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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새경북포럼 포항지역위원·시인
중국 역사는 광활한 땅덩어리만큼이나 장대하다. 신화의 영역으로 일컫는 삼황오제 시절을 지나 하나라 건국에 대한 전설로 이어진다. 고고학적으로 입증된 최초의 왕조는 상나라이다. 그 뒤를 따라 주나라가 건립됐고 춘추 전국 시대를 거쳐 기원전 221년, 진시황에 의해 통일 제국 진나라가 출현했다.

미국 버지니아대 교수인 버나드 칼슨이 지은 ‘세계사 이야기’에 의하면, 대륙의 변방에 위치한 진나라가 군사적 성공을 거둔 요인으로 선진 장비 특히 석궁을 꼽는다. 노 혹은 쇠뇌라고 불린 석궁은 나무틀 위에 활을 고정시키고 방아쇠를 당겨 화살을 쏘는 무기다. 요즘의 소총에 비견된다.

기록에 따르면 진나라 2대 황제는 5만 명의 석궁수를 거느렸다고 전한다. 진시황 병마용에도 상당한 비율로 등장한다. 가벼운 무게에다 반복 발사가 가능해 전쟁의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중국에서 발명된 석궁 기술은 로마에도 전해졌으나, 서유럽은 기원후 11세기경 널리 퍼졌다.

개인적으로 석궁에 대해 처음 접한 것은 오래전 일어난 모 교수의 판사 테러 사건 때였다. 장안이 들썩일 정도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엘리트 범죄. 게다가 총검이 아니라 석궁이라는 구시대 유물이 사용된 독특한 수법에 눈길이 갔었다.

활쏘기는 인류의 보편적인 문화의 하나다. 활은 기구의 힘을 이용한 물리학이 개입된 최초의 무기였다. 당초 사냥을 위한 도구였으나 차츰 전쟁을 위한 살상 병기로 진화했다. 화약과 총포가 나온 이후로는 레포츠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

예천서 개최된 세계활축제 관련 자료를 보면 열국의 궁시 문화가 소개된다. 해당 장관이 행사에 참석한 불교 왕국 부탄은 특이한 국가다. 전 국토가 금연이고 전 국민이 전통복을 입는 지구촌 행복지수 1위의 나라. 벌목과 도축, 낚시가 국법으로 금지되고, 국토의 70%는 산림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헌법에 명시됐다.

부탄의 궁술은 국가 스포츠이다. 우리의 태권도쯤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그들은 부처님이 가필라국 왕자였을 때 활쏘기에 능한 활잡이였다고 믿는다. 또 궁술 대회에서 우승하면 마을에 행운을 낳는다고 말한다.

일본은 2m 안팎의 장궁으로 삼분의 일 지점을 잡고서 쏜다. 그 때문에 자세가 조금만 흐트러져도 명중이 쉽지 않다. 페루는 아마존 강의 물고기를 잡을 때도 활을 사용했다. 중국은 궁술을 18반 무예 중 으뜸으로 쳤다. 영국의 롱보우는 중세 최강의 활이었고, 몽골과 오스만 제국의 기병은 활로 무장한 군대였다.

우리나라는 궁수가 고대 삼국 이래 조선 시대까지도 주력 병종이었고, 동이족이란 별칭이 주어질 정도로 활쏘기의 강국이었다. 오랑캐가 출몰하는 함흥 출신인 이성계가 고려의 중추인물로 부상한 것도 사예 덕분이다. 그는 백발백중의 신기로 공민왕을 탄복시켰다. 활 하면 이순신 장군을 빼놓을 수 없다. 난중일기엔 실력을 자화찬하는 대목이 자주 나오나 명사수는 아니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시위를 당기는 마니아임엔 틀림없다.

근래 경북 예천에 본부를 두는 국제 NGO 조직인 ‘세계전통활연맹’이 창립됐다. 인류사의 공통분모인 활쏘기 문화를 통해서 상호간 이해를 증진하고자 하는 24개국의 의기투합. 성경 말씀대로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할 여정의 첫걸음이라 여긴다. 지자체가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세계전통활연맹이 민간 외교의 가교가 되기를 기대한다. 문화에서 물꼬를 트면 경제 분야로 확장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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