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거주 30대 여성, 2000년 ‘경증 뇌성마비 진단’
지난해 도파민 복용 2시간만에 정상적으로 걸어
보호자 "잘못 알고 고통받는 이들에 희망 주고파"

▲ 뇌성마비 진단을 받고 고통을 겪다 작년 5월 도파민 복용 두 시간 만에 우뚝 선 박예빈씨의 어머니 강효진씨가 병원에서 정상적인 걸음을 뗄 당시 찍은 동영상을 경북일보 취재진에게 보여주고 있다. 윤관식 기자 yks@kyongbuk.com
경북일보는 2001년 뇌성마비로 진단받고 열다섯 살이 돼서야 ‘도파 반응성 근육긴장 이상’(세가와병)으로 밝혀진 이후 도파민 복용 일주일 만에 두 발로 우뚝 선 주인공 수경(20·가명)이의 사연을 전했습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환자나 부모들에게 희망을 전할 수 있어서 기뻤다는 소감과 뒷이야기도 보도했습니다.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뇌성마비 진단을 받고 지내다 지난해 도파민 복용 두 시간 만에 정상적인 걸음을 되찾은 박예빈(33·가명·여)씨 가족도 만났습니다. 그녀의 어머니 강효진(60·가명)씨는 “뇌성마비로 잘못 알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다시 일어설 기회와 희망을 주고자 인터뷰를 청했다”고 했습니다. 20일 취재진과 마주한 강효진씨는 “당시 의학기술의 한계를 인정한다. 의료진을 탓하자는 취지는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1984년 몸무게 2.4㎏의 미숙아로 태어난 예빈씨는 인큐베이터에서 한 달을 보냈지만, 건강하게 잘 자랐다. 중학교 2학년이 되던 1998년 걸음걸이가 이상해졌다. 까치발로 걷고 넘어지기 일쑤였다.

2000년 3월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경증의 뇌성마비’로 진단을 받았다. 이후 서울의 유명 병원을 백방으로 찾았지만, MRI 상에서는 이상 징후가 없었다. 그런데도 모두 뇌성마비가 의심된다고 했다. 친척과 이웃도 “걸음걸이와 자세가 이상하다”고 수군거렸다.

강씨의 속은 타들어만 갔다. 대학에 진학해서는 걸으면서 얼굴을 앞으로 쭉 내미는 게 습관이 된 탓에 거북목 자세가 됐고, 턱관절도 이상이 생겨 치아도 문제가 됐다. 밤이 될수록 몸이 더 뻣뻣해지고 왼쪽 팔다리 강직이 더 심해졌다.

예빈씨의 어머니는 “뇌성마비라면 인지기능이나 지적능력이 떨어져야 하는데, 딸은 공부를 매우 잘했다. 뇌성마비가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반전이 일어났다.

해외에서 박사과정을 밟는 예빈씨가 SOS를 쳤다. “학업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인지 다리가 아예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강씨는 “절망적이었다. 고통과 공포에 시달리며 옴짝달싹 못 하는 딸이 가여웠다”면서 “더는 걸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낙담했다”고 회상했다.
작년 5월 1일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하루 두 차례씩 물리치료를 받았지만, 허사였다. 용변을 보고 옷을 다시 입는데도 20분 이상 걸렸다. 재활의학과와 뇌신경외과 등 여러 부서에서 예빈씨의 걸음걸이를 면밀하게 관찰했다. 5일 뒤 의료진은 “소량의 도파민을 복용해보자”고 제안했다.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두 시간 만에 너무나도 편안하게 두 발로 걸었다. 그제야 “정상적인 걸음걸이가 바로 이거였구나”라고 감탄사를 내뱉는 딸을 본 강씨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강씨는 “퇴원 후 찾은 신경외과 교수에게서 세가와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혹시 몰라서 지난 5월 특수 MRI 촬영을 통해 세가와병과 증상이 비슷한 파킨슨병이 아니라는 판단도 받았다.

강효진씨는 “길을 가다가도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이들을 보면 내 경험을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100만 분의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절망적인 상황에서 탈출할 희망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특히 “대학교수의 꿈을 위해 매진하고 있는 딸이 ‘오랜 시간 고통스러웠지만, 그 시간이 나보다 힘든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밑거름이 돼 기쁘다’고 소감을 전해왔다”고 덧붙였다.
배준수 기자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법조, 건설 및 부동산, 의료, 유통 담당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