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진한 작은 국가 사로국에서 출발해 주변의 소국을 복속시켜 성장한 나라다. 4세기 중반 이후 사로국은 영역을 팽창하며 사라, 사로, 신라란 명칭을 쓰다가 503년(지증왕 4)에 신라(新羅)라는 국호를 정식으로 채택했다. 경산을 근거지로 한 압량국(押梁國)도 102년 사로국에 투항, 편입됐다. 이후 44년만인 146년 10월에 다시 사로국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으나 곧 진압됐다. 이후 반란을 막기 위해 주민들을 모두 사로국 남쪽으로 강제 이주 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압독국은 사로국이 진한(辰韓) 12개국 연맹체의 맹주로 주변의 다른 나라들과 힘의 균형을 유지할 때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었지만 이후 사로국이 주변국을 합병시키며 세력을 확대해 나가는 과정에서 독립된 정치세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흡수된 것이다. 경산 압량은 백제의 침입으로부터 경주를 보호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군사적 거점에 설치하는 주(州)가 설치되기도 한 곳이다.

압량의 옛 지명을 압독(押督)이라고도 한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진덕여왕 2년(648년) 김유신이 압독주(州) 도독이었다는 사실과 불교를 일으킨 원효의 태생지가 압독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이런 기록을 보면 압독국이 망한 뒤에도 이곳은 신라의 요지였음을 알 수 있다.

최근 성림문화재연구원이 경산하양택지개발예정지구 내 하양읍 도리리 일원에서 발굴조사를 벌여 압독국 시대 왕릉급 무덤을 포함한 목관묘 2기를 발굴했다고 밝혔다. 이 유적은 평야 가운데 있는 임당고분군과 달리 압량들판의 끝자락, 무학산·팔공산으로 이어지는 산기슭에 있다. 1세기 전후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무덤에서 중국제 청동거울, 철검, 팔찌 등 귀중한 유물들이 한꺼번에 출토됐다. 특히나 한 무덤에서 부채가 3개나 나온 것은 처음이어서 관심을 끌었다. 규모와 부장품에서 상당한 유물들이 출토된 임당고분군을 능가한다고도 한다.

신라에 복속된 압독국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몇 줄씩 기록돼 있을 뿐이다. 하양 목관묘 발굴로 패망한 압독국의 실체를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을지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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