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미씨 제4회 경북일보문학대전 동상

톡!, 건드리면 뚝뚝 푸른 물이 들을 것 같은 하늘과 그 밭에 만개한 구름, 아득한 초원 위로 길게 누운 지평선, 산허리에 걸린 길과 다르촉*(經幡)에 이는 오색의 바람, 눈 맑은 야생화가 하느작거리는, 잃어버린 샹그릴라가 이쯤인가 싶은데….

다르촉 울타리 넘어 천장(天葬)**의식이 한창이다. 시취를 감지한 독수리들 철책처럼 천장터를 두르고, 까마귀 떼 식이 끝나기를 목 빼고 기다린다. 라마승의 독경이 끝나자 천장사가 사자(死者)의 등에 주술무늬를 넣는다. 햇볕에 벼린 칼이 검무를 출 때마다 사지가 흩어지고 뼈와 살이 분리된다. 사나흘쯤 굶주린 독수리들, 눈빛에 칼날이 번득인다. 천장사가 신호를 보내자 사위를 후려치는 소리의 포효, 죽음처럼 깊은 잠을 흔든다.

휴대전화였다. 탁자 위 전화기가 등에 물집이 영글도록 뒤척이고 있었다. 양껏 전기를 마신 터라 기운이 넘치겠다, 잠귀 어둔 주인을 깨우고자 그토록 그악스럽게 울어댄 모양이다. 귓등엔 아직도 사자(使者) 떼의 검은 날갯짓이 어룽거린다. ‘티베트의 죽음 이해’, 머리맡에 읽다 만 책이 널브러져 있다. 흐트러진 활자들이 먹다 만 살점 같아 진저리를 친다.

누군가 낮잠에 든 사이 누군가는 아주 먼 여행을 떠나는 중이었다. 가족들의 애끓는 초혼에도 몸을 떠난 넋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채 식지 않은 콩팥을, 각막과 췌장을 꼭 필요한 이들에게 보시하러 그는 수술실로 들어갔단다. 아직은 푸른 나이, 생의 가을이 까마득한데. 눈이 말간 아이들을 두고 어찌 눈을 감았을까. 불현듯 며칠 전에 본 주검이 떠올랐다.

나무의 눈동자 같은 상수리가 툭툭 내리는 공원의 아침. 산책로를 따르는데 자꾸만 길이 흔들렸다. 미처 안경을 챙기지 않은 탓이거니, 감기를 동반한 현기 탓이거니 했는데. 한 떼의 개미가 하나의 주검을 옮기고 있었다. 매미였다.

여덟 번째 배마디 아래 생식기가 돌출된 것으로 보아 수컷이겠지만 단정은 금물. 애매미나 쓰름매미 암컷은 산란관이 마치 수컷의 생식기처럼 길게 돌출되어 있다지 않은가. 검고 그윽해 어쩐지 생각이 많아 보이는 눈을 채 닫지도 않았는데, 갈빛 날개가 곧 바람을 일으킬 듯 생생한데…. 울어 줄 상주도, 명복을 빌 문상객도 없는 죽음이 생애처럼 쓸쓸했다.

고새 침입자를 감지한 개미들은 우왕좌왕, 난리법석이 여간 아니었다. 어쩌나 보려는 셈으로 한 걸음쯤 물러앉았을까. 사람보다 일억삼천 년이나 앞선, 이 땅의 선주민이 아닌가. 더듬이의 송신에 적의가 없음을 간파한 듯 길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개중 유난히 분주해 보이는 녀석은 아마도 서열이 높은 축일 터, 지휘자의 페로몬과 감정이입한 일꾼들의 몸놀림이 사뭇 재발랐다. 거침없이 앞쪽 날개를 떼어내더니 더듬이와 뒷날개가 눈 깜짝할 새 사라졌다. 세 개의 홑눈과 겹눈, 세 쌍의 다리도, 진동막과 발음근과 공기주머니도 소리의 넋이 되어 가을 저편으로 산산이 흩어졌다.

지하층층 저들의 왕국 안엔 수십, 수백 구 여름의 사체가 쌓여 있을지도 모를 일. 갈가리 생이 찢긴 동료를 위무하듯 그제야 매미가 울었다. 늦은 만가처럼, 윤회를 염원하는 라마승의 기도처럼. 아침놀에 비낀 구름이 소리의 행렬을 따라 서쪽으로, 서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때 이른 더위가 등을 볶아댈 즈음, 매미가 나뭇가지마다 옷 한 벌을 걸어놓았다. 풀섶에도, 떡갈나무 널찍한 손등에도, 주택가 이슥한 담장에도 옷 한 벌씩 놓이면서 여름이 왔다. 며칠 후 탄센의 노래***처럼 매미가 울더니 숲이 달군 프라이팬처럼 뜨거워졌다. 바람마저 피서를 떠난 공원에 오직 매미소리만 왁자했다.

매미 소리에 마음 기울인 적 있는가. 누군가는 울음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노래라 한다. 과연 소리의 음역 안에 이 둘만을 가둬도 될까 싶다. 종족의 신화를 서사시로 읊조리는 음유시인이 있는가 하면, 애오라지 구애만이 목적인 카사노바가, 다른 종을 제압하려는 호전적인 녀석도 있을 것이다. 천적을 따돌리기 위한 교란음일지도, 배우자를 만나기도 전 생을 마감하는 노총각의 넋두리일지도 모른다. 그들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낱낱의 음가를 해독하기 전까지, 우리들의 앎이란 대개 편견에 불과할 뿐이다.

조금씩 여름이 이울면서 매미의 사체가 눈에 띄게 늘었다. 한날한시 운구 중인 개미 떼와 수차례 마주쳤고, 더러 주검을 해체하는 현장을 맞닥뜨리기도 했다. 비단 개미뿐이랴. 새와 거미들이 통째로 던져진 먹잇감을 그저 지나칠 리 없다. 공원 한쪽 은밀한 곳에선 하루에도 수차례 풍장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개중엔 짝짓기를 끝낸 수컷이, 알을 낳은 암컷도 있을 것이고, 이도저도 못한 채 자연사한 매미도 있을 테지만 가장 안쓰러운 건 애장(애-葬)을 마주할 때였다.

땅속 생활이 수년에서 십여 년, 겨우 어둠을 벗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날개를 펴는 데 몇 시간, 소리를 내기까지 며칠이 소요될 것이다. 기꺼이 등이 갈라지는 고통을 감내하며 찬란한 비상을 염원했다. 허나 운명은 끝내 녀석에게 지상의 가을을 허락하지 않았다. 채 벗지 못한 옷 틈, 이지러진 날개가 옥빛으로 푸르렀다. 젖은 눈이 오디처럼 말개 서러웠다. 그 밤, 공원엔 매미울음이 흥건했고 지상의 어미 하나, 창밖으로 열어둔 귀를 늦도록 닫지 못했다.

숙련된 천장사들이 한 생애를 가르고 뜯어 잘게 부숴 흩뿌리는 중에도 산 것들은 등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다. 짝짓기를 하는 한 쌍이 있는가 하면 막 탈피 중인 늑장꾸러기도 있었다. 눈물도, 고복도 없는 전별을 어찌 비정하다 하겠는가. 그것은 종족보존의 슬픈 본능이자 매미족의 오랜 관습, 나름 최선의 장법이리니. 그들에게 죽음은 전세(轉世)의 치레일 뿐, 환한 내생이 지척이리니.

매미가 떠난 숲은 거대한 소리의 패총 같다. 산책길이 그날따라 외따로운데 저만치 늦털매미가 성인식을 치르는 중이다. 반쯤 벗은 옷을 경계로 생의 반이 이편에, 나머지 반은 저 너머에 걸쳐있다. 저 한 벌을 마저 벗을 때까진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게 아니다.

지상은 지금 낮과 밤의 중간지대, 문득 이생과 내생 사이에 있다는 절대의 그늘, 중음(中陰)을 생각한다. 한철 남짓 매미들과 함께했으니 어림잡아 사십구 일쯤, 저 늦깎이 매미는 선대 누군가 받아온 명(命)일는지도 모른다. 죽은 사람의 혀 위에 옥(玉)매미를 올려주던 풍습이 고대에 있었다****.

매미들이 살다 간 음지처럼 유독 그늘이 많았던 그의 생애를 생각한다. 마지막 한 벌, 육신마저 벗게 되면 먼 티베트 사람들처럼 바람에 장례를 맡기고 싶다던 그였다.

성장(盛裝)한 벚나무 사이로 바람이 다르촉처럼 나부낀다. 눈물처럼 나뭇잎이 난분분한데, 그새 탈의를 마친 옥매미, 막 날개를 펴는 중이다.



* 망자의 시체를 천장사가 칼과 도끼로 다듬어서 하늘의 사자인 독수리에게 아낌없이 보시하는 티베트의 장법으로 풍장(風葬), 또는 조장(鳥葬)이라고도 한다.

** 불경을 적은 오색 깃발

*** 고대 인도의 가인 탄센과 그의 딸에 관한 설화로, 탄센은 목소리의 힘만으로 자연을 움직이고 인간의 영혼을 위로할 수 있었다고 한다.

**** 죽은 이의 혀에 옥으로 만든 매미를 올려 부활을 믿는 의식.


▲ 조현미씨
약력

· 제6회 천강문학상 수필 부문 대상

· 제6회 산림문예대전 문예 부문 금상

· 2016년 계간 에세이문학 올해의 작품상 외


수상 소감

“글에 ‘열반’ 있다면 읽고 또 읽고 쓰고 또 쓰는 과정”

여름 한철을 매미와 더불어 살았습니다.

‘한 떼의 개미가 한 구 주검을 해체하는’ ─ 우연히 접한 풍경이 한 걸음, 그들 속으로 저를 이끌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진즉 귀 기울여야 할 소리들은 감각의 데시벨 너머에 존재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도 그 때였습니다.

소승불교에선 가장 이상적인 죽음을 ‘모든 번뇌가 소진되어 윤회의 세계에 다시 태어나지 않게 된 상태’라고 한답니다. 바람에 장례를 맡기는 장법도, 온몸으로 땅을 쓰다듬는 10만 번의 고된 순례도 실은 ‘열반’에 이르기 위한 무수한 치레 중의 하나라지요.

글에도 ‘열반’에 이르는 길이 있다면, 오로지 읽고 또 읽고, 쓰고 또 쓰면서 절차탁마하는 과정이 아닐까, 항상 귀 열어놓고요. 항상 치열하게 쓰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읽고 나면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글의 주인입니다. 제 글에 자상하게 마음 얹어 주셨을 한 분 한 분께 고마움의 인사 올립니다. 해마다의 가을을 풍성한 잔치로 이끌어주시는 경북일보와 문학상 위원회에 몸담고 계신 분들께도 고개 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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