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자씨 제4회 경북일보문학대전 동상

이성근 화백 작
나는 편의점 냉장고 앞에서 어떤 맥주를 선택할지 잠시 멈추고, 머리 위 천장 모서리에 설치된 원형 볼록거울을 조심스럽게 올려다본다. 볼록거울 속에는 편의점 진열대를 지나 출입구 옆 계산대 안 사내가 보인다. 사내는 거울로 입구에서 대각선 끝 주류코너 앞에서 머뭇거리는 나를 훔쳐본다. 편의점 주인인 사내는 나를 여러 번 봤지만 매번 무심한 표정이었다. 어쩌다 내가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건네면 얼굴 근육만 살짝 움직일 뿐이었다. 다음날에도 사내에게 나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사내가 그럴 때 기분이 상했지만, 무슨 명목으로 다정하지 못한 죄를 따지겠는가. 오히려 그런 사내가 궁금한 쪽은 나였다. 나는 그의 말투와 옷 입는 스타일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해 봤다. 주로 그는 체크무늬 남방과 청바지를 즐겨 입었다. 짧게 깎은 머리 모양과 말끔하게 면도한 얼굴, 항상 외모는 단정했다. 그뿐만 아니라 손님이 없을 때는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결혼했다면 재민이 만한 아이가 있겠지. 재민이 일과 엮이는 것이 싫은 눈치로 미혼일 가능성이 높다. 자식이 있다면 그렇게 냉정한 얼굴일 수 없다. 손님과 주인 그 이상의 관계를 원하지 않는 비사교적인 성격 같았다. 재민이 일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나는 아는 척하며 들어왔더니 그는 무표정이다. 나는 무안해 재민이 일을 또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예민한지도 모른다. 누구든지 자신의 입장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어쨌든 그날은 내가 도움을 요청하는 입장이었다. 재민과 동민이 이 편의점 안에서 시비가 있었는데 혹시 그날 보셨는지. 보셨다면 그때 상황을 설명해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사내는 묵묵히 듣고만 있다가

“죄송하지만, 기억에 없습니다. 편의점이라는 곳이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들고, 언제 손님이 무엇을 원할지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귀는 편의점 안에 있는 손님의 동선을 따라가고 있는 상태죠.

사내는 지극히 사무적으로 말했다. 나는 감정의 동요 없이 무심하게 말하는 사내를 빤히 쳐다봤다.

“저 모르세요?”

내 목소리에 서운한 감정이 실렸다. 사내가 약간 긴장하는 것 같았다. 재민이 일이 아니라도 그동안 편의점에 온 횟수를 보면 사내가 나를 모르는 사람 대하 듯 하는 것은 옳지 않았다.

“네.”

사내의 대답은 짧았다. 표정도 변하지 않았다. 네, 라니. 안다는 말인가 모른다는 말인가. 어쨌든 사내의 성의 없는 태도에 마음이 상했다. 그때 딸랑 소리와 함께 이십 대 남자 손님이 들어왔다. 나는 계산대 한쪽 옆으로 비켜 주었다. 사내는 손님이 가리킨 담배를 뒤돌아 꺼냈다. 사내는 손님에게 카드를 받아 계산기 옆면에 갖다 냈다. 손님이 카드와 담배를 사내에게 받아들고 편의점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그때 문득 나는 깨달았다. 손님과 사내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런데 둘은 전혀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었다. 영화에서 본 계산하는 로봇이 떠올랐다.

오늘도 사내는 나를 모르는 사람처럼 대한다. 그의 눈빛은 어떤 위험을 감지하려는 듯 예민해 보인다. 짐작건대 사내는 위험시 자신만의 행동 매뉴얼에 따라 수시로 계산대 아래 벨의 위치를 확인할 것이다. 또 손님이다. 내가 순한 맥주를 찾고 있는 동안에 담배를 사 간 젊은이, 운동복 차림의 오십 대의 남자가 있었다. 그들도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잠들지 못해 편의점으로 왔을 것이다. 사내가 물건을 산 손님에게 거스름돈을 건네주기 위해서 계산기를 연다. 벽면에 부착된 시계는 열 한 시를 가리킨다.



나는 캔맥주 하나를 계산하고 도로 쪽 창가 의자에 앉았다. 사내와 마주 보는 창끝 천장에도 볼록 거울이 있다. 그 거울로 사내가 보인다. 사내는 그 거울로 안쪽 거울이 보여주지 못한 편의점 곳곳을 바라본다. 편의점 도로 앞으로 자동차 불빛이 달려왔다가 사라졌다. 유리창에 비친 나는 마치 에드워드 호퍼의 ‘밤샘하는 사람들’ 그림 속에 있는 듯했고, 뒤의 사내는 우주의 어느 지점에 놓여 있는 듯 무심하다. 사내의 얼굴은 어떤 시간도 견딜 수 있게 방부제를 뿌린 것처럼 창백하다. 이내 사내는 또 편의점 곳곳을 살핀다. 나는 다 마신 맥주 캔을 양손 손가락으로 눌렀다. 단단하게 보이던 알루미늄 캔은 손아귀 힘을 이기지 못하고 파직 소리를 내며 쭈그려졌다. 소리에 놀랐는지 사내가 내 쪽을 바라본다. 내가 창 쪽 유리로 그를 주시하자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편의점 안쪽 거울로 매장 안을 살피는 척한다. 그런 행동은 익숙하고 신속하다. 편의점은 자신의 시야 속에 있다는 자신감. 학생부장 선생도 저런 노련함이 있었다.

“최 선생,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네. 간단하게 생각해. 모두가 다 좋을 수는 없어. 아직 젊어 의욕만 앞서는데…. 최 선생은 재민이 뿐만 아니라 3학년 2반 모두의 담임이라고.”

“네…. 선생님 말씀이 맞지만, 적어도 사실관계는….”

“참, 최 선생도 한가하네, 그렇게 내 말을 못 알아들어. 딱하다.”

“재민이 거짓말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더 생각해도 마찬가지야. 걔 평소에 하는 행동 보면 몰라, 매일 지각에 선생이 야단이라도 치면 대들고…. 부모들 자식 학교 보내면 다 끝나는 줄 알아. 그리고 이번 일이 알려지면…, 학생이 없으면 선생도 없는 거야. 지금 뭘 광고하려고. 이런 일로 학생 수 못 채우면 최 선생이 책임 질 거야? 그러다가 전교 상위권인 동민이 전학 간다고 하면 어쩔 거야.“

라는 학생부장 선생의 말이 심리적으로 압박이 왔다. 며칠 동안 잠자리에 들면 가슴이 답답해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오늘은 결국, 집을 나왔다. 현관문이 닫히는 순간 늦었는데 운동가니, 라는 등 뒤 어머니의 말소리가 끊어졌다. 어머니를 걱정하게 해서 죄송하다. 그러나 그냥 재민을 전학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재민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지각하는 학생 단속 좀 잘하고, 지각을 보란 듯이 해요.”

학생부장 선생이 조회를 마치고 일부러 내 옆으로 지나갔다. 오늘도 재민은 지각이었다. 오후 수업을 마치고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었다. 누가 어깨를 가볍게 도닥여서 돌아봤다. 수학을 가르치는 하 선생이었다.

”너무 애쓰고 계시네요. 하긴 문제가 일어나면 모두 선생들 책임으로 돌리니. 그래도 동민이 엄마는 재민이 전학 가면 없던 일로 한다고 했다면서요. 그럼 그렇게 해요. 어차피 재민에게 학교는 의미가 없잖아요.“

“누구에게도 없던 일이 되지 않잖아요.”

”그럼 최 선생은 대책이라도 있어. 가끔 선생 노릇이 광대놀이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 선생도 그냥 회사원이나 마찬가지야.“

하 선생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하 선생은 요즈음 스크린 골프에 살맛이 난다고 했다.



편의점 안에는 이제 나와 사내만 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편의점 안 끝에 있는 냉장고 쪽으로 갔다. 내가 사내를 지나칠 때, 사내는 얼굴은 그대로 두고 눈만 움직여 나를 봤다. 나는 냉장고 문을 열고 가장 순한 것을 찾았다. 술을 먹으면 어머니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두려워한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때 이처럼 누구를 끊임없이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술은 가능한 내 통제 범위 안에서 먹으려고 노력한다. 지금은 내 의지가 아니라 재민 의지가 중요하다. 그런데 녀석은 사과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해명도 않는다. 오히려 전학을 보내려면 퇴학을 시켜달라고 한다. 정말 무슨 배짱인지 모르겠다. 나는 동민이 어머니에게 재민이 입장을 설명하기도 하고 대신 사과도 했다.

”왜 그 애를 감싸는 거죠.“

”감싸는 것이 아니라. 한 학년 앞두고….“

나는 동민이 어머니에게 재민이 뉘우치고 있고 학교 차원에서 그에 상응하는 벌을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동민이 어머니는 강경했다. 무조건 재민이 전학을 원했다. 폭력위원회에서 결정하라고 했다. 재민이 말처럼 자신이 먼저 주먹을 쓰지 않았다면 증거나 증인이 필요하다. 그런데 녀석은 자기 일인데도 도통 관심이 없다. 오늘 수업 마치고 교무실로 오라고 했다. 그러나 재민이 오지 않았다. 형편을 알지만 괘씸하다. 밤에 주유소 아르바이트와 병원에 계신 할아버지 간호를 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규칙은 개인의 사정을 용납하지 않는다.



거울 속 사내가 하품을 한다. 사내의 머리 위 천장 모서리에 CCTV가 빤짝인다. 나는 그 의미심장한 붉은 점에 눈을 고정한다. 이제 사내가 나를 빤히 본다. CCTV 붉은 점이 계산대를 향해 깜빡인다. 사내와 교감하며 붉은 점이 어떤 메시지를 건네는 것 같다. 나는 캔맥주 하나를 냉장고에서 꺼내 사내에게로 갔다. 얼마죠, 라는 내 목소리에 잠깐 사내는 무표정한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게 끝이다. 사내는 돈을 넣어주면 작동하는 인형 같다. 생각해보면 사내는 나에게만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카드와 캔맥주를 계산대에 올려놓는다. 사내가 카드와 캔맥주를 내게 준다. 나는 사내에게 욱하는 마음이 생긴다. 사내도 남의 일에 참견하다가 괜히 불이익을 받을까 봐 몸을 사린다.



편의점을 나왔다. 나는 편의점 옆 골목으로 가야 한다. 그 안쪽 주택 단지에 내가 사는 집이 있다. 골목 안에서 가끔 아이들이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봤다. 곳곳에 CCTV가 있는데도 아이들은 골목 안으로 왔다. 골목 안 전봇대에도 CCTV가 설치되어 있다. 나는 이곳 골목 구석구석을 잘 안다. 그 골목을 이십 년 동안 다녔다. 아마도 수많은 내가 CCTV에 찍혔겠지만, 우리는 늘 서로 낯설다. 취직하면 이 골목을 떠날 줄 알았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제대 후 임용시험이 세 번 만에 붙었다. 발령은 이년 후 났다. 발령은 집 근처로 났다. 나와는 달리 어머니는 기뻐하셨다. 집이 바로 학교 뒤편이지만, 정문으로 나가 편의점을 끼고 골목으로 들어와야 한다. 인사하고 지내는 이웃도 꽤 된다. 그래서 이웃들은 편의점 옆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을 내가 훈육해주기를 원했다. 학교와 집 사이에 편의점은 한 곳이라 가끔 갔는데 주인이 자주 바뀌었다. 장사는 그런대로 되는 것 같았다. 주인과 익숙해질 때쯤 새로운 주인이 계산대에 서 있었다. 사람에 따라 친밀감의 농도는 달라도 보통은 인사 정도는 하고 지냈다. 그런데 지금 주인 사내는 일 년이 다 되어가도 먼저 인사하지 않는다. 심지어 늘 새로운 사람처럼 나를 대한다.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다가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내가 자기 손님이니 최소한의 호의는 보여야 하지 않는가.

난 집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신천 쪽으로 내려갔다. 나무 의자에 앉아 손에 든 캔맥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일부러 제일 약한 것으로 골랐는데 캔맥주 두 개에 이렇게 몸에 열이 난다. 이 얼굴로 가면 어머니는 과거 술로 인해 일어났던 모든 일을 자신 앞으로 소환하여 걱정 눈사람을 만들 것이다. 밤은 고요하다. 어둠이 모든 시름을 덮어준 것 같이 세상이 평온해 보인다. 밤의 냄새와 섞인 흙냄새에는 어떤 힘이 느껴진다. 어머니의 땀 냄새와도 같은 흙냄새를 가슴 깊이 들여 마신다.



”콩나물에 북어 채를 넣어 끓였다.“

식탁에 앉자 어머니는 국을 내 앞에 갖다 놓았다. 어젯밤에 현관문을 닫고 집안으로 들어왔을 때 그 시간까지 어머니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지금 어머니는 내 입에 온통 신경을 쓰고 있다. 어떤 말이 나올까 자꾸 눈치를 살핀다. 어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시간을 놓치면 서로에게 좋지 않아.“

어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마늘장아찌를 밀어주면서 말했다.

“아직요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아요.”

내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려다가 머뭇거린다.

“신중해서 망치는 일보다는 서둘러 망치는 일이 더 많죠.”

말하고 나서야 나는 아차 싶었다. 재민이 일은 처음부터 어머니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식탁에 앉으면 요즈음 무슨 고민이 있느냐, 고 물어 괜한 걱정을 끼쳐드리는 것 같아 사실대로 말했었다. 이제 자꾸 물어보는 어머니가 성가시다.

”나한테 아직 화가 났니. 그런 거야.….“

”그 아이는 우리 반 아이라고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어머니는 저에게 그렇게 말하시면 안 되죠. 전 그 아이의 담임이에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어머니는 대답 대신 묵묵히 밥만 먹었다. 그 일밖에는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사람처럼. 나는 내 앞에 있던 반찬들을 어머니 앞으로 밀어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현관문을 열 때까지 식탁에서 그대로 앉아 있었다. 보통 내가 현관문을 여는 동시에 어머니는 거실을 지나 베란다로 갔다. 한번은 출근길에 수첩을 놓고 나와 다시 현관문을 열었을 때, 어머니는 베란다 난간을 잡고 고개를 밖으로 내밀고 내가 걸어가는 방향을 보고 계셨다.



수업 내내 어머니에게 화를 낸 것이 마음에 걸렸다. 어머니는 온종일 자신을 자책할 것이다. 인생 대부분을 살얼음판 걸어가듯 살아온 분이다. 내가 어머니를 그렇게 만들었다. 어머니를 생각하니 재민에게 전학을 권유하고 싶다가도 냄새나는 쓰레기봉투를 치우듯 그렇게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적어도 잘못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밝혀주고 싶었다.

”왜 때려요.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말아요, 기분 나쁘게….“

“또 무엇을 잘못해서 교무실이야.”

라며 3학년 주임 선생이 재민이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간다. 그리고 어금니를 깨문 재민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며 자리에 앉았다. 재민은 이런저런 일로 자주 교무실로 불러왔다. 당번인데 지각하고 심지어 시험 기간에도 지각을 했다. 종이 치고 시험지를 다 나누어 주었을 때 들어온 적이 있었다. 재민의 태도는 당당했다. 당뇨가 있는 할아버지가 아프셔서 병원에 모셔다드리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이유는 절박했지만,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 착한 손자의 효행이라고 말해야 할지 학교 규칙을 어긴 불량학생이라고 해야 할지, 선생은 그런 문제를 따지는 것보다 학생을 자리에 앉게 하고 시험을 계속 진행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시험은 학생 모두에게 중요하니까. 그러자 학부모 감독이 이의를 제기했다. 지금 문제를 풀고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시간 손해를 보는 거예요, 라고 말했다. 저 아이들에게 문제 풀 시간을 더 줘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그런 문제는 난해했다. 정해진 대로 수험 시간은 진행되는데 부당하게 시간을 손해 본 학생들에게 보상할 길은 없었다. 재민은 교실 밖으로 나갔다. 시간이 모자라 문제를 다 못 푼 몇몇 아이가 울었다. 또 지각한 재민은 학생부장 선생에게 훈계를 듣고 나갔다.



마침내 폭력위원회가 열렸다. 수업이 다 끝난 시간이라 학교는 조용하다. 폭력위원회의 위원은 총 7명이다. 외부 인사 4명, 학교에서는 교감 선생, 학생부장 선생, 학생지도과 선생이 참석한다. 만약에 폭력위원회에서 결론 나지 않으면 교장이 최종 결론을 낸다. 외부 인사가 한 명 더 많다. 학교에서는 되도록 학생들 간에 서로 화해하기를 원했다. 가끔 보호자들끼리 감정이 격해져 일이 커지는 경우가 생겼다. 이번에는 재민이 보호자가 없어 그런 일은 없었다. 결론을 내기 전에 재민에게 해명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재민은 같이 있었다는 아이 중 한 명도 데려오지 않았다. 아예 말도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위원회에서 회의가 끝나고 교장이 위원들을 데리고 교장실로 갔다. 어쨌든 동민이 어머니가 가져온 진단서나 상황으로 보아 재민이 가해자다. 동민은 자기 어머니와 회의실을 나갔다. 그들을 보고 있던 재민이 문이 닫히자 억울하다는 듯 문을 쏘아 보더니

“편의점 안에서 저 새끼가 내 어깨를 먼저 치고 나갔다고요.”

재민은 정말 억울하다는 말투였다.

“그럼 진단서가 없으면 동민처럼 증인이라도 있어야지.”

”그 새끼, 양아치 같이 아이들을 떼로 몰고 와 편의점 안에서 히히 거리고, 친구들과 컵라면을 먹고 있는 나를 보고 수군거리더니, 내 친구 앞에서 날 망신을 줬다고요.”

“아이들이 모른다고 하던데….”

“겁쟁이는 어떤 일이 생기면 본능적으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철저히 침묵하죠.”

“참, 기가 막혀. 너는 남의 일인 듯 말하니. 문제는 네가 권투선수였다는 것이 더 큰 잘못이 되는 거야. 운동했다는 놈이 주먹을 그렇게 함부로 사용하고.”

“자존심을 건드렸다고요. 날 보고 편의점에서 쓸 돈은 있네, 공짜인생, 라며 내 어깨를 먼저 치고 편의점을 나갔어요. 그래서 뒤따라 나갔다고요.”

“자존심은 주먹으로 지키는 게 아니라고….”

“새끼들 잘 사는 부모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녀석들이라고요.”

“너 운동 왜 그만뒀어. 작년 체전에서 금메달까지 받았잖아.”

“무슨 참견이에요.”

“너, 담임보고 새끼가 정말….”

나는 주먹을 재민이 코앞까지 가져갔다가 그만두었다. 재민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당신이 뭘 알아, 하는 눈빛이었다. 사실 재민은 실질적인 그 집의 가장이었다. 그래서 권투도 그만둔 것 같다. 학교에서 후원회를 결성해서 지원한다고 해도 생활이 문제였다. 어릴 때부터 혼자 재민을 키워온 할아버지는 지병인 혈압 때문에 찾아온 당뇨 심장병으로 올봄부터 수시로 병원에 다녔다. 약값이랑 생활비를 기초수급보조금으로 감당할 수 없어 주유소 아르바이트 식당 청소를 한다고 했다. 중학교 삼학년이지만 운동을 해서 몸이 다부졌다. 더군다나 덩치가 있고, 키가 컸다. 모르는 사람들은 고등학교 이학년으로 본다고 했다. 심지어 대학생이라고 속이고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있다는 이야기를 재민이 친구에게서 들었다. 재민은 집안일은 말하지 않았다. 아직 부모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나이. 담임인 나도 그냥 형편이 어렵다는 정도로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사정이 어려운지는 최근 같은 반 동민과 벌어진 싸움 때문에 여러 가지 조사하는 과정에서 들었다. 재민은 가난을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돈이 드는 학교 행사 때 못하는 사유를 적으라면 돈이 없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재민이 꿈은 불꽃 연출가였다. 가끔 불꽃재료를 가져와서 옥상에서 터트렸다가 일주일 동안 화장실 청소를 했다. 그래도 꿈이 있다니 안심이다. 재민을 보고 있으면 난 문득문득 지난 시간 나를 떠올렸고 재민이 눈빛 속에 옛날 내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초등학교 사학년 때.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는 빛만 남기고 꽃이 피기 시작한 봄에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친척들은 아버지가 술을 많이 마셔 간암이라 하고 또 화병이라고도 했다. 어머니는 당장 생계를 해결하고 빚을 갚아야 했다. 아는 사람의 소개로 노점에서 생선을 팔았다. 집안에서 살림만 하던 사람이 시장바닥에서 장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지 어머니 눈은 자주 부었다. 나중에 알았다. 그것은 어머니의 눈물 때문이었다는 것을. 어쩌면 나를 키운 것은 어머니 눈물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머니의 말소리가 강해졌고 눈은 더는 붓지 않았다. 그런 어머니를 웃게 해드리고 싶었다. 전교 일등 한 날, 나는 성적표를 들고 시장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어머니는 기뻐하는 대신 빨리 집에 가라고 야단을 쳤다. 다시는 시장에 오지 말라고. 그 뒤로 시장에 가도 어머니 앞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중에 알았다. 어머니는 자신의 누추한 모습과 가난 때문에 내가 열등감을 지닐까 두려웠던 것이다. 냄새나는 시장바닥에서 장사하는 것을 어머니가 수치스럽게 생각하니 나도 자연 친구들에게 숨기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늘 헐렁한 바지를 입었는데 옷에서 몸에서 생선 냄새가 났다. 아무리 씻어도 냄새는 가시지 않았다. 집에도 진득한 생선냄새가 났다. 어머니는 그 냄새에 잠식당했다.

나와는 달리 재민의 어깨는 세상 어떤 어려움도 맞설 수 있게 단단해 보인다. 내가 무슨 권리로 재민에게 전학을 말할 수 있는가. 무의미한 시간이 흘렀다. 나는 재민에게 집으로 가도 좋다고 했다. 재민은 인사도 없이 회의실 문을 열고 나갔다. 나는 회의실을 나와 교무실로 갔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창가로 갔다. 운동장은 텅 비어 있다. 재민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조금 있다가 재민이 옆으로 은회색 외제차가 지나갔다. 학교에 올 때 동민이 어머니가 타고 오던 차였다. 앞서가던 재민을 제치고 은회색 차가 먼저 교문을 빠져나갔다.



집안에 환하게 불이 켜져 있다. 평소 어머니가 잠들어 있을 시간이다. 나는 미리 늦게 들어간다고 전화했다. 어머니는 내가 돌아와야 잠을 잤다. 내가 들어오면, 안방에서 숨죽이고 있다가 나의 동선을 파악했다. 나는 욕실 문을 열었다. 문 여는 소리에 어머니는 내가 욕실에서 씻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는 언제쯤 문이 열리나 귀를 기울이고 계실 것이다. 또한, 냉장고 문 여는 소리에 안에 어떤 음식이 있는지 머릿속으로 떠올릴 것이다. 다음 날 들어와 바로 씻어야지, 방에서 한참 있다가 나오던데, 냉장고에 우유가 있었는데 저녁을 안 먹었니. 내가 그렇게 시시콜콜 물어보는 것을 싫어하는데도 오랜 습관이라 고쳐지지 않는다. 아버지 없는 아들이란 약점 때문에 어머니는 내가 작은 일탈에도 혹시 크게 잘못될까 봐 전전긍긍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그런 어머니의 바람과는 달리 지나친 간섭과 과잉보호에 난 오히려 반항심이 생겼다. 아이들과 오락실에 갔고, 밤늦게까지 시내를 돌아다녔다. 사소한 일로 친구들과 자주 다투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일 아니었다. 우리끼리 작은 싸움도 어른들이 끼어들면 큰 문제가 되었다. 화해하려고 해도 너무 벌어진 틈을 우리가 좀처럼 줄일 수 없는 경우도 생겼다. 나는 또래보다는 덩치가 컸고 싸움을 잘했다. 문제는 늘 내 상대가 모범생이었다. 그 사건도 나에게 모범생이 먼저 시비를 걸었고 난 방어를 했는데 조사 결과는 정반대였다. 상대는 손해배상과 사과를 하면 퇴학에서 정학으로 해준다고 했다. 어머니는 모범생 부모에게 용서를 구했고 그들이 요구하는 돈을 서둘러 해주었다. 퇴학은 면했지만, 난 억울했다. 적어도 누가 잘못했는지는 밝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도 가끔 불쑥 어머니에게 화가 나는 것은 아마도 그때 일을 가슴이 기억한 까닭이라고 생각한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난 어머니 보란 듯이 불량스러운 고등학생인 동네 형들과 어울려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밤새 골목을 돌아다녔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내가 갈만한 곳을 찾아다녔고 경찰서 입구를 서성이다가 돌아와 방에 불을 켜놓고 창문을 열어 골목길을 계속 보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동네 사람들에게 들었다. 그들은 나를 보고 정신을 차리라고 했다. 그런 행동은 경찰서 CCTV를 확인한 그 순간까지 계속되었다. 동네에 절도사건이 여러 건 접수되고 함께 다니던 형들이 용의자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적어도 나는 그런 일에는 가담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과 어울렸다는 이유로 경찰서에서는 나도 용의자로 보았다. 그때 어머니는 담임선생에게 매달렸다. 사실 목격자들은 그들이 본 것이 정확한지 알 수 없는데도 확신하며 말했다. 불량한 학생들은 언제나 범죄가 있던 곳에 그림자로 나타나는 것이다. 어머니는 매일 담임을 찾아갔다. 경찰서의 조서와 우리 진술서를 살펴본 담임은 동네 CCTV를 보자고 했다. 동네 형들은 변호사가 있었고 나에게는 담임이 보호자 역할을 해주었다. 나는 형들과 같이 경찰들이 보여주는 동네 곳곳의 CCTV를 보았다. 우리 패거리로 보이는 검은 무리는 술에 취한 행인을 발로 찼다. 그리고 지나가는 아가씨들에게 휘파람을 불며 위협하고, 정말 불량한 일들이었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경찰들은 도난 사건의 범인으로 골목에 자주 나타나는 여자를 주목했다. 골목 여기저기에서 같은 실루엣의 중년의 여자가 자주 보였다. 여자는 정신없이 골목을 걸어 다녔고 편의점이나 오락실을 기웃거리고 다시 골목을 돌았다. 경찰이 여자를 확대했다. 점점 얼굴 윤곽이 들어났다. 순간 나는 멍해졌다. 주변이 고요한 물속 같았다. 나는 한눈에 알아봤다.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나를 찾아 밤마다 그렇게 다닌 것이다. 세상이 내 머리 위에서 무너졌다. 그 뒤로 밤에 꿈을 꾸었다. 물속 여인은 숨을 가쁘게 쉬면서 위로 올라가려고 한다. 밑에서는 굵고 시커먼 손이 여인의 발을 잡는다.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아래를 내려다본 여인은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여인이 돌아선다. 어머니다. 놀라 깨어나면 마치 바다에 빠진 듯 땀에 옷이 흠뻑 젖어 있었다. 그때 다짐했다. 다시는 어머니가 밤길에 다니지 않게 하겠다고. 바다에 홀로 가라앉게 두지 않겠다고. 그리고 난 어머니 소원대로 공부해서 선생이 되었다.



아침에 밥을 먹는 내내 재민이 운동장을 지나는 모습이 생각났다. 그런 나를 보는 어머니의 표정이 어두웠다. 내 눈치를 보면 어머니가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나는 밥만 먹고 있었다. 불쑥 화가 나려고 한다.

“잠을 못 자니. 얼굴이 많이 축났다.”

“알아서 할게요.”

숟가락을 놓고 일어나면서 말했다. 어머니가 숟가락을 들다가 멈춘다. 걱정하지 마세요, 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순간 화를 참지 못했다. 그 화가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 학생부장 선생의 재촉 때문인지. 재민과 같이 있었지만, 그 일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하는 아이 때문인지. 전학만을 고집하는 동민이 어머니의 말, 이번 기회로 그런 폭력사태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해요. 학교에서 이런 일이 묵과되면 사회에 나가 이런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킨다고요. 본인한테도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믿어요. 보호자가 아직 전화 한 통이 없어요. 몰상식한 사람들, 정말 무개념 부모야, 그러니 아이도 그렇지요. 라는 말 때문인지. 아니면 어머니가 내가 담임인데 그래도 포기하면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아서인지….

나는 바늘에 찔리기 직전의 팽팽한 풍선 같다. 오후 수업이 끝나고 재민을 불렀다. 나는 무엇 때문에 재민의 일에 이렇게 미련을 둘까. 재민이 교무실로 왔다.

“저 전학 안 갑니다.”

재민은 의자에 앉자마자 어금니를 깨물면서 말했다. 다른 선생들이 힐끔거린다.

“편의점 주인에게 물어봤더니.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니까. 한번 가 봐. 네 얼굴 보면 마음이 달라질 거 아니야. ”

“끝난 이야기를 꺼내고 난리예요. 그리고 선생님이 편의점에 왜 갔어요.”

“왜, 라니. 너 몰라서 물어보는 거니. 편의점 주인이 봤다며. 증인신청하려고.”

“갈 줄 몰랐어요.”

“너, 지금 나를 놀리는 거야.”

재민은 지금 이 문제보다 다른 걱정거리가 있는 지 얼굴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 금방이라도 터질 폭탄을 안고 있는 사람 같다. 어머니도 늘 얼굴에 근심을 달고 살았다. 불안은 몸을 바삐 움직이는 것으로 해결했다. 아버지의 장례가 끝난 다음 날부터 시장에 나갔다. 아무리 사는 게 급해도, 저러는 것이 아닌데, 주위 사람들이 수군거려도 상주가 생선의 머리를 칼로 내려쳤다. 비위가 약해 날 것이나 비린 음식을 먹지 못하는 분이. 오로지 돈을 벌 생각으로 생선 배를 갈랐다. 가끔 몰래 숨어 본 어머니의 모습은 배달된 국수를 먹다가도 손님이 오면 젓가락을 놓고 생선의 배를 갈랐다. 그런 어머니가 그때는 가엾다기보다는 원망스러웠다. 그 원망이 나중에 내 이기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어머니의 가엾음은 내가 견디기에 힘들었다. 한목숨을 지킨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런 어머니가 어느 순간 아버지 기일이 있는 봄이 되면 바람에 꽃이 날리자 커튼을 치고 꽃이 질 때까지 무병을 앓는 무녀처럼 앓아누웠다. 그런 증상은 불현듯 어머니에게 찾아 왔다. 내가 임용시험에 붙고 정식 출근을 한 그해 봄부터였다. 그동안은 계절에 상관없이 바쁘게 사시다가 여름날의 갑작스러운 소나기처럼 그랬다. 나는 어머니의 유폐 시간을 즐겁게 지켜주었다. 이제 시간은 충분하다고. 마음껏 슬퍼하시라고. 그러다가 문득 슬픔이 옅어지고 담담한 기억으로 남을 시간이 올 거라고. 그렇게 기다리니 밥을 먹는 시간만 깨어있고 잠만 자던 어머니는 마치 감기몸살을 앓고 일어난 사람처럼 밖으로 나왔다.



속이 답답하고 목이 말랐지만, 사실 편의점 주인 마음이 혹시 바뀐 것은 아닌가 하는 희망으로 나는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나는 사내를 의식하면서 음료수가 있는 냉장고로 갔다. 사내는 볼록거울로 나를 본다. 우리는 서로를 살핀다. 나는 사내의 반응이 궁금하다. 사내가 계산대 맞은편 거울을 본다. 나도 그 거울을 본다. 사내가 긴장하는 것 같다. 나는 음료수를 들고 계산대로 갔다. 계산을 마치고 밖이 잘 보이는 창가 의자에 앉았다. 아이스크림 통 옆에서 이십 대로 보이는 남자 둘이 가볍게 주먹으로 서로 치고받는다. 헐렁한 청바지에 힙합 티셔츠를 입고 창이 있는 모자를 썼다. 반소매 티셔츠 아래 팔 전체에 문신으로 뒤덮였다. 불량해 보인다. 짧은 머리카락에 붉은 염색을 했다. 둘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편의점으로 들어온다.

“디스 둘.”

그들 중 하나가 말한다. 반말에 건방진 말투다. 몸을 건들거린다.

“면도날 있어요.”

그들 중 또 하나가 안쪽으로 걸어가며 진열대를 살피면서 말한다. 둘 다 덩치가 크다. 문신은 바깥에 있을 때보다 더 위협적이다. 나는 음료수를 한 모금 마셨는데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나 스스로 놀랐다. 가게 안에는 불량해 보이는 젊은이 둘, 이쪽은 편의점 사내와 나 그리고 CCTV가 있다. 거울에 비친 편의점 사내가 CCTV를 쳐다본다. 그들도 사내를 따라 CCTV를 본다. 사내의 행동을 여기에 여러 개의 눈이 있어, 라는 경고로 읽은 것일까?

“아저씨 나 몰라, 왜 그래. 이제 아는 척 정도는 해야지.”

“사람 무시하는 거야, 뭐야!”

그들의 말에 편의점 주인이 잠시 멈칫거리다가 억지로 웃어 보인다. 사내는 그들이 말을 할수록 표정이 밝아졌다. 마치 사람의 목소리에 지문이 있는 것처럼 인식하는 것 같았다.

“정말 이 아저씨 사람 갖고 노네. 왜 웃었어. 기분 나쁘게.”

말하는 둘의 얼굴이 붉다. 딸랑 문 여는 소리에 모두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재민이다. 나는 밖으로 나가라는 눈짓을 보냈다. 싸움이 날지도 모른다. 지가 무슨 정의 기사라도 되는 양 학교에서도 다른 아이들 일로 종종 선생들과 불협화음을 냈다. 부당하게 아이들에게 벌을 주는 선생에게는 교무실까지 따라와서 항의했다. 재민이 성큼 계산대로 가서 그들에게 꾸벅 인사를 한다. 서로 아는 사이 같았다. 재민이 음료수를 들고 오더니 연신 몸을 그들에게 굽실거린다. 재민은 세상 풍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아는 것 같았다. 재민이 계산하고 그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재민은 나를 보고 인사도 하지 않았다. 누구 때문에 내가 여기에 있는데, 나도 따라 나갔다.



나는 재민을 데리고 커피점 구석 자리에 앉았다. 둘은 창밖에 차가 지나가는 것을 무심히 본다. 막상 그들과 이야기를 마치고 가는 재민을 불러 세워 데리고 왔지만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막막하다. 다행히 재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진짜 부탁하실 줄 몰랐어요.”

“뭘.”

“편의점 주인에게 저를 봤다고 증언을 서달라고 하실 줄은…”

“내가 언제…”

“그랬잖아요. 편의점 주인도 모른다고”

“그래, 그랬어. 그런데 기억에 없데.”

“맞아요. 모르는 게 아니고 기억에 없는 거예요.”

“너, 그럼 거짓말을 했니. 나쁜 놈. 나는 널 믿었다. 그런데…….”

“선생님, 눈을 다 믿으세요. 보이는 것이 다 사실일까요.”

“무슨 소리야.”

“주인은 절 몰라요. 그리고 선생님도 다른 사람도 몰라봐요.”

“그게 무슨 소리야, 눈이 안 보인다는 말이야.”

“눈은 보여요.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니.”

“정말인가 봐요. 저도 처음에는 믿지 않았어요. 사고가 있었데요. 바다낚시 가서 눈앞에서 아들이 파도에 휩쓸려 가는 것을 잡으려다가 아저씨도 빠졌는데 간신히 아저씨만 구조됐는데 그 뒤로 사람 얼굴을 몰라본데요. 주인아주머니만 알아보고. 여러 사업을 했지만 어려움이 많았나 봐요. 편의점은 단순히 물건을 계산해주는 것이라 시작한 것인데. 조금 전처럼 시비를 거는 사람이 있어요.”

“정말이니, 믿기지 않는데, 그러고 보니 그동안 주인 행동이 이해되기도 하다.”

“저 전학 가고 싶어요. 가라고 해서 가는 거 아니에요.”

“뭐, 전학을 간다고.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된다.”

“쌤 빽으로 안 가도 되지만, 난 기술고등학교에 갈 거니까. 어느 학교에 가든 상관은 없어요. 할아버지가 어제 요양병원에 가셨어요. 헤어지는 것이 슬펐는데…. 오히려 그편이 나을지도 모르죠. 난 기숙사에 있으면 돼요.”

“그런데 갑자기 전학 가려고 하니.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잖아.”

“모든 게 달라졌어요. 선생님이 제 말을 믿어주셨잖아요. 그러면 됐죠.”

“응, 뭐가 그렇게 싱겁니. 그런데 어떻게 생활을 할까. 얼굴을 모르면…….”

나는 궁금했다. 그가 눈으로 본 것 중에 그의 기억 속에 무엇이 남아 있을까, 얼굴 없는 기억이 존재할까?

“안면실인증, 아저씨 병명이에요. 저도 아저씨에게 그날 일을 증언해달라고 화를 냈거든요, 그때 이 층 살림집에 있던 아주머니가 나오셔서 설명해주셨어요. 그 뒤로 일부러 와 보기도 해요. 나도 아버지 얼굴을 모르니까.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가 그리우면 아저씨 생각이 나요. 이상한 것은 저 아저씨를 보고 가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세상 모든 것이 다 사소하게 느껴져요. 아저씨 기억은 무채색이라 머릿속에는 텅 비어 있겠죠. 하지만 내 기억 속에는 할아버지도 있고, 또 선생님도 있으니. 저 아저씨보다는 부자죠.”

재민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한다. 그런 재민을 바라보면서 나도 기억 속의 얼굴을 더듬어 본다.


▲ 김명자


약력

· 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수상소감

“글쓰기는 나를 성찰하고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줘”

바람에 꽃잎이 흩날렸다. 아, 시간이 이렇게 또 지나가는가, 깊은 숨을 몰아쉰다. 언제부터 난 홀로 외로웠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외로웠는지 외로워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 모르게 외로웠다. 그런 상태로 오랫동안 글을 쓴 것 같다. 글이 잘 되지 않아 가족을 힘들게 할 때도 있었다. 그런 나를 이해하는 것은 그들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부족함에 늘 이유와 핑계를 다른 곳에서 찾았다.

문득 꽃잎이 떨어진 자리를 본다. 푸른 풀잎 위에 붉은 꽃잎이 화사하다. 풀밭이 꽃밭으로 변했다. 꽃은 떨어져도 꽃이었다. 난 언제 꽃이 되나. 시간은 이렇게 가고 있는데.

길이 보이지 않았다. 글 쓰는 것에 자신이 없어졌다. 주저앉아 있었다. 당선 소식은 단비였다. 다시 일어났다. 문득 고개를 드니 노란 은행잎이 꽃이 아니라도 보기 좋다. 돌아보니 글은 나를 조금씩 성찰하게 하고 좋은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어머니는 병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셨다. 나는 단지 그 고통을 지켜보는 일밖에는 할 수 없었다. 나의 어머니는 다른 사람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도 마음을 살펴야 한다고 말씀하신 분이다. 언제나 상처 입은 사람을 외면하면 안 된다고 하셨다.

상처를 가진 사람에게 무심하지 않으면서 어떤 삶이 진실 되고 올바른 삶인가 고민하면서 살 수 있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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