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뒷모습은 갈수록 아름다워서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다

편의점 앞에 반쯤 뭉개진 눈사람이 서 있다
털목도리도 모자도 되돌려주고
코도 입도 버리고 눈사람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순수 물질로 분해되기까지
우리는 비로 춤추다가 악취로 웅크렸다
지금은 찌그러진 지구만한 눈물로 서 있다

눈사람이 사라져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눈사람이 섰던 곳을 피해 걷는 것

당신을 만들어 나를 부수는 사이
뭉쳤던 가루가 혼자의 가루로 쏟아졌던 사이
사람은 없어지고 사람이 서 있던 자리만 남았다
우리가 평생 흘린 눈물은 얼마나 텅 빈 자리인지




감상) 가끔은 지나온 나날이 눈 녹 듯 사라져버렸으면 싶다. 그리워할 흔적조차 없이 말끔하게 사라져버렸으면 싶다. 어제의 나도 그 속으로 들어가 그렇게 없어졌으면 싶다. 내가 사라지고 난 뒤 내가 서 있던 자리에 누군가가 앉으며 말하겠지 이 자리는 비도 안 왔는데 왜 이리 축축하냐고.(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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