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죽음을 생각해 두는 것은 자유를 예상하는 것이다. 죽기를 배운 자는 노예의 마음씨를 씻어 없앤 자이다. 죽기를 알면 우리는 모든 굴종(屈從)과 구속에서 해방된다. 생명을 잃는 것이 불행이 아님을 잘 이해한 사람에게는 이 세상에 불행이라는 것이 없다. 사람들에게 죽는 법을 가르치는 자는 그들에게 사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몽테뉴 수상록의 한 구절이다.

“우리 각자는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삼라만상 가운데 가장 중요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파리 한 마리나 풀잎 하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하는 역설도 수긍할 줄 알아야 한다. 인생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하며, 반면에 아무런 두려움 없이 죽음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에릭 프롬이 현자처럼 얘기하고 있다. 괴테도 “죽음의 자태도 현자의 눈에는 공포로 여겨지지 않으며, 경건한 사람의 눈에는 종말로 비치지 않는다” 했다.

암 선고를 받은 안자키 사토루(安崎曉) 전 일본 고마쓰 사장의 ‘생전 장례식’ 소식이 스산한 이 겨울,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안자키 사장은 1961년 고마쓰에 입사해 1995년 사장이 됐고, 이후 회장, 상담이사역 등을 지낸 성공한 사람이다. 안자키 사장은 지난달 20일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광고를 냈다. “10월 초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에 가 검사를 받았더니 담낭암이 발견됐다. 폐 등에 전이돼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아직 기력이 있을 때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40년간 회사 생활을 하면서 공사적으로 신세 진 분, 은퇴 후 여생을 함께 즐긴 많은 분들에게 감사하고 있다”는 뜻과 함께 회비나 조의금을 받지 않으며 복장은 평상복 혹은 캐주얼하게 해달라는 생전쟁례식 초청 광고를 낸 것이다. 이 생전 장례식에는 지인 1천여 명이 참석했다.

일본에는 인생을 마무리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슈카쓰(終活)’ 가 2010년대 들어 확산됐다. 장례식 준비를 미리 해 두거나 주변을 정리하고 임종을 준비하는 것이 일반적인 슈카쓰다. 죽음에 대비해 연명치료 여부나 장례절차, 지인에게 전할 편지 등을 기록하는 엔딩노트도 한 예다. 현자 다운 안자키 씨의 경건한 생전장례 슈카쓰가 삶을 돌아보게 한다.

이동욱 편집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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