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스물두 살
한 이십 년쯤 부질없이 보냈네.

무덤이 둥근 것은
성실한 자들의 사랑스런 면류관 때문인데
이대로 땅밑에 발목 꽂히면
나는 그곳에서 얼마나 부끄러우랴?
후회의 뼈들이 바위틈 열고 나와
가로등 아래 불안스런 그림자를 서성이고
알만한 새들이 자꾸 날아와 소문과 멸시로 얼룩진
잡풀 속 내 비석을 뜯어 먹으리

쓸쓸하여도 오늘은 죽지 말자
앞으로 살아야 할 많은 날들은
지금껏 살았던 날에 대한
말없는 찬사이므로





감상) 쪽빛 햇살, 마른 풀잎, 마른 꽃잎, 시들은 그림자, 창문은 열면 안 돼, 얼어붙은 말들, 여름 슬리퍼가 뒹구는 겨울 베란다, 쓸려나가지 못한 여름 먼지, 언제나 너의 편지를 기다렸어, 앙상한 가지는 보고 싶지 않아, 창가로 나가는 건 내가 아니라 쓸쓸함, 아침이 쓸쓸하면 하루 종일이 그렇더라, 그러나 아직 너의 편지를 받기 전이니까,(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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