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시장에 베개만 한 생대구가 수십 마리씩 좌판에 놓여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강호동 대구’, ‘이만기 대구’가 있고, ‘전지현 대구’, ‘송혜교 대구’도 있다. 대구의 넓적한 배에다 ‘강호동, 이만기, 전지현…’이라 써 붙여 놓은 것이다. 퍼블리시티권 침해의 소지는 있지만 상술이 기발하다. 좌판 앞을 지나던 사람들 대부분이 한 번 씩 눈길을 두고는 피식 웃음을 띠고, 값을 묻기도 한다.

대구는 말 그대로 입이 크다고 해서 붙여진 고기 이름이다. 대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래전부터 즐겨 먹던 생선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생선가스 ‘피시 앤 칩스’의 생선이 바로 대구다. 대구는 살이 통통하게 오르는 12월, 지금이 제철이다. 주산지인 남해안 지방에서는 ‘동지(冬至) 대구는 사돈댁에도 보내지 않는다’는 옛말이 있을 정도로 맛이 있다.

대구는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두툼하고 담백한 살은 탕으로 좋고, 전으로 부쳐 먹기에도 알맞다. 설날 제사상에 오르는 어전도 대구포 전이다. 뼈와 알을 내장과 함께 푹 고아낸 매운탕은 먹으면서 이마에 땀을 연신 훔치면서 “아이 시원하다”를 연발하게 한다. 

서양 역사를 새로 쓰게 한 생선도 대구다. 바이킹은 튼튼한 배에 잘 말린 대구포를 싣고 다니며 대양 원정을 벌였다. 바다에 그어진 선도 대구 어획과 관련이 있다. 국제법상 영해의 기준 12해리는 20세기 중반 영국과의 대구전쟁에서 승리한 아이슬란드가 설정한 12해리 배타적 수역에서 유래했다.

대구는 10여 년 전만 해도 시장에서 구경할 수가 없었다. 호사가들만 선장들과 핫라인으로 연락해서 생대구탕의 시원한 맛을 즐겼다. 당시 마리당 가격이 30~40만 원을 호가했을 정도다. 1970년대 까지만 해도 흔히 잡히던 생선이었지만 이후 남획으로 자취를 감췄다가 최근에야 장바닥에서 거래될 정도가 됐다. 1995년 270t까지 줄었던 대구 어획량은 인공 수정란 방류와 1월 금어기 설정 등으로 2010년대 들어 1만t 정도로 회복됐다. 

죽도시장 베게만 한 대구 한 마리 사다가 끓여 먹으면 지진에 지친 몸과 마음이 조금 녹아내리지 않을까.
이동욱 편집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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