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죄가 명백한데도 증인을 불러내 신문하는 등 재판을 지연시키거나 벌금형 약식명령에도 범행을 부인하면서 정식재판을 청구한 피고인들에게 법원이 잇따라 소송비용을 부담하도록 한 사례가 나왔다.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에게 소송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판결은 매우 드물다.

대구지법 제7형사단독 오범석 판사는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음주측정거부)로 기소된 A씨(54)에게 벌금 500만 원을 선고하고 소송비용을 부담하도록 했다고 4일 밝혔다.

A씨는 작년 9월 21일 오후 8시 40분께 경북의 한 도로에서 술을 마신 상태에서 자신의 승용차를 운전하던 중 앞서가던 승용차를 충돌한 뒤 현장을 이탈했다. 출동한 경찰은 횡설수설하며 몸을 비틀거리는 A씨에게서 음주를 감지했고, A씨는 3차례에 걸친 경찰관의 음주측정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벌금형에 약식기소된 A씨는 정식재판을 청구했고, 재판에서 “경찰관에서 음주측정 요구를 받은 바 없다”고 부인했다. 재판부는 A씨의 요구대로 국선변호인을 선임해주고 증인 3명을 불러 증인신문도 진행했다.

대구지검은 A씨가 불필요한 증인신문 절차를 요구해 소송비용이 발생했다는 이유로 증인 여비와 국선변호인 보수 등 43만여 원을 청구했고, 법원이 받아들임에 따라 지난 10월 20일 이 돈을 완납 받았다. 형사소송법 제186조에 근거해서다.

대구지법 제10형사단독 조성훈 판사도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B씨(61·여)에게 벌금 50만 원을 선고하고 소송비용을 부담하도록 했다.

B씨는 지난 7월 6일 오후 7시 30분께 자신이 세를 준 미용실에서 “임대차 기간이 다 됐으니 미용실을 비워달라”면서 수돗물을 잠그고 에어컨 실외기를 발로 차면서 임차인인 미용사에게 욕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B씨 역시 범행 장면이 담긴 동영상 증거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식재판을 청구해 증인 2명을 불러 증인신문을 진행해 재판을 지연시켰고, 검찰은 국선변호인 보수와 증인 여비 등 소송비용 38만여 원을 재판부에 청구했다.

김형길 대구지검 1차장검사는 “방어권 남용, 재판절차 지연,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소송비용 낭비 등의 원인을 만드는 피고인들에게 소송비용을 부담시키는 방법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역 한 법조인은 “피고인에 대한 소송비용 부담은 남상소 방지와 사법기관 인력과 비용 낭비 예방에는 도움이 되지만, 소송비용 부담이 두려워 정식재판 청구나 항소를 포기하는 사례가 생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배준수 기자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법조, 건설 및 부동산, 의료, 유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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