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비가 올 때 우리식구들은

새로 놓은 소나무 마루에 오종종 모여 앉았지

지독한 송진 냄새를 배경으로

양철지붕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었어

물받이를 타고 내린 빗물이

마당을 가로 지르는 길이 되더군

작은 길은 여기저기 생겨나 하나로 뭉쳐져

쏜살같이 마당을 빠져 나갔어

그 풍경은 소나무 지독한 냄새도 잊게 했지



그곳에 다시 가 보았어

콘크리트 마당이 된 그곳엔

비가와도 더 이상 길이 생겨나지 않았어

그 때 그 사람들 몇은 땅으로 돌아가고

젊었던 몇은 도시로 떠나버려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곳

그곳에 한참을 앉아있었어

그런데 참 이상하지

지독히도 싫었던 그 냄새가 그리워지는 거야

마룻바닥에 코를 박았어

신기하게도 머릿속으로부터 고스란히 살아나더라

정말 지독히도 싫었던 그 냄새가 말야




감상) 눈을 감으면 보고 싶은 곳을 볼 수 있지. 눈을 감으면 잊은 줄 알았던 그것을 떠올릴 수도 있지. 어쩌다가는 눈 감지 않고도 알 수 있어 신기한 건 고통이 그리워지고 악취가 그리워진다는 것. 우리가 마음대로 잊을 수 있는 일이라고는 도무지 하나도 없어.(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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