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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성일 편집부국장
찰나의 흔들림이 일상을 바꿔 놓았다. 인생이 흔들리지 않은 적 있었겠느냐마는 이번만은 달랐다. 차라리 한잔 술에 흔들리는 것으로 착각이라도 했으면 좋았겠다. 지평선이 끝없이 아득한 평야, 흥해 들녘, 풍년가가 울려 퍼져야 할 그곳에 깊은 한숨이 배어있다.

차라리 속 시원히 소리나 질러 봤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울음’을 참아야만 다시 ‘울음’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울음은 봇물이다. 봇물은 자칫하면 홍수를 일으킬 수 있다. 그들의 참담한 ‘속울음’은 한국 사회에서 보기 드문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국민은 물론 세계인들이 그들의 재난에 대응하는 모습을 경외감으로 쳐다보고 있다. 피해복구에 분주한 포항시의 공감 열정과 경북도, 중앙정부의 신속대응도 새로운 재난극복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들은 그날 옷매무시를 고칠 새도 없이 황급히 집을 뛰쳐나왔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이재민의 비애가 흥해 들녘을 맴돌고 있다.

한기가 엄습하는 겨울밤, 가족과 이야기꽃을 피웠을 따뜻했던 집은 그저 불안한 시선을 보내는 곳이 돼 버렸다.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일터로 갔다가 뒤따라오는 추위에 쫓기며 피신하듯 들어서던 아늑했던 집은 어디로 갔을까.

어둠이 내린 골목 노점상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귤 한 봉지를 사 들고 그리운 가족의 얼굴을 떠올리던 골목길은 어디로 총총히 사라졌을까.

그 골목과 그 집은 불과 며칠 전의 골목과 집이 아니다. ‘흔들림’ 그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차라리 ‘슬픔’은 사치다.

번개처럼 왔다가 찰나에 사라진 지진이 이렇게 무서울 줄은 몰랐다. 그 날 이후로 모든 것이 변했다. 집에 갈 수 없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게 한다.

자신과 가족만의 공간이 사라진 것이다. 정겹던 골목길은 불안한 시선이 머무는 공간이 돼버렸다

집과 골목이 아닌 넓은 체육관에서 이웃들이 모두 만났다. 객지에 있는 자식과 손자 손녀 자랑에 자지러졌을 웃음소리도 이제 다시는 볼 수가 없다. 자식들에게 보낼 김장 담글 즐거운 걱정도 이제 할 수가 없어졌다. 졸지에 모두가 체육관에 갇힌 처지가 됐다. 이제는 조그만 텐트가 잠자는 공간이 됐다.

‘너’와 ‘나’였다가 ‘우리’가 되었던 ‘집’과 ‘골목’에서 추방된 신세가 됐다.

겨울바람은 집과 골목을 잃은 사람을 더욱더 스산하게 한다. 정부와 포항시가 마련한 이주 공간으로 옮겨간 이웃들은 다행이겠지만 그래도 예전의 내 집만 하겠는가 싶다.

재난 특별지역으로 선정되면서 전국에서 많은 성금과 구호의 물결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 자원봉사자들도 전국에서 몰려들고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들에게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언젠가 그들은 그들의 삶 터로 떠나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만 남을 것이다.

예로부터 흥해는 넓은 평야의 곡창지대였다. 이맘때쯤이면 농부들의 풍년가가 울려 퍼지고 시장 좌판과 선술집엔 막걸리 한 순배 주고받으며 불콰한 얼굴로 집으로 향하곤 했다.

힘들고 어렵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그런 곳이었다.

재난을 빨리 훌훌 털고 예전보다 나은 일상을 창조해야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저녁 무렵, 비학산으로 넘어가는 아름다운 석양에 물들며 ‘밀레의 만종’과 같이 추수 감사 기도를 올리는 평화로운 흥해 들녘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곽성일 편집부국장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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