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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호순병원 원장

심각한 트라우마를 직접 경험하거나 혹은 가까이에서 노출이 되어 그 후에 나타나는 걱정스러운 불안 장애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 한다. 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트라우마 후 바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약 4주 후부터 문제가 되기 시작한다. 일반적인 급성 스트레스 반응은 약 4주 정도 안에 호전이 되거나 극복해내는 것이 대부분인데 그 기간 내에 극복하지 못한다면 비로소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진단이 된다.

이 장애의 가장 대표적인 증상이 바로 기억의 회상이다. 그 큰 트라우마에 대한 기억이 원치 않아도 자꾸 회상된다는 것은 그 당시의 고통을 다시 느끼게끔 하는 가장 힘든 증상이다. 생각으로 떠오르거나 악몽으로 나타나거나 하여 그 사건에 대해 반복적이고 집요하고 고통스러운 회상이 가장 힘들어하는 증상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 트라우마와 관련되는 자극을 지속적으로 회피하려 하거나 반대로 예민해져서 과잉 각성 상태를 유지하며 자율 신경계가 늘 활성화되어 있기도 한다. 심한 상태의 경우는 공황발작을 경험하거나 우울감, 해리 현상, 공격성, 충동조절의 어려움 등의 증상들과 결국에는 인격의 황폐화까지 초래할 수도 있는 이 병을 그래서 걱정하는 것이다.

이런 후유증상을 막기 위해 큰 트라우마가 발생하면 재난심리상담 전문가들이 사건 현장에 기서 상처받은 마음들을 돌보기 위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진도 해상에서 세월호 그 큰 배가 수많은 생명을 안고 속절없이 침몰해 버렸을 때, 직접 당사자와 그 유가족들의 슬픔뿐만 아니라 지켜보는 모든 이들도 그 아픔에 몸서리를 쳤었고 그 현장에 재난심리 전문가들이 달려갔었다. 얼마 전 포항 지진에서도 재난심리 전문가들이 현장으로 달려가 트라우마에 놀란 가슴들을 어루만지고 토닥여 주고 큰 장애로 발전하지 않도록 전문적인 상담을 하여 도움을 주고자 노력을 했었다. 참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재난 심리 상담은 매우 어려운 상담에 속한다. 심리 상담의 전문적인 교육과 경험 없이 아무렇게나 어설프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기분만으로는 재난 심리 상담가가 될 수 없다. 많은 임상 경험과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일이므로, 이런 전문성이 없으면 오히려 해를 끼칠 수도 있는 일이기에 더 조심스러워야 한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재난 시 제공 할 수 있는 전문적인 정신건강지원에 대한 기준이나 원칙이 절실히 필요할 때이다. 마침 모 대학병원의 정신건강 의학과에서 주도하여 정신의학, 예방의학, 소아청소년정신의학, 사회복지학, 간호학, 임상심리학 등 다학제 연구팀을 구성해 ‘한국형 재난 정신건강지원 지침’을 개발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어 다행이다. 이 지침서는 국가 재난 발생 시 재난민의 심리적 충격을 완화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신건강 서비스 지침이라고 한다.

한국형 재난정신건강지원 지침은 △재난 발생 전 준비단계 △재난 직후 초기 대응(발생~1주 이내) △재난 후 조기 대응(1주일~1개월) △재난 후 1~3개월의 대응 △재난 발생 3개월 이후 대응 등 재난 시기를 구분해 설명하고 있다고 한다. 이 연구는 재난정신건강서비스를 위한 정신건강전문가의 지원 지침이며 재난 발생 후의 시기를 응급기, 초기, 중기, 장기로 구분해 시기별로 필수적인 정신건강 서비스 틀을 공유하고 국내 상황에 맞는 일관되고 연속적인 서비스 근거를 제공하는 지침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제는 더 이상 “이제는 잊어야지요, 시간이 약입니다.”라고 하는 어설픈 재난 심리상담가들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런 지침서로 재난심리 정신건강 전문가들을 양성하여 제대로 된 재난 정신건강지원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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