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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동상] 타일조각

김충섭씨 제4회 경북일보문학대전 동상

경북일보 kb@kyongbuk.com 등록일 2017년11월30일 16시29분  
유병수 작
잠에서 깨어난 남자는 두개골이 빠개지려는 걸 참고 아내에게 아스피린 한 알을 달라고 했다. 물 한 컵과 함께 약을 삼킨 그는 다시 잠을 청해 보려 했다. 하지만 아스피린이 체내에 흡수된 뒤에도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통증의 발원지는 뒤통수 안쪽 어디쯤이었다. 손가락으로 뒤통수를 꾹꾹 눌러보았다. 누르는 압력만큼이나 통증이 부풀어 올라왔다. 뒤통수를 누르는데 문득 한 여자가 떠올랐다. 두통이 시작된 건 아마도 그 여자가 매장을 다녀간 뒤부터였을 것이다. 정확히 그 여자로 인해 두통이 시작되었다고는 볼 수 없지만 묘하게 시기가 겹친 건 사실이었다. 치맛자락과 어깨, 손목에 레이스가 달린 흰색 계통의 투피스 차림, 눈이 아릴 정도의 투명한 피부,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던 시선 등등. 기묘하기 짝이 없는 여자였다. 여자가 다녀간 뒤부터 남자의 일상이 조금씩 뒤틀리고 금이 가기 시작한 건, 어찌되었건 사실이었다.

통증이 멈추지 않자 남자는 두개골을 따서라도 그곳을 도려내고 싶었지만, 그건 가능한 일이 아니기에 약국을 찾았다. 남자는 약사에게 머릿속에서 뾰족한 뭔가가 굴러다니는 것 같다고 증세를 설명했다. 약사는 커피, 스트레스, 추운 날씨, 혈관 따위를 들먹이며 두리뭉실하게 두통의 원인을 지적했다. 그리고 네 알의 알약과 두 병의 약병을 건네주었다. 그는 처방받은 약을 하루 두 번에 걸쳐 나눠 먹었다. 약효는 금방 드러났다. 하지만 약효가 떨어질 무렵인 자정이 넘어가면 어김없이 그 놈이 또 찾아왔다. 약발 따위로 나가떨어질 놈이 아니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잔병치레를 거의 하지 않은 편이었다. 병원에 가는 일이 거의 없던 그에게 통증은 낯설고 어색한 불청객이었다. 그는 두통과 맞서기 위해 장기전을 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예감했다.

여자가 찾아온 그날 그는 평상시와 다름없는 하루 일과를 보내는 중이었다. 남자가 매일 같이 일하는 매장은 회색 대리석 석재로 외장을 두른,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4층 건물이다. 1층부터 4층까지 도로를 면한 쪽은 통유리가 부착되어 먼발치에서도 건물 내부전경을 상세히 볼 수 있는 구조다. 1층 유리창 전면엔 제각기 색상과 치수가 다른 양변기가 전시되어 있다. 그래서 그곳을 통과해서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나, 회사에 가야하는 직장인들, 마트나 시장에 가야하는 주부들은 반강제적으로 양변기들을 봐야 한다. 자주색, 핑크색, 아이보리색. 소형, 중형, 대형의 사이즈. 물탱크가 부착되어 있는 일체형과 그렇지 않은 분리형. 지난 몇 년간 전시부스에 설치된 양변기들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아왔다.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는 오후가 되면 통유리 너머로 웬 여자가 의자에 앉아 뜨개질 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지난 몇 달간 유리창 너머를 유심히 봐 온 사람이라면 여자의 배가 서서히 불러오고 있다는 것도 눈치 챘을 것이다. 아울러 혈색도 점점 젖빛으로 변해간다는 것도.

산달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여자는 가급적 가게출입을 삼갔지만 오후 2시가 되면 어김없이 매장에 들른다. 남편에게 점심도시락을 주기 위해서다. 남편이 식사를 다 마친 뒤에도 그녀는 바로 떠나지 않고 저녁 무렵까지 뜨개질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뜨개질을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뜨개질이 태교에 좋다고 어느 잡지책에서 읽은 이후로 그녀는 난생 처음으로 가지각색의 실 꾸러미를 사들고 매장으로 와선 서툴지만 인내력 있게 올 겨울 남편에게 입혀 줄 스웨터를 짜곤 했다. 뜨개질을 하기 전엔 주로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인터넷쇼핑을 하며 소일했었다. 그녀는 인터넷쇼핑에 관한 한 거의 도사나 마찬가지다. 수많은 사이트들을 줄줄 꾀고 있고 가장 저렴하면서도 양호한 제품을 몇 번 마우스를 클릭함과 동시에 찾아내곤 했다. 곧 세상으로 나올 아기에게 필요한 출산용품들도 거의 인터넷으로 구입했다. 그녀는 정말 인터넷 속에선 사야 될 것들, 꼭 필요해서 사지 않으면 안 될 것들이 쉬지 않고 쏟아져 나온다며 남편에게 하소연 했다. 남편은 그런 그녀를 두고 넌 중독자야, 인터넷쇼핑 중독자, 알아? 라며 빈정거리며 놀려댔다. 그러면 그녀는 남편을 향해 한쪽 입술을 실룩이며 내가 언제 허투루 물건 사는 거 봤어요? 다 필요해서 사는 거라고요, 라며 대꾸했다. 그녀가 뜨개질을 하는 동안 남편은 컴퓨터 앞에서 엑셀파일에 저장된 재고물품을 확인하거나 거래처의 주문내역이나 미결재된 금액들을 꼼꼼히 체크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이 각자의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 문제의 그 여자가 들어왔다. 여자의 등장으로 남편과 아내는 각자 자리를 바꿔 앉아야 했다. 남자는 고객응접용 탁자로 다가가 여자에게 자리를 권했고 아내는 남편이 있던 컴퓨터 앞에서 뜨개질을 계속했다. 여자는 자리에 앉지 않고 매장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각종 수전들, 액세서리들, 타일들, 도기들을 훑어보았다. 남자의 아내가 차(茶)라도 한잔 드릴까요, 라며 물었을 때도 여자는 좀 더 둘러보고요, 라고만 한 뒤 2층으로 오르는 계단으로 향했다.

2층엔 두 개의 욕실부스와 타일샘플들, 그리고 중형, 대형사이즈의 소변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여자는 유리판으로 된 파티션을 손으로 더듬고 주황색 욕조의 마블 재질, 크롬으로 도금된 해바라기 샤워기, 장미문양이 새겨진 벽타일을 차례대로 만지작거렸다. 손가락 끝으로 물건을 더듬던 그녀가 어느 순간 시선을 전면유리 너머의 거리풍경에 고정시켰다.

여기선 법원건물이 한눈에 다 들어오네요.

유리너머 길 건너편에는 붉은 색 벽돌로 축조된 ‘옛 법원 건물’이 위치해 있다. 지금은 법원이 다른 곳으로 이전해서 몇 년째 흉물스럽게 방치되고 있는 건물이었다. 일제시절 지어졌다는 그 건물의 청사 앞마당에는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낙엽과 잡초, 그리고 흙먼지가 나뒹굴었다. 건물을 바라보던 여자가 고개를 돌리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여자가 드디어 용무를 밝혔다. 깜빡했어요. 미안해요. 오래 기다리게 해서. 사실 저희 집 욕실을 리모델링할까 해서 왔는데 제가 워낙 아는 게 없어서요. 용무를 밝힌 여자는 차분하게 매장 중앙에 있는 탁자 앞에 앉았다. 그 탁자는 1층에 있는 것과 같은 모양의 것이었다. 만곡형의 다리가 놓인, 남자의 아내가 인터넷 쇼핑몰 사이트에서 순식간에 찾아낸, 새로운 디자인에다 내구성과 안정감, 색상이 좋다고 광고에 나왔던 것이었다.

여자의 얼굴을 마주한 남자는 눈이 부셨다. 그녀를 바라보는 상대방의 모습이 고스란히 투영될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래서 남자는 얼마간 여자를 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시선을 어디에 두든 그 시선으로 인해 여자의 어딘가가 훼손될 것만 같았다. 깨지기 쉬운 도기를 어루만지듯 여자를 바라볼 때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정도였다. 여자가 말했다. 종종 지나다 이 가겔 한 번씩 봤어요. 부인과 다정하게 계시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더라고요. 남자가 네, 하고 짧게 말했다. 출산일이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더군요. 여자는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자꾸 뜸을 들였다. 용무가 있어 들렀다기보다는 그냥 수다나 떨기 위해 찾아온 사람처럼 굴었다. 남자는 여자와 어떻게 대화를 풀어나가야 할지 머리를 굴렸다. 방금 전까지 하다 만 잔무들이 생각났다. 월말이 가까워져 밀린 일들이 산적했다. 본론으로 빨리 들어가지 않는 여자 때문에 조바심이 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걸 내색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친절하고 끈기 있게 손님을 응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는 모르지 않았다. 실례지만 댁이 어디쯤 되시죠? 필요하시다면 제가 잘 알고 있는 인테리어 업자나 설비업자를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직접 현장을 방문해야 대충 견적이 나오니까요, 라고 말했다. 여자는 아! 참 내 정신 좀 봐, 라며 매장을 찾아온 이유를 다시 되새겼다. 전 저기 옛 법원 건물 뒤편에 있는 00상스에 살고 있어요. 입주 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손 볼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에요. 솔직히 이사를 정말 잘못 온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그건 저희 남편도 같은 생각이에요. 어디 하나 맘에 드는 구석이 없는 곳이에요. 그녀는 몸 어딘가에 징그러운 벌레라도 들러붙은 양 눈살을 찌푸렸다. 00상스라면 근동에서 같은 평형대의 아파트 중 분양가가 가장 비싼 곳이었다. 유럽형의 최고급 브랜드 아파트라고 소문이 자자한 곳이었다. 인근주민들이 가장 선망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입주가 시작된 지도 제법 지나 리모델링 주문도 거의 없는 편이었다. 의뢰가 들어오려면 향후 몇 년은 더 기다려야 된다는 게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아파트를 탐탁찮게 여기는 것 같았다. 남자는 대충 얼마정도 예상하고 계신가요? 라고 물었다. 여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얼마라뇨? 그러니까 제 얘기는 대충 생각하시는 금액이 있으실 거 아닙니까. 그래야 저희도 거기에 맞게 자재를 준비할 수 있으니까요. 여자를 대하는 남자는 극히 사무적인 어조로 바뀌었다. 여자가 말뜻을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글쎄요, 전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쪽에게는 그게 중요할 수도 있지만요. 제 말은 돈이 문제가 아니라 제가 쓰고 있고, 또 우리 아이와 남편이 쓰고 있는 욕실을 좀 더 우아하고 격조 높은 공간으로 바꾸고 싶다는 거예요. 그건 비싼 자재를 들이거나 돈으로 도배하는 거완 차원이 다른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가격으로 따지면 지금 있는 욕실도 충분히 고가의 자재로 세팅되어 있으니까요. 무슨 말인 지 이해되세요? 여자의 단호한 어조에 남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도대체 뭘 하자는 거지, 이 여자. 여자를 상대하는 게 점점 거북스러워졌다. 남자가 내일 중으로 집을 방문하겠다고 하자 여자는 며칠 뒤 다시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있잖아요, 아름다움이라는 거, 그건 말이에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거예요. 여자는 남자에게 다짐이라도 받아 두겠다는 투로 말했다. 남자는 다시 할 말을 잃었다.

그들이 1층 매장으로 내려왔을 때 남자의 아내는 어느덧 고객접대용 의자에 앉아 수를 뜨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실 뭉치들이 나동그라져 있었다. 여자가 수를 뜨고 있는 남자의 아내를 향해 말했다. 출산일이 언제쯤 되시죠? 남자의 아내가 다음 달 초순경이라고 대답했다. 여자가 다시 남자를 향했다. 남편 되시는 분은 행복하겠어요, 두 분 참 금실이 좋아 보이네요. 여자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

남자는 여자가 나간 뒤에도 한동안 멍한 상태로 서 있어야 했다. 뒤통수를 한 대 가격당한 기분이 들었다. 가격당한 부위에 쩍, 하는 소리와 함께 금이 갔다. 미세해서, 워낙 미세해서 그게 어디인지 찾아보려 했지만 육안으로 감지될 수 있는 금이 아니었다. 그 실금 사이로 쏴아, 하고 시린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뭔가가 그의 내부로 틈입한 것이다.

아름다움이라는 것……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

그는 여자의 표정 속에서 어떤 경멸을 읽었는지도 모른다. 숱하게 많은 손님들을 상대해 온 그였다. 한 눈에 손님의 성향이나 취향을 파악할 수 있는 안목 정도는 있었다. 하지만 이 여자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가격이 맞지 않다든지, 시공이 마음에 안 든다든지 해서 언성을 높이는 경우는 더러 있었지만 아름다움 뭐 어쩌고 하면서 빈정거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다른 고객들과는 뭔가 다른 뉘앙스를 풍기는 여자였다.

두통이 차도가 보이지 않자 남자는 며칠 뒤 다른 약국을 찾았다. 다른 약사는 이번에는 몸속의 가스를 얘기했다. 몸속의 가스라! 남자는 며칠 전에 들은 커피, 스트레스, 추운 날씨, 혈관보다 가스가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약사가 설명을 이어갔다. 내장에 들러붙은 가스가 혈관을 타고 뇌에까지 전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듯한 설명이었다. 그는 약사의 말에 수궁했다. 몸속 구석구석 자리 잡은 찌꺼기에서 뿜어져 나온 가스가 배출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 뇌를 건드리다니, 정말 그럴듯하지 않은가. 하지만 약사가 조제해 준 약을 일주일가량 복용했지만 차도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약을 복용한 몇 시간만 통증은 잠시 사라졌다. 그러다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놈이 나타났다. 뭔가 뾰족한 것이 뇌의 안쪽 벽을 긁어대고 있었다. 그는 약사에게 정말 병원에 가 봐야 되는 건 아닌지 물어보았다. 약사는 그거 CT 촬영해도 잘 잡히지 않는 겁니다, 라고 설명해 주었다. 확신에 찬 어조였다. 그는 다시 약사를 믿어보기로 했다.

며칠 뒤 여자가 다시 찾아왔을 때 부부는 그때 점심을 먹고 있었다. 밥알을 씹다말고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여자를 맞았다. 여자는 제가 괜한 시간대에 왔나 보군요. 하던 식사들 계속 하세요. 전 위에 있는 매장을 좀 둘러보고 있을게요, 라고 한 뒤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 무슨 중요한 용무라도 있는 사람처럼 서둘러 계단을 밟았다. 남자는 여자가 며칠 전과 다른 색상의 옷을 입고 왔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원색에 가까운 흰색 투피스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우중충한 황토빛깔이었다.

와장 창창……쨍그랑……

2층에서 뭔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린 건 남자가 식사를 마치고 숭늉을 들이킬 때였다. 그는 놀란 아내를 진정시키고 황급히 2층 매장으로 올라갔다. 여자가 매장 한 구석에 주저앉아 있었다. 바닥에는 깨진 타일조각들이 널려 있었다. 여자는 많이 놀란 듯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떨어진 타일과 남자를 번갈아 봤다. 남자가 괜찮은지 물었다. 그녀는 죄송해요, 단지 촉감을 알고 싶어서 만진 것뿐인데 그만 떨어뜨리고 말았네요, 라며 일어나려다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충격이 가시지 않은 기색이었다. 남자가 다가가 부축해 일으켜 세워 주었다. 가까이에서 바라 본 그녀의 얼굴에서 역시나 투명한 광채가 빛났다. 붉게 물 든 뺨 너머로 혈관을 통해 흐르는 피가 여과 없이 그대로 투영될 정도로 티 없이 맑은 피부였다. 눈망울은 얼굴보다 더 붉게 충혈 되어 있었다. 짙은 선홍색의 동공도 심하게 흔들렸다. 거기다 흐트러진 몇 올의 머릿결이 이마를 가로질러 코끝까지 흘러내렸다. 단지 타일을 떨어뜨리고 바닥에 넘어졌다고 해서 보일 수 있는 반응치곤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여자는 어딘가 훼손되어 있었다. 뭔가가 여자를 할퀴고 지나간 듯 보였다. 상처 입은 그녀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치마에 묻은 먼지를 손으로 털어 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전 단지 이 타일이 마음에 들어서요. 여자는 바닥에 떨어진 타일 조각을 집어 들며 남자에게 보여주었다. 날카롭고 뾰족한 타일 조각이 그녀의 손에 들려 있었다. 흑갈색의 울퉁불퉁한 무늬의 타일이었다. 저희 집 욕실 벽에다 장식해 놓으면 그럴싸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남자는 좀 난감했다. 우중충한 색상이라 조명이 어두운 야간업소의 벽면 같은 데나 어울릴법한 것이었다. 더욱이 진열된 지 오래되어 재고가 있을 지도 확실치 않았다. 새로운 샘플로 갈아치우지 못한 게 실수라면 실수였다. 남자는 자신의 생각을 여자에게 설명했다. 하지만 여자는 막무가내였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전 이 색상이 맘에 들어요. 알겠어요? 이게 아니면 안 돼요. 사장님도 한 번 보세요. 가볍게 튀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어둡지도 않은, 마치 선사시대의 동굴 벽화를 떠올리게 하는 색상이잖아요.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어요. 전 예전부터 토굴 느낌이 나는 색상을 좋아했어요. 제 욕실 분위기와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이걸로 해 주세요.

……토굴 느낌이 나는 욕실이라……

확실히 범상치 않았다. 기이한 취향을 가진 여자였다. 그는 아무리 설명해도 그녀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재고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본사에 전화를 걸었다. 상품번호를 알려주자 전화를 받은 상대방은 코웃음부터 쳤다. 그게 언제 나온 물건인데 아직까지 있어. 다른 거 주문하면 안 돼? 비슷한 색상도 많은데 왜 하필 그거야. 남자는 다시 애원조로 말했다. 손님이 그게 아니면 안 된다니까 그러지. 공장에 전화 넣어서 한 번 확인해 줘. 금액은 상관없다니까. 전화 속의 남자가 다시 말했다. 전화 하나마난 걸 몰라서 그래, 벌써 단종 되었을 게 뻔한데. 하여튼 알아는 볼게. 참 타일 이름이 정확히 뭐였지? 남자가 록산나 라고 말해주었다. 통화가 끝나자 옆에 있던 여자가 물었다. 어머 이 타일 이름이 록산나가 맞아요? 남자가 그렇다고 했다. 여자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어쩜, 이름까지 맘에 드네. 록,산,나. 여자는 타일 이름을 스타카토 식으로 또박또박 끊어서 발음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마치 페르시아 왕국의 여왕 이름 같지 않나요?

록산나……페르시아 왕국의 여왕……

여자가 만면에 미소를 띠며 함빡 웃었다.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웃음이었다. 사장님 꼭 구해주셔야 돼요. 전 이거 아니면 안 돼요. 약속하시는 거죠. 여자는 새끼손가락을 들어 구부리는 시늉을 하고는 1층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1층 매장에 있던 남자의 아내는 어느새 탁자위에 있던 그릇을 치우고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여자는 남자의 아내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출산 준비는 잘 되고 계시죠? 지금이 제일 불안할 때에요. 자연분만으로 하실 거예요, 인공분만으로 하실 거예요? 산후조리원은 알아 봐 두셨나요? 베넷과 속싸개는 주는 병원이 있고 또 준비해오라는 병원이 있더군요. 궁금한 점이 있으면 제게 물어보세요. 여자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고 속사포처럼 내뱉자 남자의 아내는 말없이 여자를 노려보기만 했다. 경계의 눈빛이었다. 아무런 대꾸가 없자 여자는 머쓱했던지 그럼 전 이만, 하고는 매장을 나가버렸다.

여자가 나가자 아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저 여자 어딘가 좀 이상해요, 안 그래요? 남편이 되물었다. 뭐가? 모르겠어요. 그냥 이상해요. 눈빛도 예사롭지 않고 좀 오싹해요. 남편은 아내를 진정시켜 주었다. 당신이 예민해져서 그런 거야. 집에 가서 쉬어, 어서.

하지만 아내를 돌려보내고도 남자는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늦은 저녁까지 가게에 남아있었지만 낮에 다녀갔던 여자가 계속해서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책상에서 일어났다. 냉장고에서 캔 맥주 하나를 꺼내 들고 유리창 앞으로 다가갔다. 바깥 정경을 내다보며 맥주를 홀짝였다.

그 여자에게서 어떤 범접할 수 없는 자태가 느껴진 건 사실이다. 그녀는 다른 고객들과는 다른 방식의 주문을 의뢰했다. ‘아름답고, 우아하고, 격조 있는’ 따위의 주문은 너무 추상적이고 막연한 요구였다. 남자는 여자가 원한다면 최고급 수입품만 취급하는 거래처를 통해 고가의 자재를 들일 수도 있었다. 그건 공사를 진행하는 설비업자나 견적을 내는 인테리어업자, 그리고 중간 도매상인 자신 모두에게 상당한 이문이 남는 거래였다. 하지만 고가의 자재를 들인다고 해서 여자를 만족시켜줄 지는 의문이었다. 여자는 ‘다른 무엇’을 추가로 주문했다. 돈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어떤 것을 기대하고 있는 눈치였다. 까다로운 요구였다. 그녀의 취향을 만족시킬만한 방법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맥주 캔을 우지직 구기고는 다시 컴퓨터가 놓인 책상 앞에 앉았다. 하지만 모니터 화면에 있는 도표와 자잘한 숫자들이 눈에 잡히지 않았다. 대신 핏발이 곤두서 있던 여자의 선홍색 눈빛만 어른거렸다.

남자는 이 업계에 몸담아 온 지난 10여년을 떠올렸다.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가업이라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결정이었다. 부친의 말을 빌리자면 말을 떼기도 전에 가게를 기어 다닐 때부터 타일을 만지작거렸다고 한다. 대학에서 전산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잠시 회사를 다니긴 했으나 워낙 어릴 때부터 보고 배운 게 장사수완인지라 월급쟁이 생활이 몸에 맞지 않았다. 회사를 사직하고 부친의 가게로 들어온 그는 포터를 끌고 다니며 납품하는 것부터 시작해 타일시공, 배관설비, 양변기 설치까지 일일이 현장을 누비며 밑바닥부터 실력을 다져왔었다. 그렇게 잔뼈가 굵어왔다. 작업 현장의 견적을 내는 법, 단가를 후려치는 법, 종업원들을 다루는 방법 하나하나까지 부친의 조언을 들으며 몸으로 겪어온 세월이었다. 부친이 은퇴한 이후에도 매장은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지금 이 건물은 그 동안 밤낮없이 일에 매달려 보내온 땀과 노력의 결실이었다. 얼마 전에는 일에 몰두하느라 늦어진 결혼도 했고 곧 있으면 아이의 아빠가 된다. 이제 번듯한 한 가정의 가장이 된 것이다. 누가 봐도 어느 것 하나 뒤질게 없는 반듯한 인생이었다. 하지만 그 낯선 여자의 출현으로 촉발된 가슴 한 구석의 불안은 어딘가 석연치 않았다.

그때였다. 불시에 그놈이 다시 찾아왔다. 투통이 시작되고 있었다. 뭔가 뾰족한 것이 자꾸 뒤통수를 찔러왔다. 남자는 책상 서랍에 있는 약봉지에서 알약을 꺼내 집어삼켰다. 약사의 말이 맞다면 밖으로 걸러지지 못한 노폐물들이 쌓여 몸속에 농축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출구를 찾지 못한 가스들이 몸 안을 마구 휘젓고 돌아다닐 것이다. 녀석들이 한 짓들은 고스란히 통증이라는 형태로 되돌아 왔다. 문득 몸속에 쌓여 있는 노폐물들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도대체 어떤 녀석들이기에 이토록 나를 괴롭힌단 말인가. 놈의 정체가 무엇이었건 고약한 성깔을 가진 건 분명했다.

며칠 뒤 여자는 연분홍 계통의 투피스 차림으로 다시 가게를 찾아왔다. 가게 안이 온통 분홍빛으로 화사하게 물들어갔다. 2층으로 올라간 그녀는 바깥 정경이 내다보이는 전면 유리창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한동안 미동도 없이 유리문 너머를 응시하기만 했다. 등 뒤에 있던 남자가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앞전에 부탁하신 록산나는 이미 생산이 중단되어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 말고도 다른 게 많으니까……. 남자가 채 말을 마치기도 전에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졌다가 다시 환하게 밝아졌다. 됐어요, 그렇담 할 수 없죠. 없는 걸 억지로 만들 수도 없는 거고, 오늘 제가 온 건....... 여자가 다시 고개를 돌려 유리문 너머를 손짓했다. 저기 옛 법원 건물이 보이시죠. 전 가끔 날이 어두워지면 저 안으로 들어가요. 물론 출입문이 굳게 닫혀있지만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담장을 넘어갈 수 있다고요. 전 저 곳이 맘에 들어요. 남자는 여자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대체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지. 남자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여자가 다시 말했다. 마당에는 낙엽들이 수북이 쌓여있고 건물의 붉은 벽돌은 마모되어 귀퉁이가 날아갔다든가 먼지가 덮여 변색되어 있어요. 건물이 침식되고 있다고요. 죽어가고 있어요, 저 건물이. 저기서 전 조용히 벤치에 앉아 몇 시간이든 보낼 수 있어요. 여자가 심상한 눈길로 남자를 바라보자 남자는 좀 무섭지 않습니까, 외진 곳인데, 라고 말했다. 여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전 바로 그 점이 맘에 들어요. 벤치에 앉아 가끔 이 가겔 바라보곤 했지요. 솔직히 부러웠어요, 두 분. 여자가 알 듯 모를 듯 고개를 갸웃거렸고 다시 정면 유리창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말인데 욕실 타일은 접어두고요, 저희 집 벽난로를 좀 손볼까 하는데. 벽난로요? 남자가 반문했다. 네. 벽난로요. 사실 그게 진짜 벽난로는 아니거든요. 전기 스위치만 누르면 불이 들어왔다 꺼졌다 하는 건대 진짜 벽난로를 우리 집 거실에 설치하고 싶어요. 여자는 손가락으로 유리창 너머의 법원 건물을 가리켰다. 저기 저 붉은 벽돌로 만들어 주세요. 저 붉은 벽돌은 제게 어떤 영감을 줘요. 식민지 풍의 저 건물도 마음에 들고요. 가능하죠? 왜 영화 같은데 보면 나오잖아요. 양탄자가 깔린 거실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온 가족들이 오순도순 저녁 한때를 보내는 거. 물론 그 옆에 시베리안 허스키 한 마리가 꾸벅꾸벅 졸고 있으면 더 금상첨화겠죠. 그게 제가 원하던 삶이었어요. 여자는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자신의 거실 안에 비치해 놓은 벽난로의 열기가 뺨에 닿기라도 한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식민지풍의 붉은 벽돌 건물……벽난로……양탄자……시베리안 허스키……

여자는 점점 요령부득이 되어갔다. 남자는 여자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눈자위가 살짝 풀어진 그녀의 얼굴에서 환희가 번져갔다. 입 꼬리가 말려 올라가고 시선은 먼 허공을 응시했다. 아주 천박해 보이는 미소였다. 학창시절 미술책에서 봤던 클림트라는 화가의 그림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환각에 사로잡힌 미소였다.

남자는 여자에게 묻고 싶었다. 당신이 요구하는 걸 정말 내가 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들어줄 수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나를 골탕 먹이기 위해 요구하는 건지. 처음 가게를 찾아온 날부터 행색이 어딘가 이상했지만 그래도 긴가 민가 했었다. 하지만 이제 여자의 실체가 분명해졌다. 둘 중 하나였다. 진짜 미쳤거나, 아니면 아주 교활하거나. 남자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갔다. 그가 유리문 너머를 가리켰다. 그러니까 저기 있는 붉은 벽돌을 떼어다 거실 벽난로를 만들어 달라 이거지요. 당장 해 드리지요, 언제부터 하면 되죠. 아주 그럴싸하게 만들어 드리지요. 남자의 빈정거리는 말투가 거슬렸는지 여자가 정색을 했다. 지금 농담하는 줄 아나본대 절대 농담 아니에요. 여자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남자는 더 이상 여자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상대할 가치도 없었다. 그리고 지난 며칠 동안 이 미친 여자에게 농락당한 사실을 떠올리자 갑자기 울화가 치밀었다. 남자는 여자에게 당장 나가달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여자는 제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손님한테 이렇게 무례해도 괜찮은 건가요. 여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덩달아 눈빛도 흔들렸다. 하지만 그는 빨리 여자를 가게에서 내쫓고 싶을 뿐이었다. 다 필요 없으니 당장 나가 주세요, 당신이 원하는 거 다른 데 가서 알아보세요. 남자가 여자의 팔을 낚아채 강제로 끌고 나가려 했다. 여자가 버티며 소리쳤다. 이것 놔. 이 속물 덩어리야. 감히 어디에 손을 대. 여자의 완강한 저항에 남자는 멈칫했다. 아줌마, 방금 나한테 속물이라 그랬어요? 그는 어이없다는 식의 표정을 지었다. 그래 이 속물아, 너 같은 인간들 내가 잘 알지. 오로지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인간들, 돈밖에 모르는 인간들, 넌 내가 돈으로 밖에 안 보이지. 돈 버는 거와 돈 쓰는 걸 빼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 인생, 돈 버는 기계, 현금 인출기 같은 인생, 그게 바로 너 같은 인간 아니야. 남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 아줌마가 점점, 아줌마 이래봬도 나, 댁처럼 빈둥거리며 남의 가게 와서 허영 떨면서 시간 보내는 그런 사람은 아니야, 왜이래. 그러니 제발 나가주세요. 다시 남자가 하소연하듯 여자의 팔목을 잡았다. 남자의 완강한 힘에 여자가 2층 매장의 입구까지 끌려왔다. 하지만 문설주에 매달려 필사적으로 나가기를 거부했다. 이빨을 깨물고 안간힘을 쓰던 여자가 급기야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바닥에 주저앉은 여자의 눈자위가 하얗게 뒤집혔다. 혈색도 붉게 물들어 갔다. 남자는 망연자실해 있는 여자를 내버려두고 숨을 골랐다. 잠시 뒤 여자가 손가방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손가락만한 막대기였다. 그녀는 루즈의 뚜껑을 조금 열더니 립스틱으로 자신의 얼굴에 바르기 시작했다. 붉은색이었다. 광대뼈 주위에 빗금을 치듯 두 개의 선을 그은 뒤, 콧망울, 양 미간 사이, 그리고 입술 언저리를 조심스럽게 바르고 있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소매 끝에 레이스가 달린 상의에도 루즈를 칠하기 시작했다. 거기다 앞 단추 두 개가 떨어져 나간 옷매무새 사이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움푹 패여 들어간 가슴골 사이에도 붉은 금이 그어졌다. 여자는 다시 한쪽 팔뚝을 걷더니 팔목에도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일정한 형태도 없는 기이한 곡률을 가진 선이었다. 남자는 여자가 하는 동작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하고 가만히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여자의 얼굴은 마치 핏물이 튄 것처럼 온통 붉은 줄들로 얼룩졌다. 팔과 옷 위에도 어지럽게 루즈 자국이 묻어났다. 당신이 방금 내게 무슨 짓을 했는지 똑똑히 봐 둬. 당장 경찰에 신고할 거야. 신고해서 감방에 쳐 넣을 거야. 변명할 생각일랑 아예 하지 마. 여자의 눈빛이 독기로 가득했다. 다리에 힘이 빠진 남자는 주저앉고 말았다. 도대체 내게 원하는 게 뭔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단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호흡이 가빠왔고 시야가 흐릿해졌다. 그리고 놈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다가오고 있었다. 불현 듯 예고도 없이 찾아오던 그 놈, 스파크가 튀듯 뭔가가 눈앞에서 번쩍, 하더니 머리에 빠개질 것 같은 통증이 시작되고 있었다. 남자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주저앉고 말았다.

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는 광경이 유리문을 통해 외부로 훤히 노출되고 있었다. 건물 맞은편 횡단보도 앞에 서 있던 몇몇 사람들이 신기한 듯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물론 유리창에 차단되어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무언극의 한 장면처럼 두 남녀가 서로의 옷을 잡고 늘어지거나 밀쳐 내거나 하면서 묘한 퍼포먼스를 연출하고 있었다. 머릿결이 헝클어지고 옷매무새가 흐트러진 여자가 갑자기 매장 안에 있던 타일 한 장을 유리창으로 집어던지는 게 보였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면서 수근 대기 시작했다. 그들은 신호가 바뀌어도 길을 건너지 않고 계속 지켜보았다. 몇몇은 경찰에 신고 해야 되는 거 아니야, 라며 중얼거렸다. 유리창이 깨지지 않자 여자가 다시 타일 한 장을 더 집어던졌다. 쨍그랑거리며 유리문 한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남자는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잡고 주저앉은 채 멀뚱히 바라보기만 했다. 여자가 이번에는 타일 대신 옆에 있던 의자를 집어던졌다. 쨍그랑 창창.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유리창 일부가 부서져 내리며 깨진 파편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건물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기이한 구경거리였다. 모두가 2층 유리문 쪽을 바라보고 있을 때 배가 불룩하게 불러 온 한 여자가 한 손에 도시락이 든 가방을, 다른 한 손에는 뜨개질이 마무리된 스웨터가 든 가방을 들고 가게 쪽으로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다.

그날 밤 남자는 담장을 넘어 법원 건물 앞으로 걸어갔다. 건물 입구에 버티고 있는 두 마리의 동물석상, 격자창문, 외관 모서리에 뿔처럼 돋아난 굴뚝, 반듯한 직사각형의 외형, 세련미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도 없는 구닥다리 건물이었다. 들리는 얘기로는 박물관으로 쓰일지 아파트가 들어설지 건물의 운명은 아직 결정 나지 않았다고 한다. 건물 앞마당을 가로질러 가면 이름 모를 나무가 심어진 화단이 나온다. 남자는 화단 쪽으로 걸어가 벤치에 앉았다. 벤치에선 길 건너편에 있는 자신의 건물이 정면으로 보였다. 할로겐 조명등이 켜진 가게 안이 훤히 드러났다. 여자는 이곳에서 그동안 가게를 지켜보았다고 했다. 한가로이 수를 놓고 있는 아내와 컴퓨터 앞에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거나 손님을 접대하던 자신을 노려보는 여자를 떠올리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낮에 경찰서에서 만났던 형사의 말이 생각났다.

보호자 말에 의하면 상태가 어느 정도 호전되어 몇 달 전에 퇴원했다고 하더군요……그동안 약물치료만 받아오다가……저도 자세한 건 모르지만 아이를 유산했다고 하더군요……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결혼 전부터 병력이 있었다고 합니다……전 남편 분께서는 그것 때문에 사기결혼이라고 소송을 걸어놓은 상태고요……네, 지금은 별거상태라 그러더군요……미인대회 입상 경력에다 집안도 상당한 재력가라고 들었는데 참 안타깝더군요……사정이 사정이니만큼 사장님께서 선처를 해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보호자 되시는 분들이 물적 정신적 피해보상은 충분히 해 주겠다고 하더군요……아무튼 흉흉한 세상입니다.

형사의 말을 듣고도 그는 여자가 가지고 있던 세계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곳은 불가해하고 너무 위험해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영토였다. 아름다움이라는 것……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토굴 느낌이 나는 욕실……록산나……페르시아 왕국의 여왕……식민지풍의 붉은 벽돌 건물……벽난로……양탄자……시베리안 허스키……

남자는 유리창이 뻥 뚫려있는 자신의 건물 2층을 바라보았다. 임시방편으로 거적 대기를 막아두긴 했지만 세찬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건물은 언제든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그 건물은 남자가 견고하게 쌓아올린 성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성이 누군가에 의해 구멍이 뻥, 뚫린 것이다. 그건 남자의 머리 한 가운데다 구멍을 뚫어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뒤통수로 차가운 바람이 밀려들어와 격렬한 통증이 시작되고 있었다. 숨이 헉, 막혀왔다.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던 놈이 다시 내습해온 것이다. 그리고 저주처럼 퍼붓던 여자의 말들이 귓전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속물 덩어리, 돈밖에 모르는 인간, 돈 버는 기계, 현금 인출기 같은 인생.

그는 머리를 감싸 쥔 채 뚜벅뚜벅 걸어가 다시 법원 건물의 현관 앞에 우뚝 섰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인지, 어디서부터 잘못 된 건지 소리치고 싶었다.

으으으읔읔읔읔……아아아아 악악악악앜앜앜앜……

남자의 입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성이 흘러나왔다. 그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낯선 소리였다. 짐승의 소리에 가까웠다. 낯선 짐승이 남자 안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갑자기 헛구역질도 올라왔다. 목 안에서 고약한 악취가 풍기기 시작하더니 잠시 뒤 노폐물들이 식도를 타고 목구멍으로 올라와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걸쭉하고 질척한 토사물이 바닥에 고였다. 가스 냄새가 코끝에 알싸하게 퍼졌다. 김도 모락모락 피어났다. 토사물은 누렇고 탁한, 끈적끈적한 고름을 닮아 있었다. 남자는 잠시 그걸 들여다보았다. 타일 조각 하나가 토사물 반죽 가운데 놓여 있었다. 손을 뻗어 집어 들었다. 손에 잡힌 건 그동안 남자의 생살을 찢고 혈관을 터트리고 뼈를 갉아댔던 타일 한 조각이었다. 단면이 예리하게 갈라진 황토 빛깔의 조각이었다. 남자는 그게 언제부터 자신의 몸 안에, 뇌 깊숙이 박혀있었는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참동안 바라보았다.<끝>


▲ 김충섭
약력

· 서울출생. 현 부산거주

· 2011년 부산일보 해양문학상 우수상 수상

· 2015년 경북일보 문학대전 소설부문 가작 당선

· 2015년 제 1회 사하모래톱 문학상 대상 수상

· 2015년 제 3회 등대문학상 가작 당선


수상소감

“멈추지 않고 조급해 하지 않고 한 걸음씩 내딛을 것”

꾸준한 시간을 할애해 소설을 쓰지는 못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그나마 열정의 불씨가 꺼져버려 몇 년 전에 써 놓았던 글들을 여기저기 응모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소설이 제 삶의 중심이었던 기억들이 점차 아스라해 질 무렵 들려온 입상 소식이었습니다. 이번 수상을 게기로 이제 제 일상의 중심에서 멀어져 간 창작의 고삐를 다시 움켜쥘까 합니다. 결과에 구애받지 않고, 조급해 하지 않고, 멈추지 않고 다시 한 걸음씩 내 딛겠습니다. 인터넷 카페 ‘글장이의 꿈’ 회원님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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