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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동상] 검은궁전

추용훈씨 제4회 경북일보문학대전 동상

경북일보 kb@kyongbuk.com 등록일 2017년12월03일 16시11분  
유병수작
원섭은 손님이 올 때마다 빈 수첩을 한 줄씩 채워나갔다. 간혹 다섯줄도 채우지 못한 날도 있었다. 수첩은 총 열두 줄로 이루어져 있었다. 맨 윗줄에는 <6, 등산복, 유부녀>란 단어가 적혀 있었다. 그 아랫줄은 <4, 대머리, 마사지>였다. 그가 수첩에 적는 숫자와 단어는 일정한 규칙이 존재했다. 숫자 다음 나오는 단어는 인상착의였고 마지막 단어는 손님의 취향이었다. 수첩에 적힌 글씨체는 체중을 실어 러쓴 듯 굵고 또렷한 편이었지만 전체적으로 수평이 어긋나 삐딱한 형태였다. 견고하지만 기울어진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원섭이 가게를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5월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가게는 오 층짜리 상가건물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맨 아래층은 김밥천국과 편의점이 위치했고, 그 위층은 노래방이었다. 삼사층은 각각 학원과 병원이 들어서 있었고 맨 위층은 헬스장이었다. 그가 운영하는 가게는 노래방 옆에 조그맣게 붙어 있었다. 검은 철문에는 딱히 간판이나 표지가 달려있지 않아, 간혹 노래방의 술 취한 손님들이 화장실 입구쯤으로 여겨 오줌을 갈기기도 했다. 건물 뒤편은 낡은 실외기가 두서없이 매달려 있었고, 맞은편에선 윤락업소와 모텔이 은밀하게 불을 밝혔다.

원섭이 처음 검은 철문을 열고 가게에 들어섰을 때, 사장은 각질이 일어난듯한 검은 가죽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의 질펀한 엉덩이 아래 의자가 파묻혀 있는 꼴이었다. 그는 목 언저리 땀을 닦다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청했다. 원섭이 맞잡은 손은 말랑하고 축축했다. 사장이 말했다.

“더운데 오느라 고생 많았네. 보시다시피 내가 몸에 열이 많아. 그나저나 자기는 더위를 안타나봐 아직까지 점퍼를 입고 다니네.”

사장은 조그만 가게를 경영하는 것이 대단한 일인 양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전화상으로 말했지만 바지사장으로 일하는 대신 수익의 30%는 나한테 입금해야해. 그리고 이것도 사업이라 딱 세 가지만 명심하면 돼. 첫째 동영상은 매일매일 업데이트 해주고, 둘째는 청결인데, 딱! 하고 싶은 맘이 들 정도, 자기도 무슨 말인지 알지. 셋째 이게 제일 중요한데......”

원섭은 사장의 고약한 입 냄새 때문에 한동안 숨을 참아야 했다. 대부분의 설명이 기포처럼 떠오르다 터지듯 지워졌지만 사장의 누런 치석만큼 잊을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사장이 뜸을 들이다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모르는 손님은 의심할 것.”

사장은 원섭의 표정을 살피다 이 일이 형법 243조 음화반포죄에 해당된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이미 처벌을 받은 기록이 있었고, 바지사장을 구하는 것 또한 가중처벌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원섭은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아는 손님도 처음엔 모르는 손님이지 않나요?”

“흠, 그렇지 하지만 우리가 애초에 경계해야할 손님은 정해져 있어. 공무원과 경찰들. 단정한 머리카락과 옷맵시, 청바지에 구두를 신었다면 의심부터 하고 보는 게 좋을 거야.”

“만약 단속을 당하면요?”

사장이 열쇠가 달려 있지 않은 키홀더를 원섭에게 건넸다. 그는 키홀더의 작은 버튼을 누르면 원격으로 시스템이 차단된다고 설명했다. 키홀더의 버튼은 손님을 가려 받지 못했을 때 최후의 수단이었다. 사장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여차하면 눌러야 하니까 항상 주머니에 지니고 있어.”

원섭이 점퍼주머니에 키홀더를 넣으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다행히 원섭이 받은 첫 손님은 공무원이나 경찰과는 거리가 멀었다. 노인으로 보기엔 젊고, 중년으로 보기엔 늙은 남성이었다. 그는 희끗희끗하지만 풍성한 머리숱에 제법 고가의 등산복을 입고 있었다. 그가 익숙하게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으며 원섭에게 말했다.

“사장이 젊어졌네.”

“형님도 충분히 젊어 보이시는데요.”

원섭의 대우가 썩 괜찮았는지 그가 웃으며 만원 한 장을 건넸다.

“서비스 시간 좀 넉넉히 넣어줘.”

“아무렴요.”

원섭은 점퍼주머니에 지폐를 챙겨 넣고 그를 안내했다. 검은 타일로 도배된 복도를 지나 ‘ㄱ’자로 된 동선 끝에 일곱 개의 방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밀실로 이루어진 각 방엔 컴퓨터와 모니터, 헤드셋, 그리고 두루마리 휴지가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그는 맨 끄트머리 6번 방을 선택했다. 원섭은 방을 나오기 전 문고리의 잠금 버튼을 눌러놓았다. 그가 방을 나오지 않는 이상, 단속이나 화재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세 시간동안 아무도 6번 방을 열 수 없게 된 셈이었다.

원섭은 계산대로 돌아와 영상 파일을 전송해주었다.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수백 개의 동영상이 6번 방의 컴퓨터로 전송되었다. 그는 손님들에게 동영상을 제공하는 것 말고도 한 가지 특권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손님들이 밀실이라고 믿고 있는 공간을 엿볼 수 있는 것이었다. 카운터 모니터에는 손님들이 보고 있는 영상 제목이 표기되었고, 그는 그것을 수첩에 옮겨 적었다. 6번 방의 늙은 남성은 한두 시간 바둑이나 장기를 둔 후에 ‘음란 유부녀’ 또는 ‘유부녀의 사생활’이란 영상을 보았다. 그의 기력까진 알 수 없더라도 취향만은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원섭은 수첩에 마지막 단어를 채워 넣었다. 6, 등산복 다음 유부녀란 단어가 씌어졌다. 그의 메모는 단속을 피하기 위한 관찰용이자, 업데이트를 위한 기록용이기도 했지만, 오락용이기도 했다. 그는 낱말퀴즈의 마지막 빈칸을 채워 넣기라도 한 듯,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수첩을 바라다보았다.


항상 6번 방을 찾는 남성은 가게에 오면 습관처럼 자판기 커피부터 뽑았다. 그는 종이컵을 홀짝이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가족 이야기 -대부분이 자식 자랑 이었다-를 늘어놓았다. 원섭은 뜨뜻미지근한 커피를 손에 쥐고 마지못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남자가 빈 종이컵을 구기며 원섭에게 말했다.

“자식 같아서 하는 소린데 먹고살기 힘들어도 이런 데서 일하면 쓰나. 젊은 사람이 땀 흘려서 돈 벌어야지.”

원섭은 늙은 남성의 자식 같다는 말에 짜증이 치솟았다. 그럼에도 원섭은 손님의 낡은 지갑이 열릴 때까지 활짝 웃어 보였다. 그것은 원섭이 보육원을 방문하는 후원자에게 보이던 웃음이기도 했다. 후원자는 성탄절이면 어김없이 보육원을 찾아왔고, 그들 앞에서의 웃음은 의무적인 것이었다. 웃음 뒤에는 항상 보상이 뒤따랐는데, 사이즈가 애매한 옷가지와 맛보다 양을 중시하는 싸구려 과자가 대표적이었다.

늙은 남성은 여느 때와 같이 만원 한 장을 원섭에게 건네주며 서비스를 요구했다. 원섭이 주머니에 지폐를 챙겨넣으며 말했다.

“뭐, 다 똑같죠. 어딘 안 그렇겠어요.”

그가 방으로 사라지고 나면 실내는 예외 없이 조용해졌다. 원섭은 다시 찾은 고요가 싫지 않았지만, 그 정적이 지겨워질 즈음 6번 방에 음료를 넣어주었다. 의무적인 것은 아니었다. 싫으나 좋으나 원섭의 유일한 말벗은 6번 방의 늙은 남성이 전부였으니, 따지고 보면 스스로를 위한 것이었다.


원섭은 일 년 전까지만 해도 보육원 울타리 안에 있었다. 원하던 원치 않던 보육원에서 길러졌다. 마찬가지로 성년이 되는 순간 의지와는 상관없이 보육원을 나와야했다. 얼마간의 자립정착금이 주어졌지만, 그는 생계를 위해 일을 시작했다. 학벌이나 자격을 따지지 않는 일들 중 돈벌이가 되는 것은 배달이었다. 치킨집은 그 숫자만큼 문턱 또한 낮았기에 원동기 면허가 없더라도 쉽게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배달을 시작하고 일주일 뒤 원섭은 교통사고를 당했다. 한일전 축구경기가 열리던 밤이기도 했다. 오토바이는 코너를 돌다 빗길에 미끄러지며 마주 오는 트럭과 부딪쳤고, 그의 왼쪽 손은 트럭바퀴아래 뭉개지고 말았다. 그가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옮겨지는 동안에도 치킨집 사장은 닭을 튀기는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다음날 그에게 걸려온 사장의 전화는 일방적인 통보나 다름없었다. 면허도 없는 게 왜 일을 시작했냐. 애초에 근본 없는 것들은 상종을 말아야 한다. 사장은 일주일치 급여만 정산해주었다. 원섭의 정착금은 수술비와 입원비로 사용되었다.


원섭은 퇴원 후 대부분의 시간을 피시방에서 보냈다. 에어컨 옆 구석자리가 그의 새로운 거처였다. 그 자리에서 원섭이 하는 짓이라곤 한손으로 마우스를 딸깍거리는 것뿐이었다. 원섭은 시발이란 욕을 섞어가며 적을 향해 총을 쏴댔다. 상대방을 죽이기보다 그가 죽어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럴 때면 흑백으로 뒤바뀐 화면을 멀건이 바라보며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그의 캐릭터가 죽어나갈 때마다 빈 컵라면 용기만 겹겹이 쌓여갔고, 피시방의 충전된 시간이 닳아갈수록 일주일치 급여도 함께 깎여 나갔다. 그는 종종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뒤적였다. 원섭이 일 할 곳은 마땅치 않았다. 그는 활발한 성격도, 군필자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신체건장이란 자격조건에 더 이상 부합되지 않았다. 충전된 시간이 바닥날 무렵 그가 찾아낸 것은 성인 피시방 구인공고였다. 그 일은 자격조건이 필요하지 않았음에도 조회의 흔적이 전무했다. 할 일 없는 청년들에게 마저 외면 받은 일거리였다. 적혀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건 사람은 오직 원섭뿐이었다. 5월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원섭이 성인 피시방으로 거처를 옮겼음에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는 여전히 한손으로 마우스를 딸깍거렸다. 죽어나가는 것은 손님들의 배출된 욕구였고, 쌓여가는 것은 휴지뭉치였다. 다만 원섭의 시간은 더 이상 닳지 않았다. 오히려 스톱워치처럼 멈춰있다 손님이 오면 다시 움직였다. 포르노와 달리 시계바늘은 늘 정직했기에 원섭은 손님에게 시간을 판매한다고 여겼다. 원섭은 자신이 하고 일이 모순이자 불법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죄책감은 갖지 않기로 했다. 그에게 있어 모순과 불법은 근본 없는 몸뚱이였고, 가식적인 웃음이었다. 태어남과 동시에 지닌 것이었고, 습관처럼 몸에 베인 것이었으므로 삶의 일부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원섭이 정오쯤 되어 문을 열면 서너 명의 손님이 가게에 찾아왔다. 그들은 대부분 정년퇴직자들이었다. 집 안팎에서 자신의 역할을 잃어버린 듯 공허한 표정으로 가게 문을 열었다. 원섭은 그들을 신사적으로 대했다. 연륜 탓인지 머물렀던 흔적을 티 나지 않게 잘 추스르고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어둑어둑 해가 떨어질 때 즈음 찾아오는 회사원들이었다. 그들은 정장에 넥타이를 두르고 퇴근 시간이 되면 우르르 몰려들었다. 열에 아홉은 서류 가방과 함께 검은 봉지를 들고 왔는데, 그 안에는 캔맥주와 마른오징어 따위가 담겨있었다. 다소 거만했고 사람을 깔보는 시선으로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 들었다. 그들의 복장은 대부분 비슷했지만 취향은 천차만별이었다. 동서양을 아우르고 동물과의 교감까지 주저하지 않았다. 겉보기와 다르게 가장 음흉했고 수컷의 향기가 짙어 굶주린 하이에나와 다를 바 없었다. 그들이 방을 비우고 나면 두루마리 휴지가 반 이상은 줄어 있었고 오랫동안 빨지 않아 퀴퀴한 대걸레냄새가 진동했다. 그럴 때면 원섭은 청소를 하다말고 신물을 삼켜가며 싸구려 방향제를 목이 따끔해질 때까지 뿌리고 또 뿌려야 했다.


원섭의 수첩 두 번째 항목에 항상 인상착의를 적었지만 간혹 예외도 있었다. 그것은 손님이 자신의 직업을 밝힌 경우였다. <7, 정육점, 강간>과 <3, 춤 선생, SM>이 그랬다.

일곱 개의 방들 가운데 7번 방은 항상 비어있는 편이었다. 원섭이 손님을 받지 않아서가 아니라 손님들이 그 방을 기피해서였다. 7번 방은 담배연기로 벽지가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고, 에어컨의 습기가 천장에 고여 거대한 얼룩이 새겨져 있었다. 문제는 언젠가부터 7번 방의 손님 중 누군가 휴지통에 오줌을 한가득 싸놓고 간다는 사실이었다. 원섭은 범인을 알고 있었다. 그 손님은 인근에서 정육점을 한다는 사람이었다. 그는 다른 빈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7번 방 만을 고집했다. 먼저 들어간 손님이 있을 경우 계산대 앞을 서성이며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지나치다 싶을 만큼 설명을 늘어놓았다.

“고기를 썰 때는 손가락을 오므려야 하는데 자칫하다간 손가락이 댕강 썰릴 수도 있거든 봐봐 이렇게.”

원섭은 그가 들어 올린 팔뚝을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다부진 팔뚝은 시퍼런 힘줄이 솟아 있었고 오므린 손가락과 손등에는 털이 무성했다. 원섭은 그가 내민 것이 손보다는 짐승의 발과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가 방을 나가기 전 휴지통에 오줌을 한가득 싸놓는 것, 그 또한 본능일지 몰랐다. 그가 방에 들어가자 원섭은 계산대로 돌아와 모니터를 관찰했다. 그리고 7번 방에서 그가 보고 있는 영상의 제목들을 빠짐없이 메모해두었다. 원섭은 남자에 대해 알아갈수록 두려움이 일었다. 그가 보는 영상제목 에는 강간이라는 단어가 꼭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육점 남자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임에도 불구하고, 원섭은 그를 추궁할 수 없었다. 그가 오리발을 내민다 해도 정확한 증거가 없을뿐더러 경찰에 신고 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3, 춤 선생, SM>의 손님은 정육점 남자와는 정반대였다. 그는 날렵한 콧날만큼이나 큰 키에 곧게 뻗은 다리, 안정된 걸음걸이가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늘 3번방을 이용했고 SM영상을 즐겨 보았다. 여자의 둔부에 촛농을 뿌리고, 채찍질하는 장면이 주를 이루는 영상이었다. 그는 언제나 지급하는 금액보다 적은 양의 시간을 보내고 가게를 나갔는데, 하루는 그가 원섭에게 요금을 깎아주면 안 되냐고 물어왔다. 원섭이 형평성을 위해 그럴 수 없다고 말하자 그가 억울한 듯 사연을 얘기했다.

“아니, 뭐 요금이 아까워서 그런 것은 아니고, 제가 춤을 가르치고 있어요. 교습이 있는 날만 잠깐 물 빼러 오는데, 뭐 그게 상대방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고. 한 시간 요금 내고 십분, 이십분 있다 가는데 어떻게 안 될까요?”

원섭은 딱히 남자의 말을 신용하지 않았다. 왈츠와 촛농, 탱고와 채찍이라니. 도무지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원섭은 일주일에 세 번 남자가 찾아오면 마지막 날 요금은 받지 않았는데, 그것은 P가 해준 이야기를 듣고부터였다.


P는 일층 편의점에서 일했다. 원섭은 담배가 떨어지면 편의점을 이용했고, P가 일하고 있는 시간에는 굳이 담배가 떨어지지 않았더라도 편의점을 찾아갔다. 원섭이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오후 6시에서 10시 사이에 파트타임으로 일한다는 것과, 말아 올린 머리카락, 웃을 때 드러나는 하얀 덧니가 매력적이라는 점이었다.

원섭이 편의점을 찾아가자 P는 계산대에서 50대로 보이는 사내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꾀죄죄한 군복을 사계절 내내 입고 다닐 것 같은 남자였다. 그는 여기서 파는 소주가 다른 곳보다 비싸니 가격을 깎아줘야 한다며 억지를 부렸다. 원섭은 사내의 등 뒤에서 시큼한 땀 냄새를 맡느니 자신이 계산을 해줘야겠다고 결정했다. 무엇보다 그는 P가 곤경에 처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아저씨 제가 계산해드릴게요. 가져가세요.”

사내는 말없이 소주병을 챙기고 편의점을 떠났다. 원섭은 개의치 않았다. P가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를 전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원섭이 말하지 않아도 늘 같은 상품의 담배를 건네주었다. 여느 때와 다른 점은 P가 담배와 함께 말을 건넨 것이었다.

“성인 피시방에서 일하시죠. 거긴 진상손님 없나요?”

원섭은 P의 찌푸린 미간을 안쓰럽게 바라보다 요금을 깎아달라던 춤 선생에 대해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고 난 뒤 P는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예방접종 같은 거네요.”

“네?”

원섭이 되묻자 P가 설명했다.

“지금은 휴학했지만 제가 미대를 다녔거든요. 누드크로키 수업이 있는 날이면 저희끼리 우스갯소리로 항상 얘기하곤 했어요. 남자모델이 발기 억제하는 주사를 맞고 온다고.”

P가 웃으며 덧붙였다.

“그 손님도 비슷한 경우 아닐까요.”

“그러네요.”

거스름돈을 건네받으며 원섭이 말했다.

“어떤 그림을 그리는데요.”

“회화전공이에요. 요즘엔 손이 굳어서 그런지 엉망이에요. 이럴 줄 알았으면 취업이라도 잘되게 디자인이나 배울 걸 그랬나 봐요.”

P는 아쉬워하듯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원섭은 그녀와 조금 더 시간을 함께하고 싶었다. P의 표정 뒤에 섞인 어떤 여운 때문일지도 몰랐다. 원섭이 그녀에게 말했다.

“제가 도와드릴 건 없나요?”

“뭐를요?”

“모델이 되어준다거나......”

원섭이 말끝을 흐리자 P가 장난스럽게 눈을 흘겼다.

“지금 작업 거는 거예요?”

원섭은 황급히 담배를 챙기며 돌아섰다. 편의점 유리문에 비춰진 그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편의점을 나서려는 원섭에게 P가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원섭은 껑충 걸음으로 가게에 돌아갔다. 그 바람에 P가 건네준 잔돈을 흘리고 말았다. 백 원짜리 동전 몇 닢이 경박하게 이리저리 뒹굴었다. 그가 흘린 것은 동전만이 아니었다. 가게로 돌아가는 길 내내 실실대며 웃음을 흘렸다. 원섭은 움켜쥔 잔돈을 매만지며 P를 떠올렸다. 잔돈을 건네줄 때 맞닿았던 손끝을. P의 손끝은 하얗고 거칠었다.

P는 자신이 편의점을 쉬는 날, 일주일에 한번 가게를 찾아가겠다고 말했다. P와의 약속 이후로 원섭의 시간은 손님이 찾아와도 멈춰버린 듯 항상 제자리에 머물렀다. 기다림을 상상만으로 채우기엔 역부족이었는지 원섭은 담배를 핑계로 매일 편의점을 방문했다. 포장도 뜯지 않은 담배 갑이 한두 달은 끄떡없을 정도로 계산대에 쌓여 갔지만, 원섭은 그것을 새 취미라도 되는 양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항상 손님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원섭은 손님이 없는 시간 대부분을 1번 방에서 보냈다. 1번 방은 유일하게 작은 창문이 건물 뒤편으로 나 있었고 계산대와 가까워 손님 맞기에 쉬운 곳이었다. 그는 종종 창문 밖을 내려다보았다. 실외기에서 뿜어대는 텁텁한 공기와 이제 막 달아오른 여름의 열기가 뒤엉켜 그의 얼굴에 맞닿았다. 불쾌한 감촉에도 그는 있는 힘껏 숨을 들이켜며 바깥공기를 음미했다. 자정이 넘어가면 가게 안 발길은 뜸해졌고 원섭은 마지막 손님이 나가면 문을 닫았다. 육중한 검은 철문이 닫히고 나면 마우스의 딸깍거림도, 큼큼대는 헛기침도, 삐걱대는 의자의 소음도 문밖으로 사라졌다. 온종일 뜨겁게 달아오른 컴퓨터의 기계음만 곤충의 날개 짓처럼 가게 안에 울려 퍼졌다. 원섭은 매상을 정산하면서 마지막 남은 소음은 정리하지 않았다. 그마저도 없다면 건물 안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 들어서였다. 하루 평균 25에서 30만원의 현금이 들어왔다. 원섭은 관리비, 월세, 식대, 상납금 같은 총제적인 지출까지 모두 둥글게 말아 고무줄로 묶었다. 돈뭉치는 항상 자신의 점퍼 주머니에 넣었다. 누아르 영화에서 정보의 대가로 마약쟁이에게 건네는 모종의, 약간은 비밀스럽고 때 묻은 느낌이 싫지 않아서였다. 무엇보다 묵직한 돈의 무게가 느껴질 때면 본인도 모르게 두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매상을 정리하고 나면 오층에 있는 헬스장으로 갔다. 70평가량 널찍한 헬스장에서 그가 이용하는 공간은 두 평 남짓 되는 샤워실이 전부였다. 텅 빈 샤워실 안이 김으로 가득 찰 때까지 뜨거운 물을 틀었고 종일 뒤덮은 수컷 냄새가 가실 때까지 비누로 온몸을 닦았다. 거품이 빨려 들어가는 수챗구멍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그는 왠지 모를 위안을 느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면 일층 김밥천국에서 다슬기 해장국을 먹었다. 오천 원 한 장으로 깔끔하게 소화할 수 있는 음식이었다. 마지막 국물까지 비우고 나서야 그는 김밥천국의 쨍한 간판 불 아래서 담배를 피웠다. 선선한 새벽공기가 젖은 머리에 닿으면 담뱃불이 다 타들어 가기도 전에 몇 차례 부르르 몸을 떨다 가게로 돌아갔다.

원섭은 가게로 돌아와 동영상을 업데이트했다. 손님들은 늘 새롭고 자극적인 것을 추구했고, 수많은 영상이 인종과 국경을 뛰어넘어 매일같이 만들어졌다. 원섭은 수첩 속 메모해두었던 영상들을 하나씩 찾아보았다. 6번 방 남자가 보았던 유부녀를, 3번 방 춤 선생이 즐겨보는 SM을, 7번 방 정육점 남자가 보았던 강간영상을 재생했다. 원섭은 왜 그들이 포르노를 보는지 궁금했다. 호기심과 함께 여배우들의 신음이 커져갈수록 그의 몸은 정직하게 반응했다. 원섭은 P를 떠올렸다. 그는 가학적인 몸짓과 거짓된 신음을 P와 비교한다는 것에 분노를 느끼면서도 끝까지 영상을 보았다.

원섭은 분노와 수치심에 풀이 죽어 간이침대에 몸을 뉘었다. 창밖은 네온사인 간판 모서리가 풍경 전부였다. 파랗게 그리고 빨갛게 변화하는 빛들이 창틀을 넘어 나른하게 퍼져나갔다. 원섭은 손을 뻗어 빛들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그러나 그것은 잡히지 않았고, 잡을 수 없었다. 식어버린 흥분처럼, 뭉개진 손처럼,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원섭은 이곳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지자 나름의 규칙들을 만들어냈다. 예를 들어 아침이나 낮 시간대 헬스장을 이용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오층에서 이층 버튼을 누르고 내릴 때면 동네 아줌마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엘리베이터 내부의 상가 표지판을 보았다. 그들은 불안하고 경멸 가득한 눈빛으로 원섭을 쏘아보았다. 원섭은 그 후로 될 수 있으면 영업이 끝나고 헬스장을 이용했다. 하지만 P가 오는 날은 예외였다. 그는 그녀가 찾아오면 계단을 이용하는 한이 있더라도 아침 일찍 샤워를 마치고 그녀를 기다렸다. P는 점심때가 되어서 가게를 찾아왔다. 그녀의 손에는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김밥과 음료를 담은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먹는데 전혀 문제없다고 말하는 P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낯선 장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지도 몰랐다. 원섭은 난감했다. 그녀를 안심시키고 싶지만 괜찮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P는 불안한 시선으로 가게를 두리번거리다 계산대에 쌓인 담배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눈이 마주친 원섭은 머리를 긁적이며 1번 방으로 그녀를 안내했다.

원섭은 그녀를 1번 방으로 안내했다. P는 창가 쪽에 앉았고 원섭은 입구 쪽 간이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녀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원섭에게 말했다.

“왜 매일 점퍼를 입고 있어요.”

“주머니에 중요한 게 있거든요.”

“아하. 그럼 손은 왜 주머니에 넣고 있어요.”

“왜 매번 머리를 묶고 있어요? 푸르면 더 예쁠 것 같은데.”

그녀가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더워서요.”

그녀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그리고 싶은 스타일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원섭은 P의 작법과 화풍에 대해 관심이 없었지만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는 그녀의 목소리가 바깥세상과의 유일한 창구처럼 느껴졌다. 1번 방 창가에서 들이켰던 텁텁한 공기와는 다른 신선함이 그녀로부터 뿜어져 나왔다. 원섭은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반면 P는 여유로웠고 대화가 사그라질수록 자신의 그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원섭은 그런 P를 곁눈질 했다. 그녀는 반팔 티셔츠에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허벅지의 푸른 혈관이 작은 별자리처럼 이어지며 사타구니로 향해 있었다. 원섭은 P를 바라보는 시선에 죄책감을 느꼈고 눈을 질끈 감았다. 사각사각 들려오는 연필소리 너머로 손님들을 떠올렸다. 그들이 의자를 끌고, 가래를 끓고, 헛기침을 내뱉는 일련의 동작들을. 그것은 흥분 속에서 묘한 우월감에 젖어들게 하였다. 마치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은밀함 속에 은밀함이 끝없이 담겨 있는 듯했다. 그러나 원섭의 감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깨지고 말았다. P와의 시간을 방해한 것은 정육점을 한다던 남자였다. 원섭은 계산대로 남자를 마중 나갔다. 원섭이 인사를 건넸지만 남자는 1번 방 문틈 사이로 P를 바라보는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살코기 주무르듯 음흉하기 짝이 없는 시선이었다. 그가 입맛을 다시며 원섭에게 물었다.

“여기 여자도 불러주나?”

원섭이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런 거 아니에요.”

“에이 그러지 말고 괜찮은 아가씨 있으면 나도 좀 불러주지.”

원섭은 남자를 두려워했지만 그날만큼은 달랐다. P가 문틈사이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라잖아요. 오늘 장사 안하니까 그냥 가세요.”

“농담도 못해.”

“됐으니까 가시라고!”

언성이 높아진 가운데 원섭이 남자를 떠밀었다. 그가 반사적으로 팔을 뿌리치며 원섭을 밀쳐냈고, 원섭은 두세 걸음 뒤로 밀려나다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바닥을 짚고 일어난 원섭이 주머니에서 양손으로 힘껏 그를 밀쳤다. 남자는 왼쪽 어깨를 빼며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 바람에 원섭의 오른손은 허공을 짚었고, 사고로 잃은 왼손은 애초에 남자에게 닿을 수 없었다. 볼품없이 나자빠진 원섭을 내려다보며 남자가 말했다.

“이 새끼 손목보소. 병신 새끼가 아주 죽고 싶어 용을 쓰네. 나 참 재수가 없으려니까.”

남자는 바닥에 침을 뱉고 사라졌다. P가 다가와 원섭을 일으키려 했지만, 원섭은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원섭이 고개를 숙인 채 그녀에게 말했다.

“앞으로 여기 오지 않는 게 좋겠어요.”

P가 가게를 떠나고서야 원섭은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로 향했다. 그는 검은 가죽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고 담배를 피웠다. 손님 서넛이 분주히 마우스를 클릭했다. 방에서 나온 손님 하나가 스피커가 나오지 않는다며 불평을 했고, 원섭은 그에게 헤드셋을 교체해주었다. 원섭은 다시 계산대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익숙한 듯 깊게 연기를 빨아들였고, 담담하게 내뱉었다. 바뀐 것은 없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을 뿐이었다. 담배는 이미 충분히 차고 넘쳤기에 원섭은 더 이상 편의점을 찾지 않았다. 그 날 이후 원섭이 P와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사흘 내내 비가 내렸다. 비를 맞는 이도, 뿌리는 이도 지칠 만큼 진종일 내렸다. 가게는 조용했고, 습기 탓에 먼지 하나 날리지 않았다. 원섭은 가게 문을 닫고 헬스장으로 향했다. 샤워를 마친 그는 허기짐을 달래기 위해 일층으로 내려갔다. 김밥천국 간판 아래는 6번 방 남자가 서 있었다. 원섭과 눈이 마주친 남자가 빗물이 똑똑 떨어지는 우산을 들어 올리며 인사를 건넸다. 원섭은 웃음이 새어나왔다. 엄청스런 부분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 행동이 멋쩍지 않아서였다.

“어이구 젊은 사장 어디 좋은데 가나?”

“가긴 어딜 가겠어요. 그나저나 여기서 뭐하고 계세요?”

“올라갔더니 가게 문이 닫혀 있더라고.”

그는 축 처진 어깨를 하고서 쏟아지는 빗줄기를 멀건이 바라보았다. 그가 빗줄기를 응시한 채, 하소연하듯 덧붙였다.

“자식새끼 다 커서 시집, 장가보내 놓으니 할 일도 없고.”

측은한 마음이 일은 원섭이 그에게 말했다.

“형님 올라가서 커피나 한잔 하시죠.”

검은 철문을 열며 원섭이 말했다.

“시간도 많은데 이제 사모님이랑 맛있는 것도 드시면서 여행도 다니면 좋잖아요.”

“알지, 이제는 그럴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지만.”

원섭은 말문이 막혔다. 짧지만 미묘한 침묵이 흘렀다. 그는 이런 상황쯤 대수롭지 않다는 듯 노련하게 화제를 돌렸다.

“아무 방이나 들어가도 괜찮지? 6번 방은 담배 냄새가 심하더라고.”

그렇게 말하며 그가 원섭에게 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넸다. 그가 지폐를 건네며 서비스를 요구하지 않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가 방으로 들어가자 원섭은 1번 방에 누워 창문을 바라보았다. 누군가를 꾸짖듯 빗방울이 요란하게 실외기를 두드렸다. 원섭의 공허한 시선 끝에 네온사인 간판 일부가 삶을 엿보듯 매달려 있었다. 그는 문득 그 모습이 얄미워져 창문을 열고 상체를 내밀었다. 머리카락이 젖고 얼굴 사이로 빗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개의치 않고 상체를 비스듬히 틀어 고개를 돌렸다. 간판의 이음새는 녹이 슬어 있었고 콘크리트 외벽은 페인트가 벗겨져 있었다. 까맣게 코팅되어있는 유리창 때문에 가게 내부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문 앞에 내놓은 주류박스로 추측컨대 유흥업소쯤 돼보였다. 원섭은 허탈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궁전이라니.”


인기척이 들렸고 원섭이 뒤를 돌아보자 낯선 손님이 계산대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30대 초반쯤 되었을까. 무테안경을 쓴 남자의 눈이 호기심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민망한 행동을 들킨 탓에 원섭이 먼저 말을 건넸다.

“어서 오세요.”

남자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여기 시간당 얼마요?”

원섭은 그의 말투가 거슬렸지만 젖은 머리를 털어내며 감정을 추슬렀다.

“한 시간에 육천 원, 세 시간에 만 원입니다.”

그는 지갑에서 빠르게 지폐를 꺼내더니 원섭에게 건넸다.

“한 시간만 합시다. 여기 들어가면 되는 거요?”

그렇게 말한 남자는 원섭의 대답도 듣지 않고 문이 열린 빈방으로 사라졌다. 원섭은 그가 낯을 많이 가린다고 여겼다. 처음 오는 손님 대부분이 사춘기 소년처럼 예민한 편이었다. 은밀한 손장난을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 것처럼. 무언가를 경계하듯 잔뜩 움츠려있었다. 원섭은 계산대에 앉아 그가 어떤 영상을 볼 것인지 지켜보았다. 원섭이 엿보려는 것은 한 남자의 취향이자 욕망이었고, 그것을 토대로 그 사람의 삶을 가늠했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모니터엔 어떤 제목도 표기되지 않았다. 간혹 사용법을 모르는 손님들이 있었다. 원섭이 남자가 들어간 방으로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남자가 방에서 나왔다. 원섭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까칠한 손님이 무슨 말을 하려 하는지 눈치를 살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요?”

“오시기 전에 노래방 지나 복도 끝에 있습니다.”

원섭은 별것 아닌 질문에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남자가 검은 철문을 나서고 나자 불현듯, 사장의 말이 떠올랐다. 셋째, 모르는 손님은 의심할 것. 원섭은 자책하며 급한 마음에 남자를 따라 나섰다. 화장실에 간다던 남자는 이미 복도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정말 급해 뛰어갔을지도 몰랐다. 그가 청바지를 입었던가. 원섭은 남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무테안경을 착용한 것 까지는 기억했지만 좀처럼 남자의 인상착의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초조한 마음에 입구를 서성였고, 자신도 모르게 주머니 속 키홀더를 매만졌다. 십 분이 지나도 남자가 돌아오지 않자 원섭은 가게 밖을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문고리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정작 문을 연 것은 그가 아니었다. 장정 셋이 순식간에 가게 안에 들이닥쳤고 원섭은 뒷걸음질 쳐야 했다. 셔츠차림의 남자가 원섭의 눈앞에 신분증을 들이밀며 말했다.

“두 손 꺼내 놓고 한쪽 벽에 서 있어요. 아무것도 만지지 말고 가만히 있어요.”

신분증을 내민 남자의 음성은 너무나도 차갑고 단호했다. 강경한 태도에 원섭은 얼어붙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남자가 연이어 말했다.

“손 꺼내 놓으라는 말 못 들었어요.”

원섭은 점퍼에서 손을 꺼내기 직전에 키홀더의 버튼을 눌렀다. 남자는 별다른 의심 없이 지켜보다 시선을 돌렸다. 나머지 사람들은 닫혀있는 방문을 거세게 두드렸다. 쾅쾅 쾅. 6번 방 남성이 원섭을 안쓰럽게 쳐다보더니 급히 가게를 빠져나갔다. 그들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연이어 세 사람이 더 가게에 들이닥쳤다.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터졌고 빛나는 섬광에 원섭의 머릿속도 하얗게 지워졌다. 원섭은 시스템이 차단되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곧 부질없는 짓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진을 찍는 무리 중 무테안경을 쓴 남자를 보아서였다. 그는 검은 티셔츠와 유행지난 카고바지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원섭은 멍하니 검은 철문을 바라보다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을 떠올렸다. 그가 사슴문신을 했던가. 어떻게 경찰을 때려눕혔지. 그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원섭의 쓸데없는 걱정은 손님에게 향했다. 오늘은 춤 선생이 가게에 찾아오는 날이었다. 남자의 교습이 있는 날이기도 했다. 원섭은 남자가 춤추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는 수강생의 손끝을 살포시 잡고 한손은 등 뒤를 감싼 채, 포옹하듯 가슴과 아랫배를 밀착시켰다. 박자와 음계를 몸으로 느껴가며 우아하게 스텝을 밟았고, 상대방의 숨결이 거칠어질수록 그는 채찍질하듯 더 거세게 몸을 움직였다. 촛농처럼 뜨거운 땀방울이 온몸을 적셔가고, 그와 파트너는 벌게진 얼굴로 서로를 응시했다. 그들은 어느새 음악과 스텝을 잊고, 뜨거운 감정만을 남겨둔 채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게 예방접종은 필요한 것이었을까. 원섭은 왠지 모르게 걱정이 되었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놓였다.


원섭이 조서를 작성하고 가게에 돌아왔을 땐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다. 검은 철문 앞에는 액자 하나가 놓여있었다. 그는 액자를 집어 들었다. 액자 안에는 원섭이 담겨있었다. 오랫동안 햇빛을 받지 않아 창백한 얼굴, 기우뚱 기운 상체에 어쩐지 뚱한 표정의 남자. P가 놓고 간 것이 분명했기에 원섭은 편의점을 향해 뛰었다. 편의점 계산대에는 원섭 또래의 남자가 이어폰을 끼고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P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녀와 공원을 산책하고, 영화를 보고, 저녁 무렵 그녀의 집 앞에서 헤어지는 일상들을 꿈꾸었다. 그런 일상들. 그것은 평범한 것이었지만 결국 그는 오 층짜리 건물 주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굵은 빗줄기가 그의 몸을 적셨다. 그는 한동안 목표를 잃은 듯 우두커니 서서 비를 맞았다. 가게로 돌아온 그는 1번 방에 앉아 점퍼주머니의 젖은 돈을 말렸다. 장마기간 연신 물먹어댄 탓일까. 한 장, 한 장 펼쳐보니 세를 빼고 나면 서너 장이 그에게 남겨진 전부였다. 물까지 먹은 돈은 가볍기 그지없었다. 그는 간이침대에 몸을 뉘었다. 어두운 방안 네온사인 불빛이 그의 얼굴에 닿았다. 궁전의 불빛들이 창가에 어린 빗물과 섞여 수채화처럼 엷게 퍼져나갔다. 원섭은 그 잔상이 이 세계의 것이 아닌 것 같아 더욱 차갑다고 느꼈다. 원섭은 수첩을 꺼내 보았다. 견고했던 글씨체는 빗물에 번져 뭉개져 있었다. 원섭은 수첩에 담긴 손님들이 그토록 뜨거워지려 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외로웠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는 그렇게 느꼈다.

그날 밤, 원섭은 몸을 둥글게 말고 새우잠이 들었다. 추위에 몇 번 잠에서 깨었고 동틀 무렵 조용히 건물을 나왔다. 비는 그쳐 있었고 습한 공기가 그의 몸을 감쌌다. 건물 앞에서 택시기사 하나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김밥천국에서 늦은 요기를 해결한 모양이었다. 원섭이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운행하시나요?”

“어디 가시는데?”

“어디든 갔으면 하는데요.”

그가 피우던 담배를 구둣발로 짓이기며 원섭에게 말했다.

“교대시간이라 멀리는 못 갑니다. 일단 갑시다.”

택시는 조용히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원섭은 백미러에 비친 건물을 바라보았다. 경미한 엔진 음 속에서 건물은 점점 멀어지기 시작하더니 작은 점이 되어 어둠속에 묻혔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 추용훈

수상소감

“앞으로 온전한 기쁨 누릴 수 있도록 열심히 글 쓸 것”

소설에 대한 제 애정은 일상에 치여 순위권 밖으로 점점 밀려났습니다. 그래서인지 문자를 받았을 때 내가 왜?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마음 한구석 혹시나 하는 기대보단 이번에도 안될 거란 실망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안 되더라도 덜 상처받기 위해 스스로에게 이런저런 핑계를 대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재능이 없어서라고. 그런데 상을 주셔서 기쁘고 부끄럽습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부끄럽지 않고 온전한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열심히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경락형님, 여중형님, 민상이형 고마워!! 소주한잔 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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