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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동상] 사냥

이경선씨 제4회 경북일보문학대전 동상

경북일보 kb@kyongbuk.com 등록일 2017년11월28일 17시51분  
이성근 화백작 삽화2
하필 보고 말았다. 앞 베란다 창으로 검은 새가 쏜살같이 날아간다. 깜짝 놀라 쳐다보는 사이 난간을 치고 가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다시 되돌아가는 새의 품 안엔 흰색 날개가 보였다. 까마귀가 아기 비둘기를 낚아채 허공을 날아가고 있었다. 난 외마디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박제되어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새끼비둘기가 품에서 빠져나와 혼신을 다해 멀어지려 애쓰고 있었다. 속도는 필사적으로 거의 비슷한 속력을 냈다. 그러나 확연히 거리는 좁혀지고 까마귀는 또다시 접근을 한다.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한 아기 비둘기는 슬며시 고도를 낮춰 비행하여 까마귀를 따돌렸다. 난 안절부절못하며 손깍지에 힘만 주고 있었다. 비둘기는 상처를 입었는지 힘이 부치는지 아파트 숲으로 숨어들었다. 다시 까마귀가 여전히 빠른 동작으로 그쪽을 향해 무섭게 날아가는 마지막 모습으로 그들의 움직임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얼마 전, 앞 베란다 유리창이 어른거리기에 착시현상인 줄 알았다. 다가가 보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에어컨 실외기 뒤편에 생각지도 않은 완벽한 비둘기 둥지가 여느 집 못지않은 보금자리로 자리 잡고 있었다. 꼬물거리는 두 마리 노란 비둘기는 막 알에서 부화되었고 어미는 꼼짝도 하지 않고 온종일 품고 있었다. 입안 젖샘에서 나오는 젖을 부리를 통해 먹인다는 것에 묘한 모성애의 교감이 전해졌다. 신비롭고 거룩하게 느껴졌다. 비둘기를 퇴치해야 한다곤 하지만 베란다 외부이긴 해도 심장 박동소리가 전해져 외면할 수 없었다. 얼른 자라 스스로 둥지를 떠나기를 기다렸다. 어미가 굶고 있는 것 같아 정보를 찾아보았다. 쌀과 감자 으깬 걸 넣어주곤 했는데 잘 먹어주었다. 새끼는 어제와 다르게 커가는 것이 눈에 보였고 경이롭기만 했다. 색깔이 변하고 깃털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덧, 어미 품에서 벗어나 걸음마를 배우고 날갯짓을 연습한다. 두 마리 중 하나는 발육이 빨라 난간에 서 있기도 하고 위층 아래층을 날아다니며 야생 실습을 하는 듯 했다. 어미에게 재롱을 피우며 짖어대던 싱그러운 지저귐이 귓가에 쟁쟁하다.

자연의 섭리가 약육강식이라지만 눈앞에서 벌어진 실제상황은 처음 보는 일이라 가슴속은 구슬픈 피리소리로 그득했다. 내 집에 매달린 실외기 둥지에서 부화되어 하루하루 조심스레 지켜보던 생명이다. 품고 있는 애틋한 어미를 보며 삼십여 년 전 아이들을 키우던 시절로 되돌아가곤 했다. 미물이지만 동화되기에 충분했다. 야생으로 자립할 때까지 조력자를 자청했던 건데 못 볼 장면을 보게 되어 충격이 컸다. 붙잡히면 안 된다는 걸 알기에 빠르게 날아가던 녀석은 젖 먹던 힘을 최대한 발휘했다. 처음엔 거의 속도가 같았으니까… 점점 좁혀지는 공중의 거리를 보며 허탈한 심사는 온몸에 힘이 빠져나간 허수아비가 되어 버렸다.

겨우 젖내가 가신 여덟 살 여아가 살해당했다. 놀랍게도 여고생이 범인이다. 그녀는 공범에게 ‘사냥’하러 간다는 말을 남기고 실제 행동으로 옮겼다. 살해뿐 아니라 사체를 훼손까지 했다고 한다. 이런 기막힌 일이 있을까. 앞으로 아이의 엄마는 어찌 고른 숨을 쉴 수 있을까 싶다. 아기 비둘기의 곡예를 하듯 처절한 행방에 이리 맥없이 손발이 후들거리는데 그 다음은 상상하기도 싫다. 아직 대처할 수 없는 어린아이에게 다가선 검은 그림자를 어찌 물리칠 수 있단 말인가. 신께서도 막지 못하신, 그 아무도 손을 쓸 수 없었다는 것이 통탄할 일이다. 사냥꾼에게 무기징역을 내린다 해도 아이를 잃은 엄마의 맥박은 고요를 찾을 수 있을까. 사냥감으로 점찍어 달려들었을 악마의 모습을 떠올리자 나조차 온 신경이 꿈틀대며 경련이 인다.

아기 비둘기가 어디론가 숨어 기적처럼 숨 쉬고 있기를 염불하듯 중얼거리며 서성였다. 내려앉은 하늘만큼 우울한 날이 며칠이나 이어졌다. 불길한 쪽이 더 강했다. 깃털이라도 찾으려 했지만 굳이 확인하여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보송보송한 아가의 모습에서 내가 준 먹이를 먹고 멋진 비행과 따돌리기까지 마지막 발휘를 보여준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채어가는 걸 본 남은 아기 비둘기 한 마리는 더 구석으로 들어가 죽은 듯 웅크리고 있었다. 다음 날은 녀석마저 보이지 않았다. 아침이면 돌아가는 오래된 녹즙기 뻑뻑한 소리가 새 울부짖는 소리로 들렸다.

세상살이가 녹록지 않다. 마치 누군가의 사냥감이 되지 않기 위한 치열한 열기에 화상이라도 입을 듯하다. 엉거주춤 세상에 첫발 옮기는 유아들의 조기학습은 물론이고 태아부터 교육받는 흐름을 보며 놀란 것 또한 이미 익숙하다. 입시, 취업은 전쟁이라 할 만큼 상대를 무너뜨려야 살아남는다는 논리이며 어디서부터 잘못인지 알 수 없는 길을 무작정 쫓아가는 형상이다. 못 배우고 못 먹던 시대를 거쳐 온 부족한 것에 대처하는 어긋난 방법론이라면 과할까. 상대를 비방하고 시기하는 분란조차 끊이지 않고 있다. 보이지 않는 사냥이다. 얼룩진 인간의 양면성을 보게 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이런 험난한 세상에 어영부영 인생 한 굽이를 돌아 제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 자체로 안도의 숨을 쉬게 한다.

요란한 소리가 들린다. 둥지로 가보았다. 좁은 틈에 비둘기가 모여 있었고 애써 잊으려 했던 작은 비둘기 두 마리가 보였다. 흰 부분이 많은 녀석과 조금 짙은 회색빛을 몸에 감싼 건 새끼 비둘기들이다. 인기척을 감지한 한 마리가 난간으로 뛰어오른다. 눈을 부릅뜨고 창공을 노려본다. 깜짝 놀랐다. 엊그제 결투를 벌였던 바로 그 비둘기다. 왼쪽 목에 털이 뜯겨 솟아있는 걸 보니 그날의 상흔이었다. 녀석이 살아 돌아온 것이다. 창문을 열어 안아 주고 싶었다. 숲으로 숨어드는 것까진 확인했지만 혹 지쳐 사냥감이 되었다는 상상으로 침울했는데 녀석의 자태는 경외감이 들 정도였다. 자기방어를 제대로 한 녀석은 아직 부리도 채 여물지 않았건만 시린 눈밭을 헤치고 나온 복수초가 연상되었다. 자생하는 법을 터득한 그 자체로 대견하고 의연했다. 아침이면 둥지를 찾아온다. 목에 물린 상처로 녀석을 알아보며 내 입가는 반달 모양이 되어 일방적인 안부를 건넨다. 비둘기가 자라면서 상처부위가 점점 도타워져 목걸이라도 한 듯 훈장처럼 보인다. 사냥을 하고 사냥을 당하는 공기덩어리에 살고 있는 우리다. 하루를 이겨낸 비둘기에게 무언의 위안을 받는 걸 세인들은 갸우뚱해도 어쩔 수 없다.


▲ 이경선씨
약력

· 서울출생

· 한국문협, 국제 pen클럽회원, 한국수필가협회 운영이사, 경기한국수필가협회 회장

· 수상: 경기수필 작품상, 경기문학인 수필대상, 한국수필 올해의 작가상,

경기도문학상, 자랑스러운 경기문학인상, 수원문학 작품상 등

· 저서: 수필집『 하얀 비 』 『겹겹 기억속에 』


수상소감

“어깨 도닥이며 더 정진하라는 채찍으로 받겠습니다”

바람의 숨결이 낮아져 익숙했던 초록은 곱디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어디론가 뛰쳐나가고 싶은 걸음을 잠시 멈춰 뒤돌아보게 합니다. 생채기 내기 일쑤였던 시간들, 이상과 어긋나는 현실을 언어로 표현하고 싶은 활자들은 무수히 엉켜버렸고 균형을 잡으려 애썼습니다.

뭔가 쏟아내지 않으면 가슴 언저리에 가시라도 돋을까 자판을 두들기던 소리를 잠재운 지 오래, 영혼의 고동소리는 머뭇거리며 다시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 같아 무엇보다 기쁩니다.

맥박 뛰는 순간을 느끼게 해 준 수상 소식에 이제는 오지 않는 비둘기를 떠올립니다. 그들이 살았던 둥지를 애잔하게 쳐다볼 뿐. 한때는 평화의 상징이었던 존재에서 구박덩이가 되었지만 생명은 존귀합니다. 버릇 하나가 생겼습니다, 지나가다 비둘기를 보면 왼쪽 목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그 녀석이 방향을 틀 때까지 지켜보다 결국 실망의 연속이지만, 그 영민하던 녀석은 어디로 간 걸까… 혼자 그리워합니다. 만날 수 없는 비둘기에게 마음의 다이얼을 누릅니다. 덜 영근 부리로 쌀알을 야무지게 세던 녀석은 아마도 부쩍 자라 별 다섯 개 번쩍이는 비둘기 대장쯤 되었겠지요.

오늘 저녁, 등 시화전에 다녀왔습니다. 엷은 촉수의 파장이 심사를 안정시키며 단풍 잎사귀를 더욱 붉게 물들입니다. 단풍 속에서 머물다 오니 저도 단풍 같은 마음이 되었습니다만 부끄러워 변해버린 빨강 잎만큼이나 부족한 제 글을 놓고 고심하셨을 심사위원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인사를 올립니다. 살아온 흔적들을 남기려 넋두리를 늘어놓던 제게 어깨 도닥이며 더욱 정진하라는 채찍으로 감사히 받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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