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억 원대 비자금을 만들어 사적용도로 사용한 혐의를 받는 박인규 대구은행장이 10월 13일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대구지방경찰청에 출두하고 있다. 경북일보 자료사진.
30억 원대 비자금을 만들어 일부를 개인 용도로 쓴 혐의를 받는 박인규(63) 대구은행장에 대해 경찰이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장호식 대구경찰청 수사과장은 19일 “업무상 횡령과 업무상 배임, 사문서 위조와 위조 사문서 행사 등 4가지 혐의를 적용해 대구지검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발표했다. 경찰은 전·현직 비서실장을 포함해 과장 이상 간부 17명도 같은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2014년 3월 27일 취임한 박 행장은 그해 4월부터 올해 8월까지 법인카드로 32억7천여만 원어치의 상품권을 구매했다. 사회공헌부에서 정상적으로 구매한 2억7천여만 원을 빼면 30억 원 상당의 비자금을 만든 것이다. 상품권환전소에서 1억 원에 가까운 수수료를 떼고 현금 26억 원을 손에 쥐었고, 3억 원 상당의 상품권은 그대로 사용했다.

박 행장과 간부들은 접착형 메모지나 볼펜 등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는 1만 원 미만의 홍보물만 고객사은품으로 살 수 있는데, 상품권을 구매하면서 이를 어긴 것을 감추기 위해 메모지나 볼펜 등을 실제 구매한 것처럼 속인 허위의 영수증을 증빙서류로 첨부한 것으로 밝혀졌다.

9월 5일 대구 북구 칠성동 대구은행 제2본점 압수수색을 마친 대구지방경찰청 관계자들이 압수한 자료를 차량에 싣고 있다. 경북일보 자료사진.
경찰은 9월 5일 대구은행 제 2본점에 대한 압수수색에 이어 10월 13일부터 최근까지 박 행장을 세 차례 소환해 비자금 사용처를 집중 추궁했으나, 박 행장은 “경조사비 등 모두 공적으로 썼다”며 혐의를 부인해왔다.

박 행장이 비자금을 횡령하지 않았다면서 경찰에 낸 소명서는 A4 용지 한 장뿐이었다. 비자금 29억 원을 직원 격려비나 회식비, 내외부 고객 경조사비와 격려금, 회식비 등에 썼다는 것이다. ‘월 평균 20~50만 원 상당의 경조사비를 몇 차례 지급했다’는 등 두루뭉술한 방식이다. 박 행장이 주장한 경조사비 규모는 7억 원 정도다.

강신욱 대구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장은 “대구은행 관계자 진술과 우리가 확보한 자료에 비춰봐도 박 행장의 소명은 금액이 부풀려진 데다 신뢰할 수준이 못 됐다”고 말했다.

경찰은 그동안 수사를 통해 박 행장이 개인 용도로 쓴 돈의 규모를 5억 원 미만으로 산정하고 있다. 장호식 수사과장은 “현재 시점에서 박 행장이 조성한 비자금 중 명확하게 개인 용도로 쓴 액수는 5억 원 미만이다. 5억 원 이상이었으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한 이유로 박 행장의 증거인멸 가능성이라고 했다. 장호식 수사과장은 “박 행장이 스마트폰을 교체하거나 관련 정보를 삭제한 사례에서 보듯이 증거인멸 우려가 크다. 박 행장과 진술이 상반된 은행 관계자들의 진술이 번복될 가능성이 높은 점도 한몫했다”고 말했다. 8월 초부터 내사에 돌입한 계기가 된 투서에 적힌 전직 대구은행장에 대한 수사 여부와 관련해서는 “범죄를 입증할 자료가 없어 수사가 어렵다”고 했다.

대구지검은 박 행장의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할지 여부를 늦어도 20일까지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배준수 기자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법조, 건설 및 부동산, 의료, 유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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