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성우 국가디자인연구소 이사장·시사평론가
법정 처리 시한을 넘긴 문재인 정부의 첫 예산안이 여야가 공무원 증원 규모를 9천500여 명으로 절충하면서 극적으로 타협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중 공무원 17만4천명 증원을 약속했고, 그 일환으로 내년부터 1만2천여명을 채용하기 위해 이번 예산안에 5천439억 원을 배정했었다. 야당은 국가 재정에 부담이 된다며 공무원 증원을 줄곧 반대했다. 공무원 증원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공 부문 중심의 일자리 81만 개를 ‘대선 1호 공약’으로 내세울 때부터 시혜성 정책이라며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많이 제기되어 왔다. 첫 해부터 결코 쉽지 않음을 문재인 정부가 조금은 느꼈을까?

공무원 증원 문제는 문재인 공약 1호라는 상징성이 큰 만큼 향후 논란이 지속될 사안이다. 공무원의 수와 업무량은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제시하는 파킨슨의 법칙은 차치하고, 공무원 증원에 필요한 돈은 도대체 어떻게 감당하려는지 궁금하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5년간 매년 3만4천800명씩 공무원을 증원할 경우 향후 30년간 327조원이 소요된다는 추산을 내놓았다. 시민단체인 한국납세자연맹이 추산한 비용은 이보다 100조원 많은 419조원에 달한다. 올 들어 국내 1가구가 짊어져야 할 가계부채와 국가부채가 평균 1억 원을 넘어섰다고 하는데, 가뜩이나 소득 정체에 빠져 있는 국민에게 이제는 공무원 고용 비용까지 감당하라고 하니, 문재인 정부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정책을 펼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마저도 공무원 증원은 “긴급 처방의 성격”이라고 했다. 일자리 상황판 숫자 늘리기에 급급해 일단 구멍 난 제방을 손가락으로 막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그 큰 물의 압력을 손가락 하나로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는가? 구멍 난 제방은 결국 여기저기 구멍이 생겨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는 보수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국민 혈세로 일자리를 늘리는 공무원 증원은 미래 세대에 부담을 주는 전형적인 선심행정이자 무책임한 포퓰리즘 정책이다.

또 하나 우려되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포퓰리즘에서 적개심의 정치가 보인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정신을 자신의 전유물인 양 독점하여 ‘우리’와 반대하는 의견을 내는 사람을 ‘그들’로 묶어 적폐라고 규정하고, ‘그들’에 대한 적개심을 부추겨 지지자를 동원해 그 집단적 에너지를 문재인 정부의 동력으로 삼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절 지지하지 않은 분들도 섬기는 통합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그러나 통합은커녕 문재인 대통령의 포퓰리즘 정치는 공무원과 비공무원, 시장과 반(反)시장, 부자와 서민, 대기업(재벌)과 중소기업으로 구분해 사회를 이분화 시켜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클라우스 슈바프 회장은 “책임 안 지는 리더들이 흔히 대중 인기에 영합하기 위해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한다”며 포퓰리즘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로마 카톨릭교 프란치스코 교황도 “포퓰리즘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히틀러 같은 사람을 낳을 수 있다”며 경고한 바 있다. 비옥한 땅과 풍부한 천연자원 등으로 세계에서 잘 사는 나라 중 하나였던 아르헨티나가 페론 전 대통령의 무분별한 선심성 복지 정책으로 국력이 쇠하고 결국 나라의 재정이 파탄에 빠졌다는 유명한 사례를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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