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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한 수필가
어느 사회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패한 집단은 반드시 몰락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치가 부패한 경우 특정집단의 단순 정치적 몰락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정치가 썩어가는 동안 사회 전반에 쌓이고 쌓인 부정과 비리 또한 동시에 척결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곪을 대로 곪은 사회 분위기는 언제고 국가존립 기반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합법으로 가장한 편법이 난무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뒷거래가 관행처럼 횡횡하는 사회는 결코 지속 가능할 수 없다.

‘교수신문’이 2017년, 올해를 나타내는 사자성어로 ‘破邪顯正 (파사현정)’을 꼽았다. ‘그릇된 것을 깨트려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뜻의 ‘파사현정’은 지금의 대한민국 상황을 그대로 대변해 주고 있다. 과거의 잘못된 정치 관행과 정책 결정 과정에서 이루어진 온갖 부정과 비리에 대한 수사와 처벌이 현재진행형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구집권세력의 일부 정치인들은 정치보복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지금껏 이루어진 수사진행 상황과 처벌과정 어디에도 협박과 회유에 의한 거짓진술이 드러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부자 진술과 명백한 객관적 증거만 있을 뿐이다.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은 진즉에 알았지만. 뿌리째 썩은 부패정치의 생명력이 그토록 질기다는데 새삼 놀랐다.

원래 ‘파사현정’은 불교에서 주로 쓰이는 용어다. 얼마 전 끝난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 과정에서 종단개혁을 주장하는 신도와 승려들이 줄기차게 던진 화두도 바로 ‘파사현정’이었다. 각종 불미스런 의혹이 제기된 한 원로스님이 신도는 물론이고 승려 그리고 사회 각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종단운영의 새로운 수장으로 결국 당선되긴 했지만, 내부사정은 여전히 복잡하다고 한다. 제기된 의혹의 내용이 수행자라면 반드시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야 할 계율을 직접적으로 위반한 것이라는 주장이 일각에서 여전히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에 대한 입장설명 역시, 마땅히 필요지만 선거가 끝난 후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해명조차 아직 내놓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수행을 업으로 삼는 수도승들 사이에서도 어려운 게 ‘파사현정’이다.

정치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가치구현에 부합하지 않고 주어진 권력을 이용한 사리사욕 채우기에 급급하거나 특정 정치집단의 기득권 유지에만 함몰돼 있다면 그 행위의 결말은 불 보듯 뻔하다. 서슬 퍼렇던 절대 권력도 국민의 저항 앞에서 결국 탄핵당하고 그 부역자들 또한 법의 심판대에 세워지고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의 현실은 어쩌면 이미 예정된 당연한 수순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모순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지 결코 영원할 수는 없다는 것을 수많은 역사가 보여주지 않았던가.

‘교수신문’은 지난 2012년 새해를 앞두고 희망의 메시지로 ‘파사현정’을 새해 사자성어로 꼽은 바 있다. 하지만 같은 해에 치러 진 대선의 결과는 똑같은 사자성어를 5년이 지난 올해 또다시 등장시켰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불순한 동기와 부정한 방법으로 인해 쌓이고 또 쌓인 부정부패는 반드시 척결되어야 한다. 비록 그 과정이 지난하더라도 무소의 뿔처럼 꿋꿋이 쉼 없이 이어져야 한다. 아무리 터무니없는 억지주장과 막가파식 저항이 거세더라도 악마와 손을 잡는 일은 없어야 한다. ‘불파불립(不破不立)’, 깨뜨리지 않으면 바로 세울 수가 없는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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