 이러한 사문화된 법에는 매우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결혼이나 장례 등 가정의례에 관한 법이 있다. 

해방 이후 처음으로 ‘가정의례준칙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진 것은 1969년 1월 16일이다. 그 당시 우리나라 가정에서 관행되고 있는 혼·상·제 등의 가정의례는 의례의 참뜻에서 벗어나고, 허례허식에 흘러 경비와 시간의 낭비로 인한 적폐가 사회적으로 더하여 가는 경향이 있었으며, 또한 당시 의례는 사회의 끊임없는 변천으로 우리 사회생활에서 점차 괴리되어 국민생활감정의 이중구조를 조장하고 외래 풍조의 모방으로 무원칙한 신구의례의 혼선을 이루어 우리의 고유한 전통적 민속의 보존조차 어렵게 되어가고 있었다. 

이에 정부는 이와 같은 허례허식과 무원칙한 신구혼선이 정신개발이나 경제개발에 일대 저해요인이 되었기에 이를 시대에 알맞게 개선하여 이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고자 입법하였다. 그러나 법이 있지만, 지키지 않는다는 여론에 따라 1973년 6월 1일에 다시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로 명칭까지 변경하면서 가정의례를 강력히 규제함으로써 종전의 자유방임 상태 하에서 야기되던 모든 허례허식과 낭비를 없애고 건전한 사회 기풍을 진작시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2010년 1월 18일에 ‘건전가정의례의 정착 및 지원에 관한 법률’로 또다시 개명하여 시행하고 있지만, 아무도 이 법을 따르지 않고, 심지어 지금도 이 법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가정의례라는 것은 각자의 가정에서 행하는 의식에 관한 예의나 절차로서 각 가정에서 관행적으로 하던 관습이라고 할 수 있다. 돈 많은 부자는 그 나름대로, 가난한 사람도 그 나름대로 방식대로 의례를 실시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돈이나 권력이 많거나 높은 사람들은 사회적 눈총을 의식하여 합리적인 범위내에서 의례를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꼭 자기과시나 돌출적인 행동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는 경우가 많아짐에 따라 법적으로 제재하고자 부득이 입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미풍양속에 관하여 제재를 하고자 법을 만드는 순간 의례는 더욱 음성화되면서 더욱 그 허례허식은 내밀화 되고 허세가 더 커지게 된다. 

법이 사문화되고 실효성이 없게 됨으로써 그 제재대상이 되는 행위는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된다. 이로 인하여 계층 간의 격차는 벌어지고 사회적 갈등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 법을 잘못 제정하면, 입법 취지가 오히려 왜곡되고 전도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부정청탁법)에 관하여 논란이 많고, 선물 규정을 바꾼다고 한다. 부정청탁법이 제정된 2015년 3월 27일 이후에 제출된 개정안이 무려 16개에 달하고, 시행된 2016년 9월 28일 이후에 제출된 개정안도 10개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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